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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37 Tel. +82.(0)2.737.4678 www.gallerydos.com
시간의 무늬 ●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는 비워내는 것만큼이나 쌓으며 다져가는 것도 중요하다. 생의 한가운데로 가기 위한 과정에는 후련하게 지우고 솎아내야 할 것들도 파다하지만 덮고 접합하며 포용해야 할 것들 또한 반드시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것들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은 바로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은 교차와 축적 그리고 조화의 만상으로서 삶의 결들을 상감한다. 즉 인간사에 어김없이 생겨날 수밖에 홈들에 시간이 입사됨으로써 삶의 바탕은 면과 공간으로 성숙되며 상생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시간과 공간이 견고히 쌓아올린 하나의 바탕은 그 축적의 자취를 드러내는 데에 스스럼이 없다. 진솔하고 여유로운 형상을 갖출 때까지 인격을 기르고 수양하기 위한 무던한 노력들에는 수치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당한 정신성이야말로 인간과 사람으로서의 고매한 격을 의미하며 특히나 예술가의 이러한 격은 작품의 결로 상응되며 합치된다.
표주영의 작업은 내면적 성숙의 과정을 담는다. 내적인 성숙에는 내적 공간의 확보와 확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조화와 균형이 잇따라야 한다. 작가는 시간을 쌓아올리는 듯한 한지의 콜라주를 통해 내면의 구축을 시각화함으로써 내면화의 과업에 도달하고자 한다. 수평과 수직으로 선이나 조각에 해당하는 한지를 쌓아올리는 행위는 시간이라는 것이 과거나 미래 현재 뿐만이 아니라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순수한 순간까지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은유한다. 순수함에는 경계와 한계가 없으니 무한하다. 어떠한 것으로도 구분되고 분간되지 않으므로 모호하고 흐릿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무의미하고 덧없어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분한 호흡이 실린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면 일정한 범위에 거리끼거나 얽매이지 않는 열린 공간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존재에 대한 성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바가 실현되는 이유 중 하나로는 작가의 작업에 무언가를 메워야 한다는 강박이 없음을 들 수 있다. 가쁘고 가파르지 않도록 그저 유유하게 쌓아올리는 소행은 보는 이에게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듯한 지각의 현상을 전이시킨다. 유구함까지도 느끼게 하는 내공의 작업에 의해서 화면을 자칫 권태로이 만들 수 있는 것들은 온연하게 희석된다. 가로지르는 것들은 날카롭거나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정제되고 단아한 모습을 갖추고, 미묘하게 다채로운 한지의 색감은 단조로움을 상쇄하며 완성도 높은 교향곡을 위해 준비된 음계처럼 풍성한 운율과 리듬을 조성한다. 오리고 붙이며 더하는 작업이 결코 틈이나 금을 급급하게 메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과 갈등과 충돌의 연쇄를 일으키지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속박됨 없이 침착하게 쌓아올려지는 것들을 통해 삶 속의 자연스러운 창조 즉 원전을 잃지 않으면서도 변화와 성장의 흐름을 맞는 삶의 메타포를 흡수하게 된다.
재료로 쓰인 한지는 작품의 의도를 심화시킨다. 전통한지의 경우 나무를 채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쪄서 껍질을 벗기고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들고 삶고 씻어서 표백하고 두드린 후 뜰 수 있게 만들고 건조시키고 다듬는 등 열 단계가 넘는 공정에 의해 생산된다. 다시 말해 불순물이 제거된 순도 높은 섬유의 상태가 분산되지 않도록 두드려서 다지고 다시 풀어질 수 있는 유연한 상태로 만들고 발틀에 섬유 조직들이 고르게 결합되도록 흔들고 물에 의해 흘려보내는 수고로운 절차들은 하나하나 층을 쌓고 결을 형성시키며 한 차원 더 넓은 세계로의 진화를 도모하는 작업의 방향에 잘 부합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택한 자르고 붙이고 칠하고 그리는 방식은 삶의 정규 과정을 이수하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삶을 대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에 무시할 수 없고 정성스레 정돈되었으면서도 순수하게 절제되어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율적으로 변주되고 성숙해지면서도 흐드러지거나 이지러지지 않게끔 구성된 화면은 반복적인 행위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창출하기 위한 매진이 예술행위의 저변에 깔려 있음도 의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잔잔한 수면과 같은 화면을 명상하듯 되뇌면서 우리 삶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과 유리로 이루어진 바다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겹쳐지고 드리우고 스며들고 흡수되는 효과를 통해 인간의 격과 인생의 결이 디졸브되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삶이 놓인 자리에서 온유한 호흡으로 시간의 맥을 잡아주었기에 우리는 우아하고 섬세하게 시간의 무늬가 수놓인 한 편의 삶을 경험하고 희망하게 될 것이다. ■ 김혜린
Vol.20211124g | 표주영展 / PYOJOOYOUNG / 表朱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