초대일시 / 2023_0927_수요일_02: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수성아트피아 SUSEONG ARTPIA 대구 수성구 무학로 180 Tel. +82.(0)53.668.1840 www.ssartpia.kr @ssartpia_official
조각의 변주 ● 이번 수성아트피아에서 기획한 『조각의 변주』전은 조각의 변천사와 조각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며, 지금의 다양한 예술작품들과 비교해 조각만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과거 조각은 회화와 다르게 삼차원의 공간 속에서 하나의 물질을 다루는 연유로 재현을 위한 유리함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상징적이고 기념비적인 의미를 담고 중요한 장소에 놓여 그 위엄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회화의 원근법적 공간을 무너트리면서 조각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각은 더는 견고한 덩어리가 아닌 외부와 내부가 섞이는 입체적 구성으로 형성된 구조물이 된다. 한마디로 조각도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는 조각의 개념이 해체되고 다양화를 꾀할 가능성의 제시였다. 이후의 미래파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작품 『공간에서의 연속성』은 중력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바로 공간성과 시간성이 적용된 것이다. 구축주의 작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이나 나움 가보의 작품에서 조각은 사물이 아닌 공간에서 자유로운 구축물이 된다. 미니멀 아티스트 칼 앙드레, 도날드 저드, 로버트 모르스에 이르러서 조각은 개념이 되었고, 아니시 카푸어의 조각은 환영이 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마르셀 뒤샹의 오브제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로버트 스미슨이나 리차드 롱의 대지미술은 어떤가! 이렇듯 100년의 세월을 통해 조각은 변했고, 작가들이 조각을 대하는 태도는 100년 전과 너무나 달라졌다. 이렇게 조각의 개념이 해체되어 탈脫조각의 성격을 드러낼 때 그럼 오늘날의 젊은 조각가들은 탈조각의 다음 단계에 있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수용이 이루어진 1990년대, 한국의 조각은 재료나 내용 면에서 더욱 다양화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대학출신 조소 전공 학생들과 작가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제작 방법들을 답습하고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공존하고 다양성이 존재하는 동시대미술을 경험하며 조각을 연구한다. 오늘 우리는 중견 작가 3명의 각기 다른 조각적 풍경을 마주할 것이다. 분명 조각이지만 이전의 조각적 개념과는 다른 조각작품들이다. 이들이 각각 조각이란 장르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현하려 하는지 각자 선택한 재료와 형태 그리고 내용으로 공간에 펼쳐놓고, 어떻게 조각의 영역을 확장해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겠다.
먼저 신한철 작가는 원자의 증식과 확장 그리고 소멸하는 우주의 원리를 바라보듯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소를 닮은 구(Sphere)를 조형화해 삼차원의 공간에 입체적으로 펼쳐놓는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전시장 천장에 매달려 부유하듯 떠 있는 구들의 유희적 풍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어여쁜 구슬이기보다는 농구공보다도 큰 크기의 구(Sphere)들로 이뤄져 규칙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구성으로 전시공간에서 당당하게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단순한 형태의 구(球)지만 전시장에서 상승과 하강, 수평과 수직, 곡선과 직선 등의 구 배열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관객을 압도한다. 그럼 신한철의 작품은 현 미술계에서 어느 지점에 있을까? 먼저 한국 현대조각의 흐름을 살펴보면 1920년대 중반, 조각가들은 서양의 조각을 접하고 수용하면서 대상을 형상화하는 것에 주력했다. 이후 구상 조각에서 추상 조각으로 전개되면서 앵포르멜의 과정과 기하학적인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개념과 물질에 대한 탐구로도 이어졌다. 여기에 아르테 포베라, 플럭서스, 미니멀리즘 등 서구미술의 수용 혹은 흐름과 같이하면서 때론 민족적, 사회적 고민이 반영된 작가들만의 특이점을 가지며 전개되어 왔다. 그런데 신한철의 조각은 좀 다르다. 조각적 고민이 사라진다. 대상을 형상화하거나 추상화하는 것도 아니고 개념이나 물질의 문제도 아닌 모더니즘에서 겪고 있던 문제 제기가 없다. 그래서 탈모더니즘적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역으로 모더니즘의 고민 후에 탄생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바로 과학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 한몫한 것이기도 하고, 입체적인 양감을 넘어서 연구가 가능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조형 구성의 상식을 넘어서 유동(流動)과 소멸(消滅), 무한(無限)과 연속 등 과거 생각할 수 없었던 세계로 사고의 범위가 확장함을 의미한다. 분명 이러한 과정이 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조각의 범위가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최정윤 작가는 문명사회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상징적인 매개를 형상화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검(劍), 소금, 꽃과 같은 상징적 대상은 추상적 형태의 새로운 조형물로 탄생하고 관계의 미묘함 속에서 인간 세상의 부조리한 풍경을 구조화시킨다. 이는 대상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와 관람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작품을 마주하며 만들어지는 관계를 통해 조각이 하나의 사물 이상임을 경험하게 한다. 소금은 종교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정화나 치료의 의미를 가지며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부를 상징하는 물질이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소금은 검의 형상을 만나 구축되고 감각적 풍경으로 펼쳐진다.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기호화되고 상징화되어 조각으로 만들어질 때 우리는 이를 기념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막상 최정윤의 작품은 추상적인 설치로 인해 작품은 환상적인 소금 숲이 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화려한 꽃 모양의 사람 형상과 소금 검들이 같이 섞여서 전시되었는데 화려한 군대의 행렬 꼭 퍼레이드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작가는 재료가 가진 물질의 의미와 색채 그리고 형태들을 총동원해 욕망하고 사유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최정윤의 조각은 추상적인 풍경으로 전개되지만, 그의 철학적 사유가 반영되어 세상에 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우리를 황홀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정득용 작가는 이탈리아와 대구를 오가며 각각의 나라가 추구해 온 역사적 배경과 정신적 토대를 조각이라는 대상을 통해 이해하고 소통하려고 했다. 그에게 이탈리아 조각은 문명의 근원이자 인간의 이상향으로 보인다. 동시에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상이나 기억하는 사람(인물 조각) 모두 우리가 마주하는 자신의 삶 속 인물이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역사적일 수도 있고 개인적일 수도 있다. 다만 인물 조각의 얼굴 일부가 잘려나갈 때 조각상은 관계성을 잃고 사물이 된다. 그러나 남아있는 일부의 형상으로 관람객을 당황하게 한다. 스토리가 있는 인물로 볼 것인지, 사물 혹은 돌덩이로 볼 것인지를 묻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발한 질문은 평면 작업으로 이어진다. 다만 평면 작업에서는 그림자처럼 대상의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우리가 정득용의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물과의 감각적 관계다. 그 흔적은 다시금 무엇의 흔적인지 묻는다. 사실 답은 명확하지 않으나 그의 조각을 보면, 작가의 행위가 담긴 흔적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 전통회화의 메시지를 읽어내듯 조각 바로 형상 넘어, 그림의 이면을 보길 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그가 조각의 단면을 잘라내고 대상을 지우는 것은 문명의 이기, 이성적 판단을 배제하고 비움의 미학을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일 수 있다. 동시에 대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사물이 가진 속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조형적 시도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3명의 조각가가 풀어내는 의미심장한 조각의 변주를 경험해 본다면 조각 또한 회화 못지않은 재미와 조형의 미가 다채롭게 전개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조각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고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바라봄에 있어 절대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강효연
Vol.20230928b | 조각의 변주 variation in sculptur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