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3_0726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일해_류성하_이원희_이정웅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8월15일 휴관
수성아트피아 SUSEONG ARTPIA 대구 수성구 무학로 180 Tel. +82.(0)53.668.1840 www.ssartpia.kr @ssartpia_official
표현과 재현의 메타포(Metaphor) ● 현대미술에서 '표현'과 '재현'은 회화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용어이다. 20세기 미술에 있어 이미지의 새로운 인식과 표현은 수많은 논란과 실험으로 이어졌고, 이를 극복하며 회화의 대표적 형식과 내용을 담는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작가들의 끊임없는 연구대상이자 주제였던 유·무형의 이미지를 어떠한 형식을 빌려 표출하느냐에 관한 탐구는 아마도 현대미술의 진화과정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온 논쟁이기도 하다. ● 이미지의 재현(Representation)은 그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제이자, 현실을 인식하고 새로이 제시하는 사회 문제의 체제 전반에 관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여러 이론가에 의해 핵심적으로 정의됐으며, 그 관점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전통적인 관점에서 이미지의 외형적 묘사이며, 내면적 감성의 시각화이다. 한편 인간은 누구나 표현의 욕구를 가지는 게 당연한 본능이다. 시각상 표현이건, 유희적인 표현, 내적 심상의 표현이건, 이들 표현은 내적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그래서 표현주의자들은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이고 회화의 색채, 선, 형태 등은 그것의 표현 가능성만을 위해 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 개념인 아름다움과 구도의 균형은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시되었고,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기 위하여 왜곡은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표현(Expression)은 작가 개인의 자아에 주관적 표현을 추구하는 '감정 표출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오히려 사물이나 사건에 의해 야기되는 주관적인 감정과 반응의 표출이 되었다.
수성아트피아 기획 『표현과 재현의 메타포(Metaphor)』에 참여한 4인은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들이다. 1930년대 대구화단을 대표했던 구상회화의 전통성을 승계하며 1980~90년대 대구화단을 주도했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지역을 발판으로 서울화단과 적극적인 교류를 이어갔으며 국내 주요 화랑을 중심으로 인기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구상적 재현회화에서 벗어나 일찍이 독창적 화풍을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표현양식을 전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인 모두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과 기획·초대전 등 일관된 작품 활동을 통해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며 창작에만 매진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열정적인 도전의식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 김일해, 류성하, 이원희, 이정웅의 회화는 순수한 자연 이미지를 이용한 풍부한 감성의 표출이며, 내면의 진지한 성찰에서 얻어지는 조형미의 표상이다. 이들 모두는 구상회화가 갖는 재현적 요소를 극복하고 대상의 외적인 형상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각적 능력과 내적인 감성을 통한 회화적 특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는 추상적 표현에 대한 반작용이라기보다는 재현적 요소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며 미술이 추구하는 시각적 본질을 갖추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3회 연속 특선(1983~85)과 198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 화단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김일해(b.1954)는 특유의 서정적 감성과 감각적인 색채로 구상회화의 새로운 어법을 개척해 나갔다. 초기 작품은 밝고 경쾌하면서 주로 매혹적인 색감을 주조로 차분한 색감의 풍경화를 즐겨 그렸다. 그리고 회화적 특징은 강렬한 색의 율동으로 화면을 압도하는 빛과 색채의 하모니가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연의 형태와 고유의 색채를 화면에 재현하기보다는 풍부한 감성과 경험에서 체득한 작가 특유의 색채와 형상을 자유롭게 표출해 낸다는 점이다. 아름답고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꽃 그림은 중성 색조의 배경에 원색의 매혹적인 색채가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전해 준다. 이에 반해 류성하(b.1958)의 인물화는 대상이 갖는 절대적 가치와 감성을 극사실적 재현기법으로 묘사해 내고 있다. 정형적으로 패턴화된 배경처리에서 벗어난 그의 작업 태도는 시각적 환영의 몰입이 주는 사실적 묘사능력을 극대화하고 고전적인 시각과 재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열정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던 1980년대는 추상미술에 있어서 미니멀아트 경향이 다소 퇴조하고 일종의 신표현주의적 경향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였다. 세계에서 유례를 쉽게 찾기 힘든 '민중미술'의 개념이 새로운 유파를 만들어 내었다. 류성하 역시 이러한 화풍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인물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본질과 관계에 주목하는 휴머니즘적 감성을 표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과 색채로 한국 구상회화의 계보를 이어가는 이원희(b.1956)는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이 풍만한 풍경화와 초상화를 통해 회화의 본질을 탐닉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어디에서 한 번쯤은 봤음 직한 자연의 고즈넉한 풍경을 작가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표현한 그의 작품에는 재현을 통한 시각적 묘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미의식이 투영된 이미지를 구현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양미술사를 훑어보아도, 소재를 한정적으로 다룬 화가는 없는 것 같다. 화가는 무언가를 그려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라고 작가론을 피력했듯이 그의 조형의식은 충실한 재현이 주는 시각적 감동과 즐거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얀 한지 위에 먹을 듬뿍 머금은 붓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이정웅((b.1963)의 재현능력은 이미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 추상과 구상이 한곳에 어우러진 그의 작품 경향은 한국적 정서가 짙게 밴 감성적 이미지에 카메라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직접 맨발로 한지 위에 올라서서 커다란 붓을 들고 망설임 없이 화면을 채워 나간다. 집중의 순간과 순간의 흔적이 먹의 번짐으로 표출되어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담아내고 있다. "대상은 붓이지만 먹 번짐이 주제이며, 추상을 시도한 것이다."라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그의 작품에는 표현과 재현의 회화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실험적 요소가 깊게 베여있다.
근대회화의 대표작가인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이 주장했던 재현이라는 것은 사물 자체의 모방일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심상의 모방, 즉 지성이나 감성에 의한 재현을 의미한다고 본다. "나는 자연을 재현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의 외관 즉 사물의 객관적인 실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라는 말처럼 그는 자연을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화폭에 담으려 했다. 자연에서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시각과 엄격한 회화의 형태 속에서 창의적인 조형성을 구축해 내었으며, 특히 입체파와 추상파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세잔의 회화가 갖는 의미는 작가의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적 요소와 사실적 묘사를 넘어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작가정신이 깊이 내재 되어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은 '표현'과 '재현'이 갖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새로운 미의식을 충족시키는 시각예술로 진화와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대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험적인 태도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나가고자 하는 현대미술의 은유적 상징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특히 이번 『표현과 재현의 메타포(Metaphor)』에 참여한 작가들은 1970~80년대의 거대담론의 강한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조형 어법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며 활동을 이어왔다고 본다. 한국 구상회화의 변화와 확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이들의 예술가적 정체성은 결코 가볍게 다루어지거나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김태곤
Vol.20230716b | 표현과 재현의 메타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