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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0810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전시 / 김승현_배태열_백지훈_석정민 신준민_심효선_안성환_이세준_이우수 이재호_채온_최수영_홍지혜 공연 / 권수은_김성경_김학용 배수화_정성웅_최용욱_송예은
공연일정 2023_0826_토요일_03:00pm 2023_0923_토요일_03:00pm 2023_1021_토요일_03:00pm
주최 /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 / 박천_정연진_권수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정진권, 이용학 코디네이터 / 김관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9월 29일 휴관
대구예술발전소 DAEGU ART FACTORY 대구시 중구 달성로22길 31-12 (수창동 58-2번지) Tel. +82.(0)53.430.1225~9 www.daeguartfactory.kr @artfactorydgxsuchang
따로 또 같이 Separately, but together ● 예술가들은 보통 협업을 통해 보다 풍부하고 완성도 있는 예술을 선보인다. 음악가들은 홀로 연주를 하기도 하지만 보다 다채로운 음악을 위해 합주를 하여 듣는 이들의 음악적 감성 풍부하게 만든다. 공연 예술가들은 '함께'가 익숙하다. 홀로 해야만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수가 고민하고, 수정하고, 연습하고, 평가하고, 격려하며 최고의 공연을 위해 계획된 대로 그리고 연습한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작가, 문학과 시각예술을 행하는 이들은 유독 외롭다. 물론 다른 작가와 협업을 하거나, 팀을 구성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이는 일종의 이벤트처럼 일시적인 프로젝트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많은 예술가 중에 미술가는 유독 외롭다. 그리고 이것이 미술 작가의 숙명이라고 하기도 한다. ● 미술 작업의 특성 상 혼자서 충분히 구상부터 완성까지 해낼 수 있어서인지, 과거에 기술로 여겨졌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미술사에서 '최초'가 최고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 이어서인지, 혹은 개념미술이 대두되면서 결과물인 작품의 완성도보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중요하게 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술가들은 '혼자' 작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작업은 홀로 할 지라도, 유명한 미술가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을 나누고 영감을 주고받을 친구, 뮤즈 심지어 라이벌도 있었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의 그림을 계속 응원했던 이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문학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였고,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연인이 바뀔 때마다 작품 스타일도 변화했으며,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m 1869-1954)와 파블로 피카소는 서로를 작업실에 초대하는 것을 꺼리고, 걸핏하면 서로의 작업에 딴죽 걸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견제가 두 작가가 거장이 되는 데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미술가들이 '함께'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발달시킨 미술 중 가장 대표적인 미술사조는 아마 '인상주의(Impressionism)'일 것이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 최초로 총체적인 미술의 혁신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상주의는 1860년 초 프랑스에서 발생한 1886년을 기점으로 순수한 의미의 인상주의는 끝이 나지만, 이후 모든 미술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미술사조이다. 인상주의 르네상스 시대에 정립되고 쌓아 온 원근법, 균형 잡힌 구도, 이상화된 인물, 명암 대조법 등을 거부하면서 미술의 전통에 변화 혹은 혁신을 가져왔다. ● 인상주의 미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고자 했다. 이전까지의 미술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전까지 하늘은 무조건 맑은 하늘, 즉 푸른 빛으로만 표현해야 잘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면, 인상주의 미술가들은 저녁 하늘은 검푸른 빛으로, 해가 뜨거나 질 때의 하늘은 붉은 빛이 섞이게, 흐린 날의 하늘은 회색을 좀 더 섞는 등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형태의 재현보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면의 색채에 대한 '인상'을 그리고자 했다. 현재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그들의 그림이지만, 처음 이들이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을 때 세상 사람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작품은 구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파란색이여야 할 하늘이 붉은 색이 되기도 하고 노란색이 되기도 한 것은 엉망진창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상주의 미술가들의 작품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신문의 만화 사설에서는 에서는 임신부는 이러한 추잡한 그림을 보고 충격 받을 수 있으니 그들의 전시를 관람하지 말라고 풍자했을 정도였다.
이전의 미술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의 평가와 평론가들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꿋꿋이 자신들만의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새로운 미술을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네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 미술가들은 파리의 바티뇰가(현재의 쿠리시가 9번지)에 있던 카페 게르부아(Le café Guerbois)에 종종 모였다. 1864년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가 카페 근처인 바티뇰 34번지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더 가까워진 그들은 밤에 술을 마시기보다는 낮에 미술이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동안은 아예 매주 금요일마다 모임을 하기도 했고, 카페 주인이 그들의 자리를 맡아주기 했다고 한다. 당시 참석했던 작가로는 판탱-라루트, 르누아르, 드가, 모네, 유럽에서 활동한 미국화가 휘슬러, 바지유, 세잔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그 이름 하나하나가 미술사에서 너무나 유명한 작가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까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 진보적인 청년 작가와 다를 바 없었다. 여기에는 미술가뿐만 아니라, 세잔의 고향친구 에밀 졸라, 작가이자 평론가인 이폴리트 바부, 루이 에드몽 뒤랑티, 필립 뷔르티 등과 같은 이들도 있었다. ● 카페 게르부아에 모이던 예술가들은 프랑스 화가들의 등용문인 살롱전(일종의 국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경향의 미술을 추구하는 방법에 관해 치열한 논의를 했다. 그리고 살롱전에 대응해 지속적으로 인상주의 전시를 개최하며 자신들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하여도, 어려움이 있어도 그들은 '함께' 이 문제를 헤쳐 나갔다. 이렇게 인상주의는 카페 게르부아에서 탄생하여, 성장했으며, 예술가들의 안식처이자 영감의 장이 되어주었다.
한국 근대 미술에도 예술가들의 모임이 있었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 1960년대부터 급진적인 근대화 산업사회를 겪으며 급속한 사회 변동을 겪었다. 이 당시 국제사회는 6.8혁명, 반전 평화운동, 페미니즘, 제3 세계 문제 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국가적,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여 당시 청년 작가이던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ST(Space&Time)', '제4집단' 등을 만들고 '청년작가연립전', '대구현대미술제' 등에서 '실험 미술'을 선보였다. ● 그들은 주류를 비판하기도 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예술의 의미를 찾았으며, 새로운 매체들을 거침없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당시 한국 미술은 앵포르멜(비정형 미술) 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에 무동인', '신전동인' 같은 신진 작가 그룹은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열어 이에 반발한 반(反)예술을 주장했다. 그들은 앵포르멜의 '뜨거운 추상'에 대항해 '차가운 추상', 즉 기하학적 추상을 선보였다. 연통, 고무장갑, 성냥 등 산업화로 일상화된 물질들을 사용한 '생활 속의 예술'도 등장했다. 한국 미술사 최초의 해프닝 중 하나로 기록된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을 시작으로, 최초의 페미니즘적인 해프닝 '투명풍선과 누드',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의 제2한강교 아래서 화형식 형태로 기성세대를 비판한 '한강변의 타살' 등 여러 해프닝도 1970년대 초까지 계속됐다. 당시 이들의 미술은 '이게 예술이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구림은 1969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을 염하듯이 흰 광목천으로 감싸는 '현상에서 흔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주최측은 초상집 같다는 이유로 천을 26시간 만에 철거했다.
이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실험정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들은 해외 비엔날레에 도 참여하며 1960-70년대 공존했던 미술 운동과의 영향 관계를 국제적인 위치에서 확인하고, 글로벌 미술계로의 확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신정권이 불온한 '퇴폐 미술'로 지목하여 이들을 경찰에 연행하고, 심판하고, 심문함에 따라 시대적인 불안성과 함께 해체되고 탄압받았다. 그리고 결국 1980년 이후에는 단색화와 민중미술에 밀려 '비주류' 미술로 여겨졌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졌던 실험미술 작가들의 해외진출로 인해 이에 자극받은 추상화가들이 모노크롬 형식과 한국적 전통을 접목한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단색화를 발전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국가적 억압이 없었더라면 좀 더 한국미술이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갔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당시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였을 수 있으나, 한국 미술에 있어 이들의 미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미술사적 중요성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가 2023년부터 2024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시작으로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LA 해머미술관까지 개최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비주류'로 여겼던 미술이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이 된 것이다. ● 이번 전시는 앞선 미술의 선구자들을 따라 동시대의 다양하지만 무분별한 예술 속 또 다른 새로운 예술에 도전해보고자 하였다. 총 26명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할애하여 함께 고난(이라고 쓰지만 등산)을 겪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경험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냈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 등산에 대한 이야기, 지역에 대한 이야기, 예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작은 조각조각들이 모여 그들에게 신선한 영감이 되어주었다. 인상주의 작가들이 밖에 나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자신이 겪은 인상에 타인과 함께 얻는 경험까지 반영하여 우리 나름의 하이퍼 임프레셔니즘(Hyper Impressionism)을 구축했다.
인상주의자들이 보고 느낀 인상만을 표현했다면, 하이퍼 임프레셔니즘의 예술가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험미술가들의 면모 또한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개인적인 시각과 인상을 넘어 함께 경험하고 공유한 감정들을 선보인다. 같은 것을 경험하고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개개인이 주목한 부분은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시적인 융합이 아닌, 지속적인 융합을 추구한다. 융합프로젝트라는 명목 하에 서로의 예술에 또는 작업에 대한 이해도 없이 일시적으로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담론 하에서 충분한 시간과 관계 형성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개별성을 인정하며 의견을 나눈다. 어떤 이는 인상주의 작가들에게 악평을 했고, 한국 근대 미술가들이 미친 짓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에게 식상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연히 아이디어만 있었던 것을 우리는 함께 행동에 옮겼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고 해도 실행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이번 프로젝트는 시작하였고 그 결과물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지금 약 26명의 작은 발자국이 미래의 커다란 족적을 남길 수도 있다는 1%로의 가능성도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적어도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에게는 추후 영감의 자양분이자 새로운 네트워크 형성의 계기가 되었고, 관람객들에게도 다시한번 예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여전히 작업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지만 함께 생각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예술 동료들이 있고 이들의 예술을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피드백하는 여러분이 있기에 따로 또 같이 예술은 지속될 것이다. ■ 정연진
『HYPER IMPRESSIONISM』: 인상주의에서 동시대라는 극(極)에 이르기까지 ● 인간의 정신에 거대한 진리가 흐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흐름은 때로 종교의 모습으로, 도덕적 규율로, 사회체제의 형태로 시시각각 변화하며 인간의 삶을 휘감았다. 부유하는 낱낱의 생각은 이상(理想)의 이름 아래 하나로 엮여 보편화된 가치를 지향했다. 그러나 문명이 진보를 이루어 내길 끝없이 강구하면서,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의식은 점차 그 커다란 소용돌이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그리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작은 예로,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개인의 대다수는 TV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가공되고 통제된 정보를 공급받고 수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등장, 군소 매체와 SNS의 발달은 정보의 제공처를 집단에서 개인으로 전이시켰고, 수용자 또한 각자의 기호에 맞춰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모습이 이제는 훨씬 익숙하다. 더는 대다수가 예전처럼 하나의 지점만을 응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이처럼 다원화된 시대는 다양성의 활성화와 개성에 대한 존중 등 긍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립과 단절, 소외의 정서가 만연하다는 상반된 평가 역시 받는다. 혹자는 부정적 면모에 대해 그것이 '코로나 사태'와 같은 전 지구적 불행을 겪고 난 이후 더욱 심화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필요성의 유무를 떠나, 더는 옛 시절처럼 많은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구심점이 등장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발터 벤야민이 지적했던 '아우라(Aura)의 몰락'이 우리 대에 본격적으로 도래했음이다.
『HYPER IMPRESSIONISM』展은 이렇게 분열을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 파편화된 예술의 간극을 이으려는 의도를 품고 기획되었다. 현대의 미술은 소위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양식이나 개념적 특성보다 단순히 시기에 중점을 둔 특색 없는 칭호다. 이는 너무도 동시다발적으로 산출되고 미시화(微視化)된 작금의 미술 흐름을 어떠한 거대 담론으로 포착하기 힘들다는 점에 기인한다. 본 프로젝트가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명칭을 표방한 것은 현대미술의 출발점이라 평가받는 인상주의와 그것이 내포했던 의미에 관심을 기울여, 이 혼란한 시대에 다시금 뿌리를 되짚기 위함이다. 이것은 다양성과 포스트모더니티(post-Modernity)에 대한 맹목적인 부정이 아니다. 그보다 멈출 줄 모르는 분화로부터 특정 지점 설정하고 이를 '함께' 응시함으로써 혼돈을 이해하며, 크고 작은 저마다의 가치를 병치하려는 노력이다. ● 본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은 과거 인상주의자들이 그러했듯, 개인적이고 고립된 공간인 작업실(Atelier)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으로 향하여 사생과 사색을 행했다. 활동이 이뤄질 만한 장소에 있어 그들이 주목한 곳은 '산'이었다. 이는 전시를 주최하는 대구광역시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예술가 및 기획자 무리는 비슬산, 앞산, 팔공산 등 대구의 대표적인 세 명산을 오르내리며 개개인의 행위와 생각을 공유하였다. 관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하여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13명의 예술가가 공통의 시작점으로부터 어떤 관점을 취하고 교류하며 서로 관계를 맺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을 담아내다 ● 심효선 작가가 그려낸 풍경은 각각 안지랑골과 대원골의 모습이다. 두 곳은 모두 한국전쟁 당시 죄 없는 이들을 향한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슬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특히 작가는 공간이 품고 있는 나무와 이끼, 바위, 곰팡이 등의 구성체를 바라보며 그들에게 지난날이 녹아 있음을 느낀다고 언급한다. 화면에 묘사된 골짜기 사이로 서늘하고 아련한 바람이 부는 듯하다. 먼발치의 오랜 구슬픔을 지금 이곳으로 길어오는 심효선의 작업은 시공을 초월하여 장소에 영원한 생명성을 부여한다. ● 이재호 작가는 산행에서 따온 이미지를 재배치하여 작가 고유의 캐릭터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 이처럼 상상력에 의해 재구축된 현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대상들에 독특한 서사와 심미성을 부여한다. 작가의 세계관은 그 자체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현실과 상상·균형과 불균형·아름다움과 기이함의 대립적 구도 사이에서 미묘한 조화를 탐구하려는 의도를 담아 그 매력을 배가시킨다. ● 해외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며 외로움을 마주해야만 했던 최수영 작가는 자연 속을 거닐며 위로를 받아왔다고 말한다. 그가 경험한 자연은 캔버스로 옮겨지면서부터 단순한 모방의 대상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기억과 상상의 색을 입고 탈바꿈한 풍경은 요동치고 불안정하면서도 포근하고 서정적이다. 작품에는 종종 작가의 자의식이 작은 배의 형상으로 부유하기도 하는데, 이런 광경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인 이 시대의 모든 자아에 미묘(美妙)한 공감과 위안을 건넨다. ● 채온 작가가 캔버스에 담아낸 장면들은 얼핏 무엇을 지시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삶 속에서 느끼는 찰나의 감정과 감각이 본디 추상적인 것임을 생각한다면, 언어와 이미지 같은 틀조차도 우리의 심상을 완벽히 묘사하진 못함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솔직하다. 그것을 체계와 논리 따위로 치장하길 거부하고 오히려 즉자적으로 표현하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 모호하고도 솔직한 인상에서 확실히 포착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분출되기를 갈망하는 자연스럽고도 강렬한 에너지일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배우다 ● '팔공(八公)'이라는 명칭에는 여러 어원이 전해진다. 그중 유력한 것은 고려의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패배할 당시, 그를 보필하며 희생한 여덟 장군을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는 설이다. 김승현 작가는 이 지명의 유래에 영감을 얻어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존립하게 만든 여덟 명의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상은 그가 산행 중 촬영한 자연의 모습을 비추며 해외 현대 미술가를 소개한다. 기록물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담담한 전개에 대해 작가는 풍경과 자막의 내용이 어우러지며 일어날 모종의 작용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역사성을 지닌 과거에 자신을 대입하고 반추하는 행위는 인간이 세상을 슬기롭게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 이우수 작가는 인간과 자연을 격리하는 자연보호구역의 구조물과 가이드라인을 보며 그 관계성에 대해 고찰하였다고 말한다. 유형의 백색과 무형의 흑색이 자아내는 완연한 대조는 점차 희미하게 변해간다. 이들은 곧 암전되며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분리하기를 반복한다. 은유는 뚜렷해 보이기도 하나 주체와 객체를 둘 중 어디에 대입하는가에 따라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항대립의 관계와 융화 그리고 순환이라는 구성은, 우리에게 그것을 다각도에서 바라볼 여지를 남기며 작가의 고심에 동참하도록 초대한다.
자연에서 되돌아보다 ● 우리가 몸담은 물리적 공간은 배태열 작가의 손에서 축소된다. 그는 자그마한 큐브(cube)를 최소단위로 설정하고 이를 쌓아 올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곧 대구광역시라는 장소를 재현해냈다. 집체의 근원에 대해 되짚어 보고자 하는 환원적 관점은 세상을 구성하는 작은 지점과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려는 작가의 의중을 내비친다. 아울러 작가가 제작한 큐브 조각들은 전시장 곳곳에 확대되어 배치돼 작은 휴식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관객의 접근을 불허하는 미술품의 권위를 탈피하고 먼저 그에 다가감으로써, 분열된 예술과 개인이 저마다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데 지녀야 할 어떤 태도를 시사한다. ● 석정민 작가에게 빛은 가공물로 익숙하다. 현대인이라면 으레 그렇듯, 그의 삶이 자연의 광채보다 전자기기의 화면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파장에 더욱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입각해 작가는 일상 곳곳에서 발견된 인공적인 빛의 편린, 특히 파손된 디지털 매체의 그것을 수집하여 작품으로 승화한다. 한때 인간의 생활양식이 태양과 같은 하나의 초월적 기준 아래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석정민의 작품은 동시대의 특성을 상징하는 직설적인 메타포로 더욱 크게 작용한다. ● 신준민 작가가 산을 오르내리며 보았던 불빛은 산 위의 전망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과 운동장의 스포트라이트로 전시장에 자리매김한다. 하나는 발걸음이 닿기 힘든 위치에 자리 잡아 먼발치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외로운 빛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도심 속의 밀집된 광원을 근경에서 포착한 모습이다. 대조되는 두 불빛에 담긴 은유를 추적하는 일은 흥미롭다. 그러나 그 차이에 집중하기 앞서 둘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밝히고 있다. 어쩌면 신준민이 켠 불빛은 '다름'을 부정으로 간주하는 우리의 어둑한 시야에, 그 너머를 보도록 길을 비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뻗어 나가는 생각 ● 홍지혜 작가는 인간의 인식이 쉽사리 미치지 못하는 추상적 지점을 지적한다. 때로 어떠한 생각들은 신체적 편의, 지켜야 할 규범 등 자율과 타율에 의해 구체화되지 못하고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삶의 과정 속에서 선택 혹은 완성되지 못하고 탈락해버린 관념(idea)에 대해 작가는 인식과 재인식을 거듭하며 그것을 똑바로 마주하길 서슴지 않는다. 그가 선사하는 검정(black)의 공간은 미완의 개념이 사장된 사각지대인 동시에, 이를 맞대하는 검정(檢定)의 장소로서 작가가 관객에게 제시하는 물음표이다. ● '기억'은 시간의 흐름 속에 점차 떠내려가는 대상이다. 안성환 작가는 이렇듯 잊혀가는 기억 그 자체를 가시화하고 현화(現化)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자신이 겪은 과거의 특정 장면이나 이미지를 재현하지 않는다. 작품에서 기억은 개인의 주관성이 배제된 채 잊힌다는 속성과 흐릿함에 의거하여 그저 하얗게 포개어질 뿐이다. 이 객관성은 때로 무색건조함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이를 받아들이고 체화할 권리를 오롯이 보는 이에게 맡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 이세준 작가는 이 세상을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를 캔버스에 온전히 투사한다. 특히 그는 삼라만상의 특정한 단편에 치중하기보다 전체를 관망하고 이를 왜곡 없이 표현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의도는 점과 선과 면, 색과 명암, 평면과 입체 등 미술을 구성하는 모든 조형 요소가 혼재된 화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때로는 그 방식이 축소된 세계를 담고 있는 틀을 변형하기에 이르기도, 추상과 구상의 보편적 구분을 이리저리 횡단하기도 한다. 이토록 와류(渦流) 하는 풍경으로부터 작가가 내던진 제언은 끊임없이 진동하며 관객에게 새로운 시야를 선사한다. ● 백지훈 작가는 '그린다'는 행위를 통하여 세상의 일부 혹은 그 파편을 수집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대지와 물, 돌과 나무 같은 실재적 대상에서부터 추함과 아름다움, 질서와 규범 등의 추상적 관념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경계와 구분은 그림으로써 융해되었다가 이윽고 하나의 덩어리로 탈바꿈한다. 이제 그것은 예리한 파편이기보다 생명을 닮은 것처럼 꿈틀거리면서 무작위적이다. 우리가 현존하는 세계는 이렇게 백지훈의 손 끝에서 하나의 정수로 환원된다. ■ 이용학
Vol.20230811f | HYPER IMPRESSIONISM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