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이민재(아팅 매니저)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아팅 arting gallery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길 13 2층 @arting.gallery.seoul
임충재는 작업(미술)과 현실사회를,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오가며 작업했다. 작가 개인으로 자리잡는 것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미술계에서 동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1980년 다무 그룹은 '보이는 것과 있는 것'을 슬로건으로 걸고 사물 혹은 재료에 대한 탐구, 전시 현장의 공간성, 개념 혹은 행위로서의 작업, 일회적 우연적 요소의 포괄 등 당시 주류 미술계와 다른 실험적 돌파구를 추구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행위자로서 한국 미술계의 폭을 확장하는 흐름에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답했다. 겨울 대성리전, 바깥미술전 또한 그 연장선이다. 임충재에게 개인전은 시급한 과제가 아니었다. 70년대 후반부터 작가로서 활동하고 작업하고 발표했던 그에게 2019년의 첫 개인전은 어떤 의미였을까? 흐름 속에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이어지는 한 개인의 고유성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임충재는 2019년 첫 개인전 『사람 문(나무화랑)』에서 야외 설치 작업과 병행하던 평면 작업을 발표했다. 야외 설치 작업이 전시 현장의 재료나 일상의 재료(철판, 함석판, 철조망, 투명테이프 등)를 적절히 배치하여 생태주의나 자연과 문명의 공존을 말했다면, 2019년 개인전 발표작은 작은 신문 모티브 조각(사람이자 문 형상)을 손으로 자르고, 이 모티브들을 판화지 위에 흩뿌린 후 먹물 스프레이를 분사하여 얻어진 먹색의 이미지이다. 이미지들은 모티브의 배치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같기도 하고, 마을같기도 하며, 모티브들이 놓이지 않은 빈 여백이 커질 때에는 우주를 담은 풍경이 되기도 했다. 이 작업은 때로 작품을 감싸는 흰 여백이 화면 중앙으로 밀고 들어와 화면을 둘로 나누면서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쪽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있음과 없음, 우연과 필연, 의도와 비의도를 가로지르며 주위의 빛과 색을 삼키는 먹물의 흐름 속에서 모티브들이 발화하는 작업이었다.
임충재의 이번 신작은 기존의 평면 작업이 판화지에서 골판지로 두께를 얻고, 이어 2차원 평면에서 3차원으로 돌출하며 입체로서 관람자에게 상상력을 더한다. 한동안 평면에 머물렀던 작업이 골판지라는 새로운 재료의 힘을 얻어서 공간으로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온라인 택배 시대의 필수 재료인 박스 골판지 위로 뉴스를 전하던 낡은 신문지가 뿌려지고, 그렇게 새겨진 사람들과 문, 마을과 하늘은 2차원 평면에서 서서히 공간으로 영역을 넓히며 관람객을 향해 다가선다.
전영희는 거리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은 후, 이를 수채로 종이나 나무 위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배낭을 매고 어딘가로 가는 사람. 전영희는 "저는 인간을 그린다기 보다는 사람을 그려요"라고 말한다. 그에게 '인간'이 좀 더 분석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라면, '사람'은 우리가 만나는 피와 살을 가진 아프고, 기쁘고, 울고, 웃고, 나이들고 죽어가는 사람이자, 하루하루 애쓰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작가는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주장보다는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풍기는 삶의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 전영희의 수채화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옷주름, 접어신은 신발, 가방끈,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이다. 혹은 어느 순간의 움직임이 고정된 느낌. 삶이 수많은 흐름들로 정신없이 넘어갈 때 놓치고 지나가는 순간 중 하나, 그 하나의 장면에도 담겨있는 삶의 느낌을 담는다. 발의 표정, 어깨의 표정, 손의 표정. 가방의 표정, 그리고 그 순간 우리를 감싸는 공기와 빛의 표정을 담는다. 세세하게 만져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순간의 분위기를 담은 촉각적인 수채화이자 후각적인 수채화이다. 저녁 어스름의 냄새, 버스 정류장을 감도는 어색함,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기대, 모두 바쁘게 움직이지만 어딘가 비어있는 시간, 잠시 멈춰선 시간을 담은 그림이다.
길을 가면 길이 보인다. 막막한 곳일지라도 한 발 내딛으면 그 다음 발이 놓일 자리가 보인다. 전영희의 그림은 그처럼 자기 작업의 길을 내딛고 있다.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큰 옷을 부러 입을 생각이 없는 작가는 그저 그리면서 길을 내고 있다. 주로 사람을 그리던 작가에게 이번 전시에서는 두 가지의 새로운 변화가 느껴진다. 배경이 섬세해지고 다채로워지고 있다. 사람에 집중되었던 화면은 사람을 둘러싼 배경으로 확장되면서 공간의 분위기와 세계의 소리가 더해지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나무와 숲의 등장이다. 작가에게 나무와 숲은 그림보다 높은 경지로 인식되는 주제이다. "풍경이나 자연은 그대로 보고 있는게 낫지요." 나무나 숲은 그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너무나 존재감이 큰 화면이었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는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나무를 작업으로 끌어안으며 나무의 말을 전하고자 했다. 나무가 지나온 시간, 나무에 쌓인 바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자 했다. 나무판 위에 그 결을 살리면서 수채를 그리고자 목공풀, 본드, 한지 사용 등 다양한 탐색을 했다. 쓰임을 다한 나무 위에 작가의 수채를 얹은 작업 중에는 그저 나무 자체인지 채색이 올라간 것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그런 작가에게도 그려보고 싶은 나무가 있다. 겨울 나무이다. 잎을 떨군 겨울 숲의 나무들이 작가에게 건넨 말이 이번 신작에 담겨 있다. ● 두 작가는 미대 입학한 20대 초반에 친구로 만나서 삶과 생각을 나눴던 50년 지기이다. 둘의 교차점에는 「겨울 대성리전」, 「바깥미술전」, 그리고 교사의 삶이 있다. 두 사람의 작업 스타일은 사뭇 달라서 한데 묶이기 어려운 느낌이지만, 막걸리를 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분명 친구다. 작가로서 교사로서 긴 인생을 서로 응원하며 걸어왔다. 이 전시도 초로에 접어든 두 친구의 작업에 서로가 손을 내밀어 격려하는 전시다. 삶의 자취를 쓰다듬는 낮은 손길,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의 발자국. 현실의 삶과 괴리된 작업에 맞서 작가로서, 교사로서 저항했던 두 사람이 '그래도 이어지는 삶, 그래도 이어지는 예술'을 풀어나간 흔적이다. ■ 이민재
Vol.20230808e | 낮은 발자국-임충재_전영희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