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김명진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인 HQ GALLERY IN HQ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97 (연희동 719-10번지) Tel. +82.(0)10.9017.2016 @_innsinn_
이상한 사랑, 멀리 바라보는 길 ● "우리가 언젠가 생명에 대해서 쌓은 지식을 모두 발휘해서, 그 밑에 서면 다른 생명체가 되는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경험의 아치(Arch of Experience)'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승 기류를 타고 안데스 산맥 위로 솟는 콘도르의 즐거움을 느껴 볼 수 있다면, 우리가 가장 미워하는 적의 마음에 깃든 두려움을 느껴 볼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1) ● '경험의 아치'는 천문학자 앤 드루얀이 상상한 개념으로, '비인간 존재 되기'를 경험적으로 가능케 하는 도구를 가리킨다. 그는 모든 생명의 근원적 연관성을 이야기하면서, 생명체 간의 상호 이해를 꿈꾸며 이러한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을 본 후 첫 번째 감상은 의문이었다. 다른 존재가 '되어 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는 불충분한 어떤 상태일 텐데, 과연 누가 지금껏 인간의 관점으로만 살아올 수 있었던 뇌와 몸을 넘어설 수 있을까? 나와 조금 다른 인간도 이해하지 못하는 와중에, 진정한 의미에서 다른 생물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선 이러한 소망이 불가능하고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출발해 보기로 한다. ● 여기 모인 6명의 작가들은 비인간 존재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 관심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대상이나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마음의 결은 서로 맞닿아 있는 듯하다. 사마귀나 뱀을 기르고 싶어 하는 사람, 죽어 있는 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시공간의 격차로 인해 만날 수 없는 고생물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 나와 관계 맺은 동식물을 사랑하지만 실은 적극적인 환경운동가도 채식주의자도 아닌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대단한 사회(과학)적 실천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경한 존재들과 관계 맺고 있는 모습들이 모아졌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감정을 '이상한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나와 다른 존재를 아끼고 조심스러워하며, 동경하거나 애정하는 이런 마음은 대개 일방향 소통, 외사랑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그들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전달될 수도 없는 애정, 아마도 굉장한 오해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고 끝까지 온전한 이해에 이르지 못할 마음은 어찌 보면 쓸쓸하고 무상하기까지 하다. ● 현재로서는 나와 다른 'OO 되어 보기'를(온전한 사랑을) 가능케 하는 마법의 도구는 없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 중 그와 가장 비슷한 건 아무래도 예술인 듯하다. 각자의 예술 매체를 경유한 탐구와 표현이 여기서는 '경험의 아치'가 된다. 이를테면 OO에 관한 시를, OO과 나 사이에 놓인 박물관의 유리를, OO의 움직임을 생경하게 기록한 머이브리지의 사진을 경유하여, 이상하고 왜곡된 상태에서 그들을 보는 것이다. OO은 어떤 매체를 통해 통제되어 있는 것 같지만 온전히 내 손에 있지 않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한계에 대한 탄식과, 자신만의 보는 방법을 정교화해나가는 기쁨이 동시에 교차한다. 이건 이상한 소통 방식이다. 결코 온전한 소통이 될 수는 없지만 OO을 바라봄을 통해서 내가 확장되어간다. ●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작가들이 날개 달린 생물을 다룬다. 새들은 가장 자유로운 순간에는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다. 생기 있는 그들의 모습은 간신히 포착될 수 있을 따름이며, 그래서 움직이는 새의 도상은 우리에게 마치 미지의 전령처럼, 설명할 수 없는 시적인 이미지처럼 다가오곤 한다.
임희재는 박제된 새들, 박물관의 유리 너머로 표본화된 생물들의 모습을 캔버스 위에 옮긴다. 유리라는 막, 회화라는 틀을 거쳐 번역된 그들의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어그러져 있다. 그의 그림 앞에 서서 '이상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의 작업은 대상에 대한 폭력과 왜곡에 기반을 둔, 멈출 수 없는 순간을 멈춰두려 하는 욕망을 직시하게 한다. 포착할 수 없는 시와 같았던 그들이 마침내 포착되어 우리 앞에 있는 기이한 모습을 볼 때, 흡족하지만 안타깝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안해지는 복잡한 감정에 둘러싸이게 된다.
황예랑 또한 박물관 천장에 달린 수많은 새들의 박제를 보았던 기묘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죽어서도 나는 새'는 그의 첫 개인전 제목이었다. 그가 담담히 그려내는 세상은 섬세한 아름다움 속에 잔혹함과 모순을 간직하고 있으며, '삶'은 잠재된 죽음과 함께 순환의 춤을 추고 있다. 생명이란 날아가는 새처럼 잠시 깃들었다가 떠나가는 것일 테고, 그렇기에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시를 통하여 생명과 죽음에 접근하는 이산오에게 새는 새 자체이기도, 은유적인 대상이기도 하다. 흙으로 빚어진 새는 사람의 손길과 조우하고, 비닐 새장이라는 연약한 터 안에 잠시 머물기도 하지만, 겹쳐진 연필 선들로 유영하는 그들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범접할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한 생명의 경이로운 움직임을 보면 어떻게든 그 에너지를 곁에 두고 싶어질 때가 있다. 예술은 낯선 존재를 손에 쥘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하는 가장 비폭력적인 방법일 것이다. 새의 날갯짓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옥세영의 영상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1830-1904)의 연작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옥세영은 영화가 있기 전, 동물의 움직임을 생경한 관찰 대상으로 만들었던 머이브리지의 사진을 자신의 작업으로 끌어들인다. 먼저 그의 영상은 정지된 이미지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움직임의 단위를 보여준다. 이는 살아있는 생명의 움직임이 매체를 경유하여 번역되고 정교화되어 온 과정을 생각하게 하며, 움직임이란 그 자체로 매혹적인 대상임을 상기시킨다. 더 나아가, 머이브리지가 포착했던 날갯짓의 궤적은 같은 시공간에서 연속되어 곡면을 그리는 조각이라는 새로운 형태로도 제시된다.
한편 고현정은 날개 달린 미물을 보며 그들의 시간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본다. 벌레의 10년은 인간의 100년과도 같을 테니, 하루에 대한 그들의 감각은 우리처럼 그저 반복되는 것이 아니리라.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기 위해 마치 죽음과도 같은 상태를 지나온 후 매일은 '다시 태어나듯이' 새로우리라 상상하며, 작가는 그들의 매일에 아름다운 계절과 시간의 색을 부여한다. 이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존재들의 잠재력을 가만히 떠올리는 일은 생에 관한 우리의 감각을 바꾸어 놓곤 한다.
손희민의 작업은 기원전 6억 년경 있었던 생물들에 관한 불완전한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기에 많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야 할 이러한 작업은 사랑만큼이나 치열한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온몸이 주름으로 이루어졌으리라 추정되는 '에디아카라 동물군'에 관한 이미지 자료는 그에게서 색감과 질감을 지닌 삼차원의 조각으로 번안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절대 만날 수 없을 존재의 모습을 이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학구적인 태도와 사랑이라는 단어는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 자신의 삶과 죽음에 관한 치열한 고민이 생명의 기원에 대한 탐구의 길로 그를 이끌었으리라는 것이다. ● (거의) 모든 사랑은 그 대상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무의미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실패하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나아가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비인간 생명을 향한 사랑은 "자기 가족이 느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더 멀리 바라보는" 시야를 통해 적어도 "진정한 포유동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2) 우리와 닮은 존재들로부터 시작해 보이지 않는 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인간들을 차츰차츰 사고의 대상으로 만들어 나가야만, 비로소 나와 다른 인간 정도는 간단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김명진
* 각주 1) 앤 드루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266쪽. 2) 다와다 요코, 『눈 속의 에튀드』, 375쪽 참고. " "안의 표현은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북극곰 크누트가 그의 사육사이자 '어머니'인 인간 남성 마티어스를 존경하는 이유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Vol.20230707c | ARCH OF EXPERIENCE 경험의 아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