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주친 Encountered one day

최지연展 / CHOIJIYEON / 崔芝硏 / painting   2023_0916 ▶ 2023_1006 / 월요일 휴관

최지연_스크린에서 숲으로_캔버스에 유채_116.8×98cm_202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최지연 인스타그램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화~금요일_11:00am~05:00pm 주말_11:00am~06:00pm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이고 artspace EGO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80번길 10-6 B1 @artspace_ego

그것은 재현일 수도 있고 표현일 수도 있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환상일 수도 있다. 최지연의 "어느날 마주친"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일상적이다. 일상에서 흔히 존재하는 것이기에 특별한 목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대상들을 만나는 순간이 의도적이지 않은 상황, 즉 그곳에 있어야 할, 또는 그 시간에 존재해야 할 때가 아닌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존재할 때 마주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마주 침에 그치지 않고 목격에 가까운 행태로 전이된다.

최지연_비 속에서 빛으로_캔버스에 유채_116.8×98cm_2023
최지연_숲 속 식사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23
최지연_파우치 속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23

최지연은 과거의 일상 속 잃어버린 물건들이 어느날 문득,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와 시간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고 그것을 맞닥뜨렸을 때의 감정을 표현한다. 새로운 서사가 생성되는 순간이다. 방 밖으로 들고 나간 적이 없던 「돼지저금통과 파우치」는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이미 잊은 어느날 문득 돼지저금통과 파우치가 방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 잃어버렸던 대상과 지금 다시 발견된 대상은 본질은 같지만 그것에 대한 작가적 감정은 절대로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돼지저금통과 파우치에는 새로운 서사가 부여된다. 최지연의 대상들은 낯설어 보이는 이유는 최지연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대상들은 그것의 개별적인 특징이 아니라 그것이 일련의 사건을 전재한 서사구조의 핵심이 되고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때문에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그것이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정체성과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고 새로운 구조로 등장하는 것이다. 마치 꿈 속 같기도 하고 어디서 본 듯한 풍경 역시 생소하게 적용되는 이유다. 이때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 또는 관념을 처음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표현하는 기법, 낯익은 것들의 새로운 측면을 밝혀내어 현실을 상기하기 위해 일상적인 사물들과 자기 자신을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법)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최지연이 목격한 상황은 자기 자신을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았고 목격한 대상들 역시 본연의 정체성과 무관한 낯선 곳에 놓여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간성 외에도 시간성 역시 매우 일반적인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에 대해 의도적 낯설게 하기를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지연_방 안 놀이동산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23
최지연_조개와 초콜릿 껍질_캔버스에 유채_100×72.2cm_2023

그렇다면 최지연이 보여주는 회화방식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대상의 외형은 재현고 공간의 뒤섞임은 표현이다. 게다가 멈춰진 한 컷이 아닌 지금 이 장면의 앞 뒤 시간을 함께 짐작할 수 있는 시퀀스적 화면이 감각적이면서도 흥미롭게 긴장감을 주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최지연의 작품을 재현이라고 부를 수도 표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까닭이며 회화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최지연_돼지 저금통과 파우치_캔버스에 유채_50×50cm_2023

「스크린에서 숲으로」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유기적이지 않다. 때문에 크기나 색채를 사용함에 있어 상대적인 위치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화면구도는 익숙하지 않아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작가적 상상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치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 반면, 「계란에서 오므라이스」와 같은 작업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기성과 작가적 유희를 목격할 수 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전개의 작업들을 한 곳에 모아 보는 일은 꽤나 흥미롭다. 작가가 설정한 시스템 안에서 함께 유희하거나 작가가 숨겨놓은 퀴즈를 풀 듯 화면을 읽어나가는 부분이 재미로 다가온다. 순수예술에서의 소통은 거대담론만이 아니다. 나의 경험과 작가의 경험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예술적 소통이다. ■ 김최은영

Vol.20230916f | 최지연展 / CHOIJIYEON / 崔芝硏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