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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0910_일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담 / 허경(철학자)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다다프로젝트 dada project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17-13 2층 Tel. +82.(0)507.1329.7061 blog.naver.com/soom_soop @dada.project_
'다다프로젝트'에서는 9월을 맞이하여 극 사실주의 회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중섭 작가의 초대 기획전을 마련한다. ● 최중섭 작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성된 삶의 조각과 문명과 역사의 이미지들을 자연이미지와 결합하기 위해 Layer 방식을 사용한다. 그리고는 작품의 시초가 되었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생각의 이미지로 전환되어 화면에 병치되고 혼합된다. 실재와 관념을 구분하고 결합하기 위해서 한 화면에 다양한 면(Layer)을 배분하고 겹치게 되는데 감정에 따라 Layer의 형태나 크기, 개수가 복잡하게 형성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단순하게 배치되기도 하며 때로는 오브제를 부착하기도 한다. 최근작에 숨겨진 듯 나타난 명화 속 이미지들은 작품에서 풍경과 어우러지거나 대비된 삶과 그림의 파편들로 기억, 추억, 절망, 희망, 기쁨, 분노, 대비, 조화, 일상 ,역사가 무의식적으로 겹쳐지고 쌓인 퇴적화 된 풍경이다. 그것이 작가가 풍경이고 설화(說話)이며 실재(reality)이다. ● 단순한 극 사실주의 풍경화를 넘어선 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라며, 전시는 오늘 10월 12월까지. 또한 10일 마련된 오프닝 프로그램으로는 철학자 허경과 작가와의 대담이 마련되어 있으며 무료다. ■ 다다프로젝트
최중섭, 마음의 실경산수-또는 현실과 환상의 중첩 ● 최중섭의 그림은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 빈 공간은 무엇일까, 이 동전은 무엇일까, 이 풍경은 무엇일까, 왜 이 풍경들은 이렇게 겹쳐 있는 것일까, 이 그림 속 그림은 또 무엇일까? 그리고 바로 이것이 최중섭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최중섭은 물론 테크닉이 뛰어난 화가이다. 그의 그림은 사실 기법적으로 완벽하다. 구도에서 디테일까지 흠잡을 데가 별로 없다. 테크닉의 탁월함은 그러나, 우리가 얼핏 받는 인상과 달리, 작가에게 보통은 저주내지는 독으로 기능하기 쉽다. 테크닉의 탁월함에 작가의 메시지가, 작가의 그림이, 함몰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물론 최중섭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최중섭은, 테크닉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기법은 우리로 하여금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여러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질문은 이것이다. 최중섭은 이러한 기법을 사용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최중섭이 테크닉이 뛰어나다는 말은 우선 그가 재현에 능하다는 말이다. 재현이란 자신이 보는 바를 캔버스 위에 그대로, 잘, 그려낸다는 말이다. 그런데 최중섭이 본다고 할 때 그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최중섭은 물론 현실(reality)을 본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가? 여기 당신이 보고 있는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이라는 물체? 우리는 현대 물리학을 통해 우리가 보고 만지고 지각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그리 확실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혹은 당신이 사는 아파트 평수 혹은 재산, 사람들이 알아주고 무시하는 사회적 지위? 우리는 그것이 물론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되,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차라리 소수임을 알고 있다. 없는 자에게는 대단해 보이지만, 막상 가진 자에게는 늘 있는 것이 되고, 또 자신의 삶이 그러한 것들을 이미 갖춘 이들의 사회에서만 펼쳐지기 때문에 스스로는 때로 위축되기조차 한다. 그것들은 모두 기껏해야 필요조건일 수있을 뿐,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자,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스스로와 사이가 좋아질까? 스스로와 사이가 좋을 때. 최중섭은 이 '스스로'가 바로 자신의 '마음'임을 안다. 최중섭은 오직 마음의 풍경을 그린다.
이제 우리는 최중섭이 그리는 것이 - 어떤 물리적 현실만도, 어떤 심리적 현실만도 아닌 - 어떤 현실, 곧 마음의 현실, 마음의 풍경임을 안다. 최중섭은 마음의 실경산수(實景山水) 화가이다. 최중섭의 그림은 그러므로, 사람들의 짧은 생각과 달리, 상상의 소산이 아니다. 최중섭은 마음의 유물론자로서, 오직 자신이 본 것만을 그린다. 최중섭은 '천사를 보여주면 천사를 그리겠다'고 말한, 우리 시대의 쿠르베이다. 최중섭의 마음 풍경은 현실적인, 너무나도 현실적인 풍경이다. 그리고 최중섭은 이 마음의 실경산수를 그대로 화폭 위에 펼쳐놓았을 때 그것이 현실의 실경산수와 갖는 차이가 사라짐을 잘 알고 있다. 이 경우, 관객에게는 마음의 실경산수가 현실의 실경산수로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최중섭이 찾아낸 것은 화폭에 여백을 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기법은 화폭 위에 펼쳐진 것이 현실의 실경산수가 아닌 무엇, 또 다른 무엇임을 알려준다. 펼쳐진 빈 여백, 보티첼리에서 클림트에 이르는 중첩된 서양의 명화들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풍경이므로, 그림을 보는 이들은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현실의 전부가 아님을, 현실이면서 현실과는 또 다른 무엇임, 그저 현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아닌 것도 아님을 쉽게 알아차린다.
최중섭은 이 글을 쓰기 위한 나와의 만남에서, 내심외경(內心外境)이라는 말을 했다. 안쪽의 마음과 바깥의 경치. 철학과 문학을 공부한 나는 얼핏 들어도 너무도 불교적으로 들리는 이 말이 불경에 나오는 말인 줄 알았다. 아마도 이 말은 필경 불교에서 말하는 '이것과 저것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 법문에 따라 읽혀야 할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출전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이 말은 우리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말이고 특별한 불경의 출전은 없었다. 전편을 다 보지는 못했어도 우연히 얻어들은 몇 마디 말과 장면만으로도 매우 훌륭한 작품임을 알 수 있었으나, 이런 대사까지 나오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 말은 일반 사전에서 검색하면 나오지 않고, 네이버 오픈 사전에만 이렇게 나온다. 사전의 작성일자가 2018년이고, 드라마의 방영 시기가 2018년 3~5월이니, 아마도 드라마 방영 이후에 작성된 글로 추측된다.
여하튼 작성자는 이렇게 적었다. 내심외경은 '내 속에 있는 것을 밖에서 본다는 말로, 겉으로 비치는 것들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쉽게 말해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변형이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불교의 불이법문에 따르면, 안과밖은, 하나도 아니지만, 둘이 아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가 땅과 몸이,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다. 곧 양자를 잇는 보다 깊은 공통분모가 있다는 의미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를 최중섭의 작업에 대입시키면, 최중섭이 그리는 풍경은 최중섭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최중섭이 그리는 풍경과 최중섭이 본 풍경은 둘이 아니다. 최중섭이 본 풍경은 오직 최중섭이 본 풍경이다. 그리고 최중섭은 이를 특별히 변형시키커나 하지는 않는다. 최중섭은 오직 자신이 본 풍경을 그대로 그릴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대로만 그리게 되면 보는 이들이 이를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앞서 말한 여러 기법을 사용하여 이것이 마음의 풍경임을 드러낼 뿐이다.
생각해보자. 사실은 우리 모두가 최중섭이다. 최중섭은 하나의 고유명사였던 만큼이나, 이제 하나의 보통명사가 된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우리 마음의 풍경을 우리 바깥의 풍경이라 의심 없이 믿는다. 그러나 내가 본 풍경은, 다른 어떤 누가 본 풍경이 아니라, 오직 내가 본 풍경일 뿐이다. 최중섭이 그려내는 풍경은 사실 최중섭이 그려낸 풍경이자, 최중섭의 마음이 그려낸 풍경이다. 그래서 이는 풍경(landscape)이라기보다는 마음의 풍경(mindscape), 심경(心境)일 것이고, 불이법문에 따라, 심경과 풍경은 둘이 아니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면에서 심경을 심정(心情)이라고 적듯, 풍경도 풍정(風情)이라 적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풍경, 곧 외부 세계는 곧 내부의 마음이 찍어낸 풍경이다. 그리고, 이 둘은 둘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를 만들어간다. 최중섭은 다른 어떤 그림이 아니라, 바로 이런 그림들을 그려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의 새로운 정의를 수행(隨行/修行)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최중섭은 모든 참다운 예술가가 그러하듯, 자신의 작업을 수행해 나가면서, 새로운 예술, 새로운 세계 그리고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명하고 있는 것이다. 최중섭의 그림은 인간의 내면세계가 - 어떤 환상이나 공상의 세계가 아니라 - 한 개인이 스스로와 세계를 만들어가는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리얼리즘(realism)의 영역임을 알려준다. ■ 허경
Vol.20230908e | 최중섭展 / CHOIJUNGSEOB / 崔仲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