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 ALIBI

이언경展 / Ongiong Lee / 李彦京 / photography   2023_0905 ▶ 2023_0930 / 월요일 휴관

이언경_현장2_Ed.1/3_C 프린트_60×60cm_202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언경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화성시_화성시문화재단 주관 / 화성ICT생활문화센터

관람시간 / 10:30am~05:30pm / 입장마감_05:00pm / 월요일 휴관

화성ICT생활문화센터 ACT GROUND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시청로 895-20 로얄앤컴퍼니(주) 로얄엑스,R5동 Tel. 070.7777.7617~8 actground.or.kr @actground.or.kr

You are Busted! ● "그댄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 인형이라는 소재를 둘러싼 뻔한 클리셰임에도 불구하고, 빤함이 주는 애틋함이 있기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던 '인형의 꿈' 노랫말 중 일부다. 누군가는 예전의 것을 끄집어내는 행위가 투미하다고 꼬집겠지만, 이상하게도 이언경이 구축한 세계를 보노라면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이언경_검은눈_Ed.1/3_C 프린트_60×60cm_2023
이언경_뉴스페이퍼_Ed.1/3_C 프린트_60×60cm_2023

2023년 9월 공개한 이언경의 『Alibi』를 이해하기 위해 1년 전 이맘때 선보인 『Giant』를 잠시 끄집어내고자 한다. 2022년에 이어 펜을 들고 있는 시간 여행자는 당시 이언경의 작업을 '댄디(dandy, 스스로 독창성을 이루고자 하는 열렬한 욕구에 사로잡힌 사람)'와 '도시 관상학자(사라진 혹은 사라질 것들을 채집하고, 결과물을 엮어냄으로써 도시가 빚어낸 울림을 묘사하는 인물)'에 빗대 풀어낸 바 있다. 『Giant』에서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자본주의에 말미암은 환상)'에서 벗어나려 부르주아와 다른 길을 선택한 19세기 플라뇌르를 발견한 까닭이리라.

이언경_젖은발_Ed.1/3_C 프린트_60×60cm_2023
이언경_그림자_Ed.1/3_C 프린트_60×60cm_2023

『Alibi』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작업을 천천히 살펴보니, 『Giant』를 지탱하는 큰 줄기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오늘날 쓰임새를 잃었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 사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 굳이 여기에 부연하자면, 기위 눈치챘겠지만, 주제 특성상 두 작업의 시각적 요소는 예쁨 혹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이와 같은 『Giant』와 『Alibi』를 구분 짓는 건 적극적인 사진적 개입. 이미지 채집에 집중한 『Giant』와 달리, 『Alibi』는 채집에 인위적인 설정을 추가했다고 할 수 있다. 분석의 근거는 단순하다. 1차원적인 관점에서 영화 주인공이 아닌 이상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늙(낡)은 인형이 스스로 걸어 다니며 사진에 찍히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언경_토끼_Ed.1/3_C 프린트_60×60cm_2023

그렇다고 이곳저곳에서 인형이 출몰하는 현상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Alibi』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머그샷이 연상되는 형식. 머그샷은 범죄자 몸에 낙인을 찍는 법령이 폐지된 19세기 후반, 프랑스 경찰 알퐁스 베르티옹(Alphonse Bertillon)이 범죄자 신원을 확인하려 고안한 사법 시스템의 하나다. 실증주의(관찰과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을 인정) 성격이 짙은 머그샷의 특징은 감정을 배제한 채 철저히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 『Alibi』 인형의 표정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다. 아무리 인형과 눈을 맞춰도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연장선에서 보는 이의 시선을 빼앗는 건 『Alibi』 속 인형 뒤로 펼쳐진 풍경이 계속 달라진다는 사실. 일반적인 머그샷은 무채색 종이를 배경으로 인물의 정면과 측면을 촬영하는데, 『Alibi』에선 변화의 주체가 인물에서 풍경으로 변경된 모양새다.

이언경_상괭이_Ed.1/3_C 프린트_60×60cm_2023

앞서 언급했듯 『Alibi』는 진취적인 작가적 태도로 탄생했다. 머그샷이 인형 그 자체를 활용한 형식적 개입이라면, 우리에게 익숙한 인형을 오브제로 선택한 건 이언경의 물리적·심리적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기록에 초점을 맞춘 작업에서 작가의 개입이란 '프레이밍' 정도인데, 작가는 인형을 장소에 맞춰 배치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인형이 작가의 페르소나가 아니라는 것. 오브제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내세우는 여느 작업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인형을 두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몇몇 인형은 독일에서부터 여정을 함께했다. 유학 시절 구제 가게에서 헐값에 구매했거나 길에서 주웠거나. 한국에 와서는 인형 뽑기 기계 사업을 하다가 실패 후 국숫집을 하는 사장님에게 헐값에 넘겨받기도 했다." 나아가 『Alibi』 배경에 관해서는 "어쩌면 어릴 적 내가 기억도 못 하는 진열대 어딘가에 앉아있던 곰 인형이 오랜 시간에 거쳐 어디에 도달해 있을까 하는 억지스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사랑해 마지않았던 작은 인형들을 세세히 추억할 만큼 아름다운 동심이 있진 않지만, 어느 날 그들이 나타난다면 아주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미안할 것 같다"라고 덧붙인다. 자신의 심리 상태, 그러니까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외사랑을 인형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는지. 종합하면, 『Alibi』에서 이언경 손에 들어온 인형에게 부여된 역할은 메타포라 할 수 있겠다.

이언경_바위_Ed.1/3_C 프린트_60×60cm_2023

실재하고 오래된 것들 안에서 오늘날 공간과 삶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는 데 의의가 있는 『Giant』와 『Alibi』의 맥락은 대동소이하다. 공통점은 사진들이 얽히고설켜 자신만의 정서적 공간을 만든다는 것. 다만 『Giant』는 은유적이고, 『Alibi』는 다소 직접적이다. 둘을 설명하는 기준은 사진적 개입이 얼마만큼 일어났느냐일 터. 한편, 머그샷 형식의 사진들을 전시장에 유형학적 스타일로 배치한 점도 흥미롭다. 낱장의 사진은 무표정(deadpan)에 가까운데, 이들을 모아놓으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흩어져 있을 땐 흔한 기록에 불과해 보였던 사진들이 뭉쳐서 내러티브를 구성했다고 할까. 아우구스트 잔더·베허 부부·토마스 루프로 대표되는 신즉물주의 사진이 차가운 언캐니(기이한 느낌)라면, 이언경 사진들의 온도는 따스하다.

다시 한번 이언경의 『Alibi』를 해체해 본다. 만화 주인공과 똑 닮은 인형에선 유년 시절의 추억이, 사진 속 풍경에선 개구멍과 자치기, 슬레이트 건축물 등 예스러운 정취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작가의 사진을 보는 이가 재정의한 셈. 마치 객관성을 넘어 주관성으로 흐르는 형국인데, 이는 『Alibi』에서 이언경이 맥거핀(영화에서 중요하게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처럼 장치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인형이 보는 이에겐 흘러간 시간을 증명하는 혹은 떠오르게 하는 알리바이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 박이현

Vol.20230906h | 이언경展 / Ongiong Lee / 李彦京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