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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열 홈페이지_kimsunyoul.net 인스타그램_@kimsunyoul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강원특별자치도_강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01:00pm~08:00pm
별관 OUTHOUSE 서울 마포구 망원로 74 (망원동 414-62번지) 2층 outhouse.kr facebook.com/outhouse.info @outhouse.seoul
쓰나미를 이기는 방법 ● 어젯밤에 재난 방송을 보며 잠들었는데 또 다른 재난을 알리는 문자가 오늘의 아침을 깨운다. 상시화된 경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일러주는 듯하다. 매일같이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는 재난의 소식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위기감과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특히 전염병과 전쟁, 기후위기로 인한 전세계적인 혼란과 갈등 속에 보낸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재난에 대한 공포 심리와 이기주의가 경제적 이윤에, 정치적 책략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체득할 수 있었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저서 『쇼크 독트린: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2007)를 통해 전쟁과 테러, 경제공황, 자연재해 등의 재난이 불러온 쇼크 상황에서 대중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신자유주의적 정책(doctrine)이 자본과 권력을 특정 계층에 집중시켰음을 지적한 바 있다. 자본이 재난을 낳고, 또 재난으로 자본이 축적되는 이른바 '재난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재난의 위기조차 이윤을 위해 이용하는 인류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인류의 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지금의 현실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자본주의로 말미암은 여러 사회ㆍ문화적인 문제를 탐구해 온 작가 김선열은 전시 『쓰나미를 이기는 방법』에서 위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재난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형상화한 조각 및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먼저 작가는 몇 개의 시지각적인 기호를 활용하여 우리를 쓰나미가 발생한 재난 현장으로 소환한다. 전시장의 정적을 깨트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위협적인 파고의 쓰나미 영상이 눈 앞을 덮쳐오고 있다. 그 앞에 우레탄폼으로 만들어진 가벼운 테트라포드 조각들이 해일을 막기 위해 쌓여 있는데, 이는 대규모 재난 앞에서 인간의 취약성을 은유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뒤편에 놓인 '에어튜브'는 재난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비유한 장치일까. 비닐에 공기를 채워 만든 큐브 형태의 에어튜브는 작은 충격에도 손상될 위험을 담보한 얄팍한 안전망임에도 불구하고, 전망대나 잠수함처럼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투명한 창을 갖추었으며 내부에는 비치체어가 놓인 아이러니한 공간을 보여준다. 재난이 닥쳐오는 풍경을 그저 한가로이 조망하게 하는 이 장치는 재난이라는 위기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것이자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무모한 태도를 시각화한다.
나아가 작가는 재난 상황에 사용될 안전 장비의 시제품을 선보이는 박람회 형태의 공간 설치를 통해 재난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 만들어낼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한다. 이미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벽체가 부서지고 뼈대가 드러난 진열대가 보여주듯, 이 공간에서는 폐허의 이미지조차 재난용 안전 장비의 현장성을 강화하는 하나의 컨셉으로 이용된다. 폐허 컨셉으로 꾸며진 상품 진열대 위에는 재난 현장의 물리적인 위협으로부터 인간의 신체를 보호해 줄 구명조끼와 안전모, 안전화, 장갑 시제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각 용품으로부터 안전성이나 실용성을 발견하게 되기보다는, 대중적인 만화 캐릭터의 외형적 특징을 차용한 그 디자인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들이 임무를 완수하고 벗어 놓은 것처럼 귀여운 형상을 하고 있는 안전 장비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기존의 시장에는 없던 독특한 외형으로 소비심리를 자극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재난 상황에 필요한 안전 장비조차 차별화를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 전락시켜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자본주의의 단편을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전염병과 함께 캐릭터 마스크, 퍼스널컬러 마스크, 명품 브랜드 마스크 소비가 유행했던 양상을 떠올려보면, 이 또한 우리 현실과 크게 유리된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이어진다.
이와 같이 여러 상징을 담은 조각과 설치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은유하는 방식은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프로젝트 「Animal Farm」(2020)과 「Brave New World」(2021)에서 선보인 동물의 탈을 쓴 인체 조각이나 만화 캐릭터들이 놓인 디오라마(diorama)를 통해 작가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차별, 문화침투 현상, 권력구조의 병폐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바 있다. 이때 디오라마의 축소된 무대 위에 놓여 있던 미니어처와 같은 상징적인 사물들은 전시 『Trouble in Paradise』(2022)에서 실제 사람의 크기만큼 확대된 모습으로 나타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현실을 강조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 『쓰나미를 이기는 방법』에서 작가는 마치 관람객이 디오라마 속으로 들어온 듯한 조각과 공간 설치를 선보임으로써 재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위기에 대한 보다 실제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일련의 작품을 통해 대중문화의 요소를 활용하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를 유지하면서도, 규모와 시점을 달리하며 주제에 걸맞는 공간을 구현하는 작가만의 조형언어가 드러난다.
역설과도 같지만 재난을 이겨낼 방법이란 결국 재난을 이길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전환하고,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태도를 변화시켜야만 획득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작가는 자신만의 유희적인 어법을 활용해 우리가 직시하지 못하는, 때로 외면하는 재난 자본주의의 현실을 포착함으로써 그 전환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이렌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가운데 재난의 현재와 미래를 응시하게 된 우리는, 이제 뒤돌아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여 있다. ■ 이가린
Vol.20230827a | 김선열展 / KIMSUNYOUL / 金善烈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