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A Stitch – A great sweat

최익규展 / CHOIIKGYU / 崔翼圭 / painting.installation   2023_0719 ▶ 2023_0807

최익규_어떤흔적2_광목천에 바느질후 채색_180×12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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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0719_수요일_04:00pm

후원 / 충청북도_(재)충북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충북갤러리 CHUNGBUK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인사아트센터 2층 Tel.070.4224.6240~1 www.cbartgallery.com

'참 예술'을 향한 최익규의 자유로운 여행 ● 최익규 작가는 대학 시절 조각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중등학교 미술교사로 30년 정도를 지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교사로서의 삶 보다 조금은 독특한 작가로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최익규 작가는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김수현, 김영원 교수에게 조각을 배웠기 때문에 비교적 전통적 방법의 조각 기법을 습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미술계가 인정하듯이 조각가 김수현 교수와 김영원 교수는 모두가 전통 조각의 대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가 최익규는 스승들과 전혀 다른 유형의 작가라고 생각된다. ● 벌써 모더니즘 회화가 해체된 지도 백 년이 넘었다. 뒤샹(Marcel Duchamp)이라는 한 작가에 의해 1914년 제시된 첫 번째 '레디메이드'는 대량 생산된 「병 걸이」작품이다. 그것은 분명히 대량 생산된 '병'을 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복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는 회화도 조각도 시(詩)도 음악도 아닌 것은 예술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엄격한 시대였다. 그런 의미에서의 모더니즘은 개별 예술 내에서 가능한 '특정한 예술'(specific art)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뒤샹이 성취한 것은 그러한 매체 간의 특수성의 벽을 허문 '총체적인 예술'(generic art)로서의 예술이라는 것이 티에리 드 뒤브(Tierry de Duve)의 해석이다. 결국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통해서 예술작품을 억압적 패러다임에서 탈출하고 변형시킨 것이다.

최익규_아버진 위대한 예술가1_광목천에 바느질후 채색_180×120cm_2023
최익규_아버진 위대한 예술가2_광목천에 바느질후 채색_200×140cm_2023
최익규_아버진 위대한 예술가4_광목천에 바느질후 채색_180×120cm_2023

근대 조각과 달리 현대 조각은 현대예술의 정신으로 성립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현대예술의 미학 이론의 분석은 작가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도르노의 현대예술의 미학이론의 중심을 관통하는 기본정신에는 '불협화', '탈 아우라', '탈 심미화', '추(醜)', '비유기성' 따위의 특성을 볼 수 있다. ● 이렇듯 일찍이 현대예술의 미학의 카테고리는 삶의 흐름이 무수하게 많은 단위들로 잘게 쪼개어져, 다시 말해 시계와 스톱위치로 측정되는 곳에서는 미학의 카테고리는 '불협화'가 된다. 그래서 오늘날 진정한 예술은 '불협화의 예술이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현대예술의 진리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상정해 볼 때, 첫째, 불협화의 예술은 자신의 '암담한' 성질에 힘입어 그 이름 말마따나 사회를 특징화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유일한 예술이다. 이렇듯 불협화의 예술은 사회의 생생한 표식(標識)이 된다. 둘째, 제도화된 사회에 대한 비타협성이자 사회적 삶이라는 공공제분소에 들어가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협화의 예술은 이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위장된 사회 뒤에 도사리는 수난과 갈등과 같은 심부(深部)를 겨냥한다.

최익규_어떤흔적4_광목천에 바느질후 채색_200×120cm_2023

티에리 드 뒤브와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을 전제로 제시하면서 최익규의 작품의 특징과 그의 작품관을 몇 가지 유형으로 해석하고 언급하고자 한다. ● 최익규는 작가로서 작품에 임하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저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면서 고통과 행복감에 늘 젖어 있는 부친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농촌 풍경의 외관을 표현하기보다 부친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것이 진정한 예술이고 여기서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이 작품에 실천된 몇 가지 사례를 밝히고자 한다.

최익규_자화상1_광목천에 바느질후 채색_180×120cm_2023
최익규_즉흥3_광목천에 실, 채색_100×80cm_2023

「작품 사례 1」 "Travel", Installation, Tent(transparency), Toy, Led lights(in the tent), 이 작품은, 필자가 2015년 제 56회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Jump into the Unkown" 전시회에 한국 커미셔너로, 최익규 작가를 선정 참가하게 되면서 전시되었던 작품이다. 여기서 최익규 작가는 전시장 'Palazzo Loredan dell'Ambasciatore'의 야외 전시장에 '원두막'을 설치하고 원두막의 재료로 사용했던 투명 비닐 텐트 위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낙서해 놓고 텐트 안에는 다양한 토이들을 설치하고 붉은 전등을 켜놓았다. 그리고 "Travel"이라고 명제를 붙였다. 최익규 작가는 원두막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생각하면서 부친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과거를 동시에 회상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 「작품 사례 2」 "HA HA HA…", 밀가루 위에 글씨, Installation, Quartair Residency Gallery, 헤이그, 2016. 이 작품 "하 하 하 시리즈"는 현대미술을 보는 최익규의 미술계에 대한 실망, 정치적 현실과 사회적 현실을 허탈하게 웃으며 실망스러ᆢ운 현실을 웃음으로 대칭하고 있는 익살스러운 작품이라 하겠다.

최익규_아버지 전상서3 Letters to parents3_천에 바느질, 패널_210×140cm_2017~9

「작품 사례 3」 "아버지 전상서", Letters to parents, 판넬 위에 천에 바느질, 2017~. 이 작품 시리즈는 2017년부터 연작 시리즈로 해오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사례 1」과 마찬가지로 농사지면서 고생하며 살아오신 부친을 회상하며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바느질하면서 한 짬, 한 땀이 아버지께서 농사지면서 한 땀, 한 땀 고생하신 모습을 화폭 위에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가 "아이처럼 되고 싶다." 했듯이 최익규 작가도 화면 구성을 자유스럽게 뒤죽박죽 바느질하며 표현한 것이다. ● 「작품 사례 4」 "뒤샹과 그리고 나", 레디메이드 변기 속에 흙, Installation,, 2023. 이 작품은 2023년 신작이다. 기성품 남성 변기 하나에 내재되어 있는 메타포를 제시하여 일약 세계 최고의 작가로 우뚝 서게 된 뒤샹을 다시 해석하면서 최익규 만의 독특한 메타포를 제시하고 있다. 뒤샹은 '남성용 변기'에 여성의 엉덩이가 연상되는 메타포를 제시하고 있는데 비해, 최익규 작가는 뒤샹의 변기에 흙을 가득 채워 넣어 백 년 전의 뒤샹의 생각과 최익규가 전혀 다른 작가로 해석하게 하는 차이를 느끼게 한다. 참으로 재미있는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최익규_아버지 전상서4 Letters to parents4_천에 바느질, 패널_210×140cm_2017~9

모더니즘 미술이 현전성이 절대 공간의 철저한 시간적 직접성의 구현을 통해 '무한'(endless)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사물자체로서의 미술' 즉 오브제 아트와 인간 사이에 놓여 있던 억압적 종속적 관계가 풀림으로써 미술이 개방성으로 전환되는 경험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는 인간의 근원적 삶에서 유리되어 있는 철학적 사유를 배제하고 '담론'(discourse)을 통하여 '참'의 세계에 이르고자 하였다. 미술의 양식이 완벽한 형태를 만들어내던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적 양식에서 신고전주의를 거치고 19세기의 인상파에 이르면서 견고하던 외형, 외관의 모습이 해체되기 시작함을 보게 된다. 그러나 피카소의 입체파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미술의 바이블 같았던 원근법도 명암도 형태의 해체와 더불어 모든 원칙이 해체되어졌다. 선각자들에 의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느새 아르도느의 현대 미학 이론처럼 억압되고 종속된 관계가 풀림으로써 현대미술은 그리스 미술과 입체파를 비롯한 추상미술과 비교할 때 확연히 다른 미술로 존재한다. 최익규 작가가 생각하는 자율적 예술이란, 기교를 부리고 욕심을 부린 조형적 작품이 아니라 '완전히' 기존 예술과 맞서는 성향을 갖고 있음을 말한다.

최익규_아버지 전상서5 Letters to parents5_천에 바느질, 패널_210×140cm_2017~9

현대예술은 현실을 재현하는데 있어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발상을 껴안는 대신 모방적이고 사실적인 접근을 불허한다. 이렇게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은 예술과 관련되는 어떤 것도 이제 더 이상 자명하지 않는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 이렇게 볼 수 있듯이 최익규 작가는 텐트 원두막에 낙서를 하고, 밀가루 위에 비웃는 웃음을 드로잉하고, 판넬 위 천에 바느질하고, 변기에 흙을 메우고 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기존 가치관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려는 참 예술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 김재관

* Reference : 김재관, 현대미술 Dialogue, 쉐마아트북, 존. A. 워커, 정진국 역, 대중 매체 시대의 예술, 열화당, 현대미술의 쟁점, 서성록, 도서출판 재원.

미술이 아니라서 미술이다 ● 새로움을 찾고자 애쓰는 것은 모든 창작자들의 기본적인 욕망일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소위 예술이라는 관습 안에서 새로움을 기대하기란 근본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계란을 깨듯 그 공간에서 탈출해야만 그 정체와 속성을 깨닫게 되고 '그것들을 지우개로 지워버려야 텅 빈 하얀 공간이 생기고 비로소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 아름답게 일궈놓은 논과 밭을 본다. 그야말로 대지예술, 자연예술, 개념예술이다. 그 논, 밭을 가꾸는데 진심이신 늙으신 나의 부모님이 그려진다. 그분들은 예술이 뭔지, 미학이 무언지 예술철학이 무엇인지 모르며 관심도 없다. 계절이 오면 자연의 일부가 되신 듯 밭으로 논으로 나아가 호미질 한땀 한땀 고통을 인내하며 땀을 흘리신다. 소위 미술을 모르기에 그래서 그 과정과 생각과 결과가 진심으로 완벽한 예술작품이 된 것이 아닐까? ● 삶에 진심인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알량한 예술적이라는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어머니가 보여주시던 바느질을 서툴지만 긴 시간 반복작업으로 해왔었다. 긴 시간 의미없는 반복적 바느질로 지루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엔 밭에서 고통을 이기시며 땀을 흘리시는 아버지의 호미질을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행위의 반복과 시간 죽이기~ 무의미를 향한 미련한 성실함으로 가끔은 나의 인내의 성취감을 가지기로 했다. ● 이것은 예술일까? 아닐까? 긴 시간의 작업과정 안에 수많은 '왜?'라는 질문과 생각과 별것 아닌 일상의 이야기들이 바느질 한땀 한땀에 스며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어서 미술이 된 것이다. 나름 생각한다. ■ 최익규

Vol.20230719f | 최익규展 / CHOIIKGYU / 崔翼圭 / paint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