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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0531_수요일_05:00pm
2023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박사학위 청구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02:00pm~08: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민정 GALLERY MINJUNG 서울 종로구 삼청로 90-2(삼청동 63-12번지) Tel. +82.(0)2.723.4433 galleryminjung.com @galleryminjung_art
시선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존재한다. 신 중심의 시대 인간들은 신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여겼다. 신께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니 남몰래 선행을 베풀 수 없고 악행은 더욱이 숨길 수 없다. 주체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매시간 매 순간을 타인, 심지어는 인간이 아닌 것의 시선과 응시 속에 살고 있다. 전지전능한 신의 눈에서 세속적 욕망이 투영된 인간의 눈으로, 여기에 CCTV와 같은 기계의 눈까지 더해져 우리를 주시한다. 현재 우리는 미셀 푸코가 예상한 바와 같이 감시가 일상화된 이른바 '디지털 판옵티콘' 과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 감시자는 언제든 피감시자를 볼 수 있지만, 감시 당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가상과 현실이 혼재하는 오늘의 현실은 이와 같은 원형감옥의 기능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장화는 최근 몇 년간 몰두해온 '응시'라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사고와 해석을 보여준다. 눈앞의 대상을 오랫동안 열렬히 바라보는 것,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응시'라 일컫는다. 이는 인간이 특별한 학습이나 훈련 없이 얻을 수 있는 보통의 신체 행위다. 한편, 현대사회에서 '응시'라는 개념은 복잡한 정치·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욕망과 권력에 관한 문제들과 결부되며 부정적인 함의를 갖게 된다. 작가는 바라보고 바라봄의 대상이 되는 구조 속에 담긴 복잡하고 미묘한 권력관계를 이야기함과 동시, '응시'라는 행위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과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다.
신문·라디오·텔레비전이 주를 이루던 미디어 시대, 인간은 그저 일방향으로 제공되는 정보와 자극에 반응하는 수동적 수용자로 여겨져 왔다. 한편 뉴미디어 시대라 일컫는 오늘날, 특히 1인 미디어가 보편화된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매체 수용자와 생산자 사이의 엄격한 구분이 사라졌다. 이로써 모든 이들은 정보의 수용자면서, 동시에 생산자이자 제공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 작가는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나는 응시의 고착된 권력구조를 전복시키며 유연하고 열려있는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그대는 다리에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각에서 그대를 바라본다 / 밝은 달은 그대의 창을 장식하고 / 그대는 다른 사람의 꿈을 장식한다" (변지림(卞之琳)의 「단장(断章)」) ●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변지림 시인의 시구(詩句)에서와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풍경이 되고 꿈이 되는 일은 현실에서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가 주체로서 타자를 바라볼 때, 동시에 타인에게 바라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깨닫지 못한다. 장화는 응시라는 행위를 권력구조와 결부시킨 기존의 틀을 벗어나, 현시대에 걸맞은 담론의 형성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말한다. 작가는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즉 '응시'는 결코 특정인 혹은 집단에게만 허락된 특권이 아님을, 시(詩)에서 은유하듯 응시의 객체와 주체는 수시로 전복되고 심지어는 공재(共在) 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나아가 그의 작품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발견되는 응시 행위에 내포된 양가성 (兩價性)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소설 속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빅 브라더의 위협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간은 무한의 자유와 소통이 가능한 유토피아적 공간을 꿈꿨지만. 현재 우리가 마주한 실상은 빠져나갈 틈 없이 실시간으로 감시가 이루어지는 원형감옥과 같다. 한편, 이와 같은 속성의 공간 속에서 많은 이들은 되레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응시의 대상이 되기를 자초한다. 자신의 행적과 생각이 시시각각 테이터로 환원되어 디지털 제국의 건설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능동적 보기/피동적 보여짐',' '가함/당함'과 같이 응시의 주·객체를 이항대립의 관계로 보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현대인의 심리에는 타인에 의해 자신의 영역이 침해당하는 것은 거부하지만, 동시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양립한다.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장화는 현대인의 심리 속에 이중적 딜레마가 내재하고 있음을 간파, 응시의 정의를 고착화된 현대사회 구조 속에서 유리(遊離)시켜 '문자 그대로의' 개념으로 환원시킨다. '한 곳으로 시선을 모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어떠한 현상에 대해 깊이 살피는 행위'로서의 응시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다시보기'를 제안한다. 작가는 정보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무감각해진 인간의 시지각과 굳어버린 사고방식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긍정적 행위로서의 응시의 가능성' 또한 제시한다.
악을 저지른 자에게 있어 신의 시선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사랑과 보살핌의 시선이다. 도처에서 부감(俯瞰) 시점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CCTV는 감시와 동시에 보호하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욕망과 권력으로 귀결시키는 관점을 넘어, 몰입과 통찰의 시선이자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행위로써의 응시, 나아가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 시스템으로써의 응시, 이것이 바로 그가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며 발견한 응시의 또 다른 형태이자 기능이다. 장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보고-보임'에 관한 현상들을 작품으로 보여주며 응시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해석을 이끌어 냄과 동시,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것을, 동시에 타자를 바라보는 자신의 눈을 함께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 조혜정
被调动的观看行为 ● 因为雕塑与装置是空间的艺术, 做得好不好就在于艺术家是否对人的行动进行了调动. 而张华的个展『看与被看』就很好地做到了这一点. 展览以"眼睛"为建构的基本媒介和叙事线索, 将观者的行为进行了有效地导演 : 作为表演板块, 人则在各种各样观察方式和镜像的反射语言表现得丰富多彩和引人入胜 ; 而作为记录板块, 又将展览现场关于人的动作剧情以摄像头的方式保留了下来. "看与被看"这应该是一个很有意思且闭合的游戏. 它一方面上演了展览现场的艺术之戏, 却暗合了大千世界中万物裸奔的当下世界之现状 : "看与被看". ● 应该说以"窥视"为线索的当代艺术, 不算新鲜. 但是在"眼睛"为主题的创作研究上, 张华所付出的工作是深入的, 切入的角度也是多维的, 所使用的语言方式是丰富的和花样变化的. 从眼睛到镜像, 从窥视到被窥视, 从外观到内窥, 从不锈钢镜面到各种曲面的凸透镜图像的运用等等, 都在诱使观众的参与和自嗨, 不自觉地实现了人的身体位移. 凡是关于"观", "看", "窥"的方式都想到了, 还延伸到"看与被看"的双向性. 所看到的既是实态之境, 又是各种镜面里的荒诞之境. 展览作品的材质和空间展示方式都是有所设计的. 应该说展览虽小, 但是引人入胜 ; 主题聚焦, 且手段丰富. ■ 朱尚熹
Vol.20230530h | 장화展 / ZHANGHUA / 張華(张华)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