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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7:00pm
빈칸 을지로 bincan Euljiro 서울 중구 수표로 48-12 202호 Tel. +82.(0)10.7280.4368 @_bincan_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일기장 ● 소수자. 페미니스트. 퀴어. 그에게 뒤따르는 꼬리표이자 스스로 앞에 내세우기도 하는 표현들이다. 그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거나, 또는 속해 있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 소수자의 입장에 있는 그의 시선에서 세상은 문제와 차별로 가득하다. 분명 어렸을 적에 봤던 만화의 주인공들은 세상의 유일한 문제인 듯 보이는 악당들을 물리치며 쉽게 평화를 이룩해 줬는데, 몇 년을 더 살아보니 세상은 그렇게 평면적이고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더 복잡한 애니메이션, 더 복잡한 영화, 더 입체적인 내용의 책들을 읽어봐도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질러 봐도 공허한 메아리와 잠깐의 비난들만이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렇게 개인들은 나의 목소리를 숨기고, 권력에 굴복하며 사회인이 되어간다.
사실 현재와 같은 시류에서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되었다. 태어난 지역에서 평생을 사는 이도, 한 명의 연인과 평생을 함께 하는 이도, 평생직장을 갖는 이도 흔하지 않다. 이렇게 머무르지 못하고 이동하는 경험이 쌓이며 스스로에게 오는 혼란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음'의 감정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느껴지는 소외감은 김도아만의 것이 아니리라. 양성평등과 빈부격차 문제로 인해 서로 간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가 애매하게 속해 있는 그 어딘가가 가진 '명칭'이 서로를 반목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누군가는 또 한 번의 소외감을 느낀다. 이러한 명칭들은 왜 발생했을까? 명칭들과 그 관계들은 전복될 수 없을까?
이번 전시 《관계등본》에서 김도아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혹자는 이러한 과정이 일기장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관찰 예능을 좋아하고, 남의 일기장을 몰래 본 적이 있다(설마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러한 이야기들에 우리가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개인의 삶에 가지는 공감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안에서 우리는 롤 모델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들로 김도아가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외부로 드러내는 접근 방식은 타당하다고 본다. 《관계등본》은 우리가 흔히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출력하는 주민등록등본으로부터 착안한 표현이라고 한다. 이 문서에서 우리는 개인 또는 한 가구의 주민등록번호부터 출생지, (등록한) 거주지 기록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주민등록등본 또는 초본을 주웠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그의 출생지, 거주지: 부촌인가? - 그의 주민등록번호 뒷번호 첫 자리: (생물학적) 남자인가? 여자인가? - 이름의 한자 뜻? 생시를 제외한 사주? 하지만 아래와 같은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이다. - 그의 출생지, 거주지: 거주지에 실제로 거주하는가? 세금 감면을 위한 집합체인가? - 그의 주민등록번호 뒷번호 첫 자리: (사회적) 남자인가? 여자인가? - 일방적인 폭력이 발생했는가? 삶에 만족하는가?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정보는 '개인정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개인에 대한 편견과 추측만을 남길 뿐이다. 이러한 연유로 김도아는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추측만 난무할 수밖에 없는 텍스트들을 《관계등본》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한다. 작품을 통해 서류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로서의 언어를 드러내고, 그 관계를 재정립하고 전복하는 것이 본 전시의 목적이자 목표일 수 있겠다. ● 김도아의 화면에는 언제나 신체가 있다. 특히 그 특징이 가장 분명한 작품은 「700년 동안 내가 해온 것」 시리즈일 것이다. 그는 본인이 만화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의 부조리함을 해결해 나가는 상상을 하는데, 이는 곧 화면 안에서의 감독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신체의 일부인 손의 이미지로 남긴다. 그러나 완성된 화면은 멋지게 문제를 해결하는 만화의 주인공이 아닌, 복잡한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약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처럼 해석된다. 여러분은 길거리에서 시위하는 단체를 보았을 때 그들이 슈퍼맨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처절한 외침이 들리는가? 아니면 단지 거슬리는가?
만화라는 개념을 차용해온 것, 그리고 인체를 화면에 차용하는 것은 그가 그림을 시작한 만화,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영향은 재료의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푸른 해」와 같이 트레싱지와 레진을 활용하여 제작한 시리즈는 상당히 손상되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러 점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가짐으로써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한 형상을 가진다. 그러나 작품 안에서의 인물은 결국 한곳을 응시하는 모습을 띠는데, 진한 흑색과의 조합을 이루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매번 흔들리는 정체성 안에서도 강한 자아를 가지고 버티며 세상을 응시하는 '누군가' 또는 '누구나'인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의 작가들이 인간을 표현할 때 얼굴을 가리거나 흐리게 표현하여 '그 누구도 아닌' 자를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그 반대의 개념인 '누구나' 또는 '아무개'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익명성은 「임시방편」 시리즈에서도 보인다. 어쩌면 특별한 자가 되지 못한 '아무나'의 설움이 '누구나'로 치환되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SNS에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아이템',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라는 표현이 '아무나'를 소외되고 서럽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나'라는 명칭을 '누구나'라고 재정립한다면, 그래서 내가 아닌 상대방도 소외감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한다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약한 '아무나'가 아닌 다수의 '누구나'가 되었으니까. ● 세상을 향한 개인의 몸부림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나아가 누구나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길 기대한다. ■ 김현미
Vol.20230529b | 김도아展 / KIMDOA / 金徒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