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23_0904_월요일_02:00pm
출품작가 강미선(姜美先)_강석문(姜錫汶)_권기수(權奇秀)_김선두(金善斗) 김정욱(金貞旭)_김천일(金千一)_김춘옥(金春玉)_박은영(朴恩榮) 박종갑(朴鐘甲)_선무(線無)_송근영(宋根英)_신영호(申暎浩) 양대원(梁大原)_오윤석(吳玧錫)_유근택(柳根澤)_윤여걸(尹汝杰) 이구용(李龜龍)_이김천(李金泉)_이부록(李不惑)_이윤엽(李允曄) 전영일(全榮一)_홍인숙(洪仁淑)
큐레이터 / 최금수(崔金洙)
해남 대흥사 호국대전 DAEHEUNGSA HOGUKDAEJEON 전남 해남군 대흥사길 400 Tel. +82.(0)61.534.5502 www.daeheungsa.co.kr
흐트러지지 않는 땅, 해남 ● 산전수전(山戰水戰)이다. 백두(白頭)의 기운이 흘러내려와 땅끝에 머물렀다는 두륜산(頭崙山)을 오르며 떠올린 생각이다. 해남은 굳이 인간사(人間事)를 거론하지 않고도 갖은 역경(逆境)을 딛고 버텨온 지극히 한국적인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일찍이 두륜산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전쟁(戰爭)을 비롯한 삼재(三災)가 만년동안 미치지 못할 곳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땅이라 지칭하지 않았던가. 그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산과 바다에 푸르른 역사(歷史)가 흘러 두륜산 대흥사(大興寺)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성지(聖地)가 되었다. ● 역사를 보면 대흥사는 여러 사연으로 속세와 등지고 고요한 산속에 들어와 부처님의 말씀을 받들고자 했던 승려들이 외호(外護)와 내호(內護)를 위해 스스로 파계(破戒)를 선택한 승병(僧兵)이 되어 나라와 백성을 지켜낸 비운(悲運)의 도량(道場)이었다. 그리고 그들 덕택에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의연하게 흐트러지지 않는 땅을 일구며 살아간다.
울림과 함께하는 침묵 ● 불전사물(佛殿四物)이 있다. 땅을 위해 법고(法鼓)가, 물을 위해 목어(木魚)가, 하늘을 위해 운판(雲板)이, 저 세상을 위해 범종(梵鐘)이 울린다. 결국 세상만물 뿐만 아니라 겁(劫)을 거슬러 영혼들까지 깨달음과 자비를 전파하는 울림의 영향권 안에 있다. ● 미물(微物)들마저 허투루 대하지 않는 체화된 동양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찰(寺刹)에서 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해남 특별展을 꾸리며 현대수묵(現代水墨)과의 접목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갓 인간개성실현(人間個性實現)을 그 목적으로 하는 현대예술은 어찌보면 찰라(刹那)의 요란한 소음(騷音)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울림과 다른 침묵 또는 비록 소음일지라도 이들이 없다면 울림 또한 공허해질 수 있기에 크게 보아 울림의 권역에 함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었다. ● ‘지금 당장’이 무엇보다 중요한 현대예술의 여러 장르들 중에서 그나마 현대수묵은 비교적 ‘느린 호흡’을 지니고 있기에 오래된 사찰의 장엄(莊嚴)에도 견주며 그 형(形)과 상(狀)의 다름과 같음을 가늠해 볼 욕심으로 대흥사 한복판에 성큼 발을 내딛었다.
방울을 흔드는 손이 아니라 귀신을 보는 눈이다. ●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사물을 보는 법은 서양과 사뭇 달랐다. 특히 글과 그림에서 형상사유(形狀思惟)가 두드러지며 그 표현에서도 과장된 생략과 취함이 특유의 정신처럼 자리 잡았다. 특히 서양은 광학에 의존한 촉각적인 형(形)에 심도를 높였다면 동양은 사물이 관계 속에서 던져진 상(狀)에 몰두하였다. ● 사찰의 무수한 장엄들을 그 겉모양(形)만 보았을 때 그저 치장을 위한 현란한 장식물이나 괴기스런 요물로만 읽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사연들과 그 장소 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까닭(狀)을 알게 되면 치밀하게 짜여진 얼개(構成)가 보일 것이다. 그 얼개의 힘이 형상사유를 가능케 한다. ● 특히 산(山)과 물(水)을 대하는 동양의 사고는 인격수양(人格修養)의 얼개를 그리며 화폭에 들어왔다. 그것은 시쳇말로 웰빙 또는 힐링처럼 단순히 자연을 마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군자(君子)들의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인간의 절조(節操)와 도의(道義)를 지키기 위한 수양'이었던 것이다. 즉 산과 물을 그린다는 것은 '적나라한 인간성의 표현'에 다름 아니며 이를 보고 즐기는 것 또한 그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하지만 점점 더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AI마저도 은근슬쩍 넘보는 21세기 예술에서 그 영역을 가늠하기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서양보다 물질에 뒤쳐졌던 동양이 급속도로 산업화(産業化)됨과 동시에 금융자본화(金融資本化) 되면서 서양보다 더 비자연적이고 비인간화된 물질 환경에 휘몰려졌다. 화폭에 들어온 현재와 미래도 이미 심각한 문제들을 노정(露呈)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그나마 현대수묵에서 가끔씩이라도 존재했던 형과 상의 균형들마저 순식간에 깨지면서 그 얼개도 상실한 채 현란한 색과 자극적인 모양으로만 허공을 떠돌고 있을 뿐이다.
잠시 큰 바위에 엎드려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 흐트러지지 않는 땅에서 밀려오는 쓰나미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되고야 말았다. 그 유구(悠久)하다던 산과 물도 시시각각 성난 기운을 뿜어낸다. 그나마 아직 변하지 않은 것은 오늘도 해가 뜨고 진다는 것이다. 그 태양마저도 못미더운 성급한 사람들은 지구를 포기하고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 『산처럼 당당하게 물처럼 부드럽게』展의 출품작들은 크게 보아 공존(共存)과 성찰(省察)을 주제로 한 작업들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우선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제작과정의 수고로움을 바탕으로 한 수행(修行)들이 돋보이는데 아마도 이는 전통수묵과의 차이를 재료나 기법으로 구별해 보려는 의도로 한지에 먹 또는 안료라는 동양적 질료들의 형식실험(形式實驗)이 아직 유효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치유(治癒) 또는 성찰의 도구로 화폭을 바라보는 태도(態度)이다. 이는 그리는 작가에게는 물론이고 관람자들게도 요구되는데 내용적으로 전통수묵의 맥을 이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막막하거나 불안한 환경(環境)을 다른 생명과 공존을 위해 조형적으로 폭로(暴露)하는 작업군도 만날 수 있다. ● 이제 관조(觀照)의 시간이다. 불전사물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소음이 아니라 작지 않은 울림으로 우리 곁에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형과 상의 얼개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 최금수
Vol.20230910e | 산처럼 당당하게 물처럼 부드럽게-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해남 특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