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s of painting in our era

김용철_나나 2인展   2023_0914 ▶ 2023_1015 / 월,화요일,9월 29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9:00pm / 월,화요일,9월 29일 휴관

씨엠지지 라운지 cmgg_LOUNGE 서울 서대문구 홍연2길 2 (연희동 703-3번지) 1층 Tel. +82.(0)507.1369.4782 @cmgg_lounge

감각과 감성 Sense and sensibility ● sense와 sensibility는 따로 있으면 '감각'과 '감성'을 뜻하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제목 탓인지 하나로 묶이면 '이성과 감정'으로 번역된다. 하나의 단어가 곁의 단어에 영향을 받듯이, 예술 작품도 어떤 작품과 배치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김용철과 나나의 듀오전의 경우는 어떨까?

김용철_우리 다 함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23
김용철_늘 HEAR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5×19cm_2023

조형미와 메시지의 길 앞에서 ● 에두아르 마네 이후로, 화가들은 두 갈래의 길 앞에 섰다. 그림은 더이상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단이 아니니, 화가는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길이다. 다른 길은 예술은 삶의 기록이니, 화가는 그림을 통해 자기만의 메시지를 표현해야 한다는 쪽이다. 전자의 길을 선택한 화가는 색과 선, 형태와 붓질 등에 무게 중심을 둔다. 후자는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에 놓인 오해의 강이 최대한 좁아지길 바라며, 다만 주제와 표현법을 날카롭게 벼릴 뿐이다. 김용철과 나나는 어느 길을 선택했을까?

김용철_HEAR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5×19cm_2023
김용철_꼭 HEAR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5×19cm_2023

감각의 하트, 하트의 감성 ● 대학교수 출신의 1940년대생 김용철과 비전공자 1980년대생 나나, 그래피티스 나나와 회화와 판화 등을 다루는 김용철은 여러 면에서 듀오전으로 묶기 어려워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교집합은, 하트와 텍스트다. 김용철은 '늘' '좋아요' '엄마' '하면 된다' '너와 나' '서로 사랑하세요' 등을 꽃과 달 등에 장식 혹은 글자 자체만으로 그려낸다. 나나는 그래피티스트답게 'NANA' 'YOU' 등 단어를 캔버스에 받아들인다.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점도 닮았으나, 두 작가의 이질성을 잊게 만드는 것은 역시, 하트다.

김용철_엄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5×72.5cm_2023
김용철_그를 그대로 나를 나대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45.5cm_2023

김용철의 하트는 '좋아요 Joayo'로 표시되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기호로 읽힌다. 이것은 진심으로 좋아하거나 동감의 표시일 수도 있으나, '내가 네 게시물을 봤다' '재밌다' 정도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이런 양가적인 면은 「포스터의 작품」에 여실히 드러난다. 활짝 핀 모란들로 만든 대형화환의 중심에 빨강과 노랑, 초록과 분홍으로 빚어낸 세 개의 하트가 빛나고 있다. 그 위에는 웃음을 뜻하는 'ㅎ' 두 개가 촛불처럼 타오르고, 아래는 색동 보자기에 '좋아요'가 초록선안에 노랗게 칠해져 있다. 그 아래 '좋아요'를 영어'joayo!'로 변주한다.

김용철_좋아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23
김용철_반가워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33.5cm_2023

'ㅎ' '하트' '좋아요' 는 모두 SNS 와 문자메시지에서 하루에 수 십번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기호다. 이런 면을 강조하기 위해 김용철은 작품 전체를 파란 테두리친 사각에 맨아래는 'joayo!'로 마치 페이스북 화면처럼 구성했다. 'joayo'에 '엄지척' 이모티콘은 일부러 피하고 느낌표를 초록으로 표기한 듯하다. 페이스북이란 창으로 보는 세상은 사랑(하트와 장미)과 웃음(ㅎ), 꽃(축하)이 가득하나, 배경은 하얀 색이다. 이것은, 일상에 범람하는 SNS의 세계가 구체적인 현실에서 비롯된 사랑과 웃음이 아닌 공허한 감정들의 세계라고 염려하는 쪽일까? 아니면 SNS의 세계처럼 현실에서도 웃음과 사랑이 환하게 뻗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쪽일까?

나나_NANA IS REAL_혼합재료_117×91cm_2023
나나_NANA IS REAL_혼합재료_117×91cm_2023

나나의 하트는 다르다. 하트는 신체 기관의 심장을 가리키는 표시로서, 질병으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 애정으로 연결된다. 지금껏 나나가 그래피티로 표현한 하트는 이에 해당된다. 나나의 시그니처와 같은 'NANA 하트 YOU'는 마치 나나가 이 그래피티를 보는 당신(들)을(you는 단,복수가 같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아니다. 이것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0000에 기부하세요' 류의 동정과 호의를 일으키려는 하트가 아니다. 하트의 모양과 you의 영어 철자가 결부되어, 오히려 에두바르 뭉크의 「절규」속 절규하는 인물의 형상에 가깝다. '나는 당신(들)을 사랑해요'가 아니라, 어쩌면 '나나는 당신(들)의 사랑이 필요해요'라는 절박한 읊조림이 아닐까?

나나_NANA IS REAL_혼합재료_33×33cm_2023
나나_NANA IS REAL_혼합재료_29.5×29.5cm_2023

이렇듯 술 취한 사람들이 침을 뱉는 후미진 담벼락,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문구아래에 흩어진 담배꽁초들이 즐비한 뒷골목의 화장실문,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만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전봇대 등에서 나나의 하트는 저홀로 고개 숙이고 훌쩍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래피티가 그려진 실제 공간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올 수 없으니, 자신의 그래피티가 포함된 곳을 풍경화로 그렸는데, 그러면서 이런 감정의 메아리가 다소 옅어지고 완화됐음을 감안해야 한다.

나나_NANA IS REAL_혼합재료_42×29.5cm_2023
나나_NANA IS REAL_혼합재료_35×24cm_2023

물론 그림의 메시지와 나나의 내면이 일치하는 지, 얼만큼 어긋나는 지 알 수 없다. 다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벽에 저것들을 그려야만 했던 나나의 심정을 관람객은 상상해야 한다. 나나의 하트는 우리에게 그 '잠시 멈춤'을 바랄 뿐이다. 그런 상상을 통한 감정이입 없이는 어쩌면 나나의 하트는 죽은 심장모양일 뿐이다.

나나_NANA IS REAL_혼합재료_35×24cm_2023

다름과 닮음 ● 이렇듯 김용철의 하트는 감각 sense을, 나나의 하트는 감성 sensibility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감각의 하트와 하트의 감성, 하트를 매개로 둘의 길은 나뉘어진다. 물론 감각과 감성이 때로 만나고, 마주치고, 부딪히고, 공존하듯이, 이번 전시에서 둘의 작품도 한 공간에서 그런 작용을 한다. ● 예술 작품을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품 속에 녹아든 작가의 감각에 전염되어 다른 작품을 보길 바라거나, 그것이 내 몸에 착 달라붙어서 일상을 '그 작가의 감각과 감성'으로 지각하고 느끼길 위함이다. 이미지란 세상을 보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존 버거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는 쉽게 이해된다. ■ 이동섭

Vol.20230914f | Types of painting in our era-김용철_나나 2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