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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헌책방 집현전 5기 레지던시 결과展
후원 / 인천광역시_(재)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과 책의 공유 공간 책방 '집현전' Art & Book Space "JeepHyeonJeon" 인천시 동구 금곡로 3-1 3층 Tel. 070.4142.0897 uram54.com
오래된 골목길에 들어서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담장 아래 사랑초와 달맞이, 금잔화와 채송화를 피우는 집에는 들꽃을 좋아하는 소박한 이가 산다. 담벼락에 제멋대로 그려 재낀 낙서를 부러 지우지 않는 집에는 하루하루 하염없이 지내는 노인이 있다. 붉게 녹슨 철자전거를 나일론 줄로 대강 묶어 놓은 집에는 어김없이 공병이나 폐지 따위가 쌓여있다. 허리가 굽고 힘이 센 이의 집이다. 좁고 굽은 길에는 삶이 흐른다. 삶은 길 위에 있다. ● 지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길을 밟고 걸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깨지고 부스러진 채 이리저리 떠도는 무수한 파편들이 길 위에 있다. 보도블록 사이 한 줌 흙에 돋아난 괭이밥과 삐라처럼 흩뿌려진 불법 대출 명함, 필터 끝까지 알뜰하게 피다 버린 담배꽁초와 믹스 커피가 누렇게 착색된 종이컵, 햇빛 아래 길 잃은 달팽이와 검은 매미 허물, 그리고 회색의 파편들. 모두 빠르고 부주의하고 난폭한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것들이다. 모든 슬픈 것들이 길 위에 있다.
길 위의 파편들을 가만히 마주하는 일은 길 위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겨우 찾은 한 줌 흙에 빼곡하게 뿌리내리는 괭이밥의 처지와 살기 위해 일수빚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가난한 자의 신세가 다르지 않다. 믹스 커피와 담배 한 개비의 씁쓸한 뒷맛에 기대어 고단함을 달래는 자의 형편이나 후끈하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길 잃은 달팽이의 사정이 매한가지다. 거뭇하게 썩어버린 매미 허물을 바라보며 죽을힘을 다해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회색의 파편을 내려다본다. ● 회색의 파편들은 이 삶이 나의 것이라 확신하는 자들의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다. 이 삶이 나의 것이라 확신하는 자들은 반듯한 길을 내어 수직으로 솟은 집을 짓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올린다. 길과 집과 성벽은 모두 회색이다. 그것이 근엄하고 위엄 있는 무표정의 색이므로. 사람들은 수직과 회색이 보장하는 프리미엄의 삶에 쉽게 도취되어 그것에 자신을 투신한다. 그 속에서 안전하고 무결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그것은 본질적으로 신화와 같다. 신화를 붙잡고 사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땅에 발을 붙일 수 없다. 땅은 현존의 세계이자 몸의 세계이므로 신화는 땅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수직과 회색의 신화를 쫓는 동안에는 발아래 세상이 깨지고 부스러지고 조각나는 것을 알지 못한다.
파편은 결국 오만하지만 광광하고 탐욕스럽지만 비루한 욕망의 부스러기들이다.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거친 파편의 표피에서는 언제나 매캐한 냄새가 난다. 그것에 코를 박고 시선을 고정한 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자면 삶은 결코 신화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것을 정교하게 관찰하고 세밀하게 그려내 문서 보관소의 서랍 속에 박제하는 일은 파편에 담긴 무상한 욕망을 애도하는 과정이자, 이 삶이 내 것이 아님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 파편이 길 위에 있듯이 삶도 길 위에 있다. 길을 밟고 길을 찾고 길을 걷는 것은 파편의 세상을 사는 일이다. 내 것이 아닌 삶, 모든 슬픈 것들은 길 위에 있다. ■ 신이명
Vol.20230908f | 신이명展 / SHINIMYEONG / 申二鳴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