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10409g | 임동승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아트레온 갤러리 선정작가展
후원 / (주)아트레온 주최 / 아트레온 아트센터 기획 / 아트레온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레온 갤러리 Artreon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129 (창천동 20-25번지) B1,2 Tel. +82.(0)2.364.8900 www.artreon.co.kr
Noisy Dreams ● "드림이 노이즈 아냐?" 친구의 말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 졌다. 그것은 전시 타이틀에 대해 고민하며 『noisy dreams』라는 어구를 생각해 냈을 때 내가 염두에 둔 것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었다. 친구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현실이 무엇인지 규정하기 위해서 꿈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것처럼, 노이즈란 원래 본질에 포섭될 수 없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는 말이라고. 그런데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현실과 꿈의 경계, 팩트와 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노이즈와 본질의 경계 역시 그러한데, 본질은 특정 문맥 하에서 취사선택되고 구성되었을 뿐 특권적이고 불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내가 생각한 노이즈는 현재 나의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화면전체에 비교적 균일하게 퍼져 있는 회색의 점들이었다. 처음에는 일정 크기의 터치를 일정 간격을 두고 그리면서 터치들 사이에 생겨난 빈틈들이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상당히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왔다. 최근의 작업들에서는 빈틈을 남기는 방법 외에, 그림을 그리면서 균일한 간격의 회색의 점들을 함께 그려넣는 방법도 함께 시도해 보았다. 화면 위에 마치 작은 방해꾼처럼 자리잡은 회색의 터치들을 그림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노이즈' 라는 말을 떠올렸다. TV를 안테나로 수신하거나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절에 수신상태나 테이프 상태에 따라 화면에 나타나 편안한 시청을 방해하던 점과 선들 - 잘못 수신되거나 손상된 신호 전파 - 노이즈.
한편 꿈은 나의 작업에서 다루는 이미지의 유래와 관련된다. 꿈이나 백일몽처럼 떠오른 이미지를 나는 꾸준히 드로잉과 회화의 소재로 삼아 왔다. 그것은 눈을 감거나 밤에 조명을 껐을 때, 즉 외부에서 오는 시자극이 차단되었을 때 나타날 때가 많았는데, 그렇다고해서 환각제 등을 투약했을 때 눈꺼풀을 투과해서 들어오는 빛의 자극에 의해 보게 된다는 환각처럼 순수 시각적-생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거기엔 문학적 상징에 가까운, 뭔가 언어적인 요소가 늘 있었다. 하지만 고전적인 상상과 비교하면 한결 불가항력적이고 수동적인 떠오름의 성격이 강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만들어진 『noisy dreams』를 곱씹어보면서 나는 은연중에 노이즈를 작업의 형식 구조적인 차원에, 꿈을 내용적인 차원에 각각 배당해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두 단어의 관계를 수식에서 반복으로 바꾸어버린 친구의 말에 그렇게 어리둥절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왜 몰랐겠는가. 작업에서 내용과 형식을 논하는 것이 결국에는 억지스런 구분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그 이후로는 스스로의 작업이 보다 전체상으로 눈에 들어오게 된 것 같다. 이미지를 회색의 점들이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둘이 합쳐 하나인 것이다. 90년대에 조악한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본 경험에서 영화에 대한 기억만 순수하게 분리해 낼 수 없는 것처럼. 혹은 LP레코드 특유의 잡음이 음악을 감상하는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 더 나을까?
한가지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종종 이렇게 작업에 관해 쓴 글을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보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때는 작업과 공명한다고 느껴졌던 생각이 다음 순간에는 어긋나버리며, 그 뒤에 다시 공명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노이즈다. ■ 임동승
Vol.20220422a | 임동승展 / LIMDONGSEUNG / 林東昇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