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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가비 GALLERY GABI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52길 37 Tel. +82.(0)2.735.1036 www.gallerygabi.com
인간 부재의 역설-장욱희 매체의 기다림 ● 갑갑하다. 따로따로 떨어져야 하고 코와 입을 가려야 한다. 이렇게 산지 이태나 되어간다. 백신도 맞고 지침도 따르지만 언제까지 웅크리며 견뎌야할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역병의 실체가 밝혀졌지만 곳곳에서 보고되는 치명적 수치는 잦아질 기미 없이 여전하다. 이 두려움의 한 가운데에서 장욱희는 두 차례의 격리 생활을 겪으며 "사람에게 길을 묻다" 버전을 고안했다고 한다.
이번에 발표되는 그의 설치물은 그 제목과 달리 철저히 인간이 부재하고 따라서 길을 알려 줄 암시가 전혀 없다. 화랑 공간을 성벽처럼 구불구불 가로지른 반투명 상자들의 집적체(accumulation) 속에 텅 빈 밥공기들과 나침반들만이 덩그러니 각각 놓인다. 밥공기에는 밥이 사라졌고 식사하는 사람의 숟가락 부딪는 소리와 그의 식욕이 사라졌다. 그런가하면 나침반에는 여행자가 사라졌고 항해사가 사라졌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지(奧地)와 미지(未地)로 기꺼이 떠나는 탐험가의 진취적 의지는 오간 데 없다.
밥공기와 나침반을 담고 있는 반투명 상자는 관람자를 가로 막는 장대한 벽을 구성하는 개별 모듈이다. 이들 상자 각각은 나침반이 담긴 밥공기를 그 가운데에 세포의 핵처럼 품는다. 여기서 나침반들은 서로 자장의 간섭이 미치지 않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그래서 나침반들은 죄다 남북만을 가리키는 채 멈춰 있다. 미술가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소통이 제한된 개인들 간의 간격과 그들의 무기력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관람자는 이 모듈들 각각의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살펴 볼 수 있으나 그것들이 집합해 이룬 벽의 이쪽과 저쪽을 온전히 관통해 응시할 수는 없다. 반투명한 막들의 중첩이 결국 시선의 투과를 막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충 볼 수는 있으되 명료하게 파악 할 수 없다는 조망의 조건이 성립한다. 따라서 관람자는 제 키보다 큰 이 구조물이 뿜어내는 불분명한 실체에 대한 위협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불안의 근원이다.
애초에 청년기부터 장욱희는 자연, 생태와 같은 주제로 유년기의 체험과 기대를 확장하는 시도로 그의 경력을 채워왔다. 그의 실험은 한시도 생명에 대한 관심과 희망을 놓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러한 그의 예술적 동질성은 간혹 문명의 과잉된 탐욕을 지적하는 것으로 비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작년에 치르진 그의 개인전은 인간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생명체마저 사라졌다. 이는 큰 변화이자 도약이다. 동질성의 변화는 정확히 역병이 시작된 기간과 일치한다. 더 나아가 역병이 국내에 상육하기 한 달 전에 끝난 그의 또 다른 전시회는 불안을 넘어 두려움마저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간 부재의 인공물은 항상 사용되기를 쓸쓸히 기다린다. 빈 의자는 누군가가 앉기를 기다린다. 그렇듯 장욱희의 밥공기는 누군가의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사용되기를 기다린다. 그의 나침반은 새 길을 떠나는 이의 길잡이가 되기를 기다린다. 그것들은 사람이 오기를, 와서 서로 배를 채워 생존에 사용되기를, 와서 서로 새 문명을 개척하기를 기다린다. 밥공기가 논경과 철기와 같은 문명 초기를 대표한다면 나침반은 대항해시대를 연 근대 문명의 상징으로 비친다. 이들로 이루어진 성채가 화랑공간 한 편에 비좁게 웅크리고 있다. 이 집합체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때를 도사리듯 기다린다. ■ 이희영
Vol.20211206c | 장욱희展 / JANGUKHEE / 張旭希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