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관훈동 184번지) 1관 Tel. +82.(0)2.734.7555 www.topohaus.com
채워지는...지워지는...기표들 ● 강명구 작가의 신작 「더블 콤마(Double Comma)」는 문장 부호의 하나인 ','를 형상화한다. 작품은 두 개의 테마로 나뉘는데, 하나는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청과물 상자를 찍은 사진과 또 하나는 번화가의 로터리에 있는 건물을 촬영한 사진이다. 작가가 가락시장을 찍은 건 4년 전부터이다. 숨 가쁘게 움직이는 시장 사람들과 생생한 경매 현장을 바라보며, 시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역동성과 노동의 가치를 차곡차곡 찍기 시작했다. 어느덧 532개의 상자와 그 상자를 운송했을 532대의 트럭을 촬영하였고, 이번 전시에서 대형 프린트로 제작되어 걸린다. 번화가에 우후죽순 자리매김한 간판이 걸린 건물 사진도 동시에 작업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간판의 위치와 형태만 보여줄 뿐 흔히 간판의 목적에 해당할 광고성을 담은 내용은 깨끗이 지웠다. 532개의 상자와 트럭의 정보는 모두 드러나게 하고 반대로 도심의 주요 건물의 간판을 지운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40여 년이 넘게 가락시장 인근에서 살았지만, 그곳에 별다른 눈길을 주지 못하다가, 지난 4년간 거의 매일 시장을 드나들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청과물 상자에 주목한다. 상자 속에서 농사지은 사람, 운송업자, 시장에서 노동하는 사람 등 상자가 각 가정에 도착하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했을 사람들의 가쁜 숨소리를 듣고 땀 냄새를 맡는다. 강명구 작가가 상자들을 하나씩 나열하고 퇴적한 이유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상자에 담긴, 보이지 않지만 선명하게 떠오르는 수많은 손길과 숨소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과일세상, 아침이슬, 건강한, 아삭아삭, 청송꿀, 새벽이슬, 빨간, 청정, 정원…" 등 상자 속에 담긴 수고로움과 정성을 상징하는 '레이블'을 선명하게 부각해야 했기에 멀리서 보면 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표가 드러나도록 532개의 상자를 배치한다. 유사한 형식으로 상자들을 싣고 온 트럭의 모습도 촬영하는데 이때는 차량번호와 차종을 알 수 있도록 트럭의 전면을 제시한다. 모두 가락시장에 청과물을 싣고 달려 온 차량이었다. 「더블 콤마」에서, 땅과 밀착한 노동의 가치는 532개의 청과물 상자와 532대의 트럭에 담겨 화면에 켜켜이 쌓인다. 자세히 보아야 겨우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첫 번째 '쉼표'의 상징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멈춰 깊이 볼 것!
두 번째, 주요 도심의 건물에 매달려 얼굴을 내민 간판사진에서는 가락시장의 청과물과 트럭을 찍은 사진에서 읽을 수 있었던 상징들이 모두 사라진 채, 색면만 드러난다. 무수히 매달려 '나 좀 봐달라고' 외치던 간판들이 상표를 지우고 조용히 있다. 도로표지판과 언뜻 드러나는 랜드마크로 건물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곳은 퍽 시끄럽고 복잡다단할 것 같은데 말이다. 건물마다 반복되는 색색의 면들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관객은 알록달록한 칼라에 일순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고, 사람이 거의 없는 거리와 문자가 사라진 건물에서 비현실적인 상황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동시에 약간의 불안과 의구심이 들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명쾌하다. 명패를 내려놓고, 잠시 쉴 것! 이것이 두 번째 '쉼표'의 의도였다.
강명구 작가는 누구나 간판을 따고 싶어 하고, 간판을 보여주려는 열망과 강박에 들뜬 "간판 사회"에서 "사라진 기표"(간판)를 제시하고, 한편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축적해 "넘치는 기표"를 보여준다. 작가의 의도를 살펴보니 지난 2년간 우리 모두가 통과하거나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 'COVID-19'이 교집합의 중심에 있었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문을 닫고(간판을 내리고) 쉴 수밖에 없는 상황과 사람의 이동이 제한된 가운데 원거리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의 다급해진 운송 과정 그리고 사진으로 다 보여줄 수 없는 노동의 시간과 공간이 쌓이거나 지워지며 사진 속에 숨 쉬고 있었다. 기표들이 차고 넘치는 현대사회에서 잠시 기표를 던지고(간판을 지우고) 텅 빈 휴식을 취하게 하려는 것과 차곡차곡 쌓인 노동의 가치로 일군 거대한 형상을 보여주며 '일과 쉼', '간판 있음과 없음'의 상황을 함께 보여준다.
『더블 콤마(Double Comma)』展은 36년간 건설회사에서 많은 기표(간판)를 갖고 충실한 직장생활을 한 후, 늦깎이로 사진학을 전공하는 강명구 작가가 삶의 '가락'(可樂, '가히 살만한 땅, 가히 즐거운'이라는 뜻)을 새롭게 회복하려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간판과는 무관할) 아주 무용(無用)한, 끝없이 쌓거나 지우는 사진창작 행위에서 작가는 이미 '사진 가락'을 터득했으리라. ■ 최연하
인간은 쉬기위해 땀흘려 열심히 일하고, 고통스런 힘든 삶속에서 견뎌내는 것이며 결국 자신의 평화로운 '쉼' 속에서 그 고단함이 완성된다.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는 분들의 숨소리와 내뿜는 기운을,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운반된 파레트위의 각종 청과물 상자들과 전국에서 온 트럭 사진들을 모아 형상화하였고, 그 일하는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 사람들이 밀집된 번화한 거리를 가보면 대형건물의 벽면에 수많은 간판들이 빼곡이 붙어있는 것을 볼수 있다. 건물벽에 붙어있는 저 수많은 간판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혼돈속에서 살아 남기위해 세상에 내민 그 사람의 얼굴과 같아보여 그 고된 삶 속에 내민 얼굴(간판)들을 프레임속 가상 세계에서나마 단순화 함으로서, 간판이 필요없는 거리에서 그들의 삶도 휴식속에 평화롭고 수월해지기를 기원하며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속의 스며있는 상실감과 소외감을 달래고 싶었다.
그런데 2020년 들어서서 사람들은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낯설은 환경을 맞이하게 되면서 거리는 불안과 불평등의 이견속에 서로 아우성이며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을 돌려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런 거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오히려 더 사람 냄새가 느껴지는 현실의 어지러운 세상 거리를 보는듯하다. ● 이런 혼돈의 현실을 바라보며,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긍정적 사유, 간판없는 상상의 평화로운 거리와 아우성치는 거리의 부정적 사유, 이 모든 현실을 집대성, 형상화, 단순화하여 표현해 보았다. ■ 강명구
Vol.20211215a | 강명구展 / KANGMYUNGKU / 姜明求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