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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고양문화재단 후원 / 고양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고양아람누리 갤러리누리 Goyang Aram Nuri Gallery Nuri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286 B3 4전시장 Tel. +82.(0)31.960.9633 www.artgy.or.kr
불안을 온전히 읽는다는 것 ● 상충하는 두 단어로 글을 열어본다. 내가 불안을 맞닥뜨리는 것은 - 수많은 상황이 있지만 그것을 말할 수 있을 때를 꼽자면 - 제어력을 상실하는 순간이다. 프로이트는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아가 보내는 신호를 불안 1) 이라고말한다. 그다음으로 불안을 곱씹는 것은 그것을 직시할 때다. 흐트러졌던 정신을 가다듬고 불안을 고스란히 마주하는 '그 순간'이 지나야 불안이라는 것이 단어로 보인다. ● 이 불안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불안한 정체를 부정하는 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것을 애초에 파괴하려는 자가 있고, 이를 고요히 품기로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대체로 마지막에 마음이 가는데,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곪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존재의 유한함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키에르키고르의 말을 삼키고, 불안 앞에 서기 위해서는 자신을 대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할만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하이데거의 말 2) 을 방패 삼아본다. 잠 못 들고 깨어있는 그녀를 다독이고 싶어서.
내가 수년간 '키키'에게 마음을 쏟는 이유는 그녀의 독백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 반가워서다. 만나는 햇수가 쌓여 그녀의 일상을 멀리서부터 가까이의 순서로 톺아보았다. 색의 변화가 뚜렷한 점이 그 개인적인 서사를 더 자극한다. 내가 키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붉은빛 세상에 담겨 있었다. 그때 그녀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고 단단히 말했고, 서울을 떠나 설레하였고, 해를 거듭하는 봄을 오롯이 감각했으며, 그 속에서 익숙함을 찾았다. 기다릴 대상도 있었다 3) . 그 뒤, "괜찮아(I am fine)"와 "난 틀렸어(I am wrong, I am worng)"사이 4) 에서 방황하던 시기를 지나, "창작은 가치 없고 쓸모없는 것" 5) 이라는 자조를 섞었다가 이곳에 왔다. 키키는 이제 온통 푸른 빛 세상에 둘러싸였다. 서정배는 매 순간 흘러가는 감정을 글로 옮기고, 글로부터 분위기(Stimmung)를 채집하여 타자화된 인물과 설치물이라는 표상으로 세상에 말을 건넨다. 그래서 보는 이에게 새파란 아우라의 근원을 좇아야 할 것 같은 강박을 일으킨다. 무엇이 이토록 쓸쓸할까. ● 이번 전시 『불안에 대한 원근법』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설치 작품에 모두 등장하는 파란 나무가 특히 눈에 밟힌다. 애니메이션 Insomnia-Dream(2022)에서 키키는 연기를 매개 삼아 떠났다-돌아오기를 되풀이한다. 한 줄기의 푸른 빛을 따라 안으로-혹은 밖으로 떠나지만, 자꾸만 떠내려온다. 벗겨진 구두 한 짝을 뒤로하고 다시 푸른 빛을 쫓는 키키에게서 무기력을 감지했다. 구두를 잃고 손에 쥔 파란 나무는 전시 속 설치물로도 등장하여, 마치 카메라 앵글을 똑바로 보며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누벨바그 영화 주인공처럼, 우리를 순식간에 전시장 안의 나 자신으로 '낯설게' 위치시킨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파란 나무를 중심으로, "깨어있어도 잠든 것"과 같이, 그리고 "잠들어 있어도 깨어있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녀처럼 혼동과 착각을 반복하는 것이다.
서정배의 작업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긴장감을 품고 있는데, 이번에도 늘 그렇듯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다. 그간 키키를 한 공간에서 파편적, 병렬적으로 만났다면 이번에는 시간의 선형적인 흐름을 따라 한 명의 온전한 키키를 만날 수 있다. 얼굴과 몸을 가리는 몸짓은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 하는 듯하고, 불안함을 애써 감추고자 표정을 심드렁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돌아보니 더 능동적인 위치로 자신을 부풀려 보인, 다소 공격적인 것 6) 으로, 붉은 나무가 있던 곳의 키키가 다시 보였다. 파랑을 손에 쥐고-흘려보내는 지금의 키키는 '공격조차 떠올릴 수 없는 절박에 몰린 것' 7) 만 같다. 다시 만난 그녀는 마치 어둠 속에 꼭꼭 숨겨야 하는데 자꾸만 의식으로 번져 나와 숨기고 싶은 나의 불안처럼, 구부정한 몸짓으로 배회하여 내 마음을 불편(unheimlich) 8) 하게한다. ● 파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많은 이론 중,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을 꺼낸다. 슈타이너는 파랑을 '외경심'으로 이해했다 9) .두려움과 공경심이 뒤섞인 색으로 키키의 불안을 헤아리고 싶다. 이번에는 두터운 층위의 불안 중에서, 장점과 단점, 사랑과 증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은 언제나 공존한다 10) 는 것을 무표정으로 읊조리는 휘어진 지층의 단면을 살피는 것이다. '불안'을 다시 읽어 보자. 불안은 멀리서 보니 나의 온전한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나는 그 그림자를 의식에서 만나는 정지된 시간마다 경외로운 마음을 가질 것이다. 구두를 잃어도 자꾸만 돌아오는 키키가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처럼, 흩어진 불안이 하나의 소실점에서 만난다. 불안이 단어로 보이기 시작했다면, 오늘은 깊은 잠이 들 수 있기를 바란다. ■ 김유빈
* 각주 1) 지그문트 프로이트,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황보석 옮김(파주: 열린책들, 1997), 268. 2) 김수현, 「'초현실주의와 퍼포먼스 예술에 나타난 '불안'의 전이」,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제12집(1999): 90. 3) 서정배, 「4월, 다시 4월」, 『스튜디오 화이트블럭 제4기 입주작가전』, 도록(파주: 아트센터화이트블럭, 2018), 36-37. 4) 임은신, 「블루이쉬 랩소디 Bluish Rhapsody」, 서정배 개인전 전시 서문, 2022년 6월, www.seojeongbae.com/bluish-rhapsody 5) 서정배, 작가노트, 2019 6) 김수현, 「'초현실주의와 퍼포먼스 예술에 나타난 '불안'의 전이」, 109. 7) 같은 책, 110. 8) 익숙함에서 낯설음을 발견할 때의 심리적 공포. 정신분석학에서는 '꿈 속에서조차' 어렴풋이 기억하는 트라우마가 꿈 밖에 표출되어 회귀할 때를 말하고, 영어로는 언캐니(uncanny)로 번역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정장진 옮김(파주: 열린책들, 1996), 440-423. 9) 박성봉, 『감성시대의 미학』 (서울: 일빛, 2011), 143. 10) 서정배, 『검은담즙』 (2018), 10-13.
불안(不安, anxiety)은 "편안하지 않고, 조마조마한 것"을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불안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감정을 자주 느끼고 산다. 편안한 듯 한 날도 무엇때문인지 조마조마한 감정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 포르투갈의 문인 페르나도 페소아(Fernando Pessoa)의 '불안의 서'에는 페소아가 묘사한 '불안'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감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꿈과 먼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 원하는 삶에 대한 욕망, 그 앞에서 무력한 '나', 알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현상으로 인한 편안하지 않은 것에 대해 페소아는 솔직하게 말한다. '내일'을 모르는 우리는 어쩌면 그런 감정을 종종 느끼며 살아가고, 나 역시 내가 느끼는 '이유없는' 불안들에 대해 시각화하여 내것이 아닌 것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 페소아는 '나는 잠들고 잠들지 않는다'라고 그 책에서 쓰고 있다. 그의 말처럼 깨어 있어도 때때로 잠든 것처럼, 잠들어 있어도 깨어있는 것처럼 그것을 '불안'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삶 속의 '불안'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당연한 하나의 감정이 아닐까... (2022) ■ 서정배
Vol.20220622f | 서정배展 / SEOJEONGBAE / 徐正培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