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만큼 화났다가, 미칠만큼 좋았다가. Mad like crazy, Love like crazy

박성수展 / PARKSUNGSU / 朴成修 / painting   2022_0408 ▶ 2022_0424 / 월,화,공휴일 휴관

박성수_모두의 순간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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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홈페이지_www.parksungsu.com                           페이스북_www.facebook.com/binggomomo 인스타그램_@lightly19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6:00pm 일요일_01:00pm~05:00pm / 월,화,공휴일 휴관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 (팔판동 61-1번지) 3층 Tel. +82.(0)2.720.7230 blog.naver.com/dorossy_art @dorossysalon

박성수의 미로, 아름다운 인생을 여는 사랑의 열쇠 ● 흔히 '인생은 미로 같다'는 말을 자주한다. 어떤 내일이 펼쳐질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굳게 닫힌 문을 마주할 때마다 당황스럽다. 이번엔 어떤 열쇠를 골라야 할 것인가? 수많은 인생의 열쇠꾸러미를 내 손 안에 쥐고 있어도 고민스럽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선 지혜가 필요하다. 서둘러서도 안 된다. 어차피 결승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삶의 발걸음을 재촉할수록 내게 주어진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수만 가지 지혜로운 삶의 키워드가 매사 선택의 열쇠가 된다. 그런데 어쩌면 그 문은 처음부터 잠겨 있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 삶의 미로를 빠져나가는 지혜를 지닌 인물로 그리스 신화 속 '아리아드네(Ariadne)' 공주를 떠올린다. 익히 알려진 '아리아드네의 실'을 가지고 사랑하는 '테세우스(Theseus)'를 구해줬기 때문이다. 이때 빠져나온 곳은 미궁(迷宮, labyrinth)이었다. 미궁은 미로(迷路, maze)와는 달리 목표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갈림길 없이 연결되는 구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길이라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반면 미로는 길을 일부러 잃게 만들어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이다. 미궁과 미로, 둘 다 유사한 공간의 반복으로 최종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심리적인 압박은 유사하겠지만, 복잡성의 강도로 보면 미로가 인생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박성수_사라지지 않을 시간들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21

"미로는 마음속이고 상상으로 더해진 일상의 대상들이 그 미로에 담겨져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제각각 대상들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요. 이전의 그림들이 구체적인 스토리 전개에 집중했다면, 최근엔 조금 밖으로 나와서 그 이야기들의 전개를 관찰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미로에 등장하는 대상들의 세세한 스토리 보다, 한 작품의 전체적인 화면에 던져진 '대상들의 흐름'을 주의 깊게 봐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박성수 작가의 말처럼, 최근의 작품들은 주인공 빙고(흰색 강아지)와 모모(빨간 고양이)에 관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보다, 그 주인공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미로 구성으로 선보인다. 마치 주인공들의 성장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 한 편의 서사적 생활일기를 읽는 느낌이다. 보여줄 것이 많으니, 당연히 이전 작업보다 제작과정 역시 훨씬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이야기의 배경을 이루는 미로를 설정하고,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한두 작품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박 작가는 작업시간이 더 걸리는 미로작업을 선택한 이유를 '작은 이야기가 조금은 더 넓게 오래도록 보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한다.

박성수_지혜로운 하루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22

같은 '미로(迷路, maze)' 시리즈라도 2021년과 2022년 사이에 구조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미로의 형식이다. 가령 2021년 100호 작품 「사라지지 않을 시간들」은 '박성수식 미로 그림'의 종합선물 세트나 다름없다. 미로는 '작가의 시간'을 상징하며, 곳곳에 갇히거나 숨겨진 대상들은 작가의 과거 기억이나 상상의 존재들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제각각의 대상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마치 대하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나열해놓은 격이기 때문이다. 이후의 그림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짝을 이뤄 독립된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 만나게 된다. ● 어차피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흔적을 남긴다. 매사에 펼쳐지는 흥미로운 사건과 사고가 인생의 퍼즐을 맞추는 단서가 된다. 같은 해의 100호 작품 「모두의 순간」 역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쌓인 그림'이다.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고 저무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일상을 미로의 곳곳에 숨바꼭질 하듯 숨겼다. 술래는 박성수 작가의 단짝 빙고와 모모인 듯싶다. 평소 수줍음 많던 빙고가 웬일로 호기를 부리며 앞장을 섰다. 뒤를 따르며 두리번거리는 모모의 표정이 흥미롭다. 가을이, 댕댕이, 순이, 산이... 여기저기 흩어져 숨어있는 친구들의 눈동자에서나 숨겨놓은 소품들이 지금 이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값진 인생의 단락인지 충분히 잘 보여주고 있다.

박성수_그 붉은 봄에는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22

"작고 세세한 스토리를 들려주면 듣는 이들은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더 느끼고 좋아할 겁니다. 제 작업에 스토리가 빠지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 작품으로 올수록 미로의 벽을 높게 설정한 것은 관람자에게 더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인공들이 움직이는 길이 보이지 않게 되고, 단지 흔적만 남은 미로의 선만으로도 끝까지 무사히 통과하는 것은 오로지 관객의 상상력에 달렸지요. 제 그림은 그 상상력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 2022년 들어서의 미로 시리즈는 높은 담벼락이 인상적이다. 벽의 두께에 따라 흐르는 선으로 '이것이 미로겠지' 싶을 정도로 흔적만 남았다. 미로는 박성수 작가가 만든 상상의 삶 속 길이다. 박 작가는 자신의 미로를 '고정된 편견이나 틀, 두려움과 낯설음에 대한 은신처, 비난을 피하는 갑옷, 어쩌면 감옥 등'에 비유한다. 그 안에서 나름의 즐거운 상상력을 실현하고 있다. 소품 「지혜로운 하루」만 봐도 박 작가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앞쪽에 속 편하게 그네타기를 즐기고 있는 빙고에 비해 모모는 저 뒤쪽에서 미로 담장에 빨래처럼 걸쳐 있다. 모모의 발목에 묶인 끈이 빙고의 그넷줄인 걸 보면, 모모가 마냥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사랑하는 빙고를 위해 '아리아드네의 실'로 묵묵히 지켜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희생도 사랑이다.

박성수_희망을 놓지 않던 순간엔_캔버스에 유채_60×60cm_2022

작품제목에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위의 「지혜로운 하루」 작품을 좀 더 살펴보자. 모모 코앞에 세워놓은 타로 카드는 곧 모모 마음의 시그널이다. 타로 카드에서 '세 개의 칼이 꽂힌 심장'은 '사랑의 아픔'을 의미한다. 특히 먹구름이 끼어 있고 비가 내리는 것은 불확실한 상황이나 슬픔이다. 그래서 외로운 짝사랑에 비유되기도 한다. 한 편 빙고에게 그네를 태워주는 손은 작가의 손일 것이다. 바로 그네를 매단 동백의 꽃말이 '그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이기 때문이다. 마침 그 옆에서 지키고 있는 푸른 뱀은 박성수 작가가 만든 '꽃을 좋아하는 신령한 수호천사 캐릭터의 뱀'이다. 이러한 마음은 해와 달이 한 몸이듯,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과도 같음을 읽을 수 있다. 빙고에 대한 모모의 조용한 사랑고백이다. ● 인생을 '멀리서 봐야 희극'이라는 말로 비유할 때도 있다. 각기 저마다의 사정들로 분주한 인생살이를 살아간다. 이처럼 박성수의 그림들은 희화된 인생의 에피소드들이 작품에 녹아 있다. 소재로만 보면 그녀가 작업실에 보내는 평범한 일상의 모음이다. 하지만, 그림들은 '지금만 같았으면' 하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간혹 힘들고 지친 벽을 만나더라도 거뜬히 헤쳐갈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인생에너지를 충전해준다. 바로 이 순간 하나하나의 추억과 기억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더 일깨워준다. 인생은 비록 미로(迷路)로 시작하지만, 꿈을 하나하나 이루면서 인생을 조금씩 완성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미로(美路)임을 전해주는 작품들이다. ■ 김윤섭

박성수_당신은 구름 나는 무지개_캔버스에 유채_33×23.5cm_2022

서사적(書寫的)이고 시(詩적)인 : 빙고와 모모, 손모가지, 그리고 작가 박성수 ● 예술이란 무엇일까. 좋은 작업이란 무엇일까.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좋은 작가란 어떠한 작가인가. 예술을 업으로 삼아 창작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작가 artist 에게 아마도 이는 꽤 자주, 어쩌면 평생 따라 다니는 질문일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과 규정에 굳이 얽매이지 않고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작가라면 스스로에게든 혹은 타인에 의해서든 한 번 이상 받은 질문일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 질문에 어떠한 답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대답하지 않을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 박성수는 누구보다도 "좋은" 작업을 하고 싶어하는 작가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작업에 목마른, 반드시 작업을 해야 하는, 이제까지 보아온 작가 중 가장 열정적이고 욕심 많은 작가이다. 그의 작업에 대한 욕심과 열정은 그와 작업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았거나, 그가 짬짬이 써서 SNS 플랫폼에 올리는 글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의 작업에 대한 욕심과 열정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숨겨지지 않는다. 동시에 그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자, 그렇다면 그는 좋은 작가인가? 그의 작업은 좋은 작업인가?

박성수_왕과 왕비_캔버스에 유채_33×23.5cm_2022

박성수는 꽤 오랫동안 개와 고양이를 그리는 작가로 인지도를 높여왔다. 그는 의인화된 하얀 개 '빙고'와 빨간 고양이 '모모'를 통해 때로는 사랑스럽고 또 때로는 살벌한 달콤 쌉싸름한 연인간의 사랑을 그려내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또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빙고와 모모는 캔버스 위에 유화의 깊은 색감이 잘 드러나는 페인팅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종이 위에 경쾌하게 드로잉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못생긴드로잉"이라는 특별한 제목을 가지는 빙고와 모모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로잉은 박성수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게 해 준 작가로서는 고맙고 소중한 작업이다. "못생긴드로잉"은 전시에서 소개할 때마다 절반 이상이 새 주인을 찾아가며, 때에 따라서는 전 작품이 판매되기도 하는 매우 사랑받는 시리즈이다. 간결하게 그러나 세심하게 그려낸 그의 드로잉은 그냥 흘려 보낼 수 있었을 평범한 일상 속의 작은 희노애락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박성수가 그리는 빙고와 모모의 묘한 표정 - 주변을 보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사실은 시선이 오롯이 서로 상대방을 향하고 있거나, 혹은 아예 노골적으로 열렬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웃는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알기 어려운 둘의 표정에는 피할 수 없는 묘하게 매력적이다. 한 쪽은 무심하고, 다른 한 쪽은 열렬한 짝사랑의 표현인 것 같지만 다시 차분히 들여다보면 서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숨김없이 느껴지는 못말리는 연인, 빙고와 모모. 표정을 보지 못하는 뒷모습에서도 그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박성수는 자신의 드로잉에 진심을 다해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은, 솜씨 좋은 화가임에 틀림없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분명이 "예쁜" 사랑인데, 겉으로 힐끗 보았을 때엔 예쁘지 못한 사랑인가 갸우뚱 하게 만드는 박성수의 "못생긴드로잉". 예쁜 사랑 이야기를 그리면서 "못생긴드로잉"이라 이름을 붙인 데에는 작가의 "좋은" 작업에 대한 고민이,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들어있다.

박성수_우리를 위한 무대_캔버스에 유채_33×23.5cm_2022

이렇게 예쁘지만, 예쁘고 싶지만, 예쁘다고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예쁜 사랑을 그리는 "못생긴드로잉"은 박성수가 2014년 여름에 Y와 함께 갔던 프랑스 파리 체류기간 중의 일상을 그렸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 "못생긴드로잉"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석 달이라는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게 된 어머니에게 여행지에서 보내는 편지 같은 것이었다. 딸과 사위의 여행 소식을 궁금해 하실 어머니를 위해 편지 쓰듯 일상을 드로잉으로 그리고, 이를 SNS 플랫폼 페이스북 facebook에 올려서 서로가 시차와 상관없이 원할 때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했던 것. 다정한 딸이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부지런히 그려서 보낸 '파리통신'은 그의 어머니 뿐 아니라 그와 SNS로 소통하던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유럽 땅에서 딸과 사위가 탈 없이 잘 다니고 있음을 확인하며 안심하셨을 테고, 우리는 덕분에 작가부부의 프랑스 체류기를 엿볼 수 있었다. 별 것 아닐 것 같은 일상 (나는 프랑스에서 10년 가까이 살다 온 사람이니 파리 생활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에서 골라내는 소재와 이를 드로잉으로 특별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남다른 시선과 솜씨는 매력적이었다. 단순한 것 같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고, 가벼운 것 같지만 자꾸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깊은 고민이 들어 있는 그의 "못생긴드로잉"에 나는 매료되었고, 그렇게 "못생긴드로잉"과의 만남은 2016년의 「별별사랑」과 2018년의 「피고지고」 그리고 2022년 오늘 「모두의 순간」까지, 박성수의 13번의 개인전 중 세 번의 개인전을 도로시 살롱에서 함께 진행하는 든든한 작가와 기획자의 관계로 이어졌다.

박성수_잘 듣는 방법_캔버스에 유채_33×23.5cm_2022

직관적으로 그날그날의 일상과 감정을 담아내는 박성수의 "못생긴드로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면서 동시에 그의 회화 작품의 소재이자 밑그림이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 일기처럼 그려낸 그의 "못생긴드로잉"은 유화물감으로 캔버스에 옮겨지면서 드로잉에서 가지고 있던 경쾌함을 유지하면서 보다 더 깊게, 그러나 지나치게 심오하지는 않게 그의 일상과 생각, 감정과 사유를 잘 버무려서 담아낸다. 사실 빙고와 모모는 "못생긴드로잉" 이전부터 박성수 회화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그림에서 동물, 특히 고양이는 지금의 회화와는 다른 형식 - 평론가 고충환의 말에 의하면 '추상표현주의'의 작업을 할 때인 2000년대 초반부터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러다가 지금의 빙고와 모모처럼 의인화된 개와 고양이가 나타난 것은 2007년 무렵이고, 뒤이어 2008년에는 개와 고양이가 커플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때에는 아직 이들이 하얀 개 빙고와 빨간 고양이 모모로 명명되지는 않았을 때다. 그렇지만 이미 작업의 주된 주제는 '사랑'이었고, 하얀 개와 빨간 고양이는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유쾌'하고 '수상'하고 '이상'하고 비밀스러우면서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졌다(유쾌, 수상, 이상, 비밀, 행복은 모두 그의 개인전 제목에서 언급된 표현들이다). 그리고 2013년 작가는 이제 하얀 개와 빨간 고양이를 빙고와 모모라고 이름지어 주면서 본격적으로 얄밉도록 눈꼴시게 사랑타령을 해대는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커플의 이야기를 마음껏 그려냈고, 2016년의 「별별사랑」에서 '빙고와 모모'의 사랑은 절정에 이른다.

박성수_집으로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_33×23.5cm_2022

그렇게 10여 년을 하얀 개 빙고와 빨간 고양이 모모를 통해 열정적이고 예쁜 사랑을 그려내던 작가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좋은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인가. 내 작업은 좋은 작업인가. 나는 이 작업을 계속 해도 좋을까. 일상과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자꾸 '개와 고양이', '빙고와 모모'에 집중했다. 그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일상에 대한 고민보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빙고와 모모에 집중되고, 표피적으로 보여지는 것 같아 불편했다. 빙고와 모모의 몸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인데, 작가의 인지도는 점점 더 높아지는데 오히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허공에서 떠도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이야기에 더 강한 힘을 실어 줄 다른 도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가 2006년 여름 Y의 북경 작업실에서 하얀 개와 빨간 고양이 - 빙고와 모모를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던 것처럼, 2018년 초 새로 지어 이사한 남양주의 작업실에서 박성수는 자신의 손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2017년 가을 오른손이 살짝 불편해졌던 경험이 그에게 작가로서 손의 의미와 소중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직업, 손이 고장 나면 할 수 없는 일. 어떤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아마도 이 손으로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하는가에 다다랐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우연히 그러나 자연스럽게 빙고와 모모의 역할을 작가의 두 손이 이어 받았다. 작가의 오른손과 왼손, 까메오 반지를 낀 오른손과 하얀 진주반지를 낀 왼손은 차분히, 조심스럽게 작가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오래 전부터 맘 깊은 곳에 가슴 저미게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기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절절하다. 어릴 적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고, 또 화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는 그렇게 2018년의 「피고지고」에서 "좋은 여자가, 좋은 친구가, 좋은 아내가, 좋은 딸이, 좋은 사람이" 되면서 동시에 "좋은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 왔던 지난날에 대한 고백과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그 세월의 기억을 함께 하고 있는 자신의 두 손의 표정만으로 오롯이 그려냈다. 그렇게 한바탕 열병을 겪고 난 작가는 더욱 단단해졌고, '예쁜' 작업은 '좋은' 작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의식적으로 예쁘지 않으려고 애썼던 "못생긴드로잉", 그리고 빙고와 모모에 작업에 대한 열정도 되살아났다.

박성수_집으로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_22.7×15.8cm_2021

이 글을 준비하며 박성수가 2013년 1월부터 2021년 말까지 쓴 80페이지 분량의 작업 노트를 읽었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내려간 글.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유려한 문체는 아니지만, 남다른 감성과 사유로 매력적인 그의 작업노트를 읽으며 마치 한 권의 시집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박성수의 작업노트를 읽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더욱이 이번에 읽은 글의 일부는 지난 두 번의 개인전과 한 번의 단체기획전을 치르며 이미 읽은 것들이다. 게다가 그의 페이스북의 열렬한 팬인 나는 그가 글을 올릴 때마다 거의 매번 모두 읽었다. 그러니 어떤 글은 이미 서너 번 읽은 것이다. 그런데 그 때에는 그의 글이 시처럼 느껴졌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짧은 수필이라고, 일상에 대한 성찰이라고 느꼈었다. 그러나 이번에 9년 치 작업노트를 한꺼번에 순서대로 읽고 나니, 느낌이 매우 다르다. 그의 글은 일상을 기록한 일기 같은 것이 아니라, 감정과 감성을 표현한 시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그 안에 서사는 분명히 있지만, 분명한 이야기가 읽히지 않는, 「황홀한 고백(2020)」에 대한 글에서 평론가 안소연의 표현대로 "모호함"이 크다. 그것은 박성수의 작업에서 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서사 안에 녹아 있는 감정과 감성, 사유의 비중이 더 컸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그림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그가 우리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감정과 감성이다. 박성수의 그림은 '시詩'처럼 감상해야 하는 것이었다.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것이었다. 좋은 작업을 하려고, 좋은 작가가 되려고, 그리고 동시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 무단히 치열하게 고민하며 작업하고 살아내는 박성수 작가의 작업은 한 편의 시처럼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한 편의 문학 작품처럼 읽고 느끼는 그림, 그런 그림을 그려내는 그는 좋은 작업을 하는 좋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런 좋은 작가의 좋은 작업에 대한 소개를 내게 맡겨주어 기쁘고 감사하다. 박성수 작가가 힘겹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게 이 치열함과 솔직함을 잃지 않아주길 바란다. 그렇게 계속해서 우리에게 평범함 일상에서 가지는 감정과 생각을 특별하게 만들고 느끼게 해주는 시詩 같은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는 잘 해낼 것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2. 3.) ■ 임은신

Vol.20220408a | 박성수展 / PARKSUNGSU / 朴成修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