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땅, 하늘, 원 Wall, Terre, 天, O

양지원展 / YANGJIWON / 梁智媛 / painting.installation   2023_0831 ▶ 2023_0922 / 월,공휴일 휴관

양지원_Circles (Text 2017)_Wall drawing_ 벽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가변크기(170×13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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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원 홈페이지_yangjiwon.com       인스타그램_@jiwon_yang_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뉴스프링프로젝트

관람시간 / 11:00am~07:00pm 화요일_11: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뉴스프링프로젝트 New Spring Project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5길 22 (한남동 745-6번지) Tel. 070.5057.0222 @newspringproject

서명된 견자(見者, Voyant)의 편지 - 원호(圓弧, Arc)적 몸짓을 향하여"신이 인간에게 쥐어준 보물은 숨겨져 있도록 의도되지 않았다. 비록 그 보물이 숨겨져 있더라도, 신은 눈에 보이는 특별한 서명(signatura)을 남겨두어 예후가 가능하도록 하셨다." ●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1966)에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의 9권에 등장하는 파라켈수스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표징이 없는 닮음은 없으며, 유사한 것들의 세계는 표시가 있는 세계일 수 밖에 없다고 해석한다. 1) 자연적 사물이 서로 간에 닮아있으며 이러한 닮음이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이 특별한 서명은 '견자의 세계'에서야 비로소 교감이 가능하다. '견자'란 평범한 자아의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들이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고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견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게 교감하며, 조화와 미가 존재한다. 양지원의 작업실 벽, 메모지에 작가가 기입한 "Arc-en-ceil, Arco iris, Regenbogen, Arcus, Arcobaleno"는 언어에 대한 유사성과 그의 어원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흡사 견자의 눈에 비친 자연적 사물들의 내밀한 친연성의 이야기를 엿보게 한다.

양지원_Element (A.P)_벽에 아크릴채색, 페인트_ 130.3×130.3cm, 가변크기(200×350cm)_2023 양지원_하늘과 땅 1 𝘊𝘪𝘦𝘭 𝘦𝘵 𝘛𝘦𝘳𝘳𝘦 1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53×53cm_2023
양지원_Element (A.P)_벽에 아크릴채색, 페인트_ 130.3×130.3cm, 가변크기(200×350cm)_2023

무지개에 관한 각 언어의 공통된 표식은 Arc, 즉 아치 형상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Ciel」(2022) 월 페인팅이 미술관이 아닌 병원 내부의 화이트 큐브로 옮겨졌을 때 생기는 새로운 아치의 형상이다. 천공(天空)에 드리운 아치라는 이미지가 '무지개(Arc-en-ceil)'로 표기가 되듯, 눕혀있던 신체가 이윽고 굽혀지는(bow) 그 지점에 Ciel 월 페인팅을 마주한 환자의 '원호적 몸짓'은 비 갠 뒤 청명한 하늘을 조우하는 감각을 환기한다. 다시 도돌이표 악보처럼 의료용 베드는 뒤로 젖혀지고, 작가의, 혹은 견자의 서명처럼 새겨진 점과 자연적 사물을 지칭하는 레터링들은 「Cielo」(2023), 「Element 1, 2」(2023) 그리고 「JWY.D.03.23」(2023)에 재등장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닮음과 친연성을 기반으로 한 연금술적 연쇄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양지원_움툼1 (0725) Wombtomb1 (0725)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53×53cm_2023 양지원_뤼미에르 1 Lumière 1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53×53cm_2023 양지원_움툼2 (0805) Wombtomb2 (0805)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53×53cm_2023
양지원_움툼1 (0725) Wombtomb1 (0725)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53×53cm_2023

궁창(穹蒼, Étendue)으로의 항해 ● 의료용 베드에 누워 다소 수동적으로 '원호적 몸짓'을 행하던 환자는 관객으로 변모하여 뉴스프링프로젝트 양지원 작가의 개인전 『벽, 땅, 하늘, 원 Wall, Terre, 天, ○』 (2023)에서는 보다 능동적인 몸짓으로 작품 간의 조응 관계를 읽게 된다. 일상에서 자칫 놓칠 법한 공간적 매개물 이를테면, 방과 방 사이의 문지방, 그리고 내부와 외부를 잇는 문틈의 경첩과 같이 간헐적이지만 긴요한 장치들을 직시하기 위해서 우리는 한 점을 향한 걸음에서 물러나, 중화된 강도의 원호적 몸짓이 필요하다. 사물 간의 조응 관계를 발견하려면 '희박성(rareté)', 즉 아직 발견되지 못한 빈자리에 대한 탐색이 절실하며 이 빈자리에 대한 탐색은 목적을 향한 직선적 행보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토대로 공간적 매개물을 더듬어 살피는 원호적 몸짓에서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Element (A.P)」 (2023), 「Ciel et Terre 1」(2023)과 이를 가로지르는 먹색의 거대한 월 페인팅에 이르기까지, 전시장 내의 캔버스-드로잉-월 페인팅은 오랜 시간 미술사를 장악한 매체 간 위계질서를 닮음 즉, 유비의 논리로 함락하고 있다. 유비는 철저하게 서양의 논리를 지배한 이분법적 원리와 대립한다.

양지원_벽, 땅, 하늘, 원 Wall, Terre, 天, O展_뉴스프링프로젝트_2023

세 번째 항을 배제하는 "A냐 B냐"의 양자택일에 맞서, 유비는 "A도 B도 아니다"라는 세 번째 항이 주어짐을 집요하게 피력하기 때문이다. 유비의 논리를 입은 세 번째 항처럼 「Element (A.P)」(2023)는 월 페인팅에 사용된 페인트가 캔버스에도 투영이 되는 미디엄의 공유를 넘어서서 '비교의 항'으로서 아날로곤(anàlogon)을 산출하며, 물질적 상상력을 동원한다. 이 물질적 상상력은 캔버스에서 드로잉으로, 드로잉에서 벽으로, 벽에서 월 페인팅으로, 월 페인팅에서 다시 캔버스로 순환하는 형태들과 형태 아래 감춰져 있는 질료들을 꿈꾸게 한다. 작가가 그동안 Ciel 작품에 예민하게 선택하고 서명한 페인트 색상이 조망한 자연적 사물이 각각 Utah Sky (페인트 No. 2065-40)와 Rocky Mountain Sky (페인트 No. 2066-40)인 점은 그가 정신적 기민함으로 익숙하게 훈련된 감각을 넘고자 한 일상의 시도와 연결된다. 더욱이 이 색조가 로키산맥을 넘던 모르몬 교도들이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거대한 바다로 착각한 그레이트 솔트레이크의 배경이자, 대지 미술가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이 제작한 「나선형 방파제 (Spiral Jetty)」(1970)의 무대와 동일선상에 있다는 유비의 논리는 창공 너머 심연의 공간으로의 항해를 상상하게 한다.

양지원_JWY.D.05.23_Wall drawing_벽에 색연필_가변크기(30×30cm)_2023
양지원_JWY.D.05.23_Wall drawing_벽에 색연필_가변크기(30×30cm)_2023_부분

천체들(Corps Céleste)의 징표를 따라 ● 양지원이 견자의 세계에서 은밀하게 건네는 자연적 사물들의 친연성 이야기는 「Lumière 1, 2」(2023)에서도 이어진다. 관객이 그가 「Ciel et Terre 1」(2023)에 서명하듯 그려낸 문자 아래 침전한 질료들을 원호의 몸짓으로 물질적 상상력에 이르는 여정을 항해했다면, Lumière 작품들에서는 천체들의 징표를 따라 움직이듯 유비의 논리를 더듬어 읽게 된다.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가 구문이나 전통 문법 규칙을 와해하고, 모음이나 자음의 철자 형태나 그 순서까지도 변형하여 '언어의 연금술'을 시도하고자 했던 '시 쓰기' 작업을 상기하듯 작가가 그리기, 혹은 쓰기로 새겨 넣은 Lumière (빛, 프랑스어)는 자음·모음의 분절과 재결합이 숨어 있다. 2) 랭보의 시를 적절한 거리를 유보해둠으로써 '난해함'을 해독하는 독자, 시각 미술을 시각에 부수적으로 청각까지 동원하는 관객이라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지하고 들어보지 못한 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분명 즐길 것이다.

양지원_JWY.D.04.23_Wall painting_벽에 분필, 알루미늄판, 종이, 페인트_가변크기(259×658cm)_2023
양지원_JWY.D.04.23_Wall painting_벽에 분필, 알루미늄판, 종이, 페인트_가변크기(259×658cm)_2023

그리고 Lumière의 모음 i에서 탈락한 '·' 과 억음 부호(accent grave) '`'가 하단에 배치된 특별한 서명을 별자리처럼 더듬어 읽을 수 있을 수 있다면, 서명된 Lumière의 베일을 뚫고 이윽고 감각 기관이 문자의 외양을 벗길 수 있다. 특히 이렇게 새로워진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를 랭보는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한 바 있는데, 불을 모르던 인간을 위해 신 몰래 불을 가져다주고 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어딘 가에서 가져와 사람들에게 알려주며 '이 곳(ici)'에서 '저 곳(là-bas)'으로의 통과를 탄생시킨다는 점이다. 양지원이 분절하고 재결합하여 그리듯이 서명한 단어 Lumière 가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유사한 역할을 하고, '빛'이 '불'의 속성과 유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양지원_Landscape Study: Circle and Line_ 벽에 아크릴채색, 색연필, 연필_162.2×112.1cm_2023 양지원_Landscape Study: Space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116×91cm_2023
양지원_Landscape Study: Circle and Line_ 벽에 아크릴채색, 색연필, 연필_162.2×112.1cm_2023
양지원_Landscape Study: Space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116×91cm_2023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Womb to the Tomb) ● 「Ciel et Terre 1」(2023), 「Lumière 1, 2」(2023)에서 양지원이 일상과 언어에 내재한 '비모순성', '논리성'을 제거하며 비관습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로의 상상을 꾀한 언어의 수수께끼는 「Wombtomb 1 (0725)」, 「Wombtomb 2 (0805)」(2023)에서 더욱 긴밀하게 작용한다. 작가의 언어, 특별히 모음에 대한 견고한 태도는 2003년부터 지속된 것으로, 이는 소리시(Sound Poem)로 확장되어 2017년 월 페인팅에서는 '움툼(WombTomb)' 구체시(Concrete Poem)로 구현되었다. 3) 음성학적으로 유사한 발음 체계를 공유하면서 삶의 첫 자락과 끝자락을 의미하는 두 단어는 미묘하게도 병렬적으로 발음을 내뱉었을 때 싹이 새로 돋아나오기 시작한다는 의미의 '움트다'에서 파생한 '움틈'을 스치게 하고, 이 움틈은 자연스레 씨앗-원, 그리고 점-모음으로 유비의 논리가 쏟아져나온다. 악보 도돌이표의 점이, 혹은 모음에서 탈락한 점이 때로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되기도 하고, 반복이 되기도 하고, 씨앗의 형상으로 파생되기도 하며, 생의 주기로 순환되기도 한다.

양지원_자화상 Autoportra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12.1cm_2023
양지원_자화상 Autoportra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12.1cm_2023
양지원_뤼미에르 2 Lumière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색연필_53×53cm_2023

자궁 내 움튼 씨앗이 이내 대지의 토양으로 환원이 되어 새로운 씨앗의 거름이 되듯, 자연적 사물 모두 자신의 조그마한 신체로는 감히 어림도 잡기 어려울 만치의 거대한 원호적 몸짓 한가운데에 있는 셈이다. 다시 푸코의 인용으로 돌아가 보면, 파라켈수스는 우주-자연-인간을 하나의 연쇄로 작용하며, 이들은 서로 닮아있으며 서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마치 별이 사물에 영향을 끼치듯, 그 역도 가능하며 멀리 떨어진 사물과 사물 사이에도 감응이 일어난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이 사물에 새겨진 특별한 서명을 이해하는 사람이야 비로소 그 사물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4) 양지원은 첨예하게 일상을 파고들되 감각은 자유로이, 익숙한 글자이되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 않았던 언어체계로, 매체는 전통적이되 비관습적인 양상으로 견자의 세계를 뉴스프링프로젝트 벽에 『벽, 땅, 하늘, 원 Wall, Terre, 天, ○』라는 특별한 서명을 담아 편지로 새겨두었다.

마지막으로 이 특별한 서명을 유비의 논리로 읽고자 한다면,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빈자리'에 이전보다 묵직한 공기의 무게가 실리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백민영

* 각주 1)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4-1541)은 16세기 스위스 출신의 의사로 호문쿨루스(Homunculus)라는 소인을 제작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인물이다. 그의 의화학적 호문쿨루스 레시피가 담겨있는 문헌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De natura rerum』 이다. 2) 랭보는 자기의 시론을 집약한 『견자의 편지 Letter du Voyant』를 통해 진정한 시인이 되는 길을 밝힌 바 있다. 진정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철저히 자기를 인식한 후에 스스로 '모든 감각의 오래고, 엄청난 그리고 일관된 착란'에 의해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랭보는 '견자(Le Voyant)', '언어의 연금술(Alchimie du Verbe)'을 경유하여 초월적 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다. 3) 『미래주의 선언 Manifesto of Futurism』의 제창자인 시인 F.T.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가 처음으로 시도한 첫 소리시(Sound Poem)이자 구체시(Concrete Poem)의 제목이 Zang Tumb Tumb (1912-1914)인 점과 소리시의 양상이 점차 구체시로 확장되어 전개되었다는 점은 '움툼'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4) 박요한, 「파라켈수스의 의화학적 호문쿨루스 제작에 관한 연구 :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De natura rerum」 (1537) 제1권의 번역과 주해』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2022) 재인용.

Vol.20230831f | 양지원展 / YANGJIWON / 梁智媛 / 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