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ion (인식) & This is my story

김영일_홍자경 2인展   2023_0913 ▶ 2023_09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G&J 갤러리 G&J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인사아트센터 3층 Tel. +82.(0)2.737.0040 blog.naver.com/gj-gallery @gj___gallery

김영일 / Cognition (인식)展 난 어릴 적부터 하늘의 별과 우주에 호기심이 많았다.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모습만 봐도 너무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때론 교회에서 배웠던 신의 존재와 인간을 창조했다는 글과 영혼이나 천국과 지옥 같은 개념들도 나에겐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성인이 된 후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나는 사람들과 도시를 보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들의 '존재에 관한 의문'은 항상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때로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 그리고 깊은 밤 도심의 아파트마다 켜져 있는 불빛과 그 속에 보이는 사람들을 응시하다가 문득 하늘을 쳐다보면 내가 사는 곳이 좁게만 느껴져 '인간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의문에 잠기곤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도시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인간은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져 내 나름대로 이 의문의 답을 찾고자, 물리학에서 정의하는 세상과 인간의 본질에 관한 사유를 시작했다. 인식시리즈는 인문학적 개념들-신, 존재, 기억, 감정 등-과 과학적 사실에 내 생각이 더해져 창작된 시리즈다. 위에서 언급한 신의 존재, 영혼, 천국과 지옥 같은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개념들과 인간의 창조 또는 진화에 관한 진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존재 상태 등 직접적 경험을 할 순 없지만, 현상적으로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을 토대로) 모호하지만, 무언가로 인식되는 경험들에 물리학이라는 과학적 실험으로 밝혀낸 사실들과 연결해 내가 생각하는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이뤄져 있다.

김영일_Cognition 24_캔버스에 유채_218×291cm_2023
김영일_Cognition 21_캔버스에 유채_194×119m 2022

지금까지 인식시리즈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해 작업해 나가고 있다. 1.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들에 관한 표현. ●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들은 사실 이름이 필요 없다. 다만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다양한 의미가 부여됐을 뿐, 이름이 그 대상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 그저 인간의 인식 편의를 위해 구별된 것뿐이다. 그리고 구별하는 방식 중 하나가 외형적 생김새와 개별적 특징으로 범주를 정하여 구별하는 것이다. 첫째가 외형, 둘째가 무늬와 같은 특정한 특징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열대어'라는 이름은 상위 범주로는 어류에 속하고, 하위 범주로는 몸에 있는 개별적 무늬에 따라 각각의 어종으로 구별할 수 있다. 그렇게 구별되는 열대어의 종류는 수백여 종으로 나뉘고, 다시 '열대어'라는 이름으로 통합된다. 이것은 대상을 개별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무늬지만, 상위 범주가 특정되지 않으면, 하위 범주인 개별적인 무늬만으론 대상이 무엇인지 인식하기 어렵다. 나는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춰, 이름으로 묶여 구별되는 상위 범주를 배제하고, 개별적 특징이 부각된 하위 범주로만 대상의 존재를 표현했다.

김영일_Cognition 2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9

2. 인간의 시각 인지기능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에 대한 표현과 시각 인지기능이 배제된 경우 대상의 상태와 현상들에 관한 표현. ● 인간은 과학을 통해 빛이 입자이자 파장이라는 것과 그중 가시광선만을 인간이 인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빛의 파장 중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대상과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가시광선의 여러 색이 곧 대상의 본질인 것처럼 인식한다. 난 가시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과 가시광선이 배제된 대상의 모습은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 상상해 봤다. 예를 들어, 나는 도시의 길거리를 걷고 있다. 거리엔 사람들이 오고 가고, 반려견도 뛰어다닌다. 차들도 신호가 바뀌자 출발한다. 하늘엔 구름이 떠다니고, 새들도 날아다닌다. 모든 것들이 가시광선과 상호작용함으로써 파장에 따라 제각각의 색들이 발현되고, 나는 시각을 통해 대상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러다 갑자기 가시광선이 사라진다면, 내가 길거리에서 보고 있는 대상들은 어떻게 보일까? 혹시, 홀로그램 우주론자들의 가설처럼 세상은 잘 짜인 프로그램처럼 보이지 않을까?' 나는 이 점을 토대로, 가시광선과의 상호작용으로 보이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상태의 대상에 관한 것을 상상에 기초하여 표현했다.

김영일_Cognition 27_캔버스에 유채_218×291cm_2023
김영일_Cognition 3_1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22

3. 현상에 관한 개념적 표현. ● 현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자연 현상 또는 도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현상이며,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내적 감정의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들도 현상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 모든 현상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그 이유를 들자면, 3차원에서는 현상이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대로 변화하기 때문에, 인간이 인식 가능한 시간에는 동시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상이 드러내는 현상의 시작과 끝을 인간이 동시에 인식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의 현상이 발생할 때, 그 현상은 그것이 일어나기 전의 또 다른 현상들이 나타내게 된 원인과 결과에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 알 수 없는 경우의 수까지 포함된 현상의 발생은 인간이 측정할 수도, 알 수도 없기에, 인간은 다만 눈앞에 주어진 현상을 스스로가 인식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나 또한 수많은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로 얽혀 있는 현상에 관한 상상과 생각을 나를 비롯한 인간 그리고 다양한 대상들과 연결해 표현해 보고자 했다. ● 인식시리즈를 창작하면서 이런 상상을 해봤다. 내가 관찰자로서 나를 줌-아웃이 되는 듯한 상상을 해 보면, '나'란 존재에서부터 시작해 나 – 도시 – 국가 – 대륙 – 지구 – 태양계 – 은하 – 은하단 – 관측 가능한 우주까지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도시라는 공간까지 확대해도 이미 나는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반대로 줌-인으로 좁혀 나를 찾아보면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지구는 마치 '누군가'에 의해 잘 조성된 온실 속 정원 같은 느낌과 함께 그 안에 인간과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존재 이유는 모른 채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구라는 공간에 인간과 자연이 왜 존재하는지 알 순 없지만, 그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두 가지 방식 즉, 신체적 기능 중에서 인식 과정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시각기능과 빛의 상호작용을 통해 파악되는 세상과 함께 그 상호작용이 제거된 세상의 모습도 표현하고 싶었다. 다만, 표현되는 작품들 역시 시각기능을 온전히 배제한 채 표현될 수 없으므로 작품 표현에 관한 접근 방식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생각이다. ● 내 생각은 이렇다. 대상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곧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고, 인식의 변화는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을 갖게 할 것이다. 그 의문은 인류가 지금까지 논쟁을 이어오는 신의 존재 여부와 인류의 기원에 관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개념들에 관해 스스로 정의를 내림으로써 자신의 본질에 관한 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인식시리즈의 주목적이다. ■ 김영일

홍자경_Bag 32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22
홍자경_Bag 31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22

홍자경 / This is my story展 This is my story. ● 인구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그 숫자만큼의 다른 경험을 갖고서, 서로 다른 사회적 계층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그것도 대중문화가 실시간으로 확산하는 초고속 인터넷 세상에서. 어제의 새롭고 놀라웠던 신기술과 트랜드가 오늘은 어느새 NEW NORMAL이 되어있다. 폭발적으로 밀려드는 정보와 소식들을 분석하고 고민해 볼 겨를도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 눈동자 사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손끝으로 열리는 세상을 넘나들며, 나는 아무 때고, 어디서든 영상과 활자로 타인의 일상을 읽어낼 수 있는 순간을 살고 있다. ● 언젠가, 목청껏 우리 팀을 응원했고, 승리의 기쁨을 주체 못하며, 오늘 난생 처음 본 낯선 이와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하마터면 얼싸안을 뻔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에 돌아가는 길, 불현듯, 서늘하게 스며드는 외로움. 밀려드는 헛헛함.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영겁의 거리.

홍자경_Bag 30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22
홍자경_Bag 29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22

나는 푸른 섬이 되어 끝없이 펼쳐진 바다 어딘가로 고립된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섬이 되어버린 나는 물끄러미 밖을 응시하며 타인의 삶을 상상해 볼 수밖에. ●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오해받을 두려움 없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결이 같은 사람들이 지구상에 존재하기는 하겠지. 혹시나,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다른 외모, 무표정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속에서, 모퉁이를 돌아, 갑자기 눈에 띄는 것은 저마다 어깨에 손에 감아 쥔 가방 bag!!!! 결코, 감출 수 없이 드러나는 누군가의 취향, 기분, 직업, 오늘의 목적지, 심지어 가족관계나 나이까지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 나에게 가방(핸드백)은 세상을 바라보는 지도이다.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 했음이 분명한 가방(bag)이 가진 원초적인 기능은 말할 것도 없이, 가방 안에는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날 나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무엇인지가 숨겨져 있다.

홍자경_Bag 22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20

어떤 이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명품 신상 백을 들고 다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잔뜩 신경 쓰며 차려 입은 옷 매무새와 어울리는 가방을 고르고, 또 어떤 사람은 오늘의 용무에 적합한 가방을 둘러메고, 바쁜 걸음으로 총총 저 모퉁이를 돌아갈 것이다. ● 이유야 어떻든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가방은 오늘 해야 할 일, 기분, 걱정에 대해 조잘조잘 얘기를 시작한다. 가방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사람들이 들거나 메고 다니는 가방과 가방을 든 인물의 작업을 통해, 가방이 갖는 물질적, 상징적 의미와 개인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는 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 "여자에게 가방은 달팽이 집과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달팽이 집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다들 안다는 것, 그리고 달팽이가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자의 가방은 가지각색이다.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가방이 있는가 하면 '첫눈에 반하게' 되는 가방도 있고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념비 같은 가방도 있다. 가방 안에는 세상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 (장 클로드 카프만의 『여자의 가방』) ■ 홍자경

Vol.20230911a | Cognition (인식) & This is my story-김영일_홍자경 2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