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언제나 파란으로부터

김예진展 / KIMYEJIN / 金藝珍 / painting   2023_0512 ▶ 2023_0603 / 월,화요일 휴관

김예진_얇은 자국1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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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드로잉룸2.5 『가을에서 겨울』 공모展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화요일 휴관

드로잉룸2.5 Drawingroom2.5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다길 9 (연희동 128-30번지) 2.5층 @drawingroom2.5

눈 감고 보는 풍경 ●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2019)는 폭력의 기억을 무심코 발견한 유리 조각으로 형상화한다. 미처 치우지 못한 파편은 당시를 상기시킨다. 차마 완성되지 못한 감정은 그 순간을 돌아볼 때 비로소 실감된다. 이별의 시간보다 그 이후의 기간이 더 괴롭듯이 무언가 사라졌을 때 깨닫는 과정 또한 비슷하다. 상실은 곧 인지의 순간이다. ● 김예진은 이러한 변화하는 감정의 틈을 화면에 기입한다. 기억의 아카이브는 과거의 일상 속 무심코 지나갔던 곳들을 호명하여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익숙했지만 낯설어진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한 후, 이를 프레이밍하여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개인적이기에 탈락된 순간은 표면을 뭉개고 긁어내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하여 화면으로 이동한다. 보풀이 일듯 흐릿하고 모호해진 대상은 각자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온다. 임의적으로 구성된 풍경은 실제보다 리얼하다.

김예진_얇은 자국2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23
김예진_기울기의 흔적 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3
김예진_기울기의 흔적2 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3

화가는 물리적 공간을 신체적으로 점령한다. 회화는 무엇보다 작가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환경을 동시에 반영하게 되는, 리얼한 매체이다. * 김예진의 회화는 이를 탐구한다. 반복적으로 물감을 표면에서 닦아내며 채워가는 행위와 아득한 색채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주관적인 장소를 그린다. 회화적 표현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시도이자 변화를 경험하는 신체를 표지하고자 한다. ● 익숙한 장소를 돌아볼 때 풍경들은 교차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잘 보기 위하여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다. ■ 황혜주

* 회화에 얽힌 수다 혹은 진실, 강수미, 고승욱, 공성훈, 도라지, 박찬경, 이영욱, 최진욱, 전용석, ▶ 포럼 A 자유게시판, 2001, p.7-8.

김예진_물러지고, 단단해지는_캔버스에 유채_90.9×72.7cm×2_2022
김예진_파랑 장막_캔버스에 유채_194×194cm_2022

어릴 적 자주 드나들던 동네의 학교가 파란 천으로 뒤덮인 모습을 본 것이 작업의 시작점이다. 과거의 나는 지금은 파랗게 덧칠된 저곳에서 볼이 빨개질 정도로 뛰어다녔고, 두 다리 아래에 놓인 모래 위에서 자신이 우위의 존재가 된 것처럼 군림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부름으로 한달음에 달려 나가던 그때의 기억이 아득히 떠오른다. 그리고 거대한 행렬로 사라짐을 느꼈다. 예전에는 너무 가까이 있어 주의를 끌지 못했던 것들은 멀어지니 눈에 들어왔다. ● 무언가를 명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촉감과 냄새는 더 잘 드러나지만, 시야는 좁아진다. 나는 과거의 장소에서 떨어져 그곳을 관찰했다. 나의 발자국으로 물러지고 단단해졌던 모래 위에는 변화를 위해 쉼 없이 움직인 듯한 바퀴 자국이 있다. 그리고 거대한 파란 장막은 건물을 휘감고 있었다.

김예진_학교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22
김예진_한 구석에 남는 건_캔버스에 유채_53×53cm_2022

익숙한 장소에 남아있는 것들을 보면 나는 매번 새로운 상실과 직면한다. 상실은 변화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없어질 걸 아는 순간들을 화면 안에 옮겨 변화에 대한 예고를 담아내고 싶었다. 평면 위의 장면을 얇고 투명한 운율감으로 만지듯 더듬는다. 하나의 장면은 다른 모양을 가진 채 모서리의 경계를 반복하며 교차한다. 이로써 과거와 현재, 미래는 느슨하게 뒤섞인다. 반복적인 움직임은 과거와 시간을 근거하듯 자국을 남긴다. 하나의 자국은 작은 점으로 분해되어 점들은 서로 멀어지고, 마침내 그것은 흔적으로 남게 된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상실, 혹은 나의 안팎으로 사라지고 바뀌는 것들에 대한 애상과도 같은, 그때밖에 느낄 수 없는 자극점인 흔적이다. ■ 김예진

Vol.20230512b | 김예진展 / KIMYEJIN / 金藝珍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