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방' The Room of Desire

이은화는 회화, 사진, 설치, 뉴 미디어 아트, 출판 등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멀티 아티스트'다. 2000년대 초반부터 문자와 기호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탐구해온 작가는 젊은달와이파크 미술관 제4전시실을 욕망의 방으로 꾸몄다. 이 방에 들어서면 욕망의 다양한 상징과 기호를 만나게 된다. 오색의 러버콘들은 보호와 안전의 욕망을, 각종 화폐 기호들은 권력과 소유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 하얀 모래섬 위에 세워진 세계 최고층 빌딩들은 '슈퍼 리치'들의 과시 욕망의 기호들이다. 작품 제작을 위해 작가는 기성 오브제뿐 아니라, 레이저 커팅, 3D 프린팅 등 첨단의 기술을 사용하는데, 이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미래를 상징하는 기호들이다. 욕망은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 중요한 동기가 되지만, 과하면 재앙이 된다. 성서 속 바벨탑처럼 허망하게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작가가 제시하는 다양한 욕망의 풍경들을 보며 관객들도 각자가 가진 욕망을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그것이 행복으로 이끄는 것인지, 허황된 것인지. ■ 젊은달와이파크

이은화_금지된 영역-안락한2 Forbidden Zone–Comfortable_PLA, 러버콘 170여개_각 37×37×70cm_2023

이은화_금지된 영역-안락한 Forbidden Zone–Comfortable_부분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안전과 보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졌다. 차단, 봉쇄, 거리 두기, 고립, 금지 등 부정적인 단어에도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며 친숙해졌다. 이 작품은 일명 '고깔콘'으로 불리는 러버콘 170여 개를 이용한 대형 설치작품이다. 양쪽 벽에 빽빽하게 설치된 오색의 러버콘들은 안전과 보호의 의미도 있지만 차단과 봉쇄를 상징한다. 개인 혹은 그가 속한 계급이나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금지 표식을 겹겹이 둘러놓은 모습이다. 러버콘들 사이에는 네모난 거울이 부착돼 있다. 관객이 그 앞에 서면 안전한 자기만의 방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관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보호가 과하면 고립이 되고 고립은 결국 물리적 혹은 사회적 죽음을 야기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이은화_화폐 회화 연작 Money Painting Series_나무 패널에 혼합재료_각 60×50cm_2016~23

이은화_화폐 회화 연작 Money Painting Series_부분

이은화_화폐 회화 연작 Money Painting Series_부분

이은화_화폐 회화 연작 Money Painting Series_부분

이은화_화폐 회화 연작 Money Painting Series_젊은달와이파크 제4전시관_2024

"화폐를 통제하는 자, 모든 것을 지배한다."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의 말이다. 지구상에는 200개 이상의 국가가 존재하고 이들 국가의 대부분은 자국의 통화를 가지고 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콜론, 콜롬비아에서는 페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프가니, 덴마크에서는 크론, 파키스탄에서는 루피, 카타르에서는 리얄을 쓴다. 하지만 현지에 가보거나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겐 낯선 화폐들이다. 대신 우리는 세계 5대 기축 통화에만 익숙하다. 미국 달러화, 유럽의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 자국을 넘어 국제 거래에서 통용되는 글로벌 화폐단위들 말이다. 2016년 10월부터는 중국 위안화가 세계 5대 기축통화에 편입되면서 중국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이들 기축통화의 기호들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과 상징성을 가진다. 반면 제3세계 국가의 화폐 기호들은 그 나라 언어를 모를 경우,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기축통화와 제3세계 화폐 기호들을 똑같은 무게와 규격의 그림으로 제작해 배열했다. 정치, 경제의 영역이 아닌 적어도 미술의 영역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색은 결국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강자와 약자가 함께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은화_신바벨도시: 욕망의 섬 New Babel City: Island of Desire_PLA(3D프린트 출력)_가변크기_2016/2023

이은화_신바벨도시: 욕망의 섬 New Babel City: Island of Desire_부분

이은화_신바벨도시: 욕망의 섬 New Babel City: Island of Desire(LCT)_PLA(3D프린트 출력)_2016/2023

이은화_신바벨 도시를 설치 중인 이은화 작가

「신바벨 도시: 욕망의 섬」은 세계 도처의 유명 마천루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도시이자 섬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미국 대통령까지 지낸 부동산 갑부 트럼프의 이름을 딴 트럼프타워,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인 서울의 롯데월드타워 등 50여 개의 유명 고층 빌딩들로 구성돼 있다. 특혜와 비리의 상징이 된 부산의 엘시티는 이들과 떨어진 외딴 섬에 위치해 있다. 유령 도시처럼 하얀 섬엔 사람도 길도 차도 없다. 오로지 건물들만이 경쟁하듯 세워져 있다. 이는 도시 자본가들의 욕망의 높이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자본이 흐르는 곳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슷비슷한 고층 빌딩들의 무의미한 복제와 확산에 대해 질문한다. 아울러 성경 속 바벨탑의 붕괴처럼 어느 순간 모래 속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마천루들의 유약함과 허상을 상징한다. ■ 이은화

Vol.20230509d | 이은화展 / LEEEUNHWA(A.k.a. Josephina Lee) / 李恩和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