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1030a | 유병훈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료 / 성인 6000원 / 초,중,고등학생 및 65세 이상 4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00pm
이상원 미술관 LEESANGWON MUSEUM OF ART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화악지암길 99 Tel. +82.(0)33.255.9001 www.lswmuseum.com
작품은 무수한 농담의 변화로 인해 빛을 머금은 것처럼 보이는 색면色面 추상화이다. 작가가 즐겨 쓰는 단어를 빌자면 작품은 '묘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서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지만 시선을 집중시킨다. 작품을 대면하면 점차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색채를, 일렁이는 리듬을, '無'가 불러오는 침묵을 음미하게 된다. 한 가지 색상으로 평면을 고르게 채운 작품들을 모노크롬 회화라고 일컫는다. 작가의 초기 추상화는 여러 가지 색상의 점으로 시작하였으나 최근에는 단일한 색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한 예술가의 삶을 바쳐 제작된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일까? 1949년생인 유병훈 작가는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의 수학 과정과 군생활을 제외하고는 줄곧 춘천에서 생활했다. 서울 관훈미술관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으로부터 작가가 천착하게 되는 작업의 모티브가 시작되었다. 작품의 소재는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의 공간, 투과하는 빛과 공기의 흐름이 빚어내는 감각이었는데 주제는 자연을 비롯하여 꾸밈없이 살아가는 인간 삶의 서정이라 할 수 있다. 예술세계의 형성에 있어 춘천의 숲과 강물이 배경이 되었지만 더욱 근본적인 요인은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난 작가의 유년 시절 예민했던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기억 속에 각인된 삶의 이미지는 단순히 하나의 형상이라기보다는 소리와 냄새와 감정이 함께 빚어낸 총체적이고 풍부한 현전現前이다. 이를테면, 거의 매일 아침마다 습관처럼 봉의산 자락에 올라 자유롭게 춘천 시내 풍경화를 그릴 때의 충만함. 곰진내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펼쳐놓은 빨랫감들이 자아내는 일상의 풍경. 우마차를 몰던 소가 물 마시는 자그마한 웅덩이.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 속에서 뛰어 놀았던 강물의 친근함과 맑은 대기의 조화로움 같은 것이다. 자연과 소박하고 순수한 일상의 감각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선사하는 생동감과 진실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작가는 유난히도 영화를 즐겨 보았는데 그 시절 서구적 영상을 통해 접하는 감각적인 신선함과 풍성한 감동은 예술적 감성이 뿌리내리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작가에게는 자연의 리듬을 소실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작업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삶의 총체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예술에 대해 영문학자 김우창은 '자연에 대한 미적 감각이 삶의 유기적 조화에 대한 감각의 계발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자연과 예술가의 교감이 탁월하게 드러난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를 소개했다. 유병훈 작가의 작품이 지닌 서정을 문학으로 표현한다면 이와 같지 않을까 한다.
더욱 깊이 섞여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드높은 느낌- 지는 해의 빛 속에 머물며, 둥그런 바다, 설레는 바람, 푸른 하늘, 사람의 마음에 머무는 더욱 깊이 섞여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드높은 느낌 -윌리엄 워즈워스, 틴틴寺院- (「체념의 조형, 김우창, 나남, 2013」에서 재인용)
자연은 삶의 진정성을 반성하도록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구축해 놓은 가치 체계와 물리적 체계의 불균형과 억지스러움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은 소리 없는 침묵-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옳고 그름의 논쟁을 내려놓은 상태-속에 머물도록 이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상태는 아니다. 유병훈 작가는 자신이 느끼는 자연의 경이와 진실한 삶의 감각을 표현하고자 하나의 점을 반복해서 표면에 남기는 작업을 수행한다. 존재의 실재를 알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의 상징인 '점'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간혹 다 끝마쳐지지 않았다고 할 만큼 반복함으로써 작업을 이어간다. 사이먼 몰리는 그의 책 「모노크롬 이해할 수 없고 짜증나는, 혹은 명백하게 단순한, 안그라픽스, 2022」에서 모노크롬 회화는 '관상contemplation'의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피력하였다. 관상의 공간이란 인간이 그의 내면에 주의를 기울여 진정한 자아, 존재의 비밀을 탐색할 수 있는 현장으로 현대인에게 있어 예술의 종교적인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푸른색, 핑크색 혹은 회색의 표면. 표면을 가득 메운 중첩된 점의 반복 또 반복. 작가가 캔버스 앞에서 무심한 듯 점을 찍는 순간을 떠올려 본다. 예술가로서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좇아 적절한 위치, 적절한 톤, 적절한 크기의 흔적을 남기는 순간이므로 사실상 모든 감각이 살아있는 순간이다. 그때 작가는 스스로 완전히 무지한 상태임을 인정한 채로 자연의 본체에 가닿고자 하는 지극한 열망을 품고 들숨과 날숨에 자신을 내맡기는 구도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 신혜영
Vol.20230826e | 유병훈展 / YOOBYOUNGHOON / 兪炳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