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 그리고 美: 연우然愚 - 최충웅 회고전

최충웅展 / CHOICHOUNGWOONG / 崔忠雄 / sculpture   2023_0919 ▶ 2023_1018 / 일,공휴일 휴관

최충웅_전설 98-2_청동_48×43×13cm_199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노원문화재단 후원 / 노원구청_노원미술협회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일,공휴일 휴관

노원아트갤러리 NOWON ART GALLERY 서울 노원구 중계로 181(중계동 364-3번지) 노원문화재단 노원문화예술회관 4층 Tel. +82.2.951.3355 www.nowonarts.kr

노원문화재단은 관내 미술 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수집, 연구를 통해 구민들에게 지역 작가를 소개한다. 또한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원로작가, 청년작가 등을 집중 조명하는 기획으로 노원의 미술 문화 연구와 함께 대내외로 알리며, 노원 미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 이번 전시는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산업대학교 1) 에서 교편을 잡고 지역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힘쓰며 근현대 조각사의 발전에 이바지한 조각가 최충웅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구성으로는 「전설」, 「작품」 시리즈로 대표되는 브론즈 작품 외 목재 작품과 드로잉 등을 포함한 작품 30여점과 작가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함께 전시하여 최충웅의 삶과 작업을 소개한다.

최충웅_전설 98-5_청동_131×18×11cm_1998

최충웅은 195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입학 후, 서울미대 출신의 조각가들이 결성한 '낙우회 2)'와 2023년도 55회를 맞이하며 한국 조각의 발전을 이끌어 온 현대공간회 3) 를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국내외 5번의 개인전 개최를 비롯하여 1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출품, 각종 단체전의 참여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며 한국 근현대 조각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 최충웅은 '장승'이나 '탑' 등 우리 전통 고유의 형태에서 창작의 근본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였고, 석사 졸업논문으로 전국의 장승 연구의 집대성인 「장승에 표현된 조형 의식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이는 작가가 직접 발로 뛰며 스스로 체득한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일궈낸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작품의 근본을 '한국적 미의식'에서 발견한 최충웅은 새롭고 독창적인 형태의 현대적 조각 작품을 완성하였다. 스티로폼이라는 혁신적인 재료 사용이나 속을 꽉 채운 브론즈 작품을 바라보면, 한평생 치열히 작품 활동에 매진해 온 작가의 단단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충웅_전설 98-8_청동_127×14×10cm_1998

이 전시를 시작으로 노원문화재단에서는 매년 지역작가를 조명하며 관내 시각예술의 지평을 넓혀갈 계획이다. ● "나는 추상이란 거짓말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작품에서 추상의 모습은 모두가 구상의 변형이다." (최충웅, 2014년 인터뷰에서)노원문화재단

* 각주 1) 2012년 서울과학기술대학교로 변경 2) 駱友會, 196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의 조각가들이 창립 3) 1968,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출신의 남철(南徹), 오종욱(吳宗旭), 이정갑(李廷甲), 주해준(朱海濬), 최병상(崔秉常), 최종태(崔鐘泰), 최충웅(崔忠雄) 7명의 미술가가 결성한 단체

최충웅_전설_청동_65×87×13cm_2000년대 초반
최충웅_전설_청동_50×47×16cm_2000년대 초반

그리운 참 스승, 최충웅 선생님 ●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1973년) 특별활동부로 미술반을 선택했다. 지금의 경희궁 터를 교정으로 삼았던 서울고등학교에는 대학교 동아리방처럼 미술반 특활실이 따로 있었다. 미술반 가운데 열성분자 몇몇은 방과 후면 거의 매일 미술반 특활실에 남아서 그림을 그렸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 그랬다. 대학입시를 목표로 매일매일의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하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규수업을 마친 후 미술반 특활실에 남아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해 있던 우리를 최충웅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그리곤 교실 건물 밖에 있는 허름한 창고로 데리고 가셨다. 선생님의 조소 작업실이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는 찰흙이 가득 담겨있었고, 두상 조소용 철제 심봉, 노끈 다발, 심봉용 각목 등이 잔뜩 쌓여 있었다. 최 선생님께서는 'ㅗ'자 형의 철제 심봉에 짧은 각목을 수평으로 대고 노끈으로 단단히 묶은 후, 찰흙을 붙여서 두상을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신 후, 각자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하셨다. 우리는 그날 평생 처음 조소용 찰흙을 만져보았다. 그 생생한 체험에 가슴이 뛰었다. 수업만 끝나면 작업실에 모여서 자소상 제작에 몰두했다. ● 최 선생님께서는 거의 매일 우리들의 작업실로 오셔서 두상 조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처음 두상을 만들 때는 턱을 들어 올린 모습이 되기 쉬우니 주의하라는 점, 얼굴이 밋밋한 것 같이 보여도 피부 속에 미세한 근육들이 있으니 이를 잘 살펴서 재현하라는 점 등 기법은 물론이고 얼굴의 해부학적 구조까지 두상 제작의 기초적인 사항 거의 모두를 상세하게 가르쳐주셨다. 며칠에 걸쳐서 우리는 자기 얼굴을 만들었고, 최 선생님의 지도로 석고 뜨기까지 모두 끝내어 자소상을 완성하였다.

최충웅_작품 03-1_청동_14×17×92cm_2003

곧이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는데, 최 선생님께서는 망우리 신내동의 옹기 가마로 우리 미술반 소년들을 불러 모으셨다. 배요섭씨라는 분이 운영하는 전통옹기 가마였는데, 예술가들을 배려하여 테라코타 작품을 구워주는 곳이었다. 우리는 옹기 작업장 한구석에 앉아서 다양한 소품을 만들었다. 테라코타의 경우, 찰흙의 두께가 두껍거나 공극이 있으면 굽는 과정에서 갈라지기에 찰흙이 어느 정도 굳으면 속을 파내야 한다. 최 선생님께서는 가는 철삿줄로 찰흙 자르는 방법, 둥근 철사 고리로 찰흙 속 파는 방법, 그늘에 말리기 등 테라코타 제작 기법의 거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우리나라의 고등학생 가운데 미술 선생님의 인솔과 지도로 테라코타 작품까지 만들어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최 선생님께서는 감수성 예민한 까까머리 소년들에게 당신의 지식과 작업 재료와 도구와 소중한 시간까지 모두 내어주시면서 자상하게 지도해 주신 진정한 스승이셨다. ● 우리는,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만든 석고상들과 망우리의 옹기 가마에서 구워낸 테라코타 작품들을 모아서 그해 가을 학교 강당에서 열린 예술제에서 전시하였다. 최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만든 작품의 제목, 전시장 내의 작품 배치 등 모든 것을 일일이 지도해 주셨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여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한 친구가 자소상의 제목을 짓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으니까, 선생님께서 '고졸기 미소'라는 제목을 달아주셨다. 그 뜻을 여쭈니 그리스 조각의 역사에서 한 기간을 고졸기(古拙期)라고 부른다고 설명해 주셨다. '예스러운 졸작의 시기'라는 의미이리라. 누가 봐도 참으로 못 만든 자소상이었는데, 최 선생님께서 붙여주신 독특하고 멋진 제목 때문에 잊지 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최충웅_작품_청동_88×17×11cm_2000년대 초반

필자는 최 선생님 덕분에 조소와 테라코타를 처음 알게 되었고, 조각가의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고교 졸업 후 지금까지 가끔 테라코타 작업을 하였다. 수십 년 동안 간간이 만들어 온 것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30점 남짓한 소품이 모였다. 최충웅 선생님의 지도가 없었다면, 내 삶의 일부가 된 테라코타 작업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일반적으로 예술가라면 괴짜이고, 기행을 하고, 술 잘 마시는 사람을 떠올린다. 장승업, 피카소, 로댕, 이중섭 등이 그런 분들일 것이다. 그런데 최 선생님께서는 그와 정 반대셨다. 항상 올곧으셨고, 진지하셨고, 자애로우셨고, 선비와 같은 기품을 가진 분이셨다. 감수성 예민한 고교 시절, 교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시기에 최충웅 선생님께서 우리의 은사로 계셨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최충웅_Girl 3_나무_85×23×6cm_2000

최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작품을 학교의 작업실에서 제작하셨다. 조각의 기법 면에서 최 선생님을 '스티로폼 조각의 창시자'라고 평하는데, 우리를 지도해 주셨던 1975년 전후한 바로 그 시기에 최 선생님의 스티로폼 조각이 탄생하였다. 최 선생님께서는 서울산업대학(현 서울과학기술대학)을 퇴임하시면서 기념 전시회를 개최하셨는데(2004년), 그때 우리 미술반 동기들을 중심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선생님의 작품을 모교에 기증하였다. 탑의 이미지를 추상화 한 '전설'이라는 제목의 브론즈였다. "자르고, 깎고, 녹인 스티로폼을 다시 Bronze화 한다."는 최 선생님의 독특한 제작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이었다. 서울고등학교 서초동 교정에 가면 강당 로비에서 만날 수 있다. ● 미술의 영역을 회화와 조각으로 구분할 때 이중섭, 김환기, 장익진, 박수근 등 화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우리나라 조각가의 이름을 단 하나라도 댈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조각예술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낙후되어 있다. 또는 '대형 건물의 장식 조각 설치 의무화'라는 예술장려 경제정책이 오히려 한국 조각을 황폐하게 만든 근원일지도 모른다. 이런 척박한 사회, 가혹한 시기에 온 삶을 바쳐서 오롯하게 형상의 본질을 추구한 분, 손끝이 아니라 그 영혼으로 재료를 깎고 녹이고 다듬은 분, 연우 최충웅 선생님이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적(知的)으로 보다 성숙하고 도덕적으로 보다 진실해지는 그 날이 되면, 당신의 분신과 같은 작품들과 당신의 작가 정신이 더욱 큰 빛을 발하리라. ■ 김성철

최충웅_Girl 4_나무_90×25×7cm_2000

최충웅의 조각미학 - 한국적 감수성을 조각하다Ⅰ. 조각가 최충웅의 대표 연작 『전설』과 『작품』 은 장승과 탑을 소재로 한 다양한 조형적 변용을 보여준다. 이 연작에서 기법 그리고 그 기법에 따른 형태에 주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의 조각적 변용에 응축된 예술적 진실성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최충웅은 시류에 편승하는 작업과는 거리를 둔 조각가이다. 그는 장승과 탑에서 표상되는 곧고 단단한 이미지를 수직과 수평의 조형성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조형성은 무엇보다 삶과 조각에 대한 진실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랫동안 작업에 전념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에 와서야 개인전을 처음 열었는데, 이는 전시나 발표에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조각에 진실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사실 나 스스로 작품에 대한 만족은 충분하지가 않아. 더 열심히 해서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런 아쉬움이 있지. 단 하나 자신 있는 것은 거짓 없는 작품을 했다는 거야."

최충웅_Girl 6_나무_88×25×7cm_2000

Ⅱ. 최충웅의 조각은 화려하거나 거창한 조각적 수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 그리고 그 자연에서 촉발되는 자유로움에 그 지향점을 두고 있다. 소박하고 단단한 형태, 그리고 디테일이나 표면의 질감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작위적인 형식을 만들지는 않겠다는 그의 조형적 의지의 한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군더더기나 잡티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조각에는 그의 인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듯 보인다. 한편, 그의 조각에 나타난 자연성과 진실성은 개인의 특성을 넘어 공동체적인 조형 의지를 향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에 대한 그의 생각은 특히 그가 『전설』과 『작품』 연작의 모티브로 장승과 탑을 적용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장승은 한 개인을 위해 세워진 기념물이 결코 아니다.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장승은 일종의 공동체를 위한 미학적 지표이다. 탑 또한 모두의 안녕을 기도하는 장소에 세워진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그러기에 열린 공동체의 문화적 기억들이 그의 조각에 표현되어 있다고 하겠다.

최충웅_Girl 7_나무_80×19×5cm_2000

Ⅲ. 최충웅의 자연성과 진실성은 우연성에 상응한다. 우연성은 스티로폼으로 제작하고 주물을 뜬 『전설』과 『작품』 연작에서 중요한 조형적 요소이다. 원형의 틀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스티로폼이 휘발유나 석유로 녹아 흘러내리고, 청동주물을 부어 넣어 우연성에 따라 어떤 형태가 만들어진다. 1974년부터 스티로품을 사용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시도였다. 그런데 그는 단지 우연성의 효과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실상 진실로 자연스러운 흐름에 더 관심을 가졌을 터이다. 그의 조각에 나타난 우연성은 단순히 효과만을 강조하는 조형적 기법이나 경향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러한 우연성의 미학은 불완전성 또는 미완성과 연관된다. 완전한 형태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조각의 본질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심층적으로 인식하였다. 인위적인 완전성의 거짓에서 벗어나 우연성에 따른 불완전한 진실 앞에 서고자 하는 조각가, 그가 바로 최충웅이다. 우리 전통미술이 완결된 형태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견해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웃기는 소리"라고 비판한다. 그는 완결된 형태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완결된 형태를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연에 양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울림이 있는 말이다. 이 말 또한 떠올려가며 작품을 감상한다면, 그의 조각에 대한 이해의 지평은 더 넓어질 것이다.

최충웅_Girl9_나무_91×22×19cm_2000

Ⅳ. 대부분의 최충웅 조각은 추상조각이다. 그러나 그의 조각을 서구의 추상조각과 같은 개념으로 파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의 조각에는 앞서 언급한 자연성, 진실성 그리고 이에 따른 우연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상의 핵심만을 추출해서 표현하거나 대상을 개념적으로 재현하는 식의 추상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 그리고 그에 따른 우연성에서 촉발되는 대상의 진실한 측면을 위해 추상의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나는 추상이란 거짓말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작품에서 추상의 모습은 모두가 구상의 변형이다." 이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추상 작업을 해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그저 추상의 형식을 모방해서 표현하는 작업을 수용할 수 없었다. 추상을 위한 추상이 아니라 구상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추상이 자연스럽게 견인된 것이다.

최충웅_장승_나무_26×19cm_2002~3

Ⅴ. 최충웅은 우리 전통미술의 탁월성을 일찍이 간파한 조각가이다. 그의 조각에 나타난 자연주의 그리고 순수주의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의 조각에 전통을 어떻게 연결하고 또한 변용할 것인가? 이 물음은 그는 오랜 작업의 여정에서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지만,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된 목조 『얼굴』과 『소녀』 연작과 연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목조작품에서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선인데, 이 선에서 한국적 전통성과 감수성이 여실히 감지된다. 납작하게 나무판으로 표현된 소녀는 운동성이나 양에서 자유로운 순진무구함과 생명성을 보여준다. 신체의 굴곡이나 표정이 세부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생략되어 있는데, 이는 자연성, 진실성 그리고 우연성을 언제나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목조의 단순성은 나무라는 재료의 자연성 그리고 물성을 탁월했던 전통의 아름다움과 연계하는 그의 조형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특유의 감수성과 내 작업은 맞닿아 있어"

Ⅵ. 최충웅은 조각을 위한 조각이 아니라 조각이 지금 여기에서 어떠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지를 지속적으로 물으면서 작업을 한 조각가이다. 단순히 서구미술의 내용과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모방하는 것은 진실된 조각을 향한 그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의 조각은 멀고 길었던 조각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 온 순수하고 진실된 조형적 열정을 보여준다. 1974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승과 탑을 답사하고 한국적인 조각에 대한 연구를 부단히 해 온 것 자체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의 조각은 이제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전설'로 남아 있다. 또한 굵고도 따뜻한 감성을 지닌 인격자로서의 면모 또한 그의 조각과 더불어 기억되리라. 최종태는 그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세상사에 물듦이 없이 깨끗하게 살고 젊은 정신으로 끝날까지 곧게 지조를 지켰다. 작품만큼이나 아름답게 살다간 한 예술가의 행적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토록 아름다운 최충웅의 삶과 조각적 숨결을 예술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임성훈

Vol.20230919b | 최충웅展 / CHOICHOUNGWOONG / 崔忠雄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