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uble Retina

"때때로, 장치의 권능이 일상의 관능을 거세한다.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장치의 전략은 치밀하게 전개된다. 제3의 카메라에 육안의 권한을 대리한다. 육안은 최종 소매업자가 되고 카메라는 중간 마진을 취득하는 공급 업자가 된다. 동시대 접촉은 무거운 신체 대신 풍경을 전송한다. 전송되는 상들은 가소적이고 매끈하지만 필름 입자들은 원본이 존재하고, 무게가 있고, 복제될 수 없고, 전송될 수 없는 형태의 물질 덩어리이다. 육안과 필름은 한계를 공유한다. 한계 없이 가소적인 디지털 사진의 매끈함은 되려 비사진적이다. 사진은 그래픽을 닮아가고, 그래픽은 사진을 닮아간다. 고향이 다른 두 매체는 이미지라는 단어로 뭉툭하게 통칭된다. 무게를 지닌 필름이 담아내기 적당한 것은 업로드되지 않아도 될 장면들이다. 수요되지 않고, 전송되지 않으며, 장치를 경유할 당위가 없는. 온전히 사사롭고 비시각적인 순간들." (정영호 작가 노트 중)

정영호_Double Retina展_금호미술관_2023

정영호_Double Retina展_금호미술관_2023

정영호 작가는 기술의 발전이 인식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사진을 수단으로 동시대 환경의 이해를 시도해 왔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생각과 정보가 점점 간편하게 유통되는 현재의 소통 환경 속에서 표면 아래 존재하는 비가시적이고 이질적인 영역을 드러내는 방법을 모색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공론장에서 교류되는 의견과 같은 무형의 데이터를 3D 프린트로 조형한 후 촬영한 작업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질을 물리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정영호_Double Retina展_금호미술관_2023

정영호_Double Retina展_금호미술관_2023

이번 전시 『Double Retina』에서 작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사실의 이해와 실질적 체험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인지의 차이에 기반하여, 세상을 감각하는 서로 다른 방식의 균형과 관계를 보여준다. 대전 아울렛 화재 사고를 다룬 〈2022년 09월 26일〉은 스마트폰 화면에 보도사진을 띄워 고배율 촬영한 컬러사진과 직접 화재 현장에서 촬영한 흑백사진을 중첩한다. 이처럼 장치를 경유한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를 매체의 차이로써 대조시킨다.

정영호_Double Retina展_금호미술관_2023

픽셀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컬러사진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디지털 이미지가 스크린 위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을 실감하도록 하며, 인화지의 우글거림이 강조된 흑백사진은 작가가 직접 경험하여 체득한 촉각적인 감각을 표현한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확대된 신체 이미지와 일상에서 포착한 순간의 미세한 부분을 담아낸 흑백사진은 데이터화 될 수 없는 감각적 세계를 극대화한다. ■ 금호미술관

전시 연계 프로그램 『2023 금호영아티스트』 전시 1부 연계 아티스트 토크 - 3회차 참여 작가 : 정영호 일시 : 2023년 4월 15일(토) 장소 : 금호미술관(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8) 지하1층 전시실 신청 방법 : 홈페이지 내 구글 설문 링크로 신청

Vol.20230319e | 정영호展 / JEONGYOUNGHO / 鄭榮浩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