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3_0810_목요일_04:00pm
이번 전시는 성남문화재단 '2023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사업'으로 진행된 전시입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운중화랑 WOONJOONG GALLERY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 137번길 14-3 Tel. +82.(0)31.703.2155 www.woonjoonggallery.kr @woonjoong_enjoyart
이번 전시는 작업구상 단계부터 제작과정 중에 발생한 여러 고민들이 고스란히 결과물로 구현되었다.
비우고 다시 채우기 ● 첫 개인전을 치룬지 16년이 지났다. 틀을 깨고 담론을 형성하며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를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비슷비슷한 전시를 보면서 권태로움을 느껴왔다. 이쯤 되면 나도 내 작업도 세탁소든 정비소든 리셋 할 수 있는 어디든 들어가 모두 다 비워내고 다시 새롭게 채우는 것이 필요했다. 총량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비워야 할 것이 재료나 형태의 물질이건 형식이나 생각과 같은 비물질이건 뭐든 비워야만 그 자리에 다시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번 전시의 제목을'비우고 채우기'로 정했다. 어쩌면 이번 전시엔 빛 작업이 안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모두 비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반만 비워본다. ● 일차적으로 형광물질을 혼합하여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특별히 제작된'자외선 로고라이트'를 이용해 일정 형태의 이미지글라스 필름을 투영했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 평면작업에 개입하며 예상치 못한 색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작품의 가치와 예술노동에 관하여 ● 그저 비어 있는 공간에 무엇이든 채워 넣기로 한다. 때로는 채우는 과정만으로도 뜻밖의 아름다움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재단해 온 현무암 벽돌의 수많은 구멍들을 금으로 메워 넣었다. 놀라운 자연의 완성품이 다시금 금전적 가치에 아름다움을 더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금값은 장기적으로 오르기만 할 테니 자연스럽게 작품가격도 천천히 오르겠지...
'무엇을 그릴 것인가? 왜 그리는가?'의 근원적인 질문과 더불어 갤러리에서의 전시라 판매와 금전적 가치에 대한 고민도 동반되었다. 작가가 이 세상에 못 그릴 것이 있을까? 초등학교 때는 부루마블 게임도 그렸고, 유학시절에는 화투도 그렸다. 이번엔 단순히 돈을 그려보았다. 막상 시도해보니 지폐는 모사로 그려내기에 그리 호락호락한 대상은 아니었다. 지금 당신의 지갑에서 아무 지폐나 꺼내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대부분 일상에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대략의 형태로만 사물을 인식함으로, 이 작품을 멀리서 보았을 때 관객들이 조우하게 될 리얼리티는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일 것이다.
작업의 과정은 이렇다. 그리는 행위를 하루 노동으로 간주하여 8시간 동안 오만원권 지폐 앞면(심사임당이 그려진 한쪽 면) 한 장을 그대로 모사해 보았다. 그리고 일당을 이십만원으로 올려 오만원권 지폐 4장도 그려서 비교해보기도 했다. 결과는 신사임당은 어디가시고 다른 분들이... 다시는 그리고 싶지 않다. 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행위, 다음 날 또 그려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몹시 괴로웠다. 이와 비슷하게 국자에 납을 녹여 십 원짜리 동전도 8시간 조각해 보았다. 예술가가 하루 8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제작한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와 실재하는 화폐의 금전적 가치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작품을 제작하지 않고 구매하다 ● 전시구상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신선한 조명 상품을 발견했다. 온라인에서 검증받은 아이디어 제품들은 품질과 디자인 그리고 상품성면에서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싶었고, 그렇다면 작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제품들은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처럼 단순하게 시작한 상품 검색은 ○상품성을 끌어내는 디자인 ○최신 기술을 접목한 발 빠른 상품화 ○제품 모방행위 ○가격 책정 기준 ○품질 기준 ○유통구조의 이해 ○예산과 환경을 고려한 합리적 소비 ○구매 제품의 실재적 가치 ○문화와 유행 ○예술적 의미 ○상업미술시장과의 비교 ○현대미술의 과학기술 접목 등 의식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사고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이러한 구매활동 행위 자체가 전시속의 전시의 형태로 구현 가능해 보여 구매한 레디메이드를 그대로 전시하는'구매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사고와 감각의 연결 -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결과물 ● '구매 작업'과 '빛으로 채우기'작업 과정에서 단편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 몇 개는 자연스런 연결지점이 있으리라는 예술적 감각만을 믿고 실험적으로 구현해 보았다. ■ 허수빈
Vol.20230810d | 허수빈展 / HEOSUBIN / 許琇斌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