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링 Pairing

박미라展 / PARKMIRA / 朴美羅 / painting   2023_0831 ▶ 2023_0924 / 월요일 휴관

박미라_페어링展_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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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홈페이지_mirapark.myportfolio.com          텀블러_flaneurmira.tumblr.com 인스타그램_@flaneur_mira        

초대일시 / 2023_0831_목요일_05:00pm

크레딧 디자인 / 유현선 공간 설치 / 홍민희 애니메이션 모션 / 남상협 음악 및 사운드 디자인 / 서혜민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2023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 선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최,후원/ 서울시립미술관

관람시간 / 11:00am~10:00pm / 월요일 휴관

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 SEOUL INNOVATION PARK_SeMA Storage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 1~3 전시실 Tel. +82.(0)2.2124.8800 sema.seoul.go.kr

미지를 향해 힘껏 미끄러지기 ● 박미라 작가의 개인전 『페어링(Pairing)』은 공간과 공간, 이야기와 이야기, 의식과 무의식, 가상과 실재 사이의 연결을 시도하는 전시로 드로잉 애니메이션, 설치, 회화 등의 신작 다수로 구성된다. 박미라는 흑백 드로잉을 주 매체로 하여, 화면 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서사구조를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짝을 이루는 개념의 페어링을 넘어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연결되고 확장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 '짝을 이루다'는 뜻의 페어링(pairing)은 흔히 블루투스 연결을 일컫기도 하고, 음식 재료의 구성과 음료 또는 주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나타낼 때도 쓰인다. 이는 신발 한 켤레가 완성형으로서 이루는 '짝'의 개념보다는, 무언가와 무언가가 만나 짝을 이루는 '상태', 곧 연결과 비연결을 오가는 현상 자체에 주안점을 둔다. 파란색 신호를 내뿜으며 연결 대상을 찾는 블루투스의 적극적인 동작과 달리 흑과 백으로 점철된 박미라의 화면은 다소 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적막이 흐르는 흑백의 단조로움에 기초하는 한편, 화면 내 인물과 사물의 구체적인 설정을 통해 꽤나 시끌벅적한 구성을 제시하고 있다. 박미라의 작품이 줄곧 연극적 무대 구조와 비교되어 온 것 또한 대상의 위치, 서사, 맥락 등을 매우 특정적으로 설정해 온 작가의 내러티브 전개 방식과 연관된다.

박미라_페어링展_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_2023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의 전개나 상황의 변주를 위해 구멍, 문, 틈, 뚫린 창문과 같은 요소를 활용해왔는데, 새로운 공간 혹은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위해 가미된 이 요소는 반대로 기존 화면이 굳게 닫혀있었음을 시사한다. ● 특히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구분선을 의미하는 '제 4의 벽(fourth wall)'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온전히 하나의 독립된 무대로 존재하기 위해 암시된 제 4의 벽은 기존의 공간을 안정적으로 획득하면서도 물리적, 심리적 구획을 뛰어넘어 다른 차원으로 연결될 필요성 또한 포괄한다. 이 때 페어링은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연결을 보장하기보다 언제 끊길지 모를 불안감 또는 이내 이어질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박미라_페어링展_서울혁신파크 SeMA 창고_2023

SeMA창고 1전시실에 들어서면 양면으로 포개어진 회화 「빈틈 없는 마음」(2023)과 「달팽이 잠」(2023)이 가장 먼저 위치한다. 수경과 수영모를 쓰고 다이빙하는 남자, 밧줄로 나무에 단단히 묶인 남녀, 화면과 화면을 잇는 실과 바늘, 그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문어 다리와 지렁이,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어금니, 망치로 그림자를 깨부수는 남자와 이를 카메라로 포착하는 자, 담배를 입에 문 남성이 그리는 그림을 유심히 지켜보는 아이와 여성, 그리고 구석진 화면의 객석에 앉아 이 모든 장면을 직관 하고 있는 자에 이르기까지... 흑백을 뚫고 일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많은 피조물은 끝없는 복제와 증식의 굴레 안에서 복잡한 관계망을 형성해간다. 여러 방향으로 뻗어져 나가는 서사 전개가 박미라의 작품 전반에서 읽히는 특징이라고 한다면, 캔버스 일곱 폭을 가로로 길게 이어붙인 「검고 흰 허밍」(2023)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읽는 듯한 감상 방식이 자연스럽게 제안된다.

박미라_페어링_2채널 드로잉 애니메이션_00:04:22_2023
박미라_파랑새_백자토_15×32cm_2023
박미라_페어링_2채널 드로잉 애니메이션_00:04:22_2023
박미라_페어링_2채널 드로잉 애니메이션_00:04:22_2023

무작위로 발생하는 상황의 연속은 박미라가 평면 캔버스를 넘어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옮겨가는 계기를 낳는데, 이러한 매체의 확장은 기존의 정지된 화면에서도 포착 가능한 인물과 사물의 동세를 통해 예견해봄 직하다. 최근 2년 사이에 제작된 「사랑」, 「새 출발」, 「구애」, 「희망」, 「눈 내리는 밤」, 「눈방울」, 「눈치」, 「장마」, 「마음잡이」, 「소망」, 「텔레파시」, 「핑퐁」은 수직으로 쌓인 세 대의 아날로그 모니 터를 통해 송출된다.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으로 반복 재생되는 총 12편의 드로잉 애니메이션은 박미라가 '가벼운 회화의 움직임'이라 부르는 것들로, 짧게 편집된 '숏폼(short-form)' 영상의 형식을 취한다. 「러브세트」(2023)에도 등장한 높은 연식의 아날로그 모니터는 CG와 같은 고급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가미 없이 가장 기본적 형태로 연출된 편집, 그리고 오로지 면과 선으로 구성된 평면적 드로잉에 설득력을 더 한다. 화면을 유영하는 개별 대상들은 제안된 규격 안에 충실히 머문다는 느낌보다는 무한 증식을 통해 화면 밖으로 쏟아져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백자토로 제작된 「파랑새」(2023)와 「마음 너머」(2023) 또한 정지된 화면에서 무빙 이미지로, 무빙 이미지에서 입체물로 환생하면서 끝내 자율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상호관계는 작가가 '실재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을 뒤섞어 혼재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연출을 의도한 결과물이다.

박미라_새 출발_드로잉 애니메이션_반복재생_2023
박미라_장마_드로잉 애니메이션_반복재생_2023
박미라_마음 너머_드로잉 애니메이션_반복재생_2023

박미라의 회화 드로잉은 디지털 이미지로 접할 때보다 유독 실물로 마주할 때 다른 에너지를 내뿜는데, 작품 표면의 질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캔버스 표면의 거친 질감은 작가가 오래전 실제 건물 외 벽의 벽화 작업을 하며 경험했던 벽면과의 마찰을 담아내기 위한, 유사한 질감 표현을 위해 캔버스에 안료를 두껍게 쌓아올려 완성되었다. 단단한 바탕면 위에 놓인 흑백 드로잉은 그래픽 일러스트와는 확연히 구분된 속성을 갖게 된다. 어쩌면 외벽을 의도한 화면은 '캔버스나 영상이 플레이되는 모니터 즉, 작품의 표면을 제 4의 벽으로 상정'하는 작가가 스스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필요를 느낀 막이었을지도 모른다.

화면 곳곳에 설치된 덫(구멍, 문, 뚫린 창문 등)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덫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도상들은 문어, 빨대, 지렁이, 지네 등 하나같이 움직임이 유연한 대상이다. 다른 차원으로의 이 동이 원활하겠으나 손아귀에 잡아두고자 한다면 이내 미끄러워 놓치게 될 것들. 이들은 이질적이고 서로 만날 수 없을 대상들 사이의 경계를 흐리고 중첩을 돕는 장치로, 박미라의 화면 구성을 작동케 하는 결정 적인 조력자가 된다. 이번 전시에 짝으로 놓인 2채널 영상 「페어링」(2023), 포개진 캔버스, 마주 보는 모니터 등이 이루는 충실한 연결고리만큼이나 작품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와 격렬히 깜빡이는 연결 신호를 떠올려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 박미라의 페어링은 영구적이거나 안정적인 연결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화면 너머에 있을 무형의 대상과의 연결을 상상해보게 되는 이유다. 자, 또 다른 극의 시작이다. ■ 이보배

Vol.20230831d | 박미라展 / PARKMIRA / 朴美羅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