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Seclusion

진민욱展 / JINMINWOOK / 晉民旭 / painting   2023_0530 ▶ 2023_0624 / 일,월,공휴일 휴관

진민욱_동산 East Mountain_변형 비단캔버스에 먹, 무기안료_83×107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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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브레이크타임_12:00pm~01:00pm

필 갤러리 FILL GALLERY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길 24 (한남동 271-5번지) B1 Tel. +82.(0)2.795.0046 www.fillgallery.com @fillgallery

Little Seclusion展을 기획하며 ● 동양화의 형식적 실험에 대한 발견은 동양화의 세대를 가른다. 우리가 동양화를 지칭했을 때, 이면에서 배타적 경계 속에서 정체되어간다는 일반적 우려가 존재했던 적도 있지만, 최근 동양화가 맞이한 새로운 세대는, 좀더 유기적으로 동시대미술에 적응해가면서 한편으로 그것이 지닌 매체적 상징성과 지역성을 무기로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 Fill Gallery는 개관이래 동양화의 재발견에 힘써왔다. 한국화 작가 진민욱 역시 전통 비단 채색기법을 연구하며, 동시대적 문제를 다루는 현대미술가이다. 이러한 기여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동양화의 가능성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진민욱_동산에서 돌아올 때 One day coming back from East Mountain_ 비단에 먹, 무기안료, 백토_195×160cm_2023

진민욱 작가는 도심 산책을 하며 느낀 자연과의 교감과 깊어지는 사유를 산책하면서 도시자연의 형태를 채집한다. 작가에 따르면 채집의 기준은 교감의 순간, 문학적 표현인 '상춘_常春'이라 하며, 이때 '춘_春'의 의미는 심리적 상태에 대한 은유를 포함한다고 증언한다. 이는 인간이 조성한 도시 생태 속에서 잔존해 도시를 점유하고 있는 자연 영토의 형태에 대한 일종의 분류학적 규명처럼 보인다. 이렇게 채집되는 이미지는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의 데이터를 가지고 한 화면 속에서 생태를 이룬다. 구조적으로 그려진 화면의 깊은 층에서, 토양을 대체한 도시공간의 풍경은 그것들이 뿌리박은 지리학적 정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 작가의 도심 산책을 일종의 유람으로 여겨본다면 유람하여 그려진 화면 속 가상의 풍경은 동양화의 전통에서 빈번하게 관찰되는 형식적 특징이다. 일례로 한국화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금강산전도는, 실제의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재현한 것이 아닌, 조선시대의 대가 겸제 정선이 금강산을 거닐며, 신체적으로 체득한 감각적 이미지를 취합해 다시점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진민욱의 도심 산책은 앞서 말한 동양화의 형식적 전통을 계승한다. 따라서 작가는 도심 속 자연 공간을 와유_臥遊의 대상으로 만든다.

진민욱_유대_Bond_비단에 무기안료_24.5×20cm_2023
진민욱_유대 Bond_필 갤러리_2023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도시개발로 인해 옛모습이 사라진 외할머니댁을 산책하며 고민한 개인과 사회의 문제, 생과 사, 좋은 삶에 대한 고민을 시경_诗经의 이미지화하여 풀어낸 신작을 선보인다. "Little Seclusion"은 '작은 은거'라는 뜻으로 당 시인 백거이의 시, 삼은_三隐에서 얘기한 자연에 은거한 삶의 형태를 말한다. ● 또한 진민욱 작가는 화면의 형태를 통해 말을 건네기도 한다. 작가가 시도하는 병풍형태의 작품은 앞면과 뒷면의 환유성을 띠는데, 이것이 작가의 작품에서 전복된 풍경 이면의 자취를 드러낸다. 이 외에도 화면 상단이 능선의 형태이거나, 포스트잇을 닮은 형태를 띠는 것도 이러한 실험의 일종이다. 최근 도심 산책 중에 수집한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공간이 지닌 서사를 채집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동양의 오랜 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조소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오브제들은 기존 진민욱 작가의 형식적 서사의 연장 선상에 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서로 비선형적 네러티브의 단초가 되어 시시각각 다른 이야기를 생성한다. ● 진민욱 작가의 『Little Seclusion』展은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로 우리에게 그림을 보는 즐거움과 삶의 깊은 깨달음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름을 맞이하여 관람하시는 많은 분들이 안목을 넓히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최윤정

진민욱_그리운 마음 A longing heart_겹비단에 먹, 무기 안료_44.5×36cm_2023

찰나에 조우하는 너 - 2023년 여름으로 향하는 진민욱에게 보내는 글 ● 모든 가치는 누군가 걸음을 멈추는 새벽녘 죽음에서 피어난다. 좋음과 나쁨은 삶과 죽음을 전제로 하고 일생은 그 가치를 묻는 유한한 시간이다. 수많은 물음에서 앎(知)은 앎이 아니고 도(道)는 도가 아니다. 살아있는 시간은 살아야할 이유를 알려주지 않기에, 존재하는 모두는 자신을 모른 채 죽음에 이른다. 태초의 분리 이후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에서 삶은 흩어지는 파편에 머무는 찰나이다. ● 이야기는 우주의 조각이 엇갈리거나 마주하는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인간은 조각과 조각을 잇는 조각이다. 이야기하는 조각은 만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순행하거나 역행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모은다. 모두가 이합집산하는 세상에서 진민욱은 회화로 이야기를 전한다. 그에게 회화는 이야기를 향유하고 소유하는 방법이다. 진민욱은 공자가 편찬한 고대 문집 시경에 소개된 시 모음에서 소재 몇 가지에 착안해 동식물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긴다. 지난 미술학 학제 안에서 전통 회화 재료와 매체, 미술사와 이론을 학습해온 그가 중국 역사에 가장 오래된 시집을 살피며 회화로 옮길 이미지를 탐색하는 작업은 선대 예술인의 활동과 닮아 보이지만 작자의 자전적 문맥을 형성한다. 화훼(花卉), 영모(翎毛), 초충(草蟲) 등 화조화 계보에서 진민욱의 회화에 등장하는 소재 다수는 상징성을 지닌다. 현대사회는 전통사회의 문화적 상징 다수를 잃어버렸지만 화창한 봄날의 자연 이미지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과 번영의 기호로 여전히 작용하고, 동식물 여럿의 평화로운 관계적 이미지는 자연 본래의 질서에 순응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진민욱_조팝나무 울타리를 따라 Along the fence of Bridal-wreath_ 변형 비단캔버스에 먹, 목탄, 백토_163×116.5cm_2023

동식물 이미지 여럿이 교차하는 진민욱의 운율에서 문득 고독함이 스민다. 어질러진 공간에서 무언가가 고개를 든다. 진민욱이 '동산(東山)'이라 제목이 알려진 시에서 꾀꼬리를 차용할 때는 시화일치 사상에 따라 원본의 주제와 심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보여주는 작자 자신을 투영한다. 시 '동산'에서 꾀꼬리는 전쟁터로 떠난 약혼자 혹은 멀리서 오랫동안 떠나있던 친정을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이미지라면, 진민욱의 회화에서 꾀꼬리는 주변 인물들의 장례를 겪으며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는 관찰자이자, 외조모와 살던 옛 터의 이전 풍경과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소녀이다. 그 작은 새에 '보이는' 사물과 '보여주는' 주체의 이원성이 내재되어 있다. 단일한 기호로 모습을 드러내는 무언가는 조합되고 통일되어 있다.1) ● 진민욱이 가까운 사람과 사별한 이후 작업한 가시나무 꾀꼬리에서는 토끼 올무 셋이 '보여주는 주체'의 또 다른 사물로서 등장한다. 연약한 나뭇가지를 종이테이프로 이어 붙인 그것은 사냥을 위한 도구라기보다 옆에 쌓인 돌탑처럼 의례 혹은 놀이를 위한 어떤 것에 가까워보인다. 불완전한 준비는 죄 없는 얼굴이 잡히는 시간을 하염없이 지연한다. 그림을 보는 누군가가 이미 회화라는 큰 올무에 자신이 걸렸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흐른다. 화판을 벽과 벽 구석 혹은 허공에 좌우로 둥글게 설치하는 이전 전시에 이어 사각 화판 상단 우편 모서리에 기역자 화판 여럿을 옆으로 덧대어 설치하는 전시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병풍 이미지를 연상하여 그림 속 그림 설정과 마찬가지로 실제와 환영 사이 작자가 위치한 경계선을 드러낸다. 그림과 그림은 거울과 거울이 마주 보며 무한히 반사하는 미장아빔(mise en abyme)으로 누군가의 심연과 이어진 문을 여는 오래된 주문이다. 진민욱은 문을 열었고, 여름 신록이 흔들거리는 공간에 심연의 숨소리가 울린다.

진민욱_하나 그리고 둘 One and Two_종이에 채색_29.7×21cm_2023

오뉴월의 숨, 여름바람을 껴안은 진민욱은 전시 제목에서 자기 회화를 소은(小隱)에 비유한다.2) 그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서의 회화를 상상한다. 남들이 모르는 '그'를 마주하기 위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를 애도하기 위해 진민욱은 일종의 기도실 같은 그곳을 찾아 머무른다. 고요한 새벽녘에 열리는 공간, 꿩과 사슴, 나비와 벌, 꽃과 나무 등 다양한 생물종이 등장하는 진민욱의 회화에서 허락되는 소리는 작은 새의 지저귐만이 아니다. ● 꾀꼬리는 여름새이다. 상춘의 잠에서 깨어나는 움직임은 화면 가운데 나뭇가지에 솜털을 남기고 화폭 뒤에 날개 한쪽을 펼친다. 달마가 신발 한 짝을 남기고 서방으로 떠나듯이 작은 새는 어느새 날아오른다. 그렇게 진민욱도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우주에 움직이는 조각을 떠나 또 다른 조각 앞에 도달한다. 멈춰 선 사물과 움직이는 이미지, 그리고 연결을 위한 시간. 심연 한 가운데 작은 은신처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마침내. ■ 백필균

* 각주 1) (조르조 아감벤, 『행간』, 윤병언 역, 자음과모음, 2015, 273쪽 참조) 2) (중국 당나라 중기의 시인인 백거이(白居易)는 은일하는 삶에 대하여 유능한 인재가 세상을 피해 산림에 숨어 살면 소은(小隱), 사람이 모이는 혼잡한 곳에 담담하게 살면 중은(中隱), 관직에 있되 세상 어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여유롭게 살면 대은(大隱)이라 불렀다. 진민욱이 백거이의 삼은(三隱)에서 작은 은신처에 주목한 연유는 스스로 세속과 거리를 두며 작업으로 자기수양을 답습하는 한편, 작업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거리를 두는 평소 태도를 시사하기 위함이다.)

Vol.20230531d | 진민욱展 / JINMINWOOK / 晉民旭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