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23_0318_토요일_04:00pm~06:00pm
기획 / 반이정(미술평론가, 아팅 디렉터)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팅 arting gallery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길 13 2층 @arting.gallery.seoul
규격이 작은 그림을 옹기종기 모은 전시회는 새로울 게 없이 비일비재하다. 작은 그림전은 곧잘 여하한 기금마련전의 단골 기획물이기도 한다. 출품작들을 연결 짓는 공통 주제는 없으며, 부담 없이 미술품을 구입하려는 관객의 사정을 고려해 무수한 작은 그림들로 구성하는 게 이런 전시들의 배경이기도 하다. ● 그림을 벽면 가득 다닥다닥 붙이는 설치 방식 또한 새롭지 않다. 17~19세기 후반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은 장식적인 벽에 그림 사이즈와 무관하게 네모진 액자 그림을 벽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바짝 붙였고 천정과 맞닿는 벽까지 그림을 매달았다. 오늘날의 갤러리와 미술관처럼 흰 벽에 그림들을 간격을 띄워 한 줄로 늘어놓는 설치 규범은 반 고흐, 고갱, 세잔, 쇠라의 작품을 대여해서 1929년 개관전을 치룬 뉴욕 현대미술관(MoMA New York)의 전시장 디자인을 시조로 본다. 그렇지만 2000년을 전후로 전근대기의 살롱전처럼 벽면 가득 여러 그림을 거는 게 나름 '힙한 설치'처럼 유행했고, 구입 의사가 있는 잠재 고객에게 여러 점 가운데 선택하도록 작은 그림을 벽면 가득 채우는 자칭 타칭 아트 페어형 전시들도 있다. ● 작은 그림은 큰 미술품 앞에서 느꼈다고 회상할 때 곧잘 쓰이는 수사법, '미적 압도감을 받았다'는 표현과도 거리가 있다. 비좁은 부피의 화면에 복잡한 서사를 담자니 난감하다. 때론 대상의 전체 중 부분만을 담는 경우도 흔하다. 이 같은 취약점에도, 작은 미술의 미덕은 상대적으로 낮은 작품 가격 너머로 미적인 변별점을 두루 지닌다. 작은 미술은 과유불급하지 않고 핵심을 바로 내놓는 진솔함이 있다. 큰 그림보다 제작 시간이 짧아서 순발력과 신속한 마감 차원에서도 소품만이 누리는 독보성이란 게 있다. 드로잉이 특히 그렇다. 협소한 사이즈라는 제약된 조건은 작은 미술로 하여금 고유한 독창성을 발견하게 만든다. 아팅의 기획전 제목은 같은 음절을 세 번 반복한 『미미미美微未: 작은 미술 세계』인데, '작지만 아름다운 작품의 앞날'정도의 뜻으로 봐주면 되겠다. 초대작가 6명은 작은 규격이라는 제약된 조건에서 자기만의 작은 미술의 차별점을 발견한 경우라 하겠다.
김을(1954). 예술 창작의 고충을 동료 미술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언어유희와 자기 캐릭터를 고안해서 간략하고 작은 드로잉 연작으로 제시한 그는 한국미술계에서 '드로잉'이란 하위 장르의 유행을 선도한 일군 중 한 명이다. 드로잉과 연관되는 속성(단색, 가변 크기, 일회성, 원작 에스키스, 신속함)을 구현한 모든 장르의 미술품을 드로잉이란 범주로 업계가 합의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수십 년도 훨씬 넘어 세월의 켜가 쌓인 유리액자에 작은 드로잉을 끼워 이번 전시에 출품했다. 경기창작센터 파일럿프로그램 입주작가(2009), 베이징 PSB레지던시 입주작가(2010)에 선정되었고, 올해의 작가상 선정 작가(2016) 이중섭미술상 수상(2018)을 받은 대기만성형 원로다.
이윤엽(1968). 판화는 주류 미술판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작다. 선 굵고 흑백이 명료한 목판화가 1980년대 민중미술계에서 유행한 바 있지만 그 이후 현장에선 사라지다시피 했다. 유일한 예외인 이윤엽은 간결한 흑백과 단조로운 구성의 목판화로 강한 첫인상을 남긴다. 정치적 신념이 선명한 작품이 많지만, 그마저도 앙증맞은 조형적 장치를 함께 지녔다. 간결하고 단순한 색채와 구성. 그것도 작은 미술의 미덕이다. 구본주상(2012) 수상자다.
이정배(1974). 두께를 지닌 점에서 부조 입체작품 같지만 돌출된 형상이 없는 점에선 평면 회화 작품과 혼재된 새로운 미술을 제작한다. 이정배가 재현한 대상은 세계 명승지들을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려 본 조감도를 옮긴 것이기도 하고, 한강변에 줄지어선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관악산을 옮긴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구체적인 스토리를 알아차릴 사람은 없다시피 할 게다. 그가 내놓은 작품은 해석의 단서가 최소한만 담고 있다. 간결한 형태 단순한 채색. 예술의 심연을 감식하고 공감하는 건 극소수만의 몫임을 작가가 알아서 일까. 송은문화재단 선정작가(2006), 중앙미술대전 우수상(2011),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의 Art OMI International Art Residency Program(2013) 등에 선정된 경력이 있고, 현재 아라리오갤러리 전속작가로 있다.
강세리(1975). 모자이크는 화면을 구성하는 작은 점이 본질이다. 최소 단위들의 총합으로 미적 완성체를 만드는 장르가 모자이크다. 첫 전시 때는 유기체의 내부나 세포 분열의 순간을 클로즈업으로 묘사한 것 같은 무정형을 화면 가득 밀도 있게 옮긴 모자이크 작업을 냈다. 혹은 수직선과 수평선이 교차하는 기하학적 구조를 다시금 촘촘한 모자이크로 제작했다. 밑그림 없이 시작해서 작가 자신도 예상 못한 형상에 이른다는 강세리는 고작 1-2년 만에 여백과 모자이크의 점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신작 모자이크를 제작하고 있다.
최명숙(1982). 무분별하게 자라난 나뭇잎과 가지들, 혹은 폭발하듯 발산하는 나무 혹은 숲을 화면에 질서 있게 배치한 풍경화를 그려온 최명숙은 큰 작업을 한다. 보라색와 파란색의 이파리와 가지가 뒤엉킨 숲 그림도 있고, 그물망처럼 보이는 풀잎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똬리를 튼 비현실적인 숲 혹은 나무 풍경도 있다. 큰 풍경 화가가 불현듯 풍경 전체에서 부분을 옮긴 소품 회화를 제작했다. 의정부 예술의전당 신진작가에 선정(2017) 되었고, 유중창작스튜디오(2015) 이중섭창작스튜디오(2019) 우도창작스튜디오(2022) 등에서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있었다.
주보람(1994). 미대를 졸업한 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외부활동보다,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비단 코로나19와 대면접촉 금지 문화가 아니었어도, 주보람은 내면의 미감을 밀도 있게 재현한 작업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감각적인 색채 감각, 네모 세모 원형처럼 기본 도형들을 제 멋대로 조합하거나 채색해서 독보적인 작은 작업을 만들고 있다. 그녀가 쓰는 화면은 비좁고, 화면에 그어진 줄은 실선에 가깝게 가늘며, 여러 단색 혹은 다색 줄의 총합으로 자신만의 작은 미술 세계를 형성했다. 주보람을 처음 만난 날, 창작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물었고 그녀는 '네'라고 답했다. ■ 반이정
* 제한된 지면에 약술한 초대 작가들의 밀도 있는 작은 작품 세계의 이해와 작가들과의 대면자리를 위해, 작가대화(2023.0318.토. 16시 아팅)를 마련했다.
Vol.20230305e | 미미미美微未: 작은 미술 세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