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3_0522_월요일_05:30pm
기획 / 타.원(남소연, 이원호) 후원 / 성남문화재단_공공예술창작소 협력 / 이경미 독립기획자(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최희진 도시연구자(솔방울 커먼즈) 도록 및 홍보물 디자인 / 소장각
관람시간 / 10:00am~06:00pm
신흥공공예술창작소 Creative Space of Public Art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정로228번길 12 Tel. +82.(0)31.731.8047 www.snart.or.kr www.facebook.com/spacepublicart @publicartstudio_sn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정로 222 3층
타.원의 『looking forward to [ɡɔ.do] / 고도를 기대하며』는 지난 몇 십 년간 이주(移住)와 정주(定住)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성남시 신흥동을 기반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우리는 2022년 초여름부터 신흥동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을 경험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삶의 공간으로 기능한 도시와 개발에 얽힌 내밀한 이야기들을 프로젝트 그룹 「타.원」과 4명의 초청작가 김양현, 박진아, 지평선, 리히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유의미한 사건들을 동시대적 미감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 도시에는 누적된 공동의 역사와 개인들의 낯선 서사가 뒤섞이고 용해된 형태로 늘 존재한다. 도시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제안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 만큼 도시와 현실은 복잡하고 난해해서 되돌리기 힘든 오류를 범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우리가 경험하고 싶은 도시에 이르고자 하는 행위, 그리고 그 과정을 소비하며 축적하는 시간 그 자체가 나름대로의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아닐까 질문해 본다. 참여 작가들은 이곳 신흥동에서 개개인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합집산하는 다양한 욕망과 공동체로서의 도시를 목도하며 "우리"라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도시의 어제와 지금에서 이상과 현실의 간극 그리고 그로 인해 도출되는 다양한 의제들에 대해서 사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 타.원
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 소리에 체화된 기억 ● 지금 잠시 눈을 감고 주변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골목 어귀에서 개가 '왕왕' 짖고, 오토바이가 시간을 재촉하듯 '부우우웅' 달리며, 바람에 창틀이 살짝 '달크락' 거린다. 저 멀리 하늘에 '두두두두' 하고 비행기가 지나가고 누가 아픈지 '삐유우웅'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도 스친다. 신경 쓰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의 풍경. 생활잡음이나 백색소음으로 치부되는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는가. ● 프로젝트팀 타.원(이원호, 남소연, 장재희)은 성남의 원도심에 해당하는 수정구 신흥동에 소재한 창작소에 체류하며 성남의 비행장 '서울공항'의 존재를 소리로 감각하게 된다. 성남 수정구와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걸쳐있는 '서울공항'은 1970년에 건립되어 지역의 역사를 함께 했다. 주지하듯이 1960년대 후반 개발된 성남은 도시 빈민들의 거처로 형성되었으나 전매로 인한 투기가 성행하게 되었고, 결국 71년 주민들에 의한 봉기가 일어난 역사를 지닌 곳이다. ● 비행장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까닭에 이 지역은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꽤나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반투명 비행」(2022-23)은 주민들이 입으로 만들어내는 비행기 소리 수집을 기획한다. 프로젝트팀은 50~70대 주민 10여 명을 섭외하고 그들에게 비행기 소리를 육성으로 재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저음에서 고음까지, 때론 둔탁하고 때론 날카로운 음색으로 저마다의 기억 안에서 마주친 비행기의 스펙트럼을 담아보려는 시도는 흥미롭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개인사가 교차하며 몸에서 반응하는 기억이 때때로 포착되기 때문이다. ● 실제로 참여주민들은 비행기 소리를 흉내내기 전에 공통적으로 머뭇 거렸다. 소리를 불러오기까지의 일정한 딜레이가 발생하는 것인데, 스스로에게 비행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자문하는 사이에 소리와 붙어있던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리고 그물에 물고기가 걸리듯, 특정한 기억과 감정이 '탁' 걸리며 소리가 만들어진다. 한 주민은 전쟁의 기억-가족의 죽음과 연결된 비행기의 존재-으로 두려운 감정을 호소하면서 결국 비행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처럼 작업은 소리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함께 자라난 주민들의 기억을 반추해 본다. ● 본 전시에서 프로젝트팀은 주민의 입으로 만든 비행기 사운드와 그 모습을 찍은 기록영상을 분리하는 설치 방식을 채택한다. 창작소 1층 전시장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영상이 보이고, 옥상의 확성기에서 소리가 나오는 방식이다. 동시에 확인할 수 없는 소리와 이미지의 간극을 매우려는 과정에서 보는 이의 기억이 추가된다. 마치 비행기 소리를 음성으로 내기 위한 과정에서 주민의 기억이 매개된 것처럼 말이다. 한편 전시기간 동안 창작소 옥상 확성기를 통해 주기적으로 송출되는 이 소리는 창작소와 주변 주민들과의 상호작용으로 확장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비행기 소리가 주민들에게 일종의 백색소음처럼 이질감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비행기 소리를 흉내내는 목소리에는 어떻게 반응할까? 실제하는 비행기 소리에서 이를 재현한 주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다시 확성기로 송출되는 그들의 소리와 이에 관한 창작소 주변 주민들의 반응까지, 「반투명 비행」은 비행기 소리를 매개로 지역 주민들의 소리에 체화된 기억들을 나누며 대화를 시도한다. ■ 이경미
덧붙이고 다시 쓰는 룰 ● 남소연 작가는 성남 신흥동의 언덕배기에 목욕탕 의자를 깔고 앉아 모여 있는 할머니들을 조우했다. 해질녘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할머니들은 좁고 가파른 골목 언덕에 앉아 계셨다. 가파른 경사 탓에 잠시 쉬어가다 삼삼오오 모이게 되었으리라. 건물과 도로가 만나는 면에 단차로 생긴 턱이나 계단 등에 앉아있던 할머니들은 금세 대화의 장을 펼쳤다. 작가는 도시 공간을 사용하는 할머니들의 방식을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으며, 도시 공간 구조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특히 그녀는 도로와 건축물 사이에 있는 공간을 유심히 살피며 할머니들의 소통 공간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모색한다. ● 남소연 작가는 '할머니들을 (도시의) 개발자이자 사용자'로 상정하고 '유즈맵(Use Map)'을 통해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유즈맵은 게임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게임 틀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주어진 환경이나 도구의 기능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시를 유즈맵과 같이 구성한다는 것은 사용자 입장에서 도시 공간 구조를 재편하는 발칙한 상상이자 실천이다. 이는 기존의 도시 체계의 규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관점에서 공간 활용의 방식과 규율을 정하는 과정이다. 특히 「유즈맵 워크샵」은 신흥동의 지리적 특성과 할머니의 신체 조건을 고려해 소통 구조를 생산하는 과정을 담는다. ● 남소연 작가의 「GranGran Inventory」에는 할머니 개발자이자 사용자를 위한 아이템으로 그득하다. 작가는 이 세상에 쓸모없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와 닿는 도구를 창작하는 데 몰두한다. 마찬가지로 「GranGran Inventory」에 있는 오브제는 유즈맵을 활용하는 할머니들에게 와 닿는 아이템이자 자산임에 틀림없다. 「GranGran Inventory」에 담긴 자산은 「유즈맵 워크샵」에서 계단의 높이와 같이 형태와 기능을 마음껏 재구조화할 수 있으며, 바닥에 붙어 있거나 평면적인 모양의 형태라기보다 위, 아래, 옆면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한다. 또한 이 자산은 누군가의 손때가 담긴 흔적을 쉽게 지워버리거나 납작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새로 짜인 선반에 자기만의 멋으로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 이번 「GranGran」 프로젝트의 유즈맵과 3D오브제는 가상-현실 체계의 연결을 통해 할머니 사용자에 의해 짜인 도시 공간의 형식을 보여준다. 할머니 개발자가 언덕배기에서 한 폭의 도로를 점유해낸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조화하듯이, 남소연의 작업은 특정 공간의 구획과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공적-사적 영역을 교란시키는 방식이다. 더욱이 그녀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면서 (탈)영역화된 도시 공간을 상상한다. 특정 민원인이 기존 규율에 의해 공간을 이용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이 필요한 공간과 장치를 적극 배치하고 새롭게 수정과 보완을 거듭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한다. 그녀의 시선 덕분에 우리는 일상의 터전을 기반에 두고 도시 공간 구조를 자신만의 문법으로 짜임새를 갖춰보는 방식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최희진
이곳에 발을 딛는 그녀와 함께 걷기를 ●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행위는 낭만적이고 기분 좋은 작업일 테지만 도시 거리를 맨발로 걷기는 어떨까?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이라는 차가운 혹은 뜨거운 거친 표면을 맨발로 걷는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거리에 맨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이질감과 이물감으로 낯설게 느껴질 테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이미 성남 신흥동의 골목을 걷고 있으리라. ● 김양현 작가는 맨발로 내딛는 행위를 통해 땅과 함께 자신을 감각한다. 그녀의 발은 단숨에 새까맣게 변하지만 처음 땅과 마주했을 때의 울컥한 마음은 이내 상쾌함으로 변한다. 그녀는 땅을 딛는 과정을 수행함으로써 내면에 솟구치는 불안함과 우울함,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던 자신을 성찰하며, 그러한 감정들과 마주할 용기를 낸다. 붕 떠다니는 것만 같던 작가의 삶은 요가 6년 차로서 땅을 딛는 감각을 통해 버틴다. 이것이 바로 그라운딩(Grounding)을 수행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신체로 땅을 딛고 걷기를 반복하는 수행의 과정은 작가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단지 하루에 만 보 걷기와 같이 걸음 수를 숫자로 치환하는 것보다 온전히 자신의 신체에 집중해서 지금 여기서, 땅을 딛고, 발끝에서부터 단전, 그리고 머리의 숨구멍을 열어 숨을 쉬는 것이다. ● 걷기를 수행하는 김양현 작가는 자신의 시선을 발로 옮겨간다. 그녀는 자신의 발걸음만 좇는 게 아닌 타자의 발걸음과 마주한다. 발의 시선에서 사람들은 마치 어딘가에 떠있는 듯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공기층 위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한달음에 나아가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면 그녀는 오히려 발걸음을 더욱 늦추고 숨을 더욱 깊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더욱이 땅을 딛는 과정은 자신의 신체와 마음뿐 아니라 타자를 감각하는 즉, 이 땅을 매개로 자신과 동시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도전적인 수행이다. ● 이번 전시에서 김양현 작가는 신흥동의 땅을 매개로 걷기와 명상을 수행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신흥동은 산을 평평하게 깎아낸 곳이기보다 좁고 굴곡진 형태로 삶의 고행과 닮아있다. 작가는 신흥동의 땅을 딛고 오르내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치유뿐 아니라 이 땅의 존재와 에너지를 감각한다. 그녀의 수행적인 행위는 이 지역의 파동을 담아내면서 그라운딩의 감각을 타자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번 전시장에는 작가의 발걸음과 속도를 따라 걸어보고 호흡해 볼 수 있다. 이 땅을 매개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함께 수행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다시 걸음을 내딛는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발걸음이지만 어느 순간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뜻한 열기로, 이 땅을 함께 데워보자. ■ 최희진
미미한 것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 ● 작가 리희(이희정 LeeheeJung)에 의해 2021년 시작된 「리히카세 Leeheekase」는 엄마가 경험한 '이주의 맛'으로부터 시작한다. 미국에서 한국, 다시 미국으로 자발적/비자발적 이주를 겪은 엄마의 음식은 뭔가 특별했다. 코코넛 워터를 넣은 볶음밥이나 오렌지 주스로 고기를 연육 시킨 미역국의 맛은 작가에게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질이다. 그리하여 성남의 원도심, 신흥동 이주민이자 이방인으로서 작가가 지역을 마주하는 방법은 '맛'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었다. ● 작가가 식재료 탐구와 방법론을 각각 날실과 씨실로 삼아 작업을 본격적으로 직조하기 시작한 것은 2022년 진행된 '페스토 에디션'부터다. 이 주민참여 워크숍에서는 바질 대신에 깻잎을 재료로 하여 페스토를 만들었다. 향과 맛이 강한 깻잎은 유독 한국에서만 자주 소비되는 식재료 중 하나이다. 고기와 곁들이는 쌈이나 장아찌의 주재료로써,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작가는 이 식물이 한국인들의 입맛을 길들이며 문화를 함께 만드는 상생적 관계에 주목한다. 한편 재료를 찧고 으깨며 만드는 페스토 제작방식은 꽤나 원시적인 속성을 가진다. 유년시절 소꿉놀이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가는 참여자 간의 근원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놓고자 했다. ● 2023년 '신흥 식용식물을 찾아서'로 작가의 작업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식용식물'은 여전히 「리히카세」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음식을 만드는 식재료(맛)이자 지역 골목에서 자생하는 식물(장소성)이라는 교차점에서 식용식물은 의미를 발생한다. 신흥 1~3동 골목의 후미진 담벼락이나 전봇대 아래에는 야생 고춧잎, 깻잎, 까마중, 호박, 쑥, 민들레, 로즈마리 등이 있다. 이들은 맛을 구현하고 골목을 나름의 방식으로 점유하는 주체이다. 아름드리 보호수와 같이 유일무의한 존재감도 없고 식사거리로 유용하게 쓰이는 역할도 없지만, 가녀린 몸으로 굳건히 거리에 버티고 있는 이들을 작가는 바라본다. 그리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GPS로 매핑한다. 미미한 것들이 작가에 의해 그 존재가 확인되는 순간은 이것들을 만나며 '지금-여기'의 작가가 확인되는 순간과 맞닿는다. ● 이러한 리추얼은 한 가지 방식으로 더 진행되는데, 바로 네이버 스마트렌즈로 식물명을 찾는 과정이다. 작가는 골목의 식용식물을 꾸준히 채집하여 보존액에 담가 보관하는 한편, 식물명을 정리하여 아카이빙한다. 그러나 AI가 검색을 포기하거나 옥잠화를 블루베리라고 알려준 에피소드처럼, AI라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려 그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빈번히 미끄러진다. 이처럼 작가의 시도는 기록되지 않은 것의 기록을 찾으려는 노력에 가깝다. 그리운 엄마의 손맛 레시피가 엉뚱한 것처럼, 이주로 시작된 근본없는 개인의 역사는 쉬이 휘발된다. 그래서 신흥동 골목에서 식용식물을 찾으려는 이 여정은 결국 무위에 그치게 될지 모른다. 이 마이너한 존재들은 눈앞에 있지만 마치 신기루와 같이 그 실체를 증명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작업은 이 지점에서 '실재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로 이행된다. ● 애초에 본 작업은 이방인으로서 작가가 지역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려는 시도에 기인한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 태도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선 작업에서 골목의 식용식물을 데려와 소재로 삼으며 주민과의 소통에 집중했던 반면,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일련의 작업에서는 식용식물이 머무는 골목에서 인간 대신에 식물이라는 비인간 존재와 관계맺음을 시도한다. 인간에서 환경으로, 인간-비인간의 조우로 그 시야가 확장되는 과정은 「리히카세」의 여정이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 ■ 이경미
신흥동과 피어나는 존재들 ● 박진아, 지평선 작가는 성남 신흥동의 특정한 구역 한편에 출몰한 그곳의 모습을 닮은 생명체, (그녀들의 언어로) 토템이라는 존재들을 발굴한다. 성남 신흥동은 50여 년 전 서울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철거민들이 정착해 낳은 지역으로, 오늘날의 도시환경정비사업, 재개발이 한참 진행 중이다. 박진아, 지평선 작가는 멀끔하게 정비돼 '부흥'하기를 열망하는 신흥동이라는 지역을 구석구석 누비며 우악스럽고 곰삭힌 이질적인 존재들에 애정을 쏟는다. 이 존재들은 그녀들이 발굴한 하나의 생명체로 사실상 신흥동과의 관계 맺는 방식을 이야기해준다. ● 현대식 시설로 탈바꿈을 꾀하는 성호시장은 슬레이트 지붕에 천막과 노끈, 전깃줄로 덧대어 있고, 기름때가 묻은 수저와 냉장고 등의 치열한 삶의 흔적들로 각인돼 있다. 박진아, 지평선 작가는 돼지부속 냄새와 지린내로 진동하는 거리에서 보물이라도 발견하듯 재료를 찾아 나선다. 내가 만난 그녀들은 국밥집 앞에서 양파 망을 획득해 서로 힘을 겨루어내듯 양파 망을 찢고, 어슬렁대는 행위 탓에 일부 상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욱이 그녀들은 전기가 나간 빈 점포에 진입해 자신들의 작업 공간으로 상상하며 겁 없이 점유한다. 임시시장으로 옮겨간 상인들의 자리에는 땅거미가 기어오르듯 「곰삭물」이 신성하게 내려앉는다. 시장 내 온갖 재료와 얽혀 살아가는 「곰삭물」은 사업 번창을 기원하는 상인들의 염원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와 함께 성호시장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닮은 「늘팽이」는 눅눅하고 갈라진 바닥 틈사이로 출몰한다. 「늘팽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촉수를 늘어뜨린 채 성호시장에 새겨진 시간만큼 느린 속도로 움직인다. 그녀들이 「늘팽이」를 발견한 곳에 "촉촉하게 물렁하게 오랫동안 느린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늘팽이」의 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박진아, 지평선 작가는 이런 기이하고 진귀한 존재들을 토템이라 여기며 쫓아다닌다. 그녀들은 성호시장의 「곰삭물」과 「늘팽이」라는 생명체뿐 아니라 각기 다른 구역을 반영하는 네 개의 존재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녀들을 더욱 북돋은 건 「싸제비」와의 마주침이었다. 짙은 붉은색으로 물든 이 토템은 유흥 주점과 점집이 즐비했던 골목에 깃든 영성적 존재로서 「싸제비」는 자신의 일부를 스스로 연소하듯 이곳의 생태계 역시 사라졌다. 그녀들이 처음 마주한 점집골목은 상가세입자들이 죽을힘을 다해 외친 개발에 대항한 토악질이었다. 빨간 글자로 적힌 적나라한 언어는 살던 장소에서 이탈당한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제는 그들은 온데간데없이 높은 펜스와 천막 위에 '출입금지' 현수막이 나불거리는 골목에 몇몇 사람들만 걷고 있을 뿐이다. 점집 골목을 지나서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사람들은 파편만 남겨진 「싸제비」를 흘겨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친다. 그밖에도 상가구역의 얼룩덜룩한 아스팔트 바닥에는 온갖 욕망에 빗대어 사는 「미련껌탱이」와 현란한 네온사인을 뿜어내는 「삼폭둑이」라든가, 빼곡하게 들어선 다세대 주택 골목에서 덩굴처럼 전봇대를 타고 오르는 「신흥련초」와 같이, 신흥동만의 독특한 시간과 장소의 특징을 다층적인 구성물이자 실체로서 현현한다. 그녀들은 신흥동 지역에서 조우한 사람들, 각종 냄새와 소리, 그리고 거리의 촉감 등이 들러붙어 신성하리만치 진귀한 존재들과의 생태계를 구상한다. ■ 최희진
Vol.20230522b | looking forward to [ɡɔ.do] 고도를 기대하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