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스페이스 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소 SPACE SO 서울 마포구 동교로17길 37 (서교동 458-18번지) Tel. +82.(0)2.322.0064 www.spaceso.kr @space__so
선 LINE: 이미지와 텍스트 ● 마치 펜으로 종이 위에 쓱쓱 그려 나가듯 벽과 기둥, 바닥과 모서리, 창과 계단 등 공간 이곳저곳에 검은 선으로 이미지를 그리고 드러내는 강선미의 작업은 '라인 드로잉', '공간 드로잉'으로 일컬어진다. 검정이라는 단일 색과 선이라는 기본 도형으로 구성되는 그의 작품들은 단순하면서도 단단하게 공간을 장악하여 보는 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끄는데 좀 더 다가가 작품의 제목을 확인하고 나면 한 번 더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종이 쇼핑백을 줄지어 겹쳐 세운 이미지의 작품 『너가방에들어가다』(2021)는 설치된 작품의 이미지를 봐서는 '너, 가방에 들어가다'로 읽어야 할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가 방에 들어가다'도 가능하다.
또 다른 작품 「Universal Space Bus」(2014)은 전시실 입구의 큰 문을 활용하여 설치한 누가 봐도 우리가 늘 사용하는 USB 단자 이미지의 작품이다. 'Serial'을 'Space'로 살짝 바꾸어 놓은 이 작품의 제목 속 'Space'는 작품이 설치된 전시 공간으로 이해할 수도 우리가 사용하는 USB를 통해 기기들 간의 연결이 어찌 보면 새로운 공간 간의 연결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USB의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 모르고 일상적으로 사용해 온 우리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검은 선들로 이루어진 이미지들은 형식적인 면에서는 매우 분명하고 간결하며, 주제들은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작가의 평소 고민과 생각을 복잡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결과물로 제목의 텍스트들과 연결되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의 단초를 제공한다. 한편으로는 말장난 같고, 한편으로는 우리와 세상을 꼬집고 비판하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의 이미지와 제목의 텍스트 사이를 오가며 수수께끼를 풀 듯 작품을 감상하게 한다.
구체적인 대상을 화면 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추상회화를 앞에 두고 서면 난감하다. 그림을 보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색색의 붓자국들이 가득한 비슷비슷해 보이는 화면들 사이에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어떻게 판단하고 찾아야 하는지, 운 좋게 왠지 모르게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났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본인도 궁금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들. 김겨울의 작품도 그런 추상회화이다. 보통의 추상회화들이 그러하듯 그의 작품들도 처음에는 화면을 지배하는 색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색들은 색 면이 아닌 색 선들이다. 점-선-면으로의 축적, 선을 겹치고 쌓아 그 경계를 덮고 지워 판판한 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란히 세우고 겹쳐 두되 가리지 않아 드러나는 선들을 발견한 것에서 김겨울의 작품보기를 시작해본다. 그의 그림에는 여러 모양의 선들이 등장한다. 짧고 굵은 선, 가늘고 긴 선, 빠르게 지나가는 선, 느리게 흐르는 선, 머뭇거림이 드러나는 선, 직선과 곡선, 수직선과 수평선 등이다. 춤을 추듯 나르는 가벼운 선들이 밝은 연두색을 배경으로 하는 「Hi, Hello, Dear…」(2022)의 색들은 한 가지 색으로 단단한 벽 또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줄 한 줄 같은 듯 다른 색의 선들로 존재하며 자신 보다 먼저 존재했던, 자신의 뒤로 물러서 있는 선들을 흔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그의 선은 화면 속에 그려진 이미지이지만 무엇인가로 명명되는 것의 윤곽선으로 존재하지 않고, 선 그 자체로 드러나며 먼저 그려진 색 선의 이미지들을 완전히 덮고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했던 또는 사라지는 흔적을 남겨두는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이렇게 등장하는 그의 선들은 어딘지 모르게 문자와 닮아 있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여 편지지에 남은 자국처럼 또는 급하게 흘려 쓴 짧은 문장처럼 보이기도하여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슨 철자인지 알 것만 같다. 이러한 추측의 근거를 작품의 제목에서 찾을 수 있는데, 「To Whom it May Concern」(2020), 「Send Message」(2021), 「So I wrote a letter」(2022), 「Loving my broken language」(2022), 「Handwriting practice」(2022)와 같은 작품들이 그러하며 「A Walk with P and B」(2021)에는 알파벳 P와 B 가 등장하기도 한다.
사라질 수 없는 선 GOOD: 강선미와 김겨울 그리고 작품들 ● 검은 선이 그리는 단순화된 이미지와 패턴들 그리고 그것의 내용이 되는 텍스트를 작품과 작품의 제목으로 다루는 강선미와 화면 가득 그림이 되는 선과 글씨를 닮은 선들이 넘실대는 추상적 이미지들에 상상 가능한 문장들로 제목을 엮는 김겨울이 함께하는 2인전의 기획은 '선'이라는 형식의 간결한 기본 요소에서 출발하되 이미지로도 텍스트로도 변신을 자유롭게 조형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텍스트에서 공간을 찾아내기에 능한 설치와 회화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작업을 하는 작가가 한 공간에서 새로운 선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아름다운 가능성에 기인한다.
2인전의 기획은 두 작가가 만드는 풍경이 하나로 보여서도 두 개의 개인전으로 보여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니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기획전 보다, 오롯이 한 작가에 집중해야 하는 개인전 보다 까다로울 수 있다. 전시 제안 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2인전의 공간을 상상하고 자신의 작업을 완성시켜가는 일이 두 작가에게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으리라 생각하며 그 과정이 '사라질 수 없는 선'들로 펼쳐진 전시를 많은 이들이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에 강선미는 '공간 드로잉' 설치 작품과 '거울회화' 시리즈를, 김겨울은 회화와 드로잉을 함께 선보인다. 관객의 전시 관람은 출입문에 미러 시트지로 설치된 강선미의 작품 「양면 both side」을 통해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자신과 등 뒤의 풍경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하여, 김겨울의 회화를 등 뒤에 둔 자신을 마주하며 끝이 난다. 선-이미지-텍스트라는 전시의 키워드에서 강선미는 공간에 펼쳐 놓을 '라인 드로잉'과 텍스트가 새겨진 '거울 회화' 연작을 통해 관객이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전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행하는 스스로를 만나는 경험을 의도한다. 영어 단어 'fragment'를 그 의미처럼 해체하여 파편화하고 그 조각들을 재조합하고 반복하여 이미지로 만든 대형 설치 작품 「머뭇거리는 능력 the capabilities of hesitation」은 끊임없이 우리의 눈과 손 안의 기기에 제공되는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읽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만둔 우리들에게 잠시 멈추고 시간을 주는 것, 세상의 시간과 속도가 아닌 자신의 시간과 속도를 찾느라 머뭇거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김겨울은 이번 전시의 세 키워드 중 '텍스트 Te×t'에서 어떤 문장이나 단어 혹은 글의 내용을 떠올리기 보다는 텍스트들 자체의 비주얼, 즉 생김새에 대해 생각하고 작업의 시작점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다양한 서체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어 'cursive writing 필기체'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는데, 알파벳에서 다른 알파벳으로 넘어가면서 만들어지는 길고 짧은 직선과 곡선들, 서체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모양과 각도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강도와 속도 그리고 리듬을 가진다는 점은 그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전에 비해 좀 더 크고 빠른 운동성을 가지는 선-이미지들로 화면에 등장한다. 대형 캔버스 화면의 좌우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선들과 그 위로 떨어져 내리는 선의 덩어리들로 인해 마치 화면 속의 푸르고 흰 색의 선들이 달리고 있는 듯한 작품의 제목은 「Run!」이다. 'Run'이 아닌 'Run!'은 텍스트에서도 움직임의 감각이 느껴지는데 펜을 떼지 않고 글자를 이어 쓰는 필기체를 뜻하는 'cursive'의 어원이 '달리기 run'이라는 것은 이 작품을 한번 더 바라보게 하는 이유가 된다.
전시장의 바닥에 설치된 강선미의 라인 드로잉 「엔드 and」는 둘이 함께 하는 실뜨기의 첫 단계에서 가져온 이미지이다. 혼자가 아닌 둘이서 가능한 이 놀이처럼 『사라질 수 없는 선이 남는다』를 위해 그 동안 두 작가가 서로 주고받으며 나눈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글 제목 '엔드'는 end를 연상하게 하지만 이는 곧 영문 제목 'and'로 이어지며 끝이 끝이 아니고 다음을 기대한다는, 실뜨기의 한 단계가 끝나고 다음 사람이 다음 단계로 받아내며 이어간다는 의미를 가진다. 바닥의 강선미의 선을 따라 걷다 보면 김겨울의 선도 만나고, 김겨울의 이미지와 강선미의 거울 속 텍스트도 만난다. 선으로부터의 이미지와 텍스트가 되는 선은 이렇게 서로 닿고 만나 사라질 수 없는 선이 된다.
사라질 수 없는 ( )이 남는다 ● "모든 사물이 사라지고 자아가 사라진 뒤에는 사라질 수 없는 것이 남는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이번 전시 제목 『사라질 수 없는 선이 남는다』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저서 『존재에서 존재자로』의 위 문장에서 참고하였다. 기획전이긴 하지만 2인전이기에 전시 진행 과정에서도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전시의 제목 또한 기획자의 일방적 결정보다는 작가들의 제안을 열어 두었다. 본 제목은 강선미의 제안에서 출발하였는데 이는 평소 본인의 작업과 관심의 영역 안에서 읽기와 생각하기를 거듭하고 있는 레비나스의 문장들 중 하나였다.
'사라질 수 없는 것이 남는다' 너무나 알겠으면서도 읽을수록 어렵기도 한 문장이었다. 뭔지 모를 호기심을 자아내는 문장이 제목으로 적절하다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 주저되었다. 이는 조금 부끄럽지만,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그의 책 『존재에서 존재자로』의 존재를 몰랐기에 따라오는 주저함이었다. 평소 철학자나 사상가의 글, 문장, 용어 등을 글에 인용하고 전시에 가져다 쓰는 것에 매우 신중한 편이라 제대로 알고 있다해도 주저했을 것을 무지한 상황이니 더욱 그러했다. 며칠 동안 이 문장 하나를 두고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는데 문득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공간에서 전시는 매번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스페이스 소는 그렇게 늘 전시라는, 작품이라는 존재들과 함께 하다 그들을 떠나보내고 난 '존재 없음'을 마주했고 그렇게 마주한 '존재 없음'은 '무'가 아니고 '사라졌지만 사라질 수 없는 것'들로 남아 스페이스 소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갤러리의 이전을 준비하고 있는 스페이스 소의 이번 전시는 스페이스 소의 출발점이었던 현재 이 자리에서의 마지막 전시이다. 스페이스 소는 이 전시와 함께 이 공간에서 '존재 없음'을 드러내며 곧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사라지지만 동시에 사라질 수 없는 것으로 남아 또 다른 존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문장이야 말로 이 물리적 건물, 공간이라는 곳에 존재 없음이 되면서 사라질 수 없는 것이 되는 작품-작가-전시-갤러리라는 마지막 존재자들을 위한 적절한 제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좀 더 나아가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사라질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까지 더해졌다. 전시장에는 아름다운 선들이 있고, 그 선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이 선들이 사라지기 전에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사라질 수 없는 선으로 만들어 가시길, 스페이스 소가 곧 전할 새로운 소식을 기다려 주시길, 그리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반갑게 만날 사라질 수 없는 기대를 남긴다. ■ 송희정
Vol.20230804g | 사라질 수 없는 선이 남는다-강선미_김겨울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