뵈는 게 없다 See the Unseen

그냥 허-연 사진이 덜렁 걸렸다. 한참을 훑어도 도무지 '뵈는 게 없다' ● '혹시 아직 설치 중?' '잘못 들어왔나?' 전시 기간을 슬쩍 곁눈질하며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각오로 다시금 눈에 힘을 준다. 잠깐의 적막을 비집고, 핏발 선 눈동자에 희미한 건더기가 얼핏 집힌다. 확신 없는 느낌. 불안감. 조심스럽다. 이럴 때 작아진다. 감상은 당당해야 한다던데. ● 잠깐, 잘하면 뭔가 보일 것도 같다. 사람 얼굴? 도통 감을 못 잡고 갸웃거리는 뒤태가 안쓰러운지 지킴이 한 분이 참지 못하고 귀띔한다. '…부처? 그러네!?' "그럼 이건 여왕?" 옳단다. 자신감이 솟는다. 갓 눈뜬 심봉사처럼 으쓱대며 다음 사진도 뚫어져라 노려본다. 응, 누군지 모르겠다. '얼굴'은 맞는데. "작가님이세요." '누가 알려달랬나 참내' 어차피 못 맞췄겠지만, 괜히 눈 흘기며 마지막 액자를 마주한다. '보인다고 나도 이제' ● 눈 비비고 각 잡아도, 10초가 흐르고 20초가 지나도 초점이 없다. 그런 날 훔쳐보는 지킴이. 마스크 너머로 '웃참'하는 착각이 든다. 뭐 그럴 만은 했다. 빈 액자였으니까. ● 신상 맥가이버 칼이 고색창연한 엑스칼리버를 압도한다. 사진을 전공하고 대포를 이고 지며 비바람을 헤치지 않아도 '폰카' 하나면 그럴듯한 이미지를 뽑을 수 있다. 견문발검이든 견문발포든 매한가지로 모기는 피떡이다. 핸드폰조차 내장 카메라 렌즈와 이미지센서의 성능이 일상적인 요구를 이미 한참 넘었다. 파는 이와 쓰는 이 모두에게 남은 건 '우월'이란 타이틀이다. 칼이든 대포든, 장만했으니 안 쓰면 손해. 새 폰 인증샷 찍고, 한 물 간 친구 폰과 비교샷 찍고, 음식 냄새에 취해 찍고, 갬성 터져서 찍고, 좋아요 100개 기념으로 또 찍어 댄다. 1억 화소 고화질 이미지는 과잉 생산되고 세상 구석구석 재고로 쌓인다. ● 오늘날 지구상에 넘쳐흐르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대중이 생산했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소비자에 불과했던 그들 말이다. 형편없이 치우쳤던 이미지 생산력은 분배의 정의를 이룩했고 꿀 같던 권력은 그대로 동났다. 그 최전선에 사진기의 보급이 있다.1) 역사상 가장 많은 재생 횟수를 차지한 음원은 BTS도 뭣도 아니고 카메라 셔터 소리일 것이다. 하나 둘 그렇게 다 가져갔다. 기록, 시선, 감성, 자세와 집념은 물론이고 시야 환기, 재조명, 문제 제기, 매체 특성에 기댄 담론까지 대중에 다 내어준 사진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따로 없다. "어휴, 난 이제 대체 뭘 찍나?"

윤성필_불합리한 인식 WG-02_젤라틴 실버프린트_117×85cm_2019

십수 년간 이 화두를 고민해 온 윤성필은 진짜를 담기(寫眞, 사진)로 한다. 은염사진은 이름처럼, 인화지의 감광층이 함유한 (할로겐 계열의)은 화합물(銀鹽, 은염)이 빛을 쬐면 분해되어 어두워지는 성질을 이용한다. 감광의 정도의 차이가 바로 사진의 내용(像, 상)이다. 그 차이를 뻥튀기해 눈에 보이게 만드는 과정이 현상이다. 정지제로 반응을 멈추고, 고정제로 감광을 막으면 우리가 보는 젤라틴 실버 프린트가 된다. ● 별안간 그는 락스를 들이붓는다. 기껏 뽑은 사진 표면의 고정층이 손상되고, 상을 이루던 은 이온은 도로 화합물을 생성한다. 그래서 하얗게 탈색한다. 거의 다 지워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은 입자는 살았다. 복원제를 긴급 수혈하면 아직 살릴 수 있다. 그대로 정착시킨다. 매몰찬 확인사살.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그럼에도 은 입자 감광 사실(眞)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 이 이미지는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존재란, 작용의 원인과 결과인가? 아니면 작용 자체인가? 무언가를 두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칭한다면, 인식한 것인가 아닌가? ● 존재론과 인식론의 대결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철저한 유물론자이다. 아니 땐 굴뚝엔 연기가 없다. 현상은 물론이고 인식 또한 작용의 결과이다. 미규명은 신비감의 근원이자 실체이다. '영영 규명할 수 없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김빠지고 힘 빠지는 사실은 이미 괴델(Kurt Friedrich Gödel, 1906-1978) 선배가 규명했다. 그러니 안 보이고 안 집히는 건 언제까지나 우릴 괴롭힐 것이다. 근데 윤성필은 한 술 더 떠서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쌔고 쌨다, 거의 전부 그래'란다. 볼 수 없는 것, 움켜쥘 수 없는 것의 집합이 훨씬 크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2)의 구성비가 우주의 96%에 달한다는 건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게 있고! 많고! 대부분!'이라는 밤하늘의 시커먼 고함이다. 보이는 만큼 있는 게 아니다. ● 마지막 사진이 보인다면 작가가 직접 심안의 소유자로 임명한다. 애초 아무것도 없으니 몽골 유목민이 안경을 쓴 들 보일 리가. 아무리 보는 게 다가 아니라지만, 뭔가 거꾸로 된 기분이다. 안 보여주는 사진이라니? 아니, 眞은 안 보이니까. '보이지 않는 걸 보여 주는 사진'이 낫겠다. 그런 작업, 그런 전시이다.

윤성필_불합리한 인식 WG-03_젤라틴 실버프린트_117×85cm_2019

사전적 의미의 사진은 실물(眞)의 인용(寫)이다. 그런데 그에게 '眞'은 피사체 실물보다 세상의 원리 자체이다. 그런 '진짜'는 대개 이름값, 얼굴값을 하려 든다. 둘러싼 안개도 짙고, 가깝고도 멀고, 눈에 힘줘도 잘 안 보이고, 호락호락 집히지도 않고… 희다 못해 당황스러운 그의 사진 액자는, 말하자면 '진짜를 담은 시험관 샘플' 같은 것이다. '안 보임'이 참으로 선명하게 잘 찍혔다. 주변에 짙게 낀 안개 같은 '보임'은 락스로 다 지웠으니. 원래 그리 생겼건만 이제야 조금 더 제대로 보는 원리의 표본, 원리의 누드이다. 사진가들이 일찍이 선보인 적 없는 작업으로, 사진의 의미를 다시금 곰곰이 짚게 한다. ● 아니, 사진이 문제가 아니다. 시각예술의 끝자락은 어디까지일까? 시각을 내던지는 예술도 이제 시각예술이다. 시각에 미련 없는 시각예술가. '시각에 발목 잡히지 말고, 시각에 연연하지 말고, 시각의 미혹을 극복하라'고 시각으로 말하는 시각예술가라니. 일확천금 꿈도 꾸지 말라는 로또방 주인이 문득 떠오른다. 이건 숫제 제 살 베어 물며 고기의 참맛을 찾는 미식가 아닌가. ■ 김영기

* 각주 1) 이등 공신은 아마도 AI 이미징이 될 것이다. 둘은 상보적이다. 사진 집합은 무궁무진한 AI 학습샘플 풀이 되고, 사진 생산에서 AI의 개입은 더 많은 소스를 살리고 건질 것이다. 2) 우주 가속 팽창 모델에서 납득이 불충분한 부분의 설명을 위한 가정(Ad Hoc). 직접적 관측으로 특성을 밝힐 수 없는 인자이기에 '암흑(dark)'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윤성필_불합리한 인식 WG-04_젤라틴 실버프린트_117×85cm_2019

White blank is just hanging. Scanning repeatedly, but 'can't see anything' ● 'Still installating?' 'Is it the wrong place?' Quickly check the exhibition period, stay calm and keep eyes wide open with a new mindset. After a short silence, the bloodshot eyes finally catch something on it. A feeling of uncertainty. Anxiety. Cautious. Always become timid in such a situation. Should be confident when appreciating art by the way. ● Wait, I can see something. A face? One of the gallery docent can't stand my tilting head and doubting without grasping the whole picture and gives a hint. '… Buddha? It really is!?' "Then, is this the queen?" That's correct. My confidence comes back. Shrug like Mr. Blind Shim who has just restored sight and stare at the next picture. Well, I don't know who it is. It must be 'a face'. "This is the artist." 'Oh, dear. I didn't ask for the answer.' I know I probably can't guess it anyway, but frown a little at the docent. Finally, I stand in front of the last frame. 'I can see it now' ● Even if I rub my eyes and take the sharp angle, there is no focus even after 10 seconds and 20 seconds. The docent watches me. I imagine 'a man of laughter' behind the mask. Well, no wonder. Because it was really an empty frame. ● The brand new army knife (macgyver knife) overwhelms the old-fashioned Excalibur. Even if you do not major in photography, not carry Canon, and not confront rain and wind, you can get decent images with 'a phone camera'. Whether you draw the sword at a mosquito or shoot at it, mosquitoes are going to be blown with blood. The quality of the built-in camera lens and image sensor of mobile phones have already exceeded the daily demands. What remains for both the seller and the customer is the title of 'superiority'. Whether it's a sword or a cannon, you've got it. So, if you don't use it, you are making a loss. Take a proof shot on a new phone, take a comparison shot with a friend's phone that has been too old to use, take a picture with the good smell of food, take a picture with such an emotion, and also take a picture to commemorate 100 likes. 100 million pixel high-definition images are overproduced and piled in every corner of the world. ● Most of the images flooding over this planet today have been produced by the masses. I mean the public who were just consumers a hundred years ago. The biased power of image production finally achieved justice in distribution, and its honey like power has been evaporated. At the forefront of this situation, there is the spread of cameras.1) The sound with the most number of plays in history would be the sound of a camera shutter, not BTS or anything. It conquered one by one like that. Photographers gave everything to the public, not only records, perspectives, sensibility, attitude and passion, but also visual awakening, re-examination, raising problems, and discourse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media. It's the very generous tree. "Ugh, what do I shoot now?" ● Sungfeel Yun, who has been contemplating this topic for decades, decides to take the real thing (寫眞, photography). Silver bromide photography, as the name implies, uses the property of the (halogen-based) silver compound (silver salt) in the photosensitive layer of photo paper that decomposes and darkens when exposed to light. The difference in the degree of exposure is the content (image) of the photograph. The process of highlighting the difference and making it visible is the phenomenon. Terminating the development with the stop bath and blocking the photosensitization with the fixer turn out to be the gelatin silver print that we see. ● Suddenly, he pours bleach. At last, the fixed layer on the surface of the photograph gets damaged, and the silver ions composing the image produce a compound again. So, it becomes white. Almost all of it is erased, but the invisible silver particles are barely left. An emergency restoring agent can still save some parts. It can settle as it is. Cold-hearted confirmation. It can't turn back anymore. Nevertheless, photosensitization with silver particles still remains as a matter of fact. So, is the image there or not? Is the existence the cause and effect of action? Or is it the effect itself? If you say something is 'unrecognizable', doesn't it mean that you already recognize it? ● It can be seen as a confrontation between ontology and epistemology. But this artist is a materialist no matter what. There is no smoke without fire. Just like phenomena, recognition is also the result of effect. The unknown parts are the source and substance of mystery. Our big brother, Gödel (Kurt Friedrich Gödel, 1906-1978) identified the disappointing and discouraging fact that 'something that cannot be clarified forever exists inevitably'. Therefore, what we can't see and touch will always bother us. But Sungfeel Yun goes one step further and says, "It does not just exist. It's everywhere, overflowing. Almost all of them are like that." The realm of the unseen and things that cannot be grasped is much larger. The fact that the ratio of dark matter and dark energy2) is about 96% of the universe is to tell us 'There is something invisible! Much! Most of them!', and it is a dark shout from the night sky. It's not as it seems. ● If you can see the last picture, the artist will directly appoint you as the owner of the Mind's Eye. In fact, there is nothing. So, it is impossible even for Mongolian nomads wearing glasses to see something out of it. No matter how much you see, it's not everything. However, it feels like something is awkward. A picture that is not showing? Truth is invisible. 'Photos that show the unseen' would rather be nice. This is such a work and such an exhibition. ● The definition of photography in dictionary is a citation of the real thing. However, to him, truth is the principle of the world itself rather than the actual subject. Such 'autheniticity' usually behaves haughtily with its name value. The fog surrounding it is thick, close yet far away, hard to see even if you open your eyes wide open, and hardly recognize... His picture frame, which is frustrating because it is white, is like 'a test tube sample containing the real thing' as it would be. 'Invisibleness' is taken clearly. The 'visibility' like thick fog around it is all erased with bleach. Originally, it looks like that, but the model of principle, the nude of principle is much more visible now. Photographers have never shown in this way before, and it makes us remind the meaning of photography. ● What I want to say is, the photography is not a matter. Where is the end of the visual arts? The art that discards the visuality is the visual art. Visual artists do not attach to visual anymore. Visual artists say, 'Don't get caught up with the visuality, don't stick to it, and overcome the delusion of it'. I suddenly think of the owner of the lottery store who said, "Don't even dream of getting rich." Isn't this such a gourmet who seeks the true taste of meat by biting his own flesh? ■ Younggi Kim

* footnote 1) The second contributor will probably be A.I. imaging. The two are complementary. The assemblage of photos becomes an endless pool of A.I. learning samples, and A.I. intervention in photo production will save more sources. 2) Ad hoc to explain the insufficiency of the Accelerating Expansion of the Universe. It cannot be proven by direct observation. So, the modifier "dark" has been added.

Vol.20230526a | 윤성필展 / YUNSUNGFEEL / 尹聖弼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