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예술가의 시간

심효선_양정아_이수지_이윤경_조혜은_황희정展   2021_1228 ▶ 2021_1231 / 월,공휴일 휴관

엄마예술가의 시간展_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02:00pm~10:00pm / 월,공휴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 Seoul Artists' Platform_New&Young(SAPY) 서울 서대문구 경기대로 26-26 B2 화이트룸 Tel. +82.(0)2.362.9760 www.sapy.kr @sapy.kr

나는 두 개의 톱니바퀴를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10시부터 4시까지 작업하는 시간과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를 거쳐 집으로 돌아온 이후의 시간이 분리되어 있다. 각각의 시간에는 그 일에만 집중해야 제 삶의 만족감이 높아졌다. 그런데 두 개의 톱니바퀴가 서로 영향을 주며 때로는 그 구분조차 모호해진다. 내가 어떤 장소에 있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활리듬감을 갖고 있다면, 삶의 루틴을 갖는다면, 불필요한 감정소모가 줄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며 작업하고 있는 엄마예술가들은 나만의 생활리듬감을 기록하고 실험하였다. 그것은 일주일을 한 단위로 한 연속의 기록이기도 하고 특정되지 않은 사건, 감정, 생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참여작가들의 24시간을 가정(양육, 집안일), 작업(예술활동), 기타(수면, 영화감상, 외출 등) 3가지 색으로 분류하여 6개의 시계를 제작하였다. ■ 심효선

6개의 엄마예술가 시계_아크릴판, 무브먼트, 시계바늘_23×23cm×6_2021
심효선_10sindorim4_종이에 아크릴 과슈_24.4×27.8cm×7_2021
양정아_playti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8×40.6cm_2021
황희정_엄마의 시간-꽃길만 걷게 해줄께_6개의 조명 외 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
이수지_엄마변주곡_사운드, 제록스 프린트, 드로잉_39.4×54.5cm×5_2021

'엄마예술가의 시간'에는 키워드가 세 개 있다. 엄마, 예술가 그리고 시간. 나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시간에 집중했다. 나에겐 엄마라는 것은 아직도 어려운 것이고, 예술가라는 것도 숙제 같아서 무거웠다. 시간은 조금 더 나의 일상에서 쉽게 풀어낼 수 있는 키워드였고, 어쨌 든 내가 시간을 부지런히 알차게 사용하며 의미를 만들고 있음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엄마 예술가의 시간'에서 주체를 빼고 나의 일상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불규칙하게 반복되고 겹치는 일과들에 각각 하나의 음을 지정해서 시간대 별로 악보를 그려 나가다 보니 일과 의 우선순위나 선호도 상관없이 무작위하게 부여된 음들이 때로는 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불협화음을 만들며 어떠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이 악보는 더 이상 '엄마예술가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예술가의 시간은 어떠하다.' 라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하나의 문장 이 되었다. 그러자 그 완결된 문장 안에서 시간이 주어가 되고 엄마예술가는 꾸미는 말이 되 었다. 나의 아이가 내 눈을 보고 묻는다면 난 이 물음에는 얼추 대답할 수 있을 거 같다. "엄마예술가에게 시간은 뭐에요?" ■ 이수지

이윤경_쏟아지다_캔버스에 유채_65.1×45.5cm_2021 이윤경_길에서 본 위로_캔버스에 유채_65.1×45.5cm_2021

이번에 전시하는 유화 두 점은 전시 의뢰를 받은 기간 동안 작업한 작품들이다. 대략 한 달의 기간 동안 나는 15호 짜리 두 점의 작업을 마칠 수 있었고, 일주일 동안의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시간의 기록이다. 일상의 편린을 굳게 쥐고 있는 엄마로서의 시간과 예술행위를 지향하는 예술가로서의 중복, 교차되는 시간의 기록이다. 사실 일주일의 기록은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기엔 루틴을 결여하고 있다. 매일의 기록이 달랐고, 그 중 하루를 선택해서 기록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엄마로서의 시간은 루틴을 갖는다. 문제는 예술가로서의 시간이 루틴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추의 무게가 현저히 엄마 쪽으로 기울어져있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로서의 시간의 루틴을 회복하고자하는 작은 몸부림으로 여겨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 이윤경

조혜은_Shadow_po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1×63cm_2021 조혜은_Shadow_flood_캔버스에 유채_73×91cm_2021 조혜은_Shadow_jumping_캔버스에 유채_53×53cm×2_2021

엄마 작가의 삶은 엄마 작가만이 알 수 있을 거라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작가 H는 엄마 작가의 삶을 사지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바람에 사지가 찢겨지는 형벌에 비유했다. 작가 S는 두 개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가 잘 굴러가야 다른 하나도 굴러갈 수 있고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비유이다. 혹자는 스위치에 비유하기도 한다. 순간 '탁' 하고 껐다 켰다, 온 앤 오프. 모드 전환을 잘 할수록 에너지 효율이 좋다. 다양한 부캐(스위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정신 건강에 좋다. 스위치 켜듯 '탁'.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무엇이 문제인가. 작업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작업이라면 육아는 나를 끊임없이 내려놓는 작업이기에, 둘은 상반된 자질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기적이어야 했다가 이타적이어야 하고, 미스터리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을 하다가 이번에는 명명백백한 의식의 세계에서 타인의 니즈에 달인이 되어야 한다. 내 안의 깊은 우물 속에 들어가 한 뼘 더 길을 내려 분투하다가 내 안의 모든 수분을 끌어 당겨 모래사장을 다 적셔줄 바닷물이 되어야 한다. 깊고 좁은 물을 다시 넓고 고르게 펴야 한다. 추상적으로 들린다고 해도 나는 이런 표현이 이 모드 전환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표현이 추상적인 만큼 그 작업도 추상적이고 힘들기에... 이렇게 결혼이라는 제도와 예술가의 삶은 서로 배타적이다...(중략)... 어떻게든 이 삶을 영위해 나가고, 하루 하루를 어떻게든 굴려나가자는 마음으로 버티며 지내고 있다. 커다란 보자기에 모든 것을 엉클어지게라도 일단 담은 뒤 어떻게든 굴리는 삶. 현재 나는 이 비유와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굴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 조혜은

Vol.20211228e | 엄마예술가의 시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