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의 만화경 Phantasmagoria of Day by Day

정직성展 / JEONGZIKSEONG / 正直性 / painting   2023_0527 ▶ 2023_0618 / 월,화요일 휴관

정직성_노랑이 My Yellow 20232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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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성 블로그_honesty.egloos.com 인스타그램_@jeongzs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페이지룸8

관람시간 / 01:00pm~06:30pm / 월,화요일 휴관

페이지룸8 PAGEROOM8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73-10 1층 Tel. +82.(0)2.732.3088 www.pageroom8.com @pageroom8

매일매일의 주제 ● 정직성 작가의 이번 전시 《매일매일의 만화경(Phantasmagoria of Day by Day)》은 지금까지 선보인 그의 전시와는 다르다. 95학번 작가가 1997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한 전작을 엮은 두께 7cm 상당의 『정직성 브릭북』에도 아직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층위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만화경'을 염두에 둔 작업들은 작가의 생활과 삶의 단상과 맞물려 구상 단계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변주를 거쳐 진행되었다. 이 작업들은 최근에서야 "매일매일의"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매일매일의 만화경"이 되었다. 붓질을 하는 행위와 색감 그리고 대상의 형상들은 하루하루 작가의 생각이 달리 스치듯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

정직성 노랑이 My Yellow 20232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3

노랑이; ㄴㅗㄹㅏㅇㅇl ● 정직성 작가의 작품에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동물이 등장했다. 이 동물들은 모두 작가의 품을 떠난 반려동물이다. 집을 나가 행방을 찾을 수 없는 고양이, '노랑이'와 작가의 여덟 살 된 반려견 가을이가 낳아 이웃에게 입양된 '까매', 심지어 바람을 가르는 청룡과 금세 지고 마는 목련에서도 동물적 기운이 느껴진다. 자신을 둘러싸고 등장한 그림의 소재들은 작가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브러시 스트로크(brush stroke)로 구현되었다. 하지만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형상들이 어떤 주제 의식을 품고 있는지 미처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되어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정직성 작가는 최근 자각몽을 통해 단순하지만 명징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의 말을 옮겨 본다. ● 내가 요즘 그리는 것은, 아끼고 사랑했지만 지금 내 곁에 없는 것, 있다고 믿지만 볼 수 없는 것,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곧 사라지는 것들이다. 부재하거나 부재할 대상을 상기하면서 펼쳐지는 기억과 현실의 감각, 그리고 우리가 공감각적으로 연결해서 느낄 수 있는 장을 붓질과 물감의 흔적을 통해 수사학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회화 작품에 기대하는 비의적, 압축적인 무게감을 덜고 변주와 반복(순환)의 기쁨과 자유 또한 누리고자 하였다. 화가란 결국 순환하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작지만 다른 편린의 삶을 살아내는 자신의 경험, 일상과 환상을 회화의 형식으로 형상화(가시화) 하여 다른 이들과 진동하고자 하는 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 정직성 작가의 작가노트 중, 2023년 5월

정직성_까매 My Black 20231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3

사실 정직성 작가가 현재까지 추구한 추상회화(Abstract Painting)에 대한 진정성은 -'추상'의 어원이 '추출'에 있듯이- 자신의 삶에서 추출하여 표면화함으로써 이미 실현하고 있었다. 단, 이번에 작가가 추출한 이미지는 어떠한 가설 없이 단지 무목적적으로, 마치 느닷없이 나타난 것처럼 자신에게 다가온 형상이라는 것이다. 길을 떠난 노랑이는 어떤 단순한 부재를 상징하기보다는, 자신 혹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재 의식을 일깨우는 전령이 되어 초현실적으로 드러난 이미지라는 결론이 아닌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노랑아~", "노랑?", "노랑이!" 등 작가로부터 다양하게 불리었을 '노랑이'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쓰다듬는듯한 붓질로 남았다.

정직성_달이 My Moon 20231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30×30cm_2023

바람의 임시 공간, 캔버스 ●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목도되는 점이 있다. 동·식물과 함께 '바람', '비' 등 공감각적인 요소들이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기법상 물감이 흘러내리고 다시 칠해지며 그 사이에 비치는 형상들이 다양한 층위를 이룬다. 작가의 무의식적/의식적 행위와 필치가 맞물린 결과물은 캔버스 표면에서 미끄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로 지지된 채 임시 고정된 장면으로 보인다. 작가는 기억의 편린과 떠오르는 단상을 캔버스에 붙든 형태로 드러낸 것일까. 그렇다면 오랜만에 등장한 동물들은 작가의 시간과 함께 자각을 일깨우기 위한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빗속에 웃고 있는 것처럼 혀를 내밀고 있는 사진 속 까매, 안타까움과 기억을 들춰보게 되는 노랑이의 행방 등... 이미지를 통해 소중한 기억을 소환하는 만큼, 이 기저에는 망각을 통해 또 다른 부재의 불행을 낳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무의식과 현실에서 느끼는 그리움의 현전이 느껴진다. 그래서 작품을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작가의 붓질은 그렇게 자각몽을 기록하듯 재빠르되 정확도를 기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게 진실의 모습을 흐릿하게라도 확인하고 싶은 꿈은 고스란히 그림으로 남았다. 개인의 복합적인 감정 덩어리와 작가로서의 작업에 대한 고민은 실제 캔버스에 매일매일의 흔적이 아닌 살아있는 만화경이 되었다. ■ 박정원

정직성_목련 Magnolia 202306, 20230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각 90×90cm_2023

일상의 수사학적 변주와 압축: 회화의 환상적 가능성 ● 네이버 국어사전이 정의하듯,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 재생된 것이 이미지라면, 회화 역시 이미지의 영역이다. 이미지의 지표적 특성에 대해서는 일찍이 걸출한 미술사학자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퍼스의 기호학을 사진과 현대미술에 적용해 풀이한 저서,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이 2000년대 초반 한국에 번역되어 나오면서 일반화된지 오래이니 재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회화 붓질의 지표적 특성이 지닌 가능성에 대해서는 보다 확장된 시각으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정직성_해바라기 Sunflowers 2023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0×60cm_2023 정직성_까매 My Black 20231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60×60cm_2023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회화를 고민해야 하는 세대였던 95학번 나로서는 회화 붓질의 지표성이 띠는 현존성과 현전성의 교차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붓질이란 회화가 하나의 환영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구성되고 만들어지는 물감층의 흔적과 누적임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그리고 우리는 아무리 정교한 회화라 해도 붓질을 통해 그 흔적과 누적을 복기해 볼 수 있기에 회화의 붓질은 현존성과 현전성의 교차를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대문자로 시작하는 모더니즘의 형식 자각의 역사를 통해 회화가 지니게 된 이와 같은 전제는 회화 표면 이미지에 대해 '상호 주관성'을 전제로 한 해석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현대 회화에 대한 논의의 장에서 이와 같은 전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과 논의는 진행되지 못했다. 회화 붓질의 현존성(신체성)에 주목한 해석(예컨대 최진욱 회화에 대한 심광현의 해석과 같은)은 존재했었지만, 이미지의 장으로서의 회화의 중층성에 대한 논의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직성_검은꽃 Black Flowers 202304, 20230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각 130.3×89.4cm_2023

민중미술과 형식주의 미술의 대립구도, 추상과 구상의 이분법을 뛰어넘고자 하는 관심사는 70년대 중반 태생인 우리 세대에겐 일면 무거운 과제와도 같은 것이었기에, 나 역시 2002년부터 전개한 연립주택, 푸른 기계, 녹색 풀 연작에 모노크롬 형식(흰, 붉은, 푸른, 녹색의 모노크롬)을 개입시키고, 2010년부터 공사장 추상 연작에 공사장의 도상에 추상표현주의 형식을 도입하거나(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생성되는 서울의 임시적 장소성을 드러내는 브러시 스트로크로 전용), 2014년도부터 촛불 집회를 형상화하고자 제작한 밤 매화 연작에 사군자 문인화 형식을 사용하기도 하고, 2019도부터 시작한 현대자개회화 연작에 나전칠기 형식을 개입시키는 등, 역사적 상징성을 띠는 미술 형식을 현실의 공감각적 경험을 지시하는 중층적인 방향으로 전용하였다. 이는 나의 회화가 메타회화로 작동하면서도 붓질의 지표성에 기반한 중층적인 알레고리로써 내 삶의 현실성을 포괄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정직성_용 Dragon 202315, 20231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각 30×30cm_2023

최근작에 이르러서 나는, 회화의 색과 붓질의 수사학적 성격(어느 정도까지, 어떤 방식으로 그려지는 대상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화면에 적용되는 은유적, 직유적, 제유적, 환유적, 알레고리적 성격)과 브레히트적 소격효과(지우거나 가리는 붓질, 자국을 통한)에 대해 다시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고, 회화에서의 일상성과 환상성 회복에 대해 실험해 보아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한 회화 실험의 일환으로 서른세 번째 개인전, 《매일매일의 만화경 Phantasmagoria of Day by Day》에서 앞으로 전개될 회화 작품들에 대한 초록과 같은 작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정직성_초록꽃 Green Flowers 2023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16.8×91cm_2023

내가 요즘 그리는 것은, 아끼고 사랑했지만 지금 내 곁에 없는 것, 있다고 믿지만 볼 수 없는 것,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곧 사라지는 것들이다. 부재하거나 부재할 대상을 상기하면서 펼쳐지는 기억과 현실의 감각, 그리고 우리가 공감각적으로 연결해서 느낄 수 있는 장을 붓질과 물감의 흔적을 통해 수사학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회화 작품에 기대하는 비의적, 압축적인 무게감을 덜고 변주와 반복(순환)의 기쁨과 자유 또한 누리고자 하였다. 화가란 결국 순환하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작지만 다른 편린의 삶을 살아내는 자신의 경험, 일상과 환상을 회화의 형식으로 형상화(가시화) 하여 다른 이들과 진동하고자 하는 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스펙터클한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내가 제시할 수 있는 회화의 역할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나의 서른세 번째 개인전을 연다. (2023년 5월 5일) ■ 정직성

Vol.20230527b | 정직성展 / JEONGZIKSEONG / 正直性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