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리컨스트럭션-제10회 아마도전시기획상 Windows Reconstruction-The 10th Amado Exhibition Award

강은희_기예린_멜라니 보나요_박예나_장서영_조효리展   2023_0310 ▶ 2023_0406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김맑음

협력 / AKINCI 갤러리_디스위켄드룸 주최,주관 / 아마도예술공간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마도예술공간 AMADO ART SPACE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길 8(한남동 683-31번지) Tel. +82.(0)2.790.1178 www.amadoart.org

당신은 업데이트 되고 있습니까? ● 잭스를 키우면서 애나가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지름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에서 이십 년 동안 존재하면서 습득하는 상식을 얻고 싶다면 그 일에 이십 년을 들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자기 발견적 방법론을 그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조립할 방도는 없다. 경험은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 이 전시는 애나가 압축되지 않는다고 믿었던 잭스의 시간이 이미 차원이 압축된 컴퓨터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애나가 키우는 디지언트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데이터 어스(Data Earth)에 살아가는 존재였고, 그것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하나의 일상이었다.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잭스가 사는 시스템 지형이 오래되어 침식되자 업데이트하지 못하는 디지언트들은 주인에 의해서 눈을 감거나 혹은 다른 형태로 이주를 시도한다. 이들이 있는 공간은 컴퓨터에서만 실재하는 곳이었고, 우리와 같은 물리적인 부피를 가지려면 또 다른 하드웨어를 활용하였다. 여기에서 잠시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컴퓨터가 발전하는 과정을 두고, 하나의 차원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철폐되는 순서를 지니고 있다고 일찍이 분석한 것을 떠올려보자. 이 압축이 이루어지는 순서에서 압축되기 이전의 차원은 은폐되고 숨겨지고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하나의 차원을 덜어내는 흐름 속에서 점차 컴퓨터는 현실의 모든 것을 완전히 압축하여 일차원적인 텍스트도 남지 못하는 숫자와 비트로만 구성되고 있다. 2) ● 이 차원이 은폐되고 숨겨지고 왜곡되는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결국 남는 것은 숫자와 비트뿐이고, 여기에는 더 이상 또 다른 차원을 철폐할 것이 남아 있지 않으니 그것 자체로 견고할 것이다. 숫자와 비트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는 바람 불지 않은 그곳에서 지금에 이르러서 현실 세계의 대안으로까지 나아갔다. 디지털 암흑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아포칼립스적인 우려에도 그것을 새로운 저장 매체에 저장하는 방안이 있으니 하드웨어가 가지고 있는 마모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잭스가 겪은 데이터 어스의 침식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자체를 마모시키고, 그것 스스로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있다면, '현실 세계의 대안'이라는 것은 결국 인류가 반복해왔던, 너무나 빛나서 눈을 멀게 하는, 또 다른 믿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자체를 반하는 동력은 매우 단순하게도 지금은 은폐된 작은 버그(bug)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에서 날짜를 보기 위해서 2038년 이후를 선택하게 되면, 갑자기 그 이후의 시간이 없는 것처럼 1970년 1월 1일로 돌아가는 오작동이 이따금씩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버그의 원인에는 '유닉스 시간(Unix Time)'이라는 소프트웨어 자체의 시간체계가 있다. 대부분 컴퓨터 운영체제의 기반이 되는 이 시간체계는 1970년 1월 1일 00:00:00시부터 계속 흐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윈도우에서 흔히 보는 32비트 부호 정수형은 2의 31승에서 1이 빠진 2,147,483,647까지 최대값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 값을 넘어서면 이제 32비트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거나 오작동한다. 시간이 멈추는 셈이다. 그래서 2038년 1월 19일 3시 14분 7초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 32비트 유닉스 시간은 그것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돌아가는 오버플로(overflow) 버그를 택하기도 한다. 이 처음 값으로 돌아가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작동의 순간들을 안고 돌아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버플로 시점에 다다르기 전에 유닉스 시간은 32비트의 세계를 마모시키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가 닳아 없어지는 것만 보았지만,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도 또 다른 시간체계로 금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비트의 시간이 가진 끝은 명징하다. 이에 대해 해결책이라 할 수 없지만, 소프트웨어 아키텍처가 할 수 있는 것은 큰 비트의 시간체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새로운 아키텍처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곳에도 분명히 끝이 있지만,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디지언트들의 이주처럼, 끊임없이 소진되고 새로 지어지는 터전처럼, 인류가 자손으로 이어 나간 역사처럼,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처럼, 운영체제의 계속되는 업데이트처럼 말이다. ● 어쩌면 동시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디어의 신화는 영원히 빛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나가는 동력, 즉 시간체계를 스스로 수반하고 있기에 오래될수록 그 근본부터 오작동으로 부서지고 흔들리고 깜빡이는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의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그 숫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조효리_Behind_Ahea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종이_145.5×112.1cm_2020

자동으로 동기화되도록 설정된 시간을 잠시 "끔"(Set time automatically "off")으로 변경해보자. 시간의 낙차는 버그를 만들어내고, 빛나는 모니터는 블루스크린이 될 것이다. 이 블루스크린을 기준으로 뒤(Behind)와 앞(Ahead)을 함께 살펴본다. 조효리는 시간을 풍경처럼 인식하는 인디언들의 이야기처럼 가상과 현실의 시간을 하나의 풍경으로 구현한다. 워터마크처럼 있는 "Your Clock is BEHIND / Your Clock is AHEAD"는 컴퓨터의 시간이 현재가 아닌 먼 과거나 미래로 잘못 설정되어 있을 때 뜨는 오류 문구다. 뒤와 앞, 앞과 뒤로 나뉘는 시간의 풍경은 해가 뜨고 지는 다른 시간대로 존재하지만, 그것의 선후 관계에 대해서는 분명히 구분할 수 없다.

멜라니 보나요_진보 대 퇴보_단채널 HD 영상_00:54:37_2016

이 시간의 풍경은 어쩌면 디지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기술 발전 역사가 반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일 수 있다. 노인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맞닥뜨린 젊은 시절의 기억은 마치 냉동된 듯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멜라니 보나요는 이 역사에서 반복되는 진보와 퇴보의 양가적인 모습을 한 세기를 살아온 노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낸 터전은 사회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해서 모든 미디어를 업데이트한다. 하지만 그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보다 늦은 속도로 그 업데이트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내세를 믿지 않는다는 공통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끝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지하고 이 변화의 속도에 어떻게 다른 속도의 응답을 하는지 보여준다.

강은희_Dear Freeze_단채널 영상_00:20:30_2023

강은희의 작업은 냉동 난자의 목소리를 통하여 흔히 컴퓨터 상 응용 프로그램이 멈추는 것을 뜻하는 마우스 포인터(spinning wheel of death), 실시간(real time)으로 예측하는 장치, 과거와 현재가 함께 병기하는 시간 기록장치(Chronological device) 등을 통해 여러 형태의 시간을 교차시킨다. 분명한 것은 이 시간은 미래를 담보로 하는 냉동 난자의 시간과 다르지만, 그 격차를 통해서 움츠러들고 압축된 시간(frozen time)이 녹기 전에 어떠한 이야기들에 주목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블루스크린은 다시금 무엇인가가 태어나기 위한 시간일 수도 있다

장서영_스키드_단채널 영상_00:13:52_2022

블루스크린 위에서 운영 체제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을 동기화를 해제한다면, 장서영은 빠르게 만료되고 갱신되는 현재의 속도와 그것에 따라가지 못하는 신체에 주목한다.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세상은 물리적으로 노화되는 신체에게는 박리되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해야 되는 곳이고, 그 속도로 인해서 도로면의 스키드 마크처럼 마찰하게 된다. 오래된 신체는 축약되는 텍스트처럼 보다 가벼운 신체로 변환되면서 보다 빠른 속도를 쫓는다.

기예림_Versatile Dynamics_나무_가변크기_2023 기예림_Night Poles_혼합재료_120×165×42cm_2023

여기에서 노화되는 것은 사실상 우리의 신체뿐만은 아니다. 블루스크린을 걷어내고 그 아래를 앞에서 뒤로 살펴본다면, 전시 공간에 관입한 악세스 플로어(Access Floor)를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이 하부 구조는 랜선이나 전선과 같은 기반 공조시설을 바닥 아래에 배치하고 지면에서부터 일정 거리를 띄워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건축 구조물이과 동일한 사이즈로 제작된 이곳은 측면에서 그 구조의 골조를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며, 통상적인 철재가 아닌 목재로 제작되어서 올라갔을 때 삐걱거리고 흔들리는 모습을 구현한다. 기예림은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현실의 운영체제가 필요로 하는 숨겨진 인프라스트럭처를 바깥으로 드러내고, 그 사이사이 육분의와 제도 장비에서 착안한 조각이 배치하면서 이 구조 위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박예나_발굴_혼합재료_가변크기_2022

이 인프라스트럭처는 구조적인 형태도 있겠지만 일찍이 살펴보았던 기술의 발전에서 지속적으로 탈락되고 있는 모든 인공물의 형태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것에서 버려야하는 것은 모든 과거의 것들일 것이다. 박예나는 인류의 물질적 발전이 예전에 발명된 이 인공물들에 집약되어 있다고 보며, 각각의 것들이 하나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일견 버려졌다고 생각되기 보다는 가상에서 더욱 그러하듯이 각각의 객체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의 부피감을 구성하면서 공간들은 이들이 채워진 상태이고, 사람들은 땅 속 지하세계와 같이 가득 차여진 이곳에서 과거를 발굴한다. 그리고 두 개의 구멍을 통해서 또 다른 믿음의 신화로 다져진 '땅'을 흔든다. ●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고 있다. 1975년부터 사용이 승인된 연와조와 세멘벽돌조의 건물인 이곳은 1970년부터 시작되는 유닉스 시간이 함께 궤를 같이하며 시간을 체화하고 있다. 이 과거가 쌓인 삐걱거리고 벗겨지고 있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 안에서 압축된 시간에서 시작해 블루스크린에서 태어나, 석유를 마시면서 가속하며, 미디어의 신화에 멀어버린 눈은 위치 감각을 상실하고, 남겨진 인공물 껍데기들의 안에서 우리도 눈을 감고 그것의 일부가 되어 흔들리는 데이터 어스를 느낄 수 있지 않는가. ● 그렇게 우리의 미래는 소진될 것이다. 단지 그 끝에서 오버플로 되어서 다시금 제목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이러한 질문이 화면에 뜰 것이다. ● 당신도, 이곳처럼, 재건축되고 있습니까? ■ 김맑음

* 각주 1) 테드 창,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서울: 북스피어, p. 181. 2) 프리드리히 키틀러,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 윤원화 옮김, 서울: 현실문화, pp. 345-346.

Vol.20230310f | 윈도우 리컨스트럭션-제10회 아마도전시기획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