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면 피는 꽃 Flowers bloom when I sing

한승욱展 / HANSEUNGWOOK / 韓勝旭 / painting.drawing   2023_0714 ▶ 2023_0723 / 18일 휴관

한승욱_새벽 숲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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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욱 인스타그램_@teaseungwook

초대일시 / 2023_0715_토요일_07:30pm

후원,기획 / 어쩌다보니

관람시간 / 01:00pm~07:00pm / 18일 휴관

다다프로젝트 dada project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17-13 2층 Tel. +82.(0)507.1329.7061 blog.naver.com/soom_soop @dada.project_

한승욱 작가와 "노래하면 피는 꽃" 전시 - 내 멋대로 읽기-조금은 어쭙잖은 오독 - 1. 한승욱을 나는 왜 한승우라고 부르고 싶지? 나는 한승욱 작가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전시기획안을 들고 온 날 들러리로 그리고 김병주 작가의 오프닝에서 만난 두 번이 전부다. 그런데 왜 나는 그를 승우라고 부르고 싶을까?

한승욱_봄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3

처음 가벼운 웃음을 띠고 나타났을 때의 느낌, 기획안을 설명할 때 목소리, 웃을 때의 옥타브도 미에서 파, 솔 사이에 있었다. 긴 머리를 보면 랩이나 헤비메탈이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발라드나 클래식이 어울릴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의 작품 채색도 원색보다는 파스텔 톤에 더 가까워 미. 파. 솔 사이의 화음으로 들린다. 그런 탓인지 승욱의 "욱"은 뭔가 닫힌 느낌, 분절된 느낌인 데 반해 "우"는 여운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승우"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부드러운 또는 착한 청년, 그렇다고 그가 약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성찰로 감정을 잘 통제하는 면에서는 부드러운 강함이라고 할까? 그의 그림도 나는 그렇게 읽혔다. 그는 이제 서른이라는 연대기 아홉 페이지 중 첫 페이지 반 조금을 쓰고 있다. 지금 서른의 첫 개인전을 연다.

한승욱_인내와 희망_캔버스에 유채_72.7×60.cm_2023

2. "노래하며"가 아니라 왜? "노래하면" 피는 꽃이지. "노래하면"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피는 꽃, 노래는 대부분 즐거운 감정이 고양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열정과 무엇 하나도 만만치 않다는 현실과의 틈 사이에 있다. 꿈, 희망과 열정이라는 양념 통속에 좌절, 방황, 무기력 등의 불순물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한승욱_출근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3

서른이 된 작가의 삶을 노래할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매달리는 일」처럼 붙잡고 있는 것을 놓치면 거칠게 출렁이는 파도에 휩쓸려 갈 수도 있다는 공포, 지하철 선로가 끊긴 "출근길"의 고립, 어디선가 꾀꼬리 소리는 들리는데 「못 찾겠다 꾀꼬리」 같은 좌절, 「붉은 밭 나무」처럼 척박한 현실에 구원의 손길은 아직 닿지 않는 막막함 등일 것이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노래하며 「봄비」를 맞으며 성장하고 「별 부르는 사람」처럼 어둠 속에 반짝이는 미래의 희망에 부풀고,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라든지 「보랏빛 펜션」의 새들처럼 사랑하고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한승욱_못 찾겠다 꾀꼬리_캔버스에 유채_45.5×33.4cm_2023

작품 속에 작가는 자기 모습으로 때로는 나무나 꽃, 동물, 사물로 등장하고 비정형의 원이나 네모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알에서 나오려는 투쟁, 새가 되기 위해 깨트려야 할 단단한 껍질이 연상된다. 깨고 날아가려는 신의 이름은 아프라삭스가 아니라 아티스트인 것 같다. 그러나 작품 속에 작가가 알을 깨트리기 위한 치열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허기진 분노와 객기보다는 스스로 성찰과 자신 내면의 관조를 통해 응축된 에너지로 발화하려는 작가의 성정이 드러나 있는 듯하다. 이제 막 서른 살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작품 속에서 말을 건넨다.

한승욱_붉은 밭 나무_캔버스에 유채_41×53cm_2022

3. 그건 알겠고 그래서 어쩌라고요? 비평가도 예술가도 아니라서 대신 샤를 보를레르의 시의 일부를 인용한다. "취하라.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하라." 취한다는 것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에 자신을 완전히 던지는 일이다. 취하면 취取할 수 있다. 작가 한승욱에게 나는 그냥 "잘해"라고만 지나가듯 말할 것이다. "이왕 하려면 제대로 잘해가" 아니라. 그냥 잘 해라고 해도 그렇게 할 테니까 말이다. ■ 최영식

한승욱_폭포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22

결핍은 표현을, 표현은 성찰을 이끌며 햇수로 15년 붓을 들고 있다. 『노래하면 피는 꽃』은 30대 진입 후 첫, 갤러리 공간에서 첫, 직장생활과 창작생활을 병행하며 여는 첫 개인전이다. 삶과 그림은 한 길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선보이려 노력했다. 때에 따라 삶의 화두를 심상으로써 표현해왔다. 개인‧내면적 창작인 만큼 공감과 보편성 획득이 주요하겠지만 근래 들어서는 예술의 본령이나 효용을 생각하기보다, 공들여 쓰는 일기를 떠올리곤 한다.

한승욱_아침이 오기 전에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16.7cm_2021

8점 신작新作과, 서울에서 발표하지 않았거나 무대를 바꿔 보이고 싶은, 주요 작作이거나 흐름상 좋을 작품들을 전시한다. 그림을 업으로 하여 산다는 것은 무척 슬프거나 호화스럽거나, 축복인 일이다. 그림이 뭐냐, 탄식하는 날도 있지만 그림은 계속 살도록 하고 나아가게 한다. 표현하면서 삶을 수용하고, 그늘 넓은 나무가 되고 싶은 꿈을 잇는다.

『하루 종일 피는 꽃』 2017, 『눈물 없이 피는 꽃』 2019, 『파도꽃』 2020, 꽃 이름 지어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은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해 먹고 창작하고 설거지하는 일상을 생각하며 '노래하면 피는 꽃'이라 지었다. 볕 부서지는 날 흥얼거리는 가요처럼, 힘 짜내려 듣는 록 음악처럼, 설움 달래는 트롯처럼, 집안일 하며 틀어놓는 클래식처럼, 어느 때보다 지상에 뿌리내리고 살며 창작하고 있다. 삶을 노래해서 피는 꽃이 있다면 어떻든 예쁠 것이다. (2023年 7月) ■ 한승욱

Vol.20230714c | 한승욱展 / HANSEUNGWOOK / 韓勝旭 / painting.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