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3_0803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성남아트센터 갤러리808 Seongnam Art Center Gallery 808 경기도 성남 분당구 성남대로 808 3전시실 Tel. +82.(0)31.783.8000 www.snart.or.kr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인 것 같다. 어딘지 낯설고 어색한 느낌,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 안에서 튀어오르는 결락된 부위들, 들여다볼수록 조금씩 균열이 가는 미세한 상처들과 여러 봉합으로 인해 드러나 버린 틈들의 풍경이 정작 작가가 사진에 담고자 했던 대상 이라고 본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알기 어려운 진정한 식물의 얼굴/타자의 얼굴이다. 그것은 사실상 '표상될 수 없는 자극'이다. 작가는 저 식물의 얼굴에서 상처를 받았고 그것은 자신에게 사유를 촉발시키는 기호가 되어 다가왔을 것이다. 따라서 그 기호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지금의 작업으로 풀려나오고 있다고 본다. ● 카페를 장식하고 있는 여러 수종들과 다육종화분들은 여러 욕망에 의해 한 자리에 모인 존재들이다. 그 개체들은 각기 하나의 종으로서의 개별성을, 자신의 자태와 색상을 매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두서없이 한자리에 공존하는 순간 본래 그 식물의 생태조건과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의 법칙, 계절과 기후, 시간과 토양 등은 완전히 무화된 체 박제처럼 서 있거나 화분에 박혀있을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렸던 대지에 대한 깊숙한 기억이 소거된 상태에서 마네킹처럼 직립하고 있거나 더욱 화려하고 매력적인 볼거리에 대한 가혹한 욕망에 의해 변형된 낯선 몸으로 끌려 나와 있다. 최지영이 촬영한 대상이 바로 그러한 식물의 초상이다. 플랜테리어로 조성된 대형 카페는 인공의 정원, 비닐하우스이자 언제나 영원한 봄의 장소인 낙원이고 동시에 기이한 자연의 모방으로서 현대인들이 여러 욕망이 중층적으로 포개진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작가는 바로 그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이국의 식물들과 다육식물의 정체를, 그 안에서 다소 기이하게 공존하고 있거나 교잡종 개발에 의해 변형된 몸을 간직하게 된 그들의 생애와 몸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하고 있다. ■ 박영택
플랜테리어를 이루는 실내식물의 낯선 얼굴 ● 최지영의 사진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카페나 식당의 내부에 자리한 식물을 담아낸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단독의 화분을 정면에서 포착해 마치 인물의 초상처럼 촬영한 것이다. 가능한 대상 자체로 응집되는 시선과 그것 자체를 차분하게 응시하는 힘들이 적막하게 절여져 있다. 별다른 드라마 없이 주어진 대상/장면으로 최대한 집중시키는 편이다. 흑백과 컬러사진이 함께 하고 있는데 동일한 대상을 촬영한 두 개의 다르면서도 같은 사진은 색채의 차이 안에서 세계를 상이한 감각의 편차로 길어올리고 있다. 흑백사진이 섬세하고 낮은 톤으로 조율된 그림자에 유사하게 가라앉아 대상에 밀착되어 있다면 컬러사진은 선명하고 화려한 색채 감각으로 보다 즉물적이고도 생생하게, 식물의 표면을 촉지적으로 안겨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회화적인 구성과 색채에 대한 감각이 돋보이는데 그 사진들은 그것 자체로,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풍요로운 편이다. ● 서울 근교에 자리한 이 대형 카페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다양한 식물들로 장식된 공간들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플랜테리어, 그러니까 실내공간에서 재배할 수 있는 식물을 활용하여 생태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인테리어로 이루어진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내부를 사진에 담았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과 이국의 식물들이 한 공간에 들어와 공존하는 카페는 순간 화원이나 식물원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카페 공간에 자연이 밀고 들어와 있거나 인공의 공간 안으로 자연의 일부가 자연스레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자연은 실재 자연이 라기보다는 다분히 관리되고 가축화된 그런 자연에 해당한다. 이른바 유사자연 내지 모조화 된 자연에 가깝다. 작가는 그 카페 안을 채우고 있는, 서로 다른 기후 조건과 토양 속에서 자라는 것들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며 서식하고 있으며 야생식물이 재배의 영역으로 길들여진 체 들어와 있고 외래 유입종과 교잡종 개발 등이 마구 엉켜 있는 상황에 각별히 주목하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과거 어느 때 보다 길어지면서 자연과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플랜테리어로 조성된 카페나 식당 혹은 사무실이나 다양한 실내공간은 매우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식물이 인간의 삶의 공간 안으로 들어온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정원이나 화단, 화분 등이 그런 예에 해당하는 것이고 나아가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사람들은 가로수나 인공의 조경, 꽃무늬 벽지나 옷, 그리고 자연 이미지를 동반한 다양한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등을 통해 자연을 도시 환경 안으로, 일상의 공간 내부로 적극 수렴시키고자 다양한 시도를 감행해왔다. 가정용 식물, 즉 실내식물은 약 4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한다. 이 실내식물이 다양화는 원예 기술의 진화로 인해 가능한 것인데 새로운 식물분자생물학 기술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녹색식물을 돌보는 일은 마치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심신안정에 도움이 되며 이국적인 공간에 와있는 듯한 체험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플랜테리어로 꾸며진 대형 카페 공간은 마치 실제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체험을 보다 고양시키는 한편 낯선 시공간에 들어온 기이한 환영을 안겨주기도 하고 장소성을 무화시키고 토착종과 이국의 수종이 불현듯 조우하게 하는 풍경을 만들고 그로인해 동서양의 미의식의 충돌 등도 겪게 만든다. 작가는 화려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어진 이 인공의 자연, 인위적인 정원 카페의 내부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의도를 명확히 알기 어려운 다소 모호한 이 사진은 마치 식물도감의 사진들처럼 차갑게 다양한 식물의 형태와 색상 등 구조적인 부분들을 섬세하게 훑어나간다. 그러나 그 속에 앞서 언급한 여러 내용들을 은밀하게 탑재하고 있다.
사실 정원을 가꾸고 돌보는 일, 그러니까 가드닝(gardening) 자체는 이미 예술행위가 아닐 수 없다. 입체작업 내지 자연미술, 설치미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이미 기존의 여러 자연미술의 사례들이나 설치미술에서 가드닝이나 플랜테리어와 유사한 작업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발견한 카페들은 이미 자연미술 내지 식물을 이용한 설치미술로 구현된 특정한 장소에 해당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 플랜테리아 카페는 비교적 저렴한 값에 얻을 수 있는 이국적이고 진귀한 식물, 시장의 취향 변화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움을 지닌 식물들이 상업적인 목적에서 우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국적인 식물들과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다육식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호주의 바오밥나무나 한반도 남쪽 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경기도 북부 지역의 카페에서(온실 속에서) 보호되고 있는 식이다. 자연친화적 생활공간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이 카페 공간은 인간의 욕구와 바람에 알맞게 경작되거나 개선된 자연의 모방에 해당한다. 동시에 물리적으로 습도 조절과 공기정화의 효과와 마음, 몸, 그리고 정신을 위한 모든 종류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곳으로 선전된다. 아늑하고 편안한 건축구조와 함께 우리와 다른 생명체에 둘러싸여 있는 색다른 공간을 조성하면서 인간과 식물의 공생관계를 도모하는 이 울타리, 온실과도 같은 카페는(실제 온실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다른 한편으로는 어딘지 언캐니한 곳이기도 하다. ●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인 것 같다. 어딘지 낯설고 어색한 느낌,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 안에서 튀어오르는 결락된 부위들, 들여다볼수록 조금씩 균열이 가는 미세한 상처들과 여러 봉합으로 인해 드러나 버린 틈들의 풍경이 정작 작가가 사진에 담고자 했던 대상 이라고 본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알기 어려운 진정한 식물의 얼굴/타자의 얼굴이다. 그것은 사실상 '표상될 수 없는 자극'이다. 작가는 저 식물의 얼굴에서 상처를 받았고 그것은 자신에게 사유를 촉발시키는 기호가 되어 다가왔을 것이다. 따라서 그 기호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지금의 작업으로 풀려나오고 있다고 본다. 카페를 장식하고 있는 여러 수종들과 다육종화분들은 여러 욕망에 의해 한 자리에 모인 존재들이다. 그 개체들은 각기 하나의 종으로서의 개별성을, 자신의 자태와 색상을 매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두서없이 한자리에 공존하는 순간 본래 그 식물의 생태조건과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의 법칙, 계절과 기후, 시간과 토양 등은 완전히 무화된 체 박제처럼 서 있거나 화분에 박혀있을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렸던 대지에 대한 깊숙한 기억이 소거된 상태에서 마네킹처럼 직립하고 있거나 더욱 화려하고 매력적인 볼거리에 대한 가혹한 욕망에 의해 변형된 낯선 몸으로 끌려 나와 있다. 최지영이 촬영한 대상이 바로 그러한 식물의 초상이다. 플랜테리어로 조성된 대형 카페는 인공의 정원, 비닐하우스이자 언제나 영원한 봄의 장소인 낙원이고 동시에 기이한 자연의 모방으로서 현대인들이 여러 욕망이 중층적으로 포개진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작가는 바로 그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이국의 식물들과 다육식물의 정체를, 그 안에서 다소 기이하게 공존하고 있거나 교잡종 개발에 의해 변형된 몸을 간직하게 된 그들의 생애와 몸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하고 있다. ■ 박영택
PLANTERIOR ● 요즘 우리 주변의 카페에 가보면 푸른 식물들로 인테리어를 해 놓은 곳이 많다. 식물원 카페임을 정면에 내세운 곳들도 있지만 그 외 정원, 온실 등의 다른 이름으로 식물이 인테리어의 주된 대상이 되는 카페가 무척 많다. 식물들은 카페의 테마에 따라 달리 꾸며지는데 한반도의 따뜻한 남부의 겨울에 주로 자라는 동백꽃이 남한의 북부에 옮겨지기도 하고, 제주도에 있는 야자수가 수도권 지역 카페의 중심 식물로 자리 잡기도 하였다. 호주의 바오밥 나무가 경기로, 서양 수종인 사이프러스가 카페 입구에 줄지어 서 있다. 카페 공간은 정체성이 무화(無化)되고, 제한된 공간의 조경 자연에 동양과 서양의 미의식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도시인들은 차 한 잔 값으로 대한민국의 중부에서 남부로, 제주로, 심지어 뉴욕으로, 호주로 순간이동을 하게 된다. 그들은 카페를 통해 현재 속해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가고 싶고 꿈꿔왔던 공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됨으로써 순간적이나마 헤테로토피아를 경험하게 된다. 조경산수(造景山水)작업을 통해 현대인의 자연관을 탐구해왔는데 카페의 플랜테리어 또한 그중 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업에서는 정체성이 무화(無化)된 장소성과 혼재된 동서양의 미의식에 대해 표현해 보았다. ■ 최지영
Planterior ● Nowadays, there are many cafes decorated with a variety of green plants. There are some cafes claiming that they are botanical garden cafes, and there are many cafes with names such as garden and greenhouse in which plants are the main focus of their interior design. Plants are used differently depending on the themes of those cafes. ● Camellia which grows in the warm southern climate of the Korean peninsula can now be found in the north. Likewise, palm plants once only found on Jeju Island, have found their way to cafes in metropolitan areas. Baobabs from Australia are often found in Gyeonggi-do whereas cypress, one of the Western evergreen conifers, can be seen lined up at the entrances of cafés. This phenomenon signifies the blending of identities within café spaces, where Eastern and Western aesthetic sensibilities intersect, erasing or blurring distinct boundaries. ● For the cost of a cup of coffee, urban dwellers can be teleported to the southern areas of Korea, Jeju Island, and even New York and Australia. Even if just momentarily, individuals can encounter a sense of heterotopia within the café environment. By fully engaging with the ambiance of a space they've envisioned—one markedly distinct from their present reality—they can experience a different world. ● I have been exploring contemporary people's views of nature through my landscaping work. I regard my planterior cafés one of its genres. In this work, I tried to encapsulate the amalgamation of Eastern and Western aesthetic perceptions within a certain setting, where the distinct identity of that place becomes nullified. ■ Choi Jeeyeong
Vol.20230807c | 최지영展 / CHOIJEEYEONG / 崔芝榮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