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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리버스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7:00pm
리버스갤러리 REVERSE GALLERY 전북 군산시 검다메1길 72 blog.naver.com/reverse_- @reverse__gallery
길들여진 풍경, 원초적 풍경, ● 이번 전시는 양 갈래의 작업이 함께 배치된다. 작지만 2층으로 되어 있어 그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내가 2018년 이래 해온 작업들이다. 교사직을 그만두고 작업에만 전념하게 되면서 억눌려온 작업욕이 분출하면서 그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결이 전혀 다르지만, 그것들은 다 나로부터 나온 내려놓을 수 없는 작업들이다.
길들여진 풍경, ● 이 작업은 주로 촬영된 사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려진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유가 생기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산책을 하다가 문득 채집하듯이 촬영하고 그것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놓는다. 아주 재빠르게 익숙한 붓질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시 리무버로 지우거나 덧칠하고, 심지어는 찢고 다시 꿰매는 과정을 밟는다. 보는 이는 ‘왜 잘 그려놓고 그림을 훼손하느냐’고 반문한다. 불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냥 그려지기만 한 풍경이 생경하고 불편하다. 사진으로 채집해온 풍경이 그것을 이루고 있는 그림의 몸체(캔버스와 물감)속에 잘 스며들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그림으로 잘 안착시켜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풍경 그림을 훼손하는 것이다. ●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청바지를 예로 들을 수 있다. 옛날 그러니까 70년대, 젊은이들은 새 청바지를 구입하면 그대로 입지 않고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 헐게 만들고, 여러 번 빨아 물을 빼서 오래된 낡은 것처럼 만들어 입곤 했다. 나중에는 아예 그렇게 만든 청바지가 상품으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그래야 바지가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새 그림을 일부러 낡은 그림으로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풍경을 자연에서 가져와 그림으로 옮겨놓기 위해서는 그런 가공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그림들은 오랜 세월 그런 과정을 밟아왔다고 할 수 있다. 화가가 풍경을 그리기 위해서는 야외에서 드로잉을 하게 되는데, 이때 화가는 풍경을 종이 위의 그림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궁그리는 과정을 거친다. 종이와 연필의 특성이 반영되고 손의 움직임이 반영되어 최종적으로 그림이 된다. 보이는 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이런 식으로 그린 그림이 있는데, ‘집에서 바라본 풍경’의 경우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일단 캔버스에 풍경을 옮겨 놓은 후에 그런 과정을 겪는 셈이다. 그래서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캔버스에 풍경이 안착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기게 되는 것이다. 지워지고 덧칠되고 심지어는 꿰매어지면서 말이다. 미리 드로잉을 하여 그리면 드러나지 않을 과정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긴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이 생성되고 완성되어간 정보가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겨진다는 면에서 그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때로 관객이 그것을 불편해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한발만 안으로 들어온다면, 낡게 만든 청바지에서 편안해지듯이 그런 느낌을 알게 될 것이다.
원초적 풍경, ● 이상의 그림들이 있는 풍경을 마주하며 그림으로 궁그리는 관조적인 특징을 가진다면, 한편으로는 나의 생체적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는 생성적인 그림들이 있다. 이도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상 풍경으로 산수화적인 풍치에 가깝다. 그것은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이나 토속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데, 어쩌면 그것은 나의 소년기의 정서에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원초적인 충동을 담아내려 마음을 먹자, 가능한 고상스러운 태도를 털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술적이라고 여겨지는 관습화된 제스처나 태도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느껴졌다. 그로부터 벗어나려 했을 때, 이발소 그림과 같은 소박하게 그리기 방식에 이끌렸는데, 그것이 가진 조악함과 미숙한 맛은 새로운 표현의 통로를 열어준다고 느꼈다. 물론 거기엔 또 하나의 익숙한 굴레가 있는데 그것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있었다. 익숙한 표현 속에 자리하지만, 또한 익숙하지 않은 쪽으로 발걸음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었다.
몸에 밴 습관으로부터 쉽게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 놓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 안겨있던 정서와 세계가 있다. 그것은 어머니 품처럼 아주 오래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또한 퉁쳐버릴 수 있는 통쾌함을 품어낼 때, 거기에 웅크리고 있던 원초성이 힘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그 언저리를 이리저리 떠도는 중이다. ■ 김인규
Vol.20230424b | 김인규展 / KIMINGYU / 金寅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