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과 변혁: 섬뜩함에 대하여

더원미술세계 2023년 3월호   March Vol.11

더원미술세계 THEONE ART WORLD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24 4층 Tel. 070.4289.3397 theoneartworld.kr

균열과 변혁: 섬뜩함에 대하여 습기를 머금은 시든 잎을 겹겹이 뒤집어 쓴 채 앉아있는 기괴한 형상. 머리카락처럼 늘어진 잎은 고통의 눈물이나 피처럼 흘러내려 눈앞을 가로막는다. 바닥이 곧 갈라질 것처럼 불안하게 무릎 꿇은 도자 작품을 바라보면, 졸인 설탕처럼 달라붙은 고통과 멜랑콜리함이 느껴진다. 기이하고도 경건하게 보이는 김명주의 「플레잉 블라인드(Playing blind)」는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에 기거하는 섬뜩함을 불러낸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기획전 『친숙한 기이한』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작품들은 재난과 질병 등 예측할 수 없는 삶을 환기시키고, 일상 깊숙이 잠재된 불안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카위타 바타나얀쿠르의 「염색」은 화려한 실크를 만들어내는 저임금 방직 여성 노동자의 고통을 직조와 염색이라는 반복된 몸짓으로 그려낸다. 어릴 적 들었던 젓가락 행진곡의 선율을 따라 걸으면 안락한 공간에 들어온 듯 전시장 벽면에 집안의 풍경이 펼쳐진다. 어두운 공간에 깃발처럼 휘날리는 이미지들과 천장의 거미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기 묘한 직선들. 문소현의 「흩어진 집」과 손몽주의 「긴장보행」은 친숙하지만 섬뜩한 공간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반려동물 납골당 사진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잔인함, 파울 첼란의 시 '죽음의 푸가' 앞에 놓인 거세 당한 남근과 끊임없는 욕망을 상징하듯 검은 비닐에 쌓인 검은 덩어리들. 이 작품들은 우리를 둘러싼 친숙한 일상 속의 어둠을 보여준다. 해파리 유전자를 심은 화려한 빛깔의 관상어와 도롱뇽 유전자로 자라나는 손가락, 다양한 유전자 조작 식물들. 생명공학 기술이 만들어 낸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생명체 조작의 섬뜩함을 드러낸다7. 개 인공지능 두상이 설치된 공간으로 들어가면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를 굴리는 신기하고도 기묘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친숙함에 다가가 말을 걸면 7개 로봇이 거의 동시에 대답해 화들짝 놀라게 하는 이 작품은 불쾌한 골짜기에 빠진 듯 두려움을 선사한다. 집, 존재, 기술 세 가지 주제로 불안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이 전시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고민을 촉구한다. 이 전시에서 보여주듯 불안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잠재돼 있다. 밥을 먹고 일을 하는 반복된 삶, 친숙한 이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은 재난과 질병, 전쟁 등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편리한 기술 이면에 얼굴을 숨기고 섬뜩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불안은 눈앞을 스쳐 간다. 코로나19로 인해 줄어들었던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 아프리카 등 지구 남반구의 가난한 국가에서는 대홍수 등 재난이 속출했고, 새해의 기대감이 가시기도 전에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4만명을 넘어섰다. 물가와 금리는 치솟아 서민들의 숨통을 조이고, 아직 끝나지않 은 전쟁과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위기는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침체된 일상을 회복하는 동안 불안은 우리가 딛고 선 땅에 크레바스처럼입 을 벌리고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는 사회·경제적으로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일 어나는 사회 정치적 혼란, 전쟁,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환경 생태적 재난 등은 그 징후이다. 대전환기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전 망, 혼돈과 불안이 혼재된 시기다.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변혁의 시대는 익숙한 현실에 균열을 일으키고 '섬뜩함(Uncanny)'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상은 최근 미술 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Special Feature에서는 급속한 변화와 위기에 직면한 현대인의 불안, 익숙한 세계가 파열되는 균열에 대한 경계, 4차산업혁명의 가속화로 인한 두려움, 새로운 세계로 전환하고자 하는 욕망, 미지의 세계에 대한 미학적 탐구 등을 볼 수 있는 다양한 미술전시(작품)를 조명한다. 첫 번째는 언캐니(Uncanny)의 어원과 그 사례를 추적한 한의정 교수의 글을 통해 낯설고도 기이한 작품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본다. 두 번째는 『친숙한 기이한』을 기획한 박한나 학예연구사의 글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전환기, 불안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기와 지혜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본다. 세 번째는 안진국 미술평론가의 글을 통해 우리를 불쾌한 골짜기에 빠뜨리는 AI 로봇의 존재에 대해 깊이 탐구해본다. 네 번째는 정찬용 큐레이터, 박종욱 · 황규민 작가와의 대담을 통해 지역청년 작가들의 기이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에 대해 들어본다. 마지막으로 길보영 3D아트디렉터를 만나 언캐니한 이미지가 상업적인 브랜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본다.

016   EDITORIAL

FOCUS_좀비 공화국 『좀비주의』
FOCUS_물의 지정학: 초월하는 경계

018   FOCUS

ARTISTS_마우리치오 카텔란
ARTISTS_추수

ARTISTS 028   박용인 정제된 색조의 이국적 풍경 l 이경모 036   박진흥 흙결의 시간, 그리고 목련 l 엄선미 042   마우리치오 카텔란 우습지만 웃을 수 없는 팩션 l 전세운 048   페터 바이벨 미디어라는 새로운 감각기관 l 전세운 054   추수 표현하는 자로서의 본분 l 이도준

SPECIAL FEATURE
SPECIAL FEATURE_균열과 변혁: 섬뜩함에 대하여

SPECIAL FEATURE 062   균열과 변혁: 섬뜩함에 대하여 l 김수은 064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언캐니 l 한의정 070   친숙한 기이한: 정면에서 바라보기 l 박한나 076   기이한 반사체: 닮은 꼴의 불쾌함 l 안진국 082   정찬용·박종욱·황규민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이상하다 l 김수은 090   길보영 스펙터클에 스민 낯선 시선 l 이도준

SPACE 098   동시대 예술과 사회를 밝히는 문화공간         부산현대미술관 l 김수은

ART WORLD_INDONESIA

ART WORLD 106   HONGKONG         『Yayoi Kusama: 1945 to Now』 l 앤드류 램 110   INDONESIA         『ARTINA·SARINAH - ARTINA #1: WASTU/LOKA/KALA』 l 피르다 아멜리아 114   JAPAN         『YOKOO TATSUHIKO: BEYOND THE REALM OF MEDITATION』 l 미야타 테츠야

SERIAL 119   정해광의 아프리카 미술과 문화5         은도에 두츠 124   이은화의 유럽미술관 산책         뭉크와 니체를 품은 컬렉터의 집 티엘 갤러리

ISSUE_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재개관

ISSUE 132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재개관 l 전세운

REVIEW_그들은 어떤 생명성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가?
REVIEW_평면 위에 펼친 두 편의 곡예술

EXHIBITION 140   REVIEW 152   PREVIEW 154   NEWS 156   BOOK 157   POSTSCRIPT 158   SUBSCRIPTION

Vol.20230301d | 균열과 변혁: 섬뜩함에 대하여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