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정란_김정운_김종경_박경민_박능생_성태훈 윤정환_이창희_홍지윤_한경원_한우섭
기획 / 이주희(미학·미술평론·전시기획) 진행 / 김리오(갤러리 오현단길 대표)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오현단길 제주도 제주시 중앙로21길 18 (이도일동 1696-13번지) Tel. +82.(0)64.752.1112 @jeju.gallery
이번 전시의 제목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봄은 겨울과 여름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생명의 화해가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화해와 조화가 없다면 생명의 존재 역시 거짓이 되어버릴 것이지만 누군가에겐 봄의 따스함보단 바람 끝의 매서움이, 탄생의 축복과 함께 떠나간 것들에 대한 연민이 드리워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전시가 각자의 방법으로 봄에 대한 의미와 기억을 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봄에서 나아가 제주의 봄과 제주의 4월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찾고 내어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전시의 관람객께서 저와 함께 예술을 생의 업으로 삼은 이들이 제주의 봄을 어떻게 느끼고 기억하는지 나누고 표현할 수 있길 바랍니다. ● 『202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展에 참여한 12인의 작가는 모두 수묵회화·한국화·동양화를 근간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출품작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2023년에 이르는 신작까지를 포함하는데 주제면에 있어서도 전통의 사군자와 산수부터 수묵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풍경, 작가의 심상을 드러내는 작품, 수묵의 기법적 실험과 진취적 표현 등 수묵회화를 중심으로 한 동서고금의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번전시는 참여작가들의 봄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감상을 수묵회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수묵회화·한국화·동양화 이러한 용어가 포함하고 있는 현상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가치의 전승이기도 하고 오래도록 이어오는 표현매체의 미래적 변형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이러한 길목에서 그림을 나누어 보며 담소를 나누는 일이 오래도록 전승된 가치합리적 행위라고 한다면, 이러한 가운데서도 진보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화면 위에서 최선의 지성과 감성을 실현하는 것은 수묵회화의 미래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어떤 이는 밥과 국이 없으면 식사가 불편하다고 합니다. 반면 어떤 이는 밥과 국이 아닌 음식을 주식으로 삼고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갑니다. 김정란 김정운 김종경 박경민 박능생 성태훈 윤정환 이창희 홍지윤 한경원 한우섭 12명의 이번전시 참여작가는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수묵회화 그리고 수묵화가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이들 각각이 지닌 수묵화가적 현재는 재료를 다루는 기법이거나 붓으로 인한 질적 지향, 화면의 성질 또는 작가 스스로 깨닫고자 하는 어떠한 앎이거나 추구하려는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수반되는 수많은 다른 것들 역시 작가들의 삶과 그림에 작용합니다. ● 이번 『202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展의 참여작가들은 삶의 주요 요소들을 자신의 예술 양분으로 삼으면서도 세련과 경건, 자연과 자아, 정동과 정신 등 수묵화가로서의 자각과 추구를 그림에 담아냅니다. 이처럼 작가들 역시 현대인의 삶과 함께 예술을 추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전시의 관람자 역시 자신의 삶으로부터 출발하는 전시감상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를 바탕으로 하는 감각과 함께 제주의 '봄'과 '기억'에 대한 당신의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김정란의 「이른 봄의 풍경2」는 겨울의 얼어붙은 대지를 밀고 올라오는 봄의 온기를 담고 있다. 농묵 사이에서 피어나는 푸른 기운은 봄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우리에게 알린다. 매번의 순환이지만 매번의 새로움이기도 한 봄을 수묵의 농담으로 표현했다.
김정운의 「춘래불사춘」은 제3의 고향에서 봄을 맞이한 작가의 소회를 담는다. 하늘-산-바다-유채로 이어지는 화면은 편안한 구성 속에 충만한 봄의 생명력을 담고 있다. 담담하지만 꼼꼼한 필치로 일구어낸 자연은 새로운 삶을 가꾸어 나가는 작가의 염원과도 닮아있다.
김종경의 화면은 작가가 지필묵을 매개로 삼아 사유를 길러내고 가지를 뻗는 생동의 공간이다. 이번전시에 출품된 「사유의 공간」 역시 서로에게 작용하는 앞섬과 뒷섬이 있고 그 안에 균형을 잡고 일어서는 생명의 형상을 찾을 수 있다. 생동의 공간이자 사유의 공간으로 봄이 우리의 곁에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박경민의 「내 안의 풍경」은 진경이기도 관념이기도 한 풍경을 담고 있다. 작가는 봄밤에도 열렬히 피어나는 꽃망울의 생명력을 리듬감 있는 붓질의 운동으로 표현했다. 이같은 풍경은 함께 지나간 시간과 아련한 인연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도 나만의 풍경이 존재하듯 박경민의 풍경은 관람객 각각의 '내 안의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박능생의 「폭포에서의 휴식」에서 보이는 과감한 생략과 강조는 산수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특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맞으며 노니는 것은 인간이 산수를 즐겨온 오랜 방법이다. 물줄기에 몸을 담군 채 산속으로 피어나는 산세를 바라보며 그곳의 풍부한 색채를 관람하는 것 역시 산수화를 관람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태훈의 「웃는매화」에는 봄의 정령이자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매화의 꽃망울이 피어났다. 화면엔 이와 함께 작가의 그림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생동하는 '날아라 닭'과 병아리, 참새, 고양이 등의 생물들이 저마다의 동세를 보이며 그림에 활기를 더한다. 갖가지 생물들이 한데 모여 형성하는 친근함이 그림 전반에 밝은 기운으로 작용한다.
윤정환의 「평일 오후 3시의 자주괭이풀」은 일상 속에 자라난 자주괭이풀을 정밀하고도 느린 묘사로 표현했다. 작가는 일찍이 제주 들풀과 야생의 동물들에 대한 관심을 작업으로 옮겨온 바 있다. 잡초 혹은 잡것이라 불리는 작고 흔한 것들에 대한 작가의 염려가 "작은 것들을 위한 시"어로서 "새로이 눈뜨고" 활기찬 출발을 알린다.
제주의 돌담엔 유구한 사실들이 얹혀있다. 사실적이지만 담담히 자신과 주변의 제주를 드러내는 이창희의 「돌담」 역시 보이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다. 화면은 제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돌담을 목가적 풍경으로 담으면서도 수십 해의 춘래불사춘을 맞이해온 제주의 가슴 시린 봄을 연상하게 만든다.
홍지윤의 「봄봄봄봄봄」은 춘래불사춘을 맞은 작가의 흥취를 담고 있다. 작품 중앙의 큰 표현은 봄을 맞이하는 큰 마음을 담았고 주변에 조화를 이루는 작은 표현들은 하나의 기운으로 생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찾을 수 있는 "결국", "드디어 마침내"라는 문구에선 간절히 바랐던 봄을 맞이하는 이의 희망과 설렘 역시 느낄 수 있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구성이자 표현이며 시작과 끝을 맺는 기호이기도 하다. 한경원의 「할말하않」은 작가가 새롭게 시도하는 '말풍선 회화'의 일환으로 동양화의 여백이 지닌 의미와 기능을 확장해 현대적으로 제시한다.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어"라는 작가의 의중과 함께 제시된 말풍선 여백들이 관람자들에게 긴 여흥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한우섭의 「정중동靜中動)」은 작가가 자신의 근간으로 유지하고자 했던 '정靜' 영역과 화면 위에서 기법적 실험을 시도하며 나아가고자 했던 '동動' 영역의 혼재를 담고 있다. 다양한 색채와 각기 다른 종류의 붓질 거기에 콜라쥬로 거침없이 이어가는 동세를 지닌 화면은 시린 꽃샘추위 다음에 피어날 봄과 작가의 결실을 기대하게 한다. ■ 이주희
Vol.20230317g | 202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