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2:00pm~07: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인 GALLERY IN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116 201호 Tel. +82.(0)10.9017.2016 @_innsinn_
나는 과거 쪽으로 고개를 두고 뒤통수로 지금을 맞이하며 지낸다. 이제는 없는 것들이 완전히 사라질까 두려워 계속해서 뒤돌아본다. 몇몇 소중한 존재들을 아끼던 마음은 소멸과 유한성과 시간의 규칙을 미워하게됐다. 작업은 거스를 수 없을 거대한 질서를 밀어내는 시도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뒤통수로 본 세상에는 지난 장면이 겹쳐 보인다. 그것은 갑자기 출현해서 걸음마다 채이는 일상적 장면들사이에 끼어든다. 포스트잇 책갈피를 잔뜩 붙여 뚱뚱해진 책과 같은 하루가 된다. 해질녘의 적 보라색 하늘은 할아버지의 니트가 되고, 쨍한 햇빛 아래의 푸른 구름은 늙은 개가 죽어가던 것도 모르고 신나는 음악을 듣던 날의 하늘을 호출한다. 자잘하게 부서진 도로는 격주로 들리던 집의 벽지를, 뿌연 구름 아래 회색의 언덕은 움직이지 않는 개의 등을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갱신되지 않을 과거의 장면은 나타나며 지금 여기의 장면을 멈추게 한다. 나는 멈춘 장면을 게걸스레 모았다. 더 많은 장면을 기억하면 더 많은 지난 일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여겼다. 장면은 너무 많았기에 기억하기 쉬운 모양으로 바뀌었다. 디테일은 휘발되고 색들의 조합이나 선을 따라 형성된 도형, 면이 나눠진 비율 등의 조형적 요소로 남았다. 이러한 기억하는 방식은 풍경을 보는 방식, 나아가 회화를 그려내는 방법에 적용된다.
「신원 미상의 땅」은 하나의 곡선에서 시작되었다. 그 곡선은 어떤 이유나 목적 없이 화면에 나타났다. 내가 그것을 그렸다기보다는 맞닥뜨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곡선은 너무 굽지도 곧지도 않은, 눈에 익은모양이다. 곡선은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것들에서 왔다. 동그랗게 말린 개와 흙 밑의 고양이, 할아버지의 굳은 손등에서 태어나 구름의 외곽, 산등성이로 변장했다.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 그렸다. 그곳은 떠올릴 수 없는, 그려짐으로써 출몰하는 곳이다. 땅은 순간적으로 선택한 색, 붓질의 궤적, 질감 등의 우연적 효과에 기대어 그려졌다. 예측하기보다 매 순간 초면인것처럼 마주했다. 어떤 원본도 없이 그릴 요량으로 작업 안의 사건을 쫓았다. 하늘과 땅만 있던 그곳은 물과 가까이 있고, 이웃한 땅이 있으며, 구름이 낄 때도 노을이 질 때도 있는 곳이 되었다. 원본이 없는 장면은자꾸만 과거의 닮은 장면에 가닿았다. 땅은 과거를 빚진 채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앞으로 보게 될 곳을 부른다. 그곳은 시간이 아주 뭉쳐진 모양으로 도처에 있다. 도형을 빌려 보는 일은 습관이 됐다. 풍경을 주울 수 없는 상황에서도 빠르게 스치며 닿는 것들이 있다. 「별자리 드라이브」는 운전 중의 달리는 풍경을 붙들어 맨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인상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간단한 모양으로 외운 후 읊조린다. 그러나 약 한 시간의 운전 끝엔 대부분의 것이 탈락된다. 가로등 빛이 만드는 각진 선, 곡선, 몇 개의 점 그리고 하늘의 색 면으로 축소된다. 밤을 밝히는 점들을 보며 궤적을 쫓고 형상을 짐작하는 일은 하늘에서 별자리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이것이 시간과 기억의 관계와 닮았다고 느낀다. 사진을 찍을 수도, 메모를 할 수도 없는 무방비의 상태에서 풍경은 단순한 도형으로 겨우 붙잡힌다. 내달리는 시간 한가운데서 소중한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거대한 시간의 질서에는 어떤 타격도 주지 못할 만큼 작은 일이다. 수억 개의별들 중에 몇 개의 별들을 외운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떤 이는 수억 개 중 고작 몇 개로 이루어진 별자리에 기대어 지낸다. ■ 윤혜진
Vol.20230324d | 윤혜진展 / YOONHYEJIN / 尹惠塡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