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을 Some kind of village

권현조展 / KWONHYUNJO / 權鉉祚 / installation.video   2023_0927 ▶ 2023_1008 / 월요일 휴관

권현조_Praise you_단채널 비디오_00:08:32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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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2023_0927_수요일_11:00am 2023_0928_목요일_11:00am

후원 / 공주시_공주시의회 주최·주관 / 공주문화관광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공주문화예술촌 GONGJU CULTURE ART VILLAGE 충남 공주시 봉황로 134 Tel. 070.4415.9123 www.madeingongjuartproject.com/공주문화예술촌 @gongju_creative_residency

새겨진 것에 대해 되새기기"우리 모두는 저마다 그들 각자의 마을을 살고 있다"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곤 하는가? 권현조의 개인전 『어떤 마을(Some Kind of Village)』은 특정 집단과 사회 등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일곱가지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I have to celebrate you)」, 「군대 얘기 1화(When I was an army vol.1)」, 「군대 얘기 2화(When I was an army vol.2)」, 「군번 (Service number)」, 「엄마, 엄마 이름(Mom, the name of mom)」, 「성가(Anthem)」, 「배신자(Traitor)」 등 이번 전시를 이루는 각각의 작업들은 '어떤 마을'이라는 느슨한 개념을 배경으로 다양한 지역, 사람들, 집단, 기억, 믿음이 교차하는 개별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작가는 그러한 소재를 대화, 인터뷰, 또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짧은 영상을 통해 매개함으로써 관람자가 각각의 집단과의 대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끈다.

권현조_Sagas_2채널 비디오_00:13:21_2023

이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나 주제와 관련하여, 작가는 사회, 혹은 집단과 상호작용하는 예술의 역할에 주목해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예술 실천 자체의 역할과 기능은 작가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영역 중 하나인데, 여기서 수용 계층, 제도, 관습 등 예술 주위의 구체적인 사회적 문맥은 작품의 실질적인 의미작용고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곤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예컨대 "무언가의 대상을 사회적으로 기념비화 하는 데 비판적인 작품들조차 그 반기념비화를 기념비화 하려는 성향에서 보여 지듯이 예술은 사회, 집단과의 공존에서 멀어지기 힘들다." 말하자면, 예술은 본래 의도나 메시지와 별개로 그것이 놓인 특수한 시점, 지역, 수용자 집단,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는 상황 속에서 의미의 구조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그간의 방법론, 즉 예술의 조건에 대한 메타 인식의 결과로서의 사회와 집단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역으로 크고 작든 어떤 사회라는 체계를 예술을 통해 접근하고 매개하는 재귀적인 피드백을 모색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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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면적으로 개별 작품들은 각각 가족, 국가, 군대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틀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종교, 역사, 언어 등 집단을 규정하는 비물질적인 경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단위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웬만큼 방대하고 복잡한 담론적 프로젝트가 아니고선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어떤 면에서 다소 야심찬 담론을 내걸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작가는 담론적 논의를 개진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가깝고 일상적인 사회적 규약, 구체적인 지역과 집단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당연시 여겨오던 사회적 관행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공유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을 축복합니다」에서는 경로당 할머니들로부터 천국과 지옥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내는데, 이 즉흥적인 대화는 종교적 믿음과 사회를 유지시키는 오래된 이데올로기 사이의 묘한 공모관계를 내비치고 있는 듯하다. 「군대 얘기」 연작에서 작가는 전후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소위 '군대 썰'을 병치시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로 다른 세대의 남성들이 자신의 군번을 읊는 영상을 추가로 배치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집단적 경험 중 하나를 보여준다. 또한 「엄마, 엄마 이름」은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는 노년층, 그리고 엄마의 이름을 말하는 어린이들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작품에 담긴 감정적인 효과와 별개로 개인의 삶에서 가장 원초적인 언어-기호이기도 한 '엄마'라는 단어는 특정 문화의 공동체가 공유하는 언어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이러한 표본들은 다양한 소재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한국이라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특수한 환경 속에서 나타나는 세대, 문화, 나이, 집단의 양상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이외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이 각각 국가를 부르고 있는 영상을 마주보도록 설치한 「성가」, 그리고 공주 공산성을 배경으로 일본인이 자신들의 근세사 일부를 반추하는 영상인 「배신자」는 국가간의 관계와 개인간의 관계 사이의 간극을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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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특히 주목할만한 대목은 이처럼 '어떤 마을'의 다양한 양상을 다루는 과정에서 작가가 그 마을들의 구성원들에게 '새겨진'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어떤 사회와 집단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이 공유하는 집단적 믿음이나 관습, 정체성이 구축되어야 하며, 그렇게 해서 개개인의 내면에 새겨진 의식이나 기억이 그 사회를 구성한다고 여길 수 있다. 심어진 것이 집단과 마을을 구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그러한 측면을 '조각'과 연결시킨다. 마치 조각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어떤 면에서 마을이나 커뮤니티를 가능하게 하는 구심점 역시 어떤 사유-행동양식이 개별 주체들의 내면에 부지불식간 새겨지는 과정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개념적 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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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가는 처음부터 이와 같은 기술 미디어 기반의 작업을 해온 것은 아니었다. 본래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그동안의 작업 과정에서 조형적인 실험보다는 특정 매체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작업을 해왔다. 그동안 그의 작업에서 조각이라는 범주는 표면적으로 강조되진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해왔다고 할 수 있다. 조각에서 출발하되 그는 조각의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요소를 발전시키기에 앞서 조각됨이라는 행위와 운동 과정에 더 주목해 온 것으로 보인다. 어원학상 조각(sculpture)은 새기는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스쿨페레(sculpere)에서 유래했다. 행위의 측면에서 볼 때, 그 과정은 사회에서 어떤 통념이 뿌리깊게 각인되어 고착화되는 것과 매우 유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깎아가며 형상을 부여하는 것, 집단에 이념을 새기는 것, 또는 마치 숨겨진 것을 드러내듯 대리석에서 형상을 드러내 보이는 것, 깊이 내재되어 있는 통념을 깎아 끄집어 내는 것은 적어도 행위의 측면에서 동일한 작동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작업은 비록 형식적으로 조각과는 무관해 보일 수 있어도, 인위적으로 새겨진 마음 속의 기념비나 조각상(statue)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조각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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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여기서 조각은 조형언어나 형식이 아니라 무형의 작동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조각 행위, 조각되는 과정 등 내부에서 일어나는 무형의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인 동작이나 작동과 이어지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는 다양한 '마을'의 양상은 작가가 그동안 발전시켜온 집단 내부의 조각에 대한 되새기기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기술적 이미지와 영상 설치는 그러한 마음속의 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알맞은 미디어를 연구해온 결로 볼 수 있다. ■ 손부경

예술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느끼고, 즐기고, 환호하는 것 이외에 사회적으로 획득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뒤집어보자면 사회 혹은 집단과 그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영속성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도구들을 활용해 왔고 예술 역시 그 범주 안에 속해 있다. ● 물론 예술의 역할을 사회, 혹은 집단들 과의 상호작용으로만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이 상호 작용이 지금까지 예술의 진화과정에 큰 요소 중 하나 였음을 누구도 부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의 대상을 사회적으로 기념비화 하는 데 비판적인 작품들조차 그 반기념비화를 기념비화 하려는 성향에서 보여 지듯이 예술은 사회, 집단과의 공존에서 멀어지기 힘들다. ● 나는 이런 나의 생각들을 시각화하기 위해 조각이라는 도구, 조각의 건립과정에 관한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조각이라는 도구는 4차원에서 시간이라는 자신의 구성요소를 제거했기 때문에 서술의 영역에서 한계점을 지닌다. 물론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조각은 대중들에게 조각으로써 인정을 받는다. ● 나는 조각에 다시금 시간을 부여하고자 하는 방법을 생각해 왔다. 이 시도는 조각에 묶여 있던 그 시대의 집단적 기억, 혹은 정신들을 다시금 살아 숨 쉬게 하려는 의도에 있다. 이 아이디어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나는 어떤 집단을 상정하고 그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그들 스스로의 내면에 statues(상)를 건립해 나가는 과정을 나의 작품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 권현조

Vol.20230927b | 권현조展 / KWONHYUNJO / 權鉉祚 / installation.video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