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주최 / 아트노이드 178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예술경영지원센터_예비전속작가제지원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노이드 178 ARTNOID 178 서울 성북구 삼선교로6길 8-5 B1 Tel. +82.(0)2.742.6135 www.artnoid178.com www.facebook.com/artnoid178 @artnoid178
무더운 여름 오픈하는 『OUR : story after little ice age』展은 소빙하기 시기에 살아남은 북크로아티아의 단풍나무에 대한 에피소드로부터 출발했다.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는 2023년 여름에 소빙하기라는 말은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고작 300년 전 이야기다. *아직 학계에서 완벽히 정착된 말은 아니지만, 소빙하기는 평균기온이 2-3도 떨어지는 등 추운 날씨가 지속되었던 1645년부터 1750년까지의 기온저하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고온만큼 저온도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고통스럽다. 당시 모든 생명체는 절멸의 위기 앞에서 기근과 추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기약없는 생존투쟁을 해야 했다. 물론 추위에 버틸 수 있게 도구를 사용하거나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생명체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그렇지는 못했다. 특히 식물은 땅에 뿌리박고 있기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 조건을 그냥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환경의 변화에 속수무책이다. 그것이 극한의 위험 상황일지라도, 또 이미 예견된 위기라 할지라도 방법이 없다. 누군가 식물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그 모든 페이지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일 것이다. 소빙하기 시기 단풍나무도 마찬가지였다. 추위로부터 최대한 온기를 유지하고 얼어붙지 않도록 최대한 웅축된 상태로 연명했다. 잎도 틔울 수 없었고 열매도 맺을 수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추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거의 생장도 멈추고 버텼다. 수십년 동안 조금도 자라지 못하고 촘촘하게 밀도를 높인 당시의 나이테가 그 증거다. 17세기 고통스러웠던 죽음의 불안을 버텨낸 북크로아티아의 단풍나무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바이올린 때문이었다. 더없이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낸 그 악기는 생존의 찬란한 흔적이다. 이번 전시 『OUR : story after little ice age』는 소빙하기라는 특정한 시기 이후에 살아남은 식물들의 현재를, 그들과 함께하는 우리를 조망한다. 북크로아티아 단풍나무처럼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지못했다 해도, 이름 모를 풀로 우리에게 무용한 식물일지라도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의 승리자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작디작은 씨앗에서 새싹을 틔우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6인의 작가들은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이기심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식물들을 둘러싼 우리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송지인 작가는 소빙하기의 힘든 자연조건 속에서도 잘 견뎌내고 살아남았던 식물이었으나, 우리의 무분별한 개발과 소비생활로 멸종위기종이라는 선고를 받은 식물들에 주목한다. 이름도 낯선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 털복주머니란, 나도풍란. 이것이 그들을 부르던 이름이다. 우리는 더이상 이 이름들을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작가는 이 식물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그들을 의인화한다. 사라져버린 친구들. 그들은 외로움에 상심하고 마음 아파한다. 힘들게 만난 친구들과 더이상 살 수 없는 이 땅에서 아름다운 꽃을 가슴 가득 안고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작가는 "이들이 기억 속에, 아니 전설 속에 남아 전해지는 숲속의 요정으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권지현 작가의 작품 「인류세를 삽니다」는 인류가 지구 환경을 급격히 변화시켜온 1950년대 이후의 특정 기간(인류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절기마다 식물들의 변화에 맞추어 생활하고 그 열매들로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과 달리 우리는 절기를 잊고 산다. 자연의 순리와 멀어진 이후, 우리가 마주한 것은 신세계가 아니라 황폐화된 자연이다. 작가는 "지구와 우리는 한 몸이다. 관계맺으며 공존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 되었을까"라고 되묻는다. 권지현 작가는 수많은 사건사고가 기록된 신문을 접어 상자를 만든다. 그것들을 켜켜이 쌓아 올려 시간의 기둥을 세운다. 그리고 그 위에 이미지들을 투영한다. 어쩔 수 없다며 지구의 아픔에 쉬이 눈감고, 이기적으로 누리기만 했던 찬란한 자연이 빛난다. 이것이 과거의 아름다운 장면으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색색의 꽃잎과 잎사귀들이 자신들의 순환의 역사를 꿋꿋이 이어가는 모습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산불로 모든게 사라지고 황폐화된 척박한 땅에 제일 먼저 돌아와 대지를 되살리는 쑥의 힘에 주목해 보자고 권한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도 낙심하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기를. 인류세의 후반부에 우리가 남길 지질에는 더 이상 플라스틱이나 오염으로 멸종될 생물의 화석이 아닌, 지구와의 공생의 흔적들이 남길 바란다.
최은숙 작가는 집단, 계층의 견고한 외연을 대변하는 사물과 공간을 회화로 다룬다. 작가가 묻고자 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사물이나 공간이 갖는 의미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는 일상 속의 식물과의 관계에 주목했다. 작가는 우리의 생활 공간 안으로 들어와 있는 식물들이 어떻게 연출되고 장식되는지, 그렇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가공된 식물의 모습을 수집했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본인의 수집하려던 의도와 달리 가공된 것은 식물이 아님을 발견했다. 우리가 끊임없이 소비하고 과시하며 자신의 사회적 관계의 망 속에서 펼쳐내는 것은 '어떤 종류의 사물인 식물'이 아니라, "식물에게 부여된 가치"였다. 작가는 저채도의 색감으로 표현되는 풍경 속에서 "불안과 불편한 화면을 유도하면서 식물에게 투영된 사회적, 계층적 의미의 멍에"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김형주 작가는 절멸의 순간에도 살아남은 식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묻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피폭된 땅에 더 이상 사람은 살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을 떠나지 못한 수많은 생명들이 남아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땅에서 하나 둘씩 생존신고가 들린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기괴한 열매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채소였고, 과일이었다. 낯설게 변형되어버린 외형에 우린 한껏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런데 인간들은 더 기괴하게도 이 순간에도 그것이 무해한지, 유해한지에만 관심이 있다. 작가는 "생태계의 변화에 대한 우려보다는 오로지 우리의 안위만 생각하는 이기심"에 주목한다. 이제 우리는 방사능이라는 절망적인 환경오염 속에서도 굳세게 살아남아 스스로 진화하며 생존한 이 '자연의 생존자'들과 살아가야 한다. 자연의 생존자 16종의 이미지 앞에서, 지금까지 무용하다고 인간 본위로 판단하고, 그것의 필요 유무를 자본이란 잣대로, 인간의 편리라는 잣대로 대했던 우리의 태도가 옳은 것인지, 최선이었는지 작가는 되묻길 바란다. "정말 오로지 인간에게 무해한 것이라면 다 괜찮은가?"
설수안 작가는 토종 씨앗을 경작하는 농부들 사이에서 어떻게 씨앗이 이어져 내려오는지 그 역사를 추적한다. 토종 씨앗은 대물림되거나 어르신 농부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다. 일부 지역에서 씨앗을 부르는 이름이자, 여러 씨앗을 보유한 어르신 농부를 일컫는 말인 씨갑시라는 제목의 영상작업에서 작가는 그들의 고된 농사일 속에서 소중하게 이어지는 작은 씨앗에 주목한다. 파릇파릇하게 올라온 상추에겐 세봉상추라는 이름이 있다. 그 세봉상추를 틔운 씨앗. 그 씨앗의 생명력, 작가는 "씨앗의 피부, 심줄을 통해 그들이 품고 있는 생명을 인지했던 씨갑시 농부의 눈"이 되어보길 바란다. 우리 신체 크기만큼 확대된 씨앗의 모습은 영롱하고 아름답다. 작디 작은 씨앗을 노년의 농부는 마디가 굵어져버린 손가락으로 티끌들을 털어내고 소중하게 하나하나 모은다. 신문지 종이에 고이 모아 보관한 그 소중한 씨앗은 또 이 계절이 지나가면 그들의 손에 의해 땅에 심어질 것이다. "생명 순환의 기억은 실험실이나 책 속이 아니라 농부의 몸과 작물이 접하는 어딘가에 있다."
민경영 작가에게 식물은 사랑을 전해주는 존재다. 엄마는 아파도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연에서 싱싱한 채소들을 구해 밥을 지어 먹인다. 아이들이 튼튼히 자랄 수 있도록 행복하게 자란 채소들을 기쁘게 먹이고 싶어한다. 지구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작가는 지구가 아파도 견디는 모습을 떠올린다. 지구는 아무리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어도 오늘도 싹을 틔우고 스스로 식물들을 키워낸다.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다듬고 요리하며 고마운 채소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지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행복한 채소와 행복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오늘도 견디어 보자고.
흰 설산 위에 흩뿌려진 씨앗들이 틔운 줄기는 작가들이 마신 커피 잔 위로 어느새 기어올라와 벌써 꽃봉우리를 올렸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아프게 느끼고, 고민하고, 또 그 가운데 희망을 찾아가는 작가들과 함께한 커피컵에는 그들이 묻고 또 되물었던 물음들이 가득 담겨있다. 소빙하기라는 그 춥고 힘든 시기를 자신의 생명력으로 버티어 살아남은 북크로아티아의 단풍나무가 모두를 감동시키는 바이올린으로 남아 기억되듯, 모두 다 타버린 벌거숭이 산에 홀연히 찾아와 싹을 틔우는 쑥, 피폭된 땅에서도 살아남은 채소들, 잘 자란 정원의 나무들, 농부의 손에서 자라난 파, 들깨, 상추는 6명의 작가들-송지인, 권지현, 최은숙, 김형주, 설수안, 민경영-의 시간 속에서 또 하나의 우리의 이야기로 이렇게 전해진다. ■ 박겸숙
Vol.20230716a | OUR : story after little ice ag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