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바다 The sea inside me

서민경展 / SEOMINKYEONG / 徐旼慶 / painting   2021_1101 ▶ 2021_1119 / 주말 휴관

서민경_농_장지에 수묵채색_181×33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국립창원대학교 미술학과 주관 / 국립대학육성사업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 휴관

아트스페이스 창 ARTSPACE CHANG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대학로 20 본관(1호관) 1층 Tel. +82.(0)55.213.3920 www.changwon.ac.kr/arts/main.do

여성연대기: 돌봄, 할머니, 그리고 옷장 - 당신만의 할머니 ● 동시대미술 교육 현장에서 작가 지망생이 전지구적인 정치·사회 이슈, 현시대의 매체 이야기 같이 보편적으로 보이는 주제를 들고 나오지 않는다면 크리틱 시간에 꼭 한소리씩 들어야만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만 하지 말고 보편적으로 연결되는 걸 찾아보지 그래?"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보편적인 것과 금세 연결될 개인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그것을 보여주는 순간만큼은 개인적인 '일기'로 폄하되기 일쑤다. 서민경 작가도 이런 소리를 안 들어봤을 리 없다. 현대의 수묵담채라는 매체가 타개하지 못한 재현방식이나 도상 자체에 위험요소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거기에 미술 고등교육을 받은 자가 스스로 '미술 치료'적인 것을 취한다면 그것도 의심 받는다. 하지만 자기 바깥에 머물며 거대서사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본캐'가 자주 폭로되곤 하는 이 시대에 자기반성적이고 자기치유적인 작업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치유라는 단어가 차고 넘치기 전부터 자신을 들여다보았던 작가들을 말이다. ● 서민경 작가는 새삼 그런 반성을 유도하는 작업을 한다. 다만 그걸 알아보려면 언뜻 예쁘게 보이는 것과 그것을 만든 과정이 무엇의 징후인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녀는 주로 어머니와 아버지 쪽의 두 할머니로부터 자신에게로 내려오는 여성 삶의 계보, 그리고 자개장이라는 소재를 화면에 불러온다. 개인 서사가 당장에 보편성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지만 사실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 또한 그 시대의 사회상과 역사의 단면일 뿐이라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역사와 내면을 탐구하는 개인은 곧 거대한 흐름을 타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여기서는 그녀의 개인사를 적극적으로 활짝 열어젖혀보기로 한다.

서민경_할머니의 경대_장지에 채색_117×81cm_2018

당신의 딸 ● 최근 1~2년 새 유행하고 있는 'K-장녀'라는 말이 있다. 각 세대들은 자신들까지가 억울했지, 뒤 세대들은 온갖 혜택과 평등을 누렸다고 생각들 하지만 지금의 20대가 K-장남과 K-장녀라는 단어에 자신을 이입할 정도라면 가부장제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그 구조 안에 모두 갇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가 극에 달했을 당시를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와 함께 살아간다면 "여전히"라는 말조차 낯설 것이다. 서민경은 가부장제가 몸에 가장 심하게 각인된 시대를 살았던 두 할머니와 가까이 사는 K-장녀다. 장남이 아닌데도 책임을 떠안은 아버지와 책임감이 강한 장녀 어머니 덕분이다. 불행하게도 두 할머니 모두 지금 어린 아이가 되었다.

서민경_할머니의 경대_귤서리_장지에 수묵채색_116.7×91cm_2019

부모님의 치매 노모 돌봄(노동)을 옆에서 지켜봐온 K-장녀 또한 부모님만큼이나 자기만의 시간은 갖기 어려웠다. 미대를 다녔던 이 장녀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타인들에게도 저마다의 문제들과 감정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버스 정류장」(2018) 같은 작품에 남기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굳이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림으로 어떤 위안을 주고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에는 아픈 두 할머니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아무리 초록 봄이 기다린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겨울은 추운 법이다. 패딩을 껴입은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의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얼굴도 없는 한 어린 아이는 발가벗고 오리 튜브 같은 것을 몸에 장착하고 있다. 초록 이파리도 걸친 이 아이는, 희망을 가리키든 절망을 가리키든 이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작가는 쌀쌀하기만 한 현실과 푸른 미래를 병치시키는 대신 아예 동화 같은 화면을 차리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방향이 어긋난 도피 같은 것이었다.

서민경_쉼_장지에 수묵채색_46.5×54cm_2020

그녀의 동화를 구현해줄 틀은 할머니들의 자개장이다. 두 할머니 모두 통영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요즘 유행하는 자개장이 단지 상징적인 매체가 아니라 그녀의 삶이었음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자개를 하나하나 붙이고 옻칠을 올리는 과정과 똑같이 어린 시절부터 친숙했던 자개장 속 목가적인 풍경과 장생불사를 가리키는 도상들을 반짝이는 밑칠에 먹을 쌓아가며 그렸다. 그림에서 할머니는 손주들과 함께 장난도 치는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다 큰 그녀도 기꺼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개 화면 안과 밖을 오가며 할머니 슬하에서 재롱을 피우는 모습이다. 자개를 따는 과정에서 자개장은 점차 그녀의 부적이 되었다. 작업은 자개의 조형성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몰입을 통해 돌봄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현실을 잠시 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작가는 스스로 치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개 나비(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어머니와 그에 기댄 작가가 등장하는 「바람」(2021)에서 도대체 왜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는 걸까. 아무리 자신을 어머니의 "짐덩이"로 규정하더라도 어머니가 현재 진 무거운 책임감을 언젠가는 물려받아야 한다는 걸 작가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서민경_바람_장지에 수묵채색_28×54cm_2020

주제넘지만 프로이트의 안나 오를 연상시키는 K-장녀의 신경증을 모른 체 할 수가 없다. 서민경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작가는 아직 작품 앞에서 자신을 숨기고 있다. 장녀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징징거리거나 모든 걸 부숴버리는 어른이 되는 것 대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속에 숨기로 하고 꽉 막힌 자개장의 아름다운 도상만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오래된 자개장은 깨진 곳도 열린 틈도 없다. 그런데 안락한 기억으로 남은 자개장이 다름 아닌 가부장제 그 자체라면 어떨까.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갑갑한 현실을 자개장에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민경_할머니의 시계_장지에 수묵채색_45.5×53cm_2020

모두의 어머니 ● 작가는 이런 자개장을 아름답게 그림으로써 K-장녀의 품위를 지키는 중이다. 최근에는 2019년부터 그리기 시작했던 10자짜리 커다란 「농」(2021)을 드디어 완성했다. 조선시대의 이층장, 이층농, 문갑 같은 가구와는 또 다르게 거대하게 만들어진 '장롱'은 그야말로 근대 욕망의 산물이다. 산업화 시대, 미처 뿌리치지 못한 양반 계급 선망을 물질화로 충족시켜준 자개가구의 끝판왕이다. 그마저도 아파트 시대에 접어들면서 퇴물이 되었지만, 작가는 농을 갖다버리기는커녕 그걸 통째로 그려버렸다. 기본도상에 충실한 농을 가운데 두고, 양 옆에 두 할머니의 삶을 그려 넣고 부모님의 가구까지 슬쩍 겹친 농을 놓음으로써 장녀로서의 책임―할머니를 챙기는 부모님을 모시는―을 (아직은) 다하고 있다. 하지만 치매라는 병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림 속 단정한 할머니들이 다시 그녀를 옥죄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본다. 할머니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부장제의 지독한 희생양이면서도 그것을 숭배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두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부모님은 할머니들의 자개가구를 물려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장남이 아니고, 어머니는 장녀지만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개가구는 그렇게 가부장 문화를 공고히 하는 상징적인 물건이 된다. ● 여기서 작가가 수행하는 유일한 반항은 그런 할머니를 보살피는 어머니의 존재를 암시하는(어머니의 어린 시절이나 어머니의 가구가 할머니의 가구에 스며들도록 그린) 것, 그리고 자신의 할머니를 이상적인 인물로 슬쩍 대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너무 소소해서 제3자가 읽기에는 아직 어둡다.

서민경_나의 거울_장지에 채색_45×45cm×5_2019

그림을 보는 입장에서 그녀가 당장 그 가부장제의 상징이자 짐덩이인 장롱을 부수고 새 가구를 마련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장녀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본인도 힘들면서 이 장녀, "당신의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나요?" 하고 묻는다. 이런 침착함이야말로 돌봄 문제를 같이 돌아보자는 다급한 알림일 수도 있겠지만 이 집안은 사회적 시스템이 감히 구원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 간의 연대와 사랑이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다. 작가에게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것은 책임감과 구습만이 아니라 사랑이기도 하다. 부수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진주층 같은 사랑. 이 글에서 자개장이 가부장의 상징이라고 아무리 밀어붙여도 자개(mother-of-pearl)는 작가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러니 이 작가는 가족의 안위, 그리고 타인의 안위를 둘러본 후에야 자신의 가구를 들여놓을 것이다. 그러기에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다. 금방 지치지만 않도록 옷장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면 좋겠다. ■ 배우리

Vol.20211116h | 서민경展 / SEOMINKYEONG / 徐旼慶 / painting

2025/01/01-03/30