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하는 __ sonorifaction

윤희수展 / YOONHEESOO / 尹煕琇 / installation.sculpture   2023_0117 ▶ 2023_0205

윤희수_감각의 발굴 조사_금속, 주석, 혼합재료_76×180×25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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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수 홈페이지_heesooyoon.com 인스타그램_www.instagram.com/heesooyoon_studio

초대일시 / 2023_0117_화요일_02:00pm

관람시간 / 10:00am~05:30pm

갤러리 H GALLERY H 서울 종로구 인사동9길 10 Tel. +82.(0)2.735.3367 www.galleryh.online blog.naver.com/gallh

진동과 촉각 그리고 몸에 새긴 기억 ● 심심할 때면 사회과 부도를 펼치곤 했다 세계 곳곳에 대한 정보를 읽고 오감을 동원해 그곳을 상상했다. 나는 순식간에 교실 앉은 자리에서 산소가 희박한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매연이 가득한 델리의 거리로 날아갔다. 이런 상상 여행이 힘든 곳은 바다였다. 책은 넓은 푸른색으로 바다를 표시했지만 육지에 비해 지명도 듬성하고 관련 정보도 많지 않았다. 직접 경험한 바다의 기억을 보태도 그곳은 여전히 알 수 없어 무서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찬탄하는 윤슬은 바다의 표면에서 반사된 빛일 뿐 바다의 속을 좀체 보여주지 않는다. 맨몸으로 그 속에 들어가 본들 불과 수 미터 바깥도 빛이 닿지 않아 시거리가 짧다. 압력, 호흡의 문제도 있다.

윤희수_Barnacle unit 1, 따개비 1호기_ 금속, 녹음장치_지름 600cm, 지름 400cm_2022
윤희수_Barnacle unit 1, 따개비 1호기_부분

나는 아직도 바다를 상상하면 검은 구멍이 먼저 떠오른다. 지구상 가장 깊은 바닥이라는 마리아 나 해구는 최근 년 사이에 겨우 두 번의 유인 탐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바다는 내가 딛고 있는 땅과 연결된 존재이지만 어떤 면에선 달보다도 먼 곳이다. ● 몇 년째 바다의 소리를 녹음해 온 윤희수는 스스로를 소리 채집가라 설명한다. 바다를 탐사하기 위해 그의 신체를 대신하는 장치는 콘택트 마이크다. 콘택트 마이크는 액체나 고체 등 매질에 직접 접촉해 그 매질에 울리는 진동 자체를 전기신호로 저장한다. 물은 공기에 비해 밀도가 높 아서 음파가 수배나 빠르게 전달되고 낮은 음역대의 소리(낮은 주파수의 진동)가 크게 손실되지 않고 멀리 나아간다. 그가 그렇게 바다에서 채집한 소리는 수백, 수천 미터 바깥의 어떤 존재가 발신했거나 그들끼리 부딪쳐서 낸 낮은 진동부터 다양한 기포 소리, 바다 표면 근처의 배 모터 소리, 부서지는 포말 소리까지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윤희수_The process of tracking waves_영상_00:10:00_2022
윤희수_Constanța_sensor light_금속, 주석_180×40cm_2022

채집한 바다 속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 청각을 쓰는 일이다. 그러나 제 표면의 털로 저주파의 소리 혹은 진동을 감지한다는 바닷가재를 잠시 떠올려 보자.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듣기, 그러니까 공기가 아닌 바다 속 진동을 녹음해 증폭해서 듣는 행위는 새로운 감각기관을 상.상하게 하고, 이때의 청각은 촉각까지 확장된다. 작가는 본인의 행위를 '소리 채집'으로 간단히 소개하고 있지만, 전후 과정을 살펴보면 이 행위는 청각과 촉각 등 신체의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나를 둘러싼 환경을 새로이 감각하는 것이 된다. ● '소리 채집'의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시각은 전시장에서 조각의 형태로 귀환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 『Sonorifaction, 부동하는 ___』에서 'Sonorifaction'은 소리를 뜻하는 라틴어 'sonor'와 석화(石化)란 뜻의 영어 'petrifaction'을 합성한 단어다. 소리의 화석화라는 의미쯤 된다. 채집한 소리를 편집하기 위해 매만지고 여러 번 다시 들으면 신체를 통과하는 소리와 진동을 어느새 몸이 기억하게 된다. 자기 신체에 남겨진 이 기억을 어떻게 다른 이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흐르고 이내 소멸을 반복하는 소리의 기억. 이를 전시장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는 금속을 긁고, 자르고, 녹이고, 붙인 조각으로 기억의 순간들을 재구성한다.

윤희수_snagov_금속, 주석, 센서등_150×30cm_2022 윤희수_Brașov_센서등, 금속, 주석_50×30cm_2022
윤희수_Drawing as experimenting with deep sea space frequencies_ 금속, 주석, 사운드 장치, 모터 라이트, 워터 펌프 모터_70×890cm_2023

다섯 개의 직사각 판의 형태인 작품 「Drawing as experimenting with deep sea space frequencies」(2022)는 넓은 바다에서 채집한 다양한 소리의 촉각적 질감 그리고 물 속 진동과 그 동세를 떠올리게 하는 추상적 형상을 표현한다. 때로 형상 군데군데에선 기억이 불러낸 짧은 문장의 시구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금속판에 강한 진동을 주어 긁어 새긴 것이다. ● 이어 올해의 신작 「___」(2023) 은 이전 작에 비해 비정형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나사로 체결해 다양한 높이로 솟게 만든 금속과 레진의 부분들은 바다 속 소리가 신체에 남긴 기억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그 형태는 언뜻 지도의 등고선이나 땅의 지층 단면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작업은 공간과 시간의 경계가 분명한 이미지라기보다는 순간의 감각들이 부유하는 기억을 재구성한 장면(scene)에 가깝다. 그러니 감상자는 다양한 감각적 상상을 동원해 작품의 어느 지점부터 보아도 좋고, 부분과 부분을 굳이 연관시키지 않고 각 부분대로 천천히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윤희수는 지난 몇 년간 바다를 생경한 세계로 상정하고, 소리를 채집하는 방식으로 탐사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본인에게 남긴 흔적과 기억을 조각으로 이어왔다. 첫 개인전(2021)에서 그는 미지의 세계이더라도 그것의 근원이 일상적 감각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해 존재하는 것들을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었다. 나에게 검은 구멍과 두려움으로 떠오르던 바다는 이제 작가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감각과 존재를 상상하기, 그것들이 나에게 남긴 진동의 기억으로 조금 더 구체화된다. ■ 박상은

Vol.20230117c | 윤희수展 / YOONHEESOO / 尹煕琇 / installation.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