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서:로 ARTSPACE SEO:RO 서울 은평구 갈현로33가길 4 1층 Tel. +82.(0)2.6489.1474 blog.naver.com/seoro-art @artspace_seoro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과 불안, 불분명한 감정들을 추적하여, 그와 얽힌 내면의 이야기를 각자만의 드로잉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갑니다. ■
나의 작업은 생활반경 주변에서 겪은 현실적인 사건들을 회화의 공간으로 가지고 와서 나름의 서사를 붙여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전까지는 삶과 죽음, 존재에 대한 본질 등 거대한 관념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면, 최근에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여 현재 마주하고 있는 불안함, 일상에서 느끼는 모호한 감정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득 느껴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력감, 답답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 속에서 우리가 위치하는 곳은 어디이며 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일상에서 느낀 모호한 감정을 불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표현하고 싶었다.
한국화에는 다양한 표현법이 있지만 나는 전통 회화에 관심이 많고, 그곳에서 영감을 받는다. 전통 회화에서 보이는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이 좋아 많은 고전 작품을 찾아보게 되었고, 점차 그 속에서 보이는 분위기와 필묵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전에는 비단에 공필기법을 사용한 섬세한 작업을 했다면, 최근에는 한지에 필묵을 사용한 작업을 하고 있다. 비단은 번짐의 효과, 즉흥성이 부족하지만 한지는 섬유질로 되어 있어 농담의 자연스러운 번짐이 가능해 그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두 가지 재료와 기법을 모두 연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한국화가 가지고 있는 필묵의 매력을 지금 시대와 맞게 구성해보고 싶다. (2023) ■ 고현지
어떤 일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기억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다. 나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일련의 굵은 기억들을 꽤 오랜 시간 묵혀왔던 것 같다. 털어낼 방법을 찾지 못해 늘 불안을 안고 지내오면서 우연한 기회로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마음에 있는 것들을 차차 글로 적어볼 수 있게 되었고, 수업을 통한 시간은 내게 작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지난 몇 년간 곱씹어 온 생각에서 분리시키려 했던 강박대신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점점 시각 작업으로 풀어낼 수 있는 용기로 나아가게 해주었다. 그렇게 흑색 드로잉을 시작할 수 있었다.
흑색 드로잉은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억들이 엮인 이야기이다. 특정인물과 사건을 짚어낸 것이 아닌 여러 날 이후로 변화하는 태도와 기분을 적어낸 일기가 되었다. 결론짓지 못하고 이어오는 관계, 마음에 삼키고 마는 말, 분명하지 않은 상황, 해결되지 않는 소란스러운 감정을 바탕에 두고 선명한 기억들을 화면 위로 옮겨본다. 신중히 마음을 따른 제목을 적어본다. 글자 옆으로 그려 넣은 큰 사각형 안으로 빈 네모가 가득 차오를 때까지 검은 선을 쌓아 올린다. 날카롭게 그어내고, 손가락 마디 끝으로 비벼도 보고 찍어도 보고, 때로 숨을 누른 채로 종이 가까이 흐릿한 엷은 터치들을 만든다. 끊김 없이 쌓고 쌓는다. 하얗고 검은 터치들은 부드럽고 포근하게 꾹꾹 눌리고 쌓여 반짝이는 표면을 만들어 낸다. 느리고 긴 숨으로 지나온 시간을 뱉고 또 뱉기를 반복한다. 변화하는 기분들로 터치는 계속해서 더해지고 분명해진다. 흰 네모들을 검게 지워가다 보면 기어코 어느 지점에서는 빈 네모만이 남게 될 날이 오겠지. 그리고 어쩌면 그런 이유로 드로잉을 계속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흑색으로 그려낸 장면들은 그간의 시간과 경험이 담긴 현실이면서 회화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마음의 풍경이다. 결국 현실은 변하였고, 변하지 않는 기억과 마주하여 그 불안 너머의 다음 세계를 생각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그려간다. (2023) ■ 오수지
Vol.20230914c | 두 개의 불씨, 숨겨진 그림자-고현지_오수지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