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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30am~06:3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indipress_gallery www.facebook.com/INDIPRESS
빛이 있으매 빈 곳입니다 ● 1. 황지우의 시(詩) 「수은등 아래 벚꽃」은 만개한 벚꽃 때문에 아프고 도취했던 청춘을 뒤로하고 또 찾아온 '늦은' 사랑을 떠나보낸 중년의 화자가, 올해는 벚꽃이 아니라 벚꽃 사이 수은등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개한 벚꽃 앞에서(을 이유로) 청춘은 도취와 만취, 사랑과 자해를 오가며 피어난 꽃에 새겨진 생의 찬란함과 추악하게 진 벚꽃이 응축한 생의 허무 사이에서 자기-소진으로써 존립한다. 물론 미와 추, 찬란함과 허무함은 함께 움직이는 쌍, 상대에 의지해서 자신을 정의하는, 말하자면 그 자체로는 텅 빈 기표들이다. 시의 화자는 또 사랑에 빠지지만 이제 그는 둘과 주변을 파괴하고 소진시키면서 끝날 사랑의 서사는 그만하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은 청춘이 아님을, 그런 청춘의 작란에 자신을 볼모로 사용할 수 없음을 '안다'. 대신에 그는 사랑을 축하하면서도 그 사랑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이별을 고하는 '무능'이나 성숙함을 상연한다. 그리고 그날 그는 벚꽃의 착란, 간계에 속는 대신에 꽃을 꽃이게 만든 수은등을 보고야 만다(사랑은 밤이고 인공빛이다). 꽃에 취했다고 생각했던 그때와 달리 오늘 꽃 앞에서 화자는 꽃을 꽃으로 보이게 만든 불, 빛을 응시한다. 그는 속았던 청춘의 광포함에서 시각장의 구조를 보는 성숙의 쓸쓸함으로 옮아간다. 오늘의 상실을 겪는 화자는 청춘의 무지와 빛의 편재와 기호의 불안정성을 동시에 응시하는 앎을 공표한다.
2. 노경민은 자신의 2021년 개인전에 『빈 곳』이란 제목을 붙였다. 2015년 개인전 『혼자만의 방』 이후 경민은 줄곧 '붉은 모텔' 연작을 진행 중이다. 젊은-여성-화가 경민은 자신이 섭외한 젊은-남성-모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포즈를 취하게 한 뒤 모텔 안에서 사진을 찍었고, 침대나 거울, 벽에 걸린 복제사진이나 싸구려 그림 역시 있는 그대로 찍었다. 그리고 작업실로 돌아와 한국화(지역화?)의 기법인바 "한지에 채색"이란 방식으로 자신의 사진 이미지를 회화로 옮겼다. '혼자만의 방', '그때의 일기장', '귀빈장(V.I.P Motel)', '아마도 오아시스'와 같은 전시 제목은 답사한 모텔의 구체적인 이름, 문장으로 채워진 일기장의 이미지적 번역,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구성에 의해 환기된 고립과 고독 등을 함축하면서 재현적 사실주의와 심리적 구성주의 사이에서 움직이는 경민의 회화의 특성을 전달한다. 젊은 여성 작가가 굳이 모텔을 소재로 작업을 하는 데 대한 세간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은 전혀 개의치 않으면서 경민은 특히 청주 근교 모텔의 실내 풍경에 대한 민속지학적 전사라고 할 만한 작업을 이어갔다. 곧 경민의 회화로 간주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은 붉은 색은 리서치 기반의 '장소-특정적' 작업을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장면으로 바꾸어 놓게 되는데, 그 자체 욕망을 담지한 붉은 색과 허름하고 쓸쓸한 모텔 풍경의 미묘한 불일치(어긋남)로 인해, 욕망의 반복이자 강화여야 할 붉은 색이 화면을 채운 모텔 실내 풍경의 무미건조함이나 고즈넉함, 혹은 무시간적인 고요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성적 욕망을 위시한 욕망의 대표색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마 이런 읽기는 표면을 채운 채색이 빛을 뿜어내며 앞으로 전진하는 특성을 보유한 서양화와 관객의 감각을 '일으키기'보다는 진정시키는, 색을 흡수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한국화'의 이분법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겠다. 경민은 모텔과 붉은 색에 대한 세간의 상투적 인식을 수용하면서도 그런 인식을 거스르는 미묘한 구성방식을 통해 자신의 회화의 '독특함'을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경민은 자극적인 소재와 주제 색의 기계적 조합이 일으키는 상투적 반응(반작용)에 전혀 반응하지 않으면서, 붉은 모텔 혹은 붉은 방 작업이 물릴 때까지 집중했고, 그런 돌파를 통해 '빈 곳'으로서의 장소에 도착했다. 빈 곳은 가득 찬 곳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가득 찬 곳을 빈 곳으로 '보는' 자는 보는 자신을 보는 자일 것이다. 안은 밖이고 붉은 욕망은 텅 비어있고, 눈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데까지 넘어가버렸고. 이전의 개인전에서 자신이 그린 것에 매번 이름을 수여했던 경민은 이번 전시에는 이름을 주지 않음으로써, 이제 어떤 이름으로도 불릴 수 없는 장소가 이곳임을 공표함으로써, 채우고 쌓고 구성하는 일이 마침내 어떤 경계,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음을 자인한다. 하나의 국면이 완성되는 모먼트가 없는 이름으로서 가시화된다.
3. 집과 여관은 특히 한국에서는 상호의존적인 쌍이고, 그러므로 둘의 관계를 놓고만 본다면 집과 모텔은 자기 정의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그 자체로는 텅 빈 기표들이다. 모텔은 지금 집에 함께 있을 수 없는 이들이 몰려드는, 집에서 아주 멀거나 가까운 곳이다. 근대적 공간들의 분할·배치 과정에서 모텔은 정상적인 집의 타자로서, 불륜과 금기와 불법의 온상으로서, 혹은 집에서 배제된 성적 욕망을 위한 공간으로서, 한국의 근대적 풍경의 필수적 요소로서 출현했다. 그리고 기성 세대보다 성에 대해 더 가볍고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젊은 세대에의해 모텔은 휴식이나 놀이를 위한 장소로 재-의미화되고 있기도 하다(내가 사는 사당역 근처 모텔을 지날 때, 나는 나이를 막론하고 온갖 '둘'이 모텔로 들어가는 것을 줄곧 무심하게 본다).
경민은 한국적 근대화에서 출현한 독특한 공간이자 동시대 청춘들의 만남이 일어나는 주요 장소 중 하나를, 곧 사라질 장소를 추억하고 기억하려는 민속지학자의 태도로 답사하고 재현했다(경민의 회화는 사라진 장소를 기록한 아카이브로서 재전유될지도 모른다). 암막 커튼에 의해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시간성을 차단한 모텔, 성적 환상을 보충할 장치로서의 인테리어로 채워진 모텔의 구조 자체에 대한 경민의 천착은 사랑하는 연인이었건 섹스를 위해서였건 이 방을 드나들었던 그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던 물건들, 장식물들의 존재나 혹은 타자의 응시를 재현하려는 작가적 욕망으로 해석된다. 경민은 서로를 탐하는 연인들, 포르노적 절정을 함축한 성판매 여성의 얼굴을 그린 뒤, 붉은 모텔 그리기에 매진했다. 경민의 모텔은 연인의 사랑과 감정 없는 섹스를 포용하는 장소, 무차별적인 욕망의 등가를 전시하는 동시대적 장소로서 역사성을 갖는다.
경민의 모텔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이전 그녀가 재현한 여성들이 표상하는 (성화된)여성성에 육박하는 남성성을 '입고' 있지 않다. 그들은 경민이 재현한 모텔의 후줄근함이나 쓸쓸함을 반복, 강화하면서 모델의 인테리어의 일부가 된다. 그들은 경민을 위시한 여성-관객이 '원하는' 남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항-포르노적, 위반적 이미지들이다. 성적 지위를 빼앗긴 남성들, 경민이 "전리품"이라고 말하는 남성들은 여성을 만족시킬만한 기표로 전유되지 않으며, 여성의 욕망이 투사된 남성 이미지로 재현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경민의 연작 「시(詩)」에 등장했던 성판매 여성들이 과잉 성애화를 연기하면서 여성의 실재에서 멀어져 있듯이, 모텔 연작의 남성들은 과소-성애화되면서 실재 남성의 위치를 (재)획득한다. 과잉성애화된 여성 이미지에 대한 경민의 무비판적인 전유나 재현이 동시대 포르노적 남성 문화 '안' 여성들의 소외된 위치를 표식한다면, 사랑하는 연인의 성적 장면 안에서 남성만큼이나 성적 능동성을 발휘하는 여성이 경민이 재현한 동시대 젊은 여성이었다면, 모텔 연작의 남성들은 탈-성애화되면서 '실재'로 되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경민의 모텔은 기록의 가치를 획득하면서 재현됨과 동시에, 이성애적 남녀의 성적 욕망의 상투형에 대한 경민의 위반적이고 도전적인 해석 덕분에 '실재'를 건드리고 있는 연출된 무대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4. 전거에 의하면 한국화란 이름은 1982년 국전을 대체한 민전에서 비로소 하나의 장르로 채택되었다. (목수현, 「한국화의 불우한 탄생 – 미술의 정체성을 둘러싼 표상의 정치학」, 『동아시아문화연구』 62집, 2015, 참조.) 이후 한국화란 텅 빈 기표(이름)를 채우는 정체성 담론들이 등장했고, 어찌되었건 서양화의 타자로서 혹은 동양화의 대체물로서 한국화는 복수의 의미를 갖는 모호한 용어이자 이데올로기로서 그 이물감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용되고 있다. 경민은 장치에 채색이란 한국화의 특수한 기법을 충실하게 따르며 그린다. 경민은 자신의 작업 방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장지에 붉은 색을 칠하고 흰 색 수채용 크레용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검붉은 색 먹으로 어두분 부분의 면처리를 한다. 그리고 대비되는 밝은 부분에 호분(흰색 물감)을 바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의 호분을 구두솔로 비벼대면 이전에 면 처리를 통해 형태를 잡아놓았던 부분이 흐트려지고 뿌연 화면만 남게 된다." 경민의 화면에서 사실적인 재현과 심리적인 구성이 함께 작동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우리는 구두솔 문지르기의 독특함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구두솔 문지르기를 통해 획득된 뿌연 부분들은 기실 "인공 조명으로 빛을 조성하고 거울을 통해 반사된 빛"이 머무르는 곳, "빈 곳"이라는 암시를 받게 된다.
경민의 회화에서 '빛'은 기억할만한 추억이나 회상의 장소일 수 없는, 누구나 들어오고 나가는 무차별적인 장소를 기억하고 추억하려는 경민의 기이한 욕망을 전담하는 장치, 잔상이다. 이 방에 들어온 이들이 안-보았을 이 밋밋하고 누추한 물건들, 키치적인 기능과 '의미'로 충만한 이 기표들에게 빛을 쏘임으로써, 경민은 타자의 응시에 반응한다, 아니 그것을 책임진다. 욕망의 배설을 위한 싸구려 공간에 빛을 쏘이고 그럼으로써 범속한 장소를 회화적으로 재현할만한 장소로 들어올리는 이러한 역전을 통해 아무 것도 아닌 것의 재현에의 권리가 고지된다. "거울을 통해 반사된 빛"에 휩싸인, 뿌연 안개 같은 것이 내려앉은 것 같은 모텔 방에서 그러므로 동시에 봐야하는 것은, 침대나 화장대나 테이블과 함께 봐야하는 것은 경민이 이 시시한 것들에 수여하는 어떤 "은총"이다. 빛이 내려앉은 이 '더럽고' 누추하고 시시한 장소.
경민은 '섹스 이후 동물의 외로움'이라든지 '욕망의 환유적 기표들'과 같은 성적 욕망과 연관된 어떤 기존의 메시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경민은 잠시 솟구쳐 오르고 이내 사그라드는 욕망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긍정이나 그것을 반복하는 무대로서의 모텔의 표상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경민은 바로 그런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의미'로 충만한 장소의 텅 비어있음에 주목하면서, 그 텅 비어있음을 빛의 놀이를 통해 재확인하는 데, 은총의 빛을 몰수해서 외딴 방에 쏘이는 데 관심이 있다. 경민은 꽉 차 있는 장소의 물건들, 기능들을 기호학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가시성을 지배하는 시각성의 구조, 즉 빛과 그림자의 유희라는 흑백 화면에서 더욱 유리하게 작동시킬 수 있는 유희를 통해 욕망의 장소를 쓸쓸하고 고즈넉한 심리적 상태를 출현시킬 무대로 전유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빛이라든지, 바니타스 회화라든지, 그림자 놀이를 즐기는 아이라든지, 해가 진 것도 모르고 공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라든지 그런 여러 미술사적 전거들이나 일상적 상황이 연상되는 이유를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 젊은 우리, 아니 성적 욕망의 존재인 우리는 연애를 하고, 포르노적 성관계를 모방하고, 누군가와 모텔을 들락날락한다. 이 필요하거나 중요하거나 시시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우리는 범속한 삶에서 여자가 되고 남자가 되고 혹은 의미있거나 무의미한 우리가 된다. 경민의 일견 대담한 작업의 행보는 누구보다 욕망하는 존재인 화가, 자신의 욕망과 타협 없이 공생하는 화가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신의 관심이 원하는 대로 그렸을 뿐이라고 말하는, 자신은 왜 '그것'을 그리는지 모른 채 그려야했다고 말하는 경민의 천진함이나 '무지'는 현실에 만연한 성적/포르노적 이미지를 필사하고 전유하고, 볼만한 것은 없는 모텔 방에서 홀로 빛과 그림자의 유희를 지속하고, 그것을 회화로써 육화하고, 미술관을 모텔방의 음습하고 축축하고 쓸쓸한 느낌으로 오염시키는 경민의 근면함으로서 시각화되었다. 경민은 계속 모텔방을 전전할까? 이번 전시작 중 맨 마지막에 그린 작품 「붉은 나무」는 경민이 집이자 작업실인 곳 근처에서 늘 보는 가로등 아래 나무를 소재로 한 것이었다. 오른쪽의 가로등 불 빛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 흑백의 조응 안에 중앙을 차지한 그렇고 그런 나무. 안은 곧 밖이고, 붉은 색은 굳이 모텔이 아니어도 세속에 편재하는 색이고, 도시의 밤은 흐릿하면서도 강한 가로등 빛 때문에 충분한 잠에 빠져들지는 못한다. 경민은 아직 삼십대 초반이고 그녀의 청춘은 아직 가지 않았다. ■ 양효실
Vol.20211208j | 노경민展 / ROGYEONGMIN / 盧京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